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9 

 

사랑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아니야. 사랑은 하.는. 거야. 야구를 하고, 축구를 하고, 공부를 하고, 노래를 하는 것처럼 사랑은 하.는. 거야. 야구를 하고, 축구를 하는 사람들은, 공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지. 노래를 하는 사람은 노래를 불러주고 또 청중의 환호를 받지. 공을 받는 사람 없이 주기만 하면 야구도 축구도 아닌 거야. 노래를 부르기만 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것도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가 될 뿐이야. 사랑도 그렇게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거야. 이 모든 것이 서로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지, 누군가 일방의 주는 행위, 일방의 받는 행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야.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지. 결핍된 사람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지.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야. 누군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사랑은 구제이지 사랑이 아니야. 그렇다고 구제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야. 결핍된 존재는 온전한 사랑을 누릴 수 없어. 그러니 그 결핍이 충족되는 과정이 필요한 거야. 그래서 충만해진 존재로 성장한 뒤에야 온전한 사랑을 하게 되는 거야.

사랑을 받기만 하는 존재는 두려움에 휩싸이지. 그것이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니, 언제 떠나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지. 그래서 받는 사랑은 늘 불안과 함께하는 거야. 사랑하는 데 불안한 사람은 받고 있는 사람이지. 그래서 그들은 더욱더 집착하지. 우리는 이를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이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니라 구제의 사랑이라는 것을 또한 받아들여야 해. 성숙한 사랑은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채워주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와 자신에게서 사랑의 샘이 터져 나오도록, 물줄기를 뚫어주고 샘이 솟아나게 하는 마중물임을 명심해야 해.

어떤 이들은 일방적으로 채워주고는 상대를 자신의 구제에 꽁꽁 묶어 놓아버리기도 하지. 그들 또한 결핍된 존재들이기 때문이야.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서로를 꽁꽁 묶어 놓아버리지.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사랑을 아름답다고 칭송하지.

아니! 그건 사랑이 아니야.

결핍된 존재끼리 서로 멱살을 잡고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드는 늪이야 그건.. 진정한 사랑은 사람을 성숙시키는 거야. 자신의 샘에서 사랑을 솟아 나오게 만들어 주는 사랑이 참된 사랑이야. 받는 자에서 주는 자로, 주는 자에서 하는 자로 상대를 성숙시키는 사랑이 참된 사랑이야. 누구도 완전한 사람일 수는 없지만,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결핍을 상대의 것으로만 일방적으로 채우려 들지 않고, 마중물 삼아 열심히 자신 내면의 샘을 파들어 가는 자만이, 성장하는 자이고 사랑할 자격을 얻는 자인 거야.

아이야, 너는 네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의 사랑을 되새겨 보렴, 부모, 자식, 친구, 연인, 동료.. 그 모든 관계들 속에서, 네가 진정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관계들이 얼마나 되는 거니? 움츠리고 불안에 떨며 무언가 얻어낼 기회만 호시탐탐 누리는 관계들, 겉으로는 자상한 척, 자애로운 척하며 실은 자신의 불안을 들킬까 봐, 구제의 사랑에만 목매는 거짓 사랑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 거니? 성장하는 존재들은 서로를 기쁘게 하지. 사랑받는 자리에서 사랑을 주는 자리로 나아가고, 사랑을 주는 자리에서 사랑을 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일은, 매 순간이 두렵고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또한 보람되고 뿌듯한 일이란다.

사랑하는 데 두렵다면.. 불안하다면.. 너는 상대방의 사랑이 변했다고 판단해 버리기 이전에 ‘나는 구제를 받고 있었구나’ 하고 돌아보아야 해. 주체적인 사랑은 상대의 어떠함에 흔들리지 않지. 그것은 사랑에 관한 자신의 주체적인 결정이며 운명적 만남의 결과이기 때문이야. 그러나 비록 외형적으로는 끝없이 무언가를 주고 있는 너일지라도, 그 사랑이 불안하다면, 실은 기대고 있는 상대가 떠나갈까 두려운, 결핍이었을 뿐인 거야. 상대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존이 강렬했을 뿐이지. 그래서 상대를 붙잡아 두기 위해 대가를 치르고 있었을 뿐이지, 너는 사랑을 하는 것도 사랑을 주는 것도 아니었던 거야.

