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렀더니
2018.04.02
그 고통이 커봐야 얼마나 컸겠습니까?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를 지고..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일이.. 물론 평범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 하루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금요일 새벽에 체포되어, 낮 3시쯤 숨이 멈추었으니.. 33년의 생에 짧은 하루였습니다. 죽음의 육체적 고통으로 비하자면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을 하다 고문을 당한 사람들.. 생체실험을 당한 사람들.. 불에 타 죽은 마녀들.. 능지처참을 당한 사람들.. 사지가 찢겨 죽은 사람들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따뜻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제자들을 거느리고, 기적을 일으키고, 슈퍼스타로, 권력의 견제를 받을 만큼 칭송과 영광을 누리다.. 화려하게 생을 마감한 팝스타의 일대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는 그 고통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일매일이 지옥 같은 순간들을 견뎌내고, 살아내고 있는, 서민들의 인생이 참으로 더 대단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그의 죽음과 고통을 호러물처럼 포장해서 팔아먹고 있습니다. 뭐 그동안 잘 팔렸으니 장사 잘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예수도 그걸 원했을까요?
억울하기로 치면, 꿈 한 번 잘못 꿨다고 13년을, 노예로, 죄수로 전전한 요셉만 하겠습니까? 40년을 광야에서 헤매다, 다시 40년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돌아다녔음에도.. 가나안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한 모세만 하겠습니까? 고래 뱃속에까지 들어갔다 나온 요나만 하겠습니까? 인간에게 불을 줬다가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프로메테우스만큼 고통스럽겠습니까?
인간예수의 위대함은, 그가 경험한 만 하루도 채 안 되는 고난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예수의 위대함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음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해 도적이 되었건만, 인간예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는 이 말 한마디로 천국의 열쇠를 얻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디 한류스타 누군가가 무대에서 “내가 누구?” 했다고 군중 속에서 벌떡 일어나,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했다고 자기 통장 비밀번호를 넘겨 준답니까? 넌 죽어서 내 밴 옆자리에 영원히 태워줄게 한답니까? 그걸 누가 또 믿는 답니까? 그런 일이 2천년 전에 벌어졌고 베드로는 저 말 한마디로 초대 교황이 되었습니다.
열쇠공 아저씨는 천국에 그냥 들어가겠네요.
인간예수의 위대함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의 신분을 잊지 않고,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었단 말입니다. 인간예수가 아니라 신의 아들 예수임을, 누가 뭐래도 당당하게 내세우고 다녔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누가 뭐랄까 봐 금방 위축됩니다. 심지어 홍길동도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신분은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예수가 진짜 신의 아들이었는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그래서 믿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신의 아들인지 아닌지는 내가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는 자는 그렇게 믿고 또 그렇게 행동합니다.
우리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나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나는 누구이고 나의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그걸 압니까? 모릅니까? 알면 안다고 왜 말을 못합니까? 젊은 나이에 죽을까 봐 겁납니까? 100살은 살아야겠습니까? 십자가, 그게 겁납니까? 그래봐야 만 하루도 안되는 고통이었을 뿐입니다.
영광은 길고 고통은 잠깐입니다.
나는 누구냐?
위대한 신의 아들 인간예수의 위대함은 그것입니다. 기적을 베풀면서도 기적으로 먹고 살려 하지 않았고, 명예와 칭송을 받으면서도 불편한 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저주를 받을 줄 알면서도 안식일에 병을 고쳤고, 본질에서 벗어나면 자기 제자라 할지라도 ‘이 독사의 새끼야’ 하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며 저주를 내렸습니다.
그 모든 것에도 더욱 위대한 것은, 자신이 누군인지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신의 아들, 그리스도’로서의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분을 숨기기 바쁩니다. 세탁하기 바쁩니다. 그것은 남의 질서에 굴종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나의 우주를 사는 일이 아니라, 남의 우주에 빌붙어 먹겠다는 말입니다. 질시와 멸시, 비난과 손가락질에도 자신의 신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사라지고 누군가의 대리, 누군가의 과장,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며느리, 남의 우주의 부속품이 되어 바스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이고 살아계신 신의 아들이었습니다. 그게 참인지 거짓인지 아무도 모르나, 2천년이 지나는 동안 그의 신도들이 그 사실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선포하고, 그를 따르는 제자 중 단 한 사람이 그 사실을 확인해 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허무맹랑한 개소리가 지금은 역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면 개차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잘해야 홍길동입니다. 자기의 이름이 아닌.. 세상 모든 이들이 아무 때나 임시로 쓰는 이름이 되어버립니다. 개똥이, 소똥이, 홍길동이가 되어버립니다.
인간 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신의 아들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그렇게 여깁니다. 그렇게 간주합니다. 일단 그렇다고 하고 말을 이어갑니다.
부활절입니다. 인간예수가 죽었다 3일 만에 부활했답니다. 그렇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다니 그런 겁니다. 인간예수가 그렇게 말했고, 그의 제자들이 눈으로 봤다니 그런 겁니다. 성서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 그런 겁니다. 2천년이 흐르는 동안.. 결국 모두가 그렇다고 일단 인정하고 보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는 부활절을 목격하고 축하합니다.
만 하루도 안되는 고통을 당하고, 3일 만에 부활하여, 2천년이 넘도록, 죽었다 살아난 유일한 인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인간예수가 말입니다. 신의 아들 예수가 말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렀더니 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신의 아들이다” 그랬더니 말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마법사입니다.
마법사는 닉네임이 아닙니다.
나는 마법사 멀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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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