마법의 열차는 불시 도착, 정시 발차
2018.04.01
마법의 순간은 마법처럼 지나갑니다. 지나가버린 기차에 손 흔들어 봐야, 후진기어 넣고 돌아오는 일은 없습니다.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수밖에요.
우리는 지지리 복도 없는 인생이라고 한탄하고는 하지만, 마법의 순간, 기적의 순간이 없었던 인생은 없습니다. 다만, 알아채지 못했거나.. 대합실 의자에서 졸고 있었거나.. 차표를 분실했거나.. 차표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집에서 TV나 보며, 떠나가는 기차를 탄 사람들을 부러워했을 뿐입니다.
몰랐으면 덜 억울합니다. 언젠가 하늘에 올라가 내 인생의 선택의 순간들을 Replay 해서 보게 되면, 그제서야 ‘아! 저게 기회였구나..’하고 무릎을 치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하늘에 와 버렸는데요.
문제는 알면서도 주저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왜 주저할까요?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인데 말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매우 주저합니다. 막상 기적이 다가오면 ‘어.. 이거 받아도 되나..’ 두려움에 빠져듭니다.
그들을 막아서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루틴입니다. 고통중독.. 신세한탄의 루틴을 막상 포기하려니 두려워집니다. 왜냐구요? 그게 익숙하니까요.
마법사는 오랫동안 사람들을 관찰해 왔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사람들은 이미 자기 좋은 대로 잘 살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사회와 제도, 가족과 운명을 한탄하지만, 실은 모두 저 좋을 대로 내린 결론과 선택을 따라 살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환경에 의해, 그런 선택이 익숙해지는 과정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노예제 속에서도 탈피하고 탈출을 감행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인격 사회의 결과는 모두 선조들의 위대한 선택들을 통해서입니다. 인류의 차원도 그러할 진대.. 개인의 차원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니 핑계를 대면 본인만 억울할 뿐입니다.
일상성, 고통의 루틴에 대한 집착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마치 고통과 고난을 즐기러 온 마조히스트들이 아닌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기적의 순간은 오로지 그 순간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린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똑같이 보고 있으면서도 고통에 중독된 인간들은 그것을 알아챌 수가 없습니다. 알아챈다 해도 루틴을 놓고, 기적의 열차에 탑승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저는 [멀린’s 100] 시즌 1에서 이상한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일명 [멀린의 마법여행 31]입니다.
보스턴입니다. 하버드 교정을 거닐다 보니 초등학교 때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미드가 꽤 인기 있었는데, 저는 어린 마음에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스터디 클럽’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이 멋져 보였습니다. 그래서 따라 한답시고 대학 게시판에 광고하듯, 교실 뒷벽에 엉성하게 만든 스터디 클럽 모집 포스터를 붙이고 아이들을 모았던 적이 있습니다. 몇 번 모여, 공부는 안 하고 놀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 저는 내친김에 독후감 경연 대회를 개최하겠다고 학급회의 시간에 선언해 버렸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는지, 5학년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제가 그때 무슨 말도 안 되는 도서부장이란 걸 맡고 있었더란 말입니다. 뭐 명목은 학급 도서 관리 같은 거였는데, 기왕 맡은 감투, 제대로 해보겠다고 제 스스로 독후감 경연 대회를 개최해 버렸습니다. 기억으론, 3명의 학생이 응모했던 것 같습니다. 원고지 몇 매 이상, 주제 자유.. 뭐 그런 식으로 했던 것 같은데.. 1등상은 국어사전이었습니다. 어머니한테 받은 용돈으로 국어사전을 상품으로 주었습니다. 물론 1등 선정도 제가 직접 했구요. 특별한 기준이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고.. 단순하게도 제일 길게 써서 제출한 친구를 1등으로 선정해서 학급회의 시간에 직접 시상하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셨을지..)
지금 생각하면 당돌하고 엉뚱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가 하는 독특한 행동들이 황당하고 엉뚱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낯설음으로 여겨질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첫 반응은 언제나 어리둥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단지 여행을 떠났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했던 돈이 생겼습니다. 저의 재정원칙대로 10%는 다른 곳에 사용해야 하는데, 어디에 쓸까 생각하며 하버드 교정을 걷다가 독후감 경연 대회를 떠올리고는, 여행 중에 생긴 돈이니 누군가 여행을 보내 주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여행일까? 여기저기 찍고 도는 패키지식 여행이 아니라, 한 도시에 체류하면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체험 여행, 아! 그래, 그게 좋겠다. 그래서 [Magic stay 31]입니다. 한 달이니 짜게 30일이 아니라, 후하게 31일 ^^. 한 달간 한 도시에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래서..