이렇게 우리 모두는 불안이라는 모랫바닥에 위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며 엄청난 초고층 사랑의 탑을 세울 수 있을 거라 망상하지. 그리고는 삽 위에서 흩어져 버리는 모랫바닥을 파고파고 또 파 들어가면서도, 멈출 수가 없지. 파고 있지 않으면, 적어도 파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자신의 망상이 사라져 버릴까 두렵기 때문이야. 그래서 우리는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를 키우고, 회사에 가고,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며 가족의 현금지급기 노릇을 하고, 원하지도 않는 환경과 과업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가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가시면류관을 벗어던지려 하지 않지. 결핍된 존재 하나가 다른 결핍된 존재에게, 죽지 않을 만큼의 빵 쪼가리 몇 개를 매일 던져주며 ‘넌 나만 사랑해야 돼’ 말하게 하고, 또 그 존재는 그 치사한 빵 쪼가리 몇 개가 사라질까 두려워, 상대의 배우자 또는 자녀로서의 품위를 유지시켜 주며 ‘대신 너도 딴 생각하면 죽어’ 하고 암묵적인 계약에 동의하지. 이것은 사랑이 아니야. 이것은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계약일 뿐이야. 그렇게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어가며 상대에게 의무만을 강조하지. 그리고 꼭 덧붙이는 거야. ‘다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렇게 아내에게 남편에게 영혼의 폭력을 행사하고, 아이의 생의 결정권을 모조리 빼앗아 버리지. 겨우 빵 몇 쪼가리에, 이따금 놀이동산 자유이용권 몇 개, 대형마트 장난감 몇 개를 사주면서 말이야.

아이야,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거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아닌, 사랑을 하기 위해서 말이야. 아이는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는 거야. 그래서 눈빛만 봐도 즐겁고 목소리만 들어도 설레는 거야. 엄마가 젖을 줘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말을 잘 들어서 사랑하는 것도 아니야. 엄마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아이는 빙긋 웃으며 엄마에게 재롱을 떨고,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받기도 주기도 하며, 우리는 그렇게 사랑하고 싶어서 세상에 온 존재들이야. 충만한 아이도, 엄마도, 서로의 사랑에 의존하고 있지 않아. 엄마는 엄마가 가진 생명력으로 충만하고, 아이는 또한 천사 같은 영혼 그 자체로 충만한 생명인 것이지. 그러니 너는 사랑을 받는 순간에도, 너의 내면의 샘을 파 들어가는 일에 소홀하면 안 되는 거야. 너는 사랑을 하는 중에도, 늘 너 자신의 생명력으로 충만해져야 하는 거야. 그 어떤 것도, 외부에서 오는 무엇으로도, 너를 점령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돼. 모두 고마운 손길들일 수 있지만, 어쨌거나 네  사랑의 샘을 터져 나오게 해 줄 마중물 이상이어서는 안되는 거야. 네가 진정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된다면 더 이상 아무런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리지 않아도 돼. 너는 그저 끝없이 사랑하는 행위를 통해 만족하고 충만하고 넘쳐나게 될 테니까 말이야.

온전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으니..

네 사랑이 두려움과 결핍의 모래성 위에 쌓여 있다면, 너는 그것들을 모두 허물고 단단한 너 자신의 내면부터 파 들어가야 해. 그때에는 너를 도와줄, 너의 마중물이 되어줄,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도 좋겠다. 파고 또 파고 그래서 네 내면이 충만해질 때까지 파 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샘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 너는 이제 굳이 얼마 남아 있지도 않은 네 사랑의 샘 바닥을 박박 긁어서 억지로 퍼줄 필요가 없어지지. 이제는 쏟아져 나오는 네 생명의 샘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편히 쉬어갈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너는 그중 누구도 떠나갈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누구에게서 버림받을까 불안해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 네게서는 그저 사랑의 샘이 솟아나고, 사람들은 와서 마시고 충만해져서 자신의 샘을 또 파러 가고.. 그런 아름다운 상호작용이 끝없이 일어날 뿐이지.

무엇이니? 자신의 샘을 파 들어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니? 도를 닦는 거니? 기도를 하는 거니? 공부를 하는 거니? 무엇이 스스로 주체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온전한 존재로 만드는 거니?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거지.

그것뿐이야. 자신의 샘을 파 들어가는 유일한 행위는 자선도, 희생도 아닌,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거야. 온통 외부로 돋아 있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거야. 너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게 뭐지?’

그리고 써 내려 가는 거야. 내가 원하는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을 쓰고, 그것들을 마치 시한부 환자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듯 하나하나 만족시켜 가는 거야. 내가 하기 싫은 것들,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백지 위에 빼곡히 적어내려 가고 하나하나 멈춰주는 거야. 백일 된 아이에게 하듯 꼼꼼하고 세심하게 내 자신을 보호해 주는 거야. 위협이고.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모든 현실 속에서 나를 구출해 주는 거야. 그것은 모두 너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무얼 원하는지, 무얼 원하지 않는지, 모두 너 자신만이 대답할 수 있고 너 자신만이 들어줄 수 있는 일이지.

이것이 너의 내면의 샘을 파 들어가는 일이다. 너는 이 일에 네 생에 전부를 걸어도 좋아.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고 난 뒤에야, 샘이 터지고 사람들이 몰려들 거야. 그제서야 내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충만할 수 있는 거야.

들여다보렴.
얼마나 파 들어갔니?
너의 샘에서는 물줄기가 흘러나오고 있니?
너는 사랑을 하고 있니?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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