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우리들의 임신

[MOVIE 100] May 02. 2022 l M.멀린

 

 

사회는 애 안 낳는다고 난리인데 임신했다고 더 난리구나. 그게 우리 일이면 시급하지만 내 일이면 절망적이지. 그 딜레마를 어케 극복할까. 어른들이 만든 딜레마를 너희들에게 전가하고 있으니 누가 어른이겠니.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은 축복받아야 할 결정인 건 너무 당연하지. 유전자 전달자로서의 인간은 그게 할 일의 전부 아니니. 그런 우주적 의무를 젊은 나이, (아니 백 년 전만 해도 중년부부였을) 젊음으로 감당하는 것이 인생의 통과의례일 텐데 우리는 그걸 너무도 미루고 미루다 포기하고 말았어.

그건 연대가 박살 난 공동체 때문이기도 하지. 아이는 혼자 키우는 게 아니야. 둘이 키우는 게 아니야. 그런 시대는 없었단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있다면 심지어 저주를 받은 거라고, 드센 팔자 때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거나 동정을 받아야 할 일이었지.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니? 그런데 지금은 모두 혼자 키운다. 둘이 키우고 독박을 써야 해. 그건 재앙이 되어버렸지. 혼자 뛰어도 버거운 세상을 안고, 업고, 달고 달려야 하니, 이건 피박에 독박이지. 그래서 ‘내 자식 쓰리고’를 꿈꾸는 어른들이 임신을 만류하는 거야. 왜냐고 청소년의 임신은 부모에게 피박에 독박이거든.

너희들이 서울대 나오고 대기업 취직해서 애 낳겠다고 하면 누가 만류하겠니. 신혼여행 다녀온 지 며칠 됐다고, “그래 손주는 언제 보게 해줄 거니?” 묻는 게 이기적 어른들이니까. 그 이기적 어른들이 줄줄이 통과의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청소년에게 임신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건 자식의 의무가 아니라 부모의 의무가 되는 거니까.

너희들은 잘 할 수 있다고, 자신 있다고 계획을 세웠어. 이렇게 저렇게 하면 성취하려던 인생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을 거라고. 그건 서울대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긴 하지. 하지만 너희들이 서울대가 아니라 하버드를 가겠다고 하면, 인서울이 아니라 서울대를 목표로 하겠다고 하면, 부모들이 지금처럼 반대했을까?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애 낳고 키우며 공부하고 취직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모르는 소리라고 하면, 공부하고 취직해서 애 낳고 키우는 일은 쉬운 일이냐고, 순서를 바꾸는 일이 문제냐고 묻고 싶구나.

산업화된 사회는 인간의 통과의례 항목에 성인식 대신 대학입시를 밀어 넣고, 자립을 빼고 취직을 박아 넣었는데, 자본주의와 결합한 산업사회는 대학 나왔다고 자립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취직했다고 집 한 칸 마련할 수도 없는 이상한 사회를 만들어 놓고 여전히 결혼하고 애 낳기를, 대학 나오고 취직해서 결혼하고 애 낳기를 강요하고 있다. 불가능한 꿈을 강요하고 있다. 5천만 원짜리 집을 10년 직장생활하면 살 수 있던 어른들이 10억짜리 집을 (것도 2~3년 만에 더블로 뛰는) 평생 일해도 살 수 없는 세상에서 같은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거야. 그걸 너희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 그러니 아이부터 낳겠다는 너희들의 선택은 얼마나 낭만적이고 또한 현실적이니.

아이를 낳지 않겠다면, 결혼도 하지 않겠다면, 너희 선배들 그리고 너희 친구들 대부분이 걸어갈 그 길을 너희도 걷겠다면, 그래서 하는 어떤 선택은 비난받을 것이 없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모양이니 개인이, 하나의 세대가 그 부담과 고통을 모두 끌어안아서는 안 되는 거니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겠다는 너희들은 오히려 존중받아야 해. 그 길은 아무도 가보지 않았으니까.

