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메이트
2011.06.09
딸아, 너는 너의 생에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소울메이트를 만나게 된다. 소울메이트를 만나는 일은 자신을 직면하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이다. 태초에 우리는 모두 하나였지. 그것이 나뉘고 나뉘어 세대를 거듭하며 다양한 나로 변화되어 왔다. 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이것으로 또 저것으로 모양과 형태만 다르게 우리는 태초의 모든 원소 그대로를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때에는 나무로, 어떤 때에는 맘모스로 또 어떤 때에는 여자로, 어떤 때에는 남자로.. ‘너’를 이루고 있는 형질의 원소들은 각각의 생의 여행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삶과 生으로 살아온 거야. 그리고 ‘너’라는 존재는 그러한 수많은 生의 결정이며, 이 지구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는 역사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도 한때 ‘나’였던 수많은 소울메이트들을 만나고 대면하고 있다. 네가 만지는 꽃과 나무, 네가 만나는 사람과 사람.. 모든 것이 한때 ‘너’의 일부이자 ‘너’의 모든 것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과 존중으로 대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야.
이를 좀 더 작게 인간 生의 차원에서 본다면, 어느 生에 ‘나’라고 불렸던 너의 일부분을 우리는 ‘소울메이트’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다른 ‘나’는 여러 세대를 거치며 다양한 숫자로 나뉘었고, 나누어진 수가 많고 하나였던 세대가 오래일수록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기억은 희미해 지는 것이다. 반면 비교적 가까운 세대 속의 ‘나’는 이 生에 좀 더 뚜렷한 느낌을 간직하게 되고, 서로 만나면 알 수 없는 동질감을 경험하며, 각자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것이란다. 그때에 우리는 서로 ‘운명인가?’ 느끼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소울메이트를 만나게 되는 일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을 만나고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그러므로 너의 소울메이트가 경.험.하는 일은 곧 너 자신이 경.험.하는 일이며, 너의 소울메이트가 변.화.하는 일은 너 자신이 변.화.하는 일인 거야. 그들은 같은 영혼의 원소들을 공유하고 있고 그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너와 너의 소울메이트에게 닥치는 모든 혼란과 고통, 기쁨과 환희는 곧 너와 너의 소울메이트의 세포 속에서도 함께 공유 되어지며, 함께 경험되어지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네가 극복하면 너의 소울메이트들도 함께 각자가 처한 상황들을 극복하게 되고, 네가 좌절하면 너의 소울메이트도 함께 무기력에 빠져드는 것이다.
모든 딸과 아들은 그들의 부모가 소울메이트임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 이다. 그들의 전생에 하나였던 경험이 전혀 존재하지 않더라도 새롭게 태어나는 자녀를 통하여 그들의 영혼은 하나가 되고 그 자녀는 부모의 원소를 그대로 간직한 통합된 소울로 새로운 生을 이어가게 되는 것 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면부지의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서로가 소울메이트임을 확인하게도 되지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통해, 소울메이트로 새롭게 연결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영혼은 나누어지고 합쳐지고 분열하고 결합하면서,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로서의 ‘나’를 끊임없이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자인 순간에도 고독할 이유가 없다. 여기 존재하는 ‘나’는 그것 자체로 모든 우주이며, 지구와 인류, 우주의 모든 역사이기 때문이다.
네가 바라보는 모든 것,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남아, 전 우주의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창조이며, 생명의 탄생이자 변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소울메이트를 만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넓게는 모든 존재 속에서 소울메이트를 경험하겠지만, 좁게는 한때 ‘나’ 자신이었던 ‘너’를 만나야 하고 그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소울메이트와 삶의 역동을 함께 경험하고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누어진 채로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 하나가 되는 경험을 통해, 자연과 우주는 진화와 발전을 이룩해가기 때문이다. 또한 ‘나’ 하나의 우주도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함께 어우러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영적 존재로서의 창조를 이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딸아, 네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소울메이트가 있다면, 그와 함께하는 일에 두려움을 갖지 말아라. 그것은 곧 너 자신을 이루는 일이며, 너의 소망과 꿈이 완성되는 일이다. 소울메이트를 만나는 일은 매번 두렵고 힘든 과정이다. 그것은 물론 오래 떨어져 있던 가족을 만나는 것처럼 기쁘고 설레는 일이지만, 또한 감추고 덮어두었던 자신의 연약함을 직면하는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환희와 흥분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다시 분리될 이유와 명분을 찾아 다니고, 애써 만난 소울메이트를 애써 멀리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일을 두려워 멀리한 채, 도피처를 찾아 돌아다니는 모든 인간들은 결국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만나게 되고, 그들 속에서 애써 도망쳤던 자신을 또다시 직면하게 되고는 당황하고 만다. 그렇게 만나고 도망가는 일을 반복하다가 ‘나’ 자신 속에서 길을 잃고 마는 것이다.
먼저 두려움이 없는 시선으로 용기 있게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나면, 그래서 매번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불안과 공포로 수도 없이 뒤집어 썼던 모든 가면을 벗고 나면, 너는 너의 소울메이트에게 기쁨과 희망의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는 너에게서 타자로서의 ‘너’가 아닌, 소울메이트로서 건강한 자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에서 生의 희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가식이 없는 또 다른 ‘나’를 통해 변화의 용기를 얻고 자신을 직면할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다.
딸아, 그래서 우리는 모두 서로의 거울인 것이다. 영혼의 소울메이트인 ‘너’와 ‘나’는 서로를 바라볼 때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의 ‘연약함’은 나의 ‘연약함’이며, 너의 ‘용기’는 나의 ‘용기’인 것이다. 그러니 두려울 필요가 없다. ‘내’가 바로 서게 되면 ‘너’ 또한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들의 만남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소울메이트임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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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딸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