여러분들 중에 한 분을 선정해서
한 달간 원하는 도시에 체류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기로 하였습니다.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멀린의 마법여행 “Magic stay 31”]
- 지 원 금 : 8,000,000원
- 지원내역 : 해외 도시 1개월 체류비 (항공료+숙박비+체재비)
- 지원조건 :
A. 국내가 아닌 외국이어야 합니다.
B. 1개도시, 1개월(31일) 체류를 원칙으로 합니다.
– 31일을 모두 채우셔야 합니다.
– 기간을 연장하시는 건 상관없으나 중도 귀국하시면 안 됩니다.
C. 선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 출국할 수 있어야 합니다.
D. 귀국 후 6개월 이내 체류 기록을 제출해야 합니다.
– 형식은 자유입니다. (글, 사진, 그림, 음악.. 뭐든 체류 기록이 담긴 결과물)
– 체류 기록은 향후 콘텐츠 성격에 따라 퍼블리싱 할 예정입니다. - 지원금은 체류 기간 중 모두 사용하고 오셔야 합니다.
- 선정방법 : 추첨 (방식은 마감일에 공고)
- 지원마감 : 2014년 11월 24일 자정까지
[멀린’s 100]의 일환으로 시작된 여행이니 여러분에게 먼저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일주일 뒤에 신청하신 분들 중에 추첨하여 체류비를 지원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역에 따라 넉넉할 수도 부족할 수도 있는 금액입니다. 부족한 건 알아서 충당하시되 남기시면 안 됩니다. 전액 체류지에서 사용하시고 오시는 조건입니다.
다만, 유의하실 점은 마법여행이라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겁니다. 신중하게 신청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지원자가 없으시면 다른 그룹으로 기회를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하신 점은 댓글로..
그럼 이만
휘리릭~~
어떻게 되었을까요? 해당 커뮤니티에서 지원자는 1명도 없었습니다. 들썩들썩했지만.. 모두 시간이 문제고 여건이 문제였습니다. 물론 결심하면 되는 일입니다. 선택하면 되는 일입니다.
[공모] 공모를 마감합니다.
아쉽게도 지원자가 없으므로
공모를 여기서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아무쪼록 문제는
돈이 아니라,
시간임을 느끼실 수 있었다면
다행입니다.
인생도 문제는
돈이 아니라
시간입니다.혹, 덕분에 꿈꾸게 되셨다면
꼭 이루게 되시기를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그냥 접기는 아쉬워 다른 그룹에서 같은 방식으로 공모를 진행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 분이 선정되었습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을 찾겠다고 절치부심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 결국 여행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별다른 이유가 없이 말입니다. 할 수 없이 저 여행은 제가 떠났습니다. 그리고 뒤에 들려온 소식으로는.. 떠나지 못한 그분은 공황장애에 걸리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아는 한 저간의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의지의 문제,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뭐가 없고 뭐가 부족해서,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기회는 도처에 널렸고, 우리는 그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수백만 가지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가 아니라, 선택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짜증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상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파도 위를 떠다니는 부표의 목표는 뒤집히지 않는 것입니다. 뒤집히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한도 끝도 없이 파도 위를 떠다니고 싶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인생은 그렇게 살라고 둡시다. 괜한 기적 일으켜 봐야 혼란만 가중될 뿐입니다.
마법의 순간은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보입니다. 그래서 운7 기3.. 기3은 그 순간을 알아보는 기술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부표이실리 없습니다. 모두가 도박이니, 사기니 하는 판에 여직 눈을 떼지 않고 머물러 계시니, 여러분은 모두 마법의 승차권을 소지하신 분들일 겁니다. 탁월한 기술자들이실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지치지 말고 또 존버입니다. 800만원으로 한 달 여행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선택이 공황장애로부터 보호해 주고, 어설픈 선택의 번복을 방지해 줄 테니까요. 왜 이딴 곳에 글을 쓰고 있는지 한탄스럽더라도, 이 선택을 유지하면.. 적어도 이 시간에 했을 나쁜 선택으로부터, 우리는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일 텝니다. 이때 쓰지 않았으면, 이때 이곳에 머물지 않았으면 몰랐을, 정보와 지혜, 깨달음과 습관이.. 우리를 보호해 주고 기적의 열차에 탑승케 해 줄 것입니다.
결과는 지나보면 알겠지요. 선택은 이미 이루어졌으니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서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지루하고 지겨워도 기차는 반드시 옵니다.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상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기대하지 못한 타이밍에,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우리는 우리가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법의 열차는 불시에 나타나 언제나 정시에 발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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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