임신과 출산을 병행하면서도 학업을 이어가고, 의사도 병원장도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너희들의 계획은, 대학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살면서도 행복할 거라는 어른들의 계획과 다를 게 없어. 그것의 허구성, 그것의 허무맹랑함은 꿈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도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지. 의지와 노력 말이야. 그러나 또한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면 선택한 삶과 주어진 삶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거야. 너희들의 선택 말이야.

자의 반, 타의 반 주어진 삶의 경로를 따르던 인생이 선택의 국면에 서게 되는 때가 어른이 되는 때인 거야. 그걸 대부분의 어른들이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단다. 사회가, 타인이, 명사가 정해주는 삶을 사는 어른들이 인생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이놈의 세상이 전쟁판이 되어버린 거야. 그러니 전쟁 중에 포탄이 사방에 터져 나오는데 의지할 것은 무엇이겠니. 오른쪽으로 피할까? 왼쪽으로 달릴까? 즉각적인 판단이 생사를 결정하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너희들은 무엇을 의지할까? 자신의 판단,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 그것뿐이지.

그것뿐이야. 내 인생 누가 살아주는 거 아니까. 누구 인생 대신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니까. 우리는 자신의 선택과 판단밖에 믿을 수 있는 게 없어. 그걸 위임하고, 헌납하고 살다가 어른들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어버렸으니. 그걸 실험하겠다고, 내 선택을 따라보겠다고 그래서도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하는 일, 다짐하고 다짐하는 일. 그것에 흔들림이 없는 너희들의 태도에 마법사는 감복하였다. 그런 건 드라마에만 있는 일일까?

성인이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선택하고 내 선택을 나 스스로 증명해 가는 삶을 시작한다는 거야. 그래서 성인식은 소년소녀들의 선택을 시험하는 의식이었지. 그걸 지금은 대학입시가 대신하고 있지만 그걸 성인식의 용도로 사용하는 예비 성인들이 얼마나 될까?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노예 증명으로 여기는 아이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그 아이들이 나라를, 우리 공동체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단다.

자신의 선택이라면 아이를 낳는 것도 낳지 않는 것도 모두 옳다.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 선택이 아니라면 이제 결과는 온전히 너희들의 것이 될 거야. 그 과정에서 부모와 불화하고 사회로부터 손가락질받고 이웃들에게 배척을 당해도 그건 그저 장애물이 좀 늘어났을 뿐이야. 장애물이 늘어날수록 선택은 분명해지고 의지는 단단해지지. 그걸 체력 만땅인, 에너지 최고인 젊음의 때에 감당한다는 건 아주 운이 좋은 일이야. 그걸 미루고 미룬 어른들이 자신의 몸도 정신도 가누기 힘들 때쯤 뒤늦은 숙제를 하게 되는 게 이 사회의 통과의례가 되어버렸거든. 그래서 다들 우울증에 빠져 버렸지. 될 대로 되라 살고 있지. 너희들에게 기대면서.

아버지들에게 미안하다고 먼저 말한 너희들이 자랑스럽구나. 너희들이 드라마 속에만 존재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야. 그리고 보여주렴. 선택의 결과를 말이야. 선택을 증명해 보여주렴. 실패하지 말고 성공해 달라는 말이 아니야. 실패하거나 성공하거나 선택을 양도하지 않는 당당함을 잃지 말아 달라는 거야. 세상은 너희들을 부담스러워하겠지만, 선택할 줄 모르는 인간들은 선택하는 사람들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법이니, 그 안에 너희들의 부모도, 친구도, 선생도, 모두 너희들의 선택을 바라보고 있단다. 그들도 언젠가 선택하게 되겠지만.

그러나 이 시대에, 혼자서, 둘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야. 연대를 복원하지 않고 전쟁의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함께 늪으로 빠져드는 일이야. 그리고 그건 선택한 두 사람의 책임이 아니야.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그건 세금 낼 때만 유효한 게 아니야. 연대는 의무이자 권리이니까. 연대를 복원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선택이 죄도, 절망도, 어리석은 일도 아닌, 축복으로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일. 그걸 할 수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지옥을 맛보게 될 거야. 그걸 하려는 거지? 그래서 선생님도, 친구들도, 학교도, 부모도, 어른들도, 포기하지 않고 부딪히는 거지? 도망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직면하는 거지?

그건 혁명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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