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17. 2025 l M.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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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기차를 타려고 이 도시에 왔다. 계곡 사이에 자리 잡은 이 작은 도시는 신비로 가득하다. 정말 기차가 하늘을 날고 있다니까. 미래도시의 모습이 아니야. 2025년의 모습이고, 날기 시작한 지는 100년이 넘었단다. 생각할 수 있는 건 모두 이미 존재한다. 우리가 보고 있지 않을 뿐.

하늘을 나는 기차를 타고 엄마를 찾아 떠난 소년을 보며 미래를 상상하던 아이들은, 이미 기차가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물론 차이는 하늘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작은 마을들이 강 때문에 이어지지 못하고 있었단다. 도시를 통과하는 부퍼 강은 도로와 철로 확장을 가로막았다.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그러자 누군가 기차를 하늘에 매달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이단적 생각을. 그 생각은 그의 이름을 딴 현실이 되었다. 1901년의 일이란다. (공식명칭 <Einschienige Hängebahn System Eugen Langen 오이겐 랑겐식 단궤 현수철도>. 오이겐 랑겐, 사람 이름이다. 그는 세계 최초의 실용적 가스엔진을 만들어 자동차 시대를 연 숨은 공로자로 불린다고. “위로 올려서 달리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단다.)4596.jpg

100년이 지났는데도, 건물을 통과하고 강과 집들 사이를 달리는 기차는 신비롭고 미래적이다. 우리의 생각은 후진한 게 틀림없다. 저게 신기할 모습인가? 지구 반대편에서 하늘을 날아 왔는데? 하늘에 매달려 나는 기차를 보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생각이 땅에 묶여 있다는 말이리라. 거꾸로 매달려 보면 발밑을 지나가는 기차일 뿐인데. 이 하늘을 나는 기차는 주변의 작은 도시들을 통합하여 ‘부퍼탈(Wuppertal)’ 시를 탄생시켰다.4598.jpg

이 도시가 낳은 건 하늘을 나는 기차뿐이 아니다. 이 도시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세기를 뒤흔든 이단아를 낳기도 했는데,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친구,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바로 이 도시에서 태어났단다. 그는 이 도시에서 단지, 태어난 것만이 아니다. 그는 이 도시의 부로 친구를 먹여 살렸다. 그의 가문이 이 도시에서 일군 가업으로 부유했기 때문이다. 그의 가문은 섬유산업, 면직물 제조 및 가공사업으로 이 땅에서 큰 부를 일구었다. 그리고 이 자본가 가문의 부는 고스란히 혁명의 자원으로 사용되었다.

가난한 마르크스는 생계를 친구에게 의존해야 했다. 호탕하고 관대했던 모던뽀이 엥겔스는 돈은 뒀다 뭐하냐며, 친구와 혁명 동지들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했단다. 수입의 절반 이상을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들에게 지원했다고. 이런 아들이 못마땅한 부자 아버지는 나쁜 친구들과 사귀지 말라며 엥겔스를 학교도 못 다니게 하고 금전적 지원까지 끊어버렸는데. 그러다 마르크스의 아이가 영양결핍으로 사망하자, 엥겔스는 친구를 돕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가문의 사업에 참여 했다고.4599.jpg

_ 그의 저택들
 

한 세기, 세계의 절반이 열광한 혁명의 동력이 부르주아 가문의 유산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지만, 성공한 혁명은 그러기 마련이다. 반(反)은 정(正)으로부터 나오고, 다시 정(正)은 반(反)으로부터. 부르주아 자본가들의 부패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나오고,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의 부패에서 다시 자본주의로. 변증법적 진화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의 때가 이르러 등장하는 필연적 계절 같은 것이리라.

돈 많은 부잣집 상속자가 혁명에 귀의하지 않았다면, 소년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말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세상을 뒤흔든 이데올로기 역시 자본의 낭만이 배태한 사상 놀음이었을까? 하지만 역사의 운명은 모든 선택을 비웃으며 자신의 길을 기어코 가고 마니, 인류는 그저 부잣집 도련님과 그의 가난한 친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혁명극을 관람한 것이리라. 이렇게 20세기의 계절은 두 친구의 우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의 진한 우정이 세상에 드러내 놓은 것이 그 유명한 <공산당 선언>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유작이자 역작이며 세계를 들었다 놓은 빨간책 <자본론>이라니.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는, 낭만도 없고, 친구도 없는 이 시대에, 빨간 제국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어떤 이단적 사상도, 혁명적 이론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테니. 그런 우정이 없어.4600.jpg

_ <자본론>, 빨간책의 끝판왕
 

마르크스가 암호로 적은 유작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엥겔스뿐이었단다. 마르크스의 지독한 악필을 해독하느라, 엥겔스는 시력이 약해져 실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고. 대단한! 우정이다. 한 사람의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모두 이해하고 끌어안는 친구를 누가 가졌을까? 도대체 엥겔스 없는 마르크스는, 그리고 빨간 혁명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이 빨간 마법사 친구들의 붉은 성서는 빨간 제국을 온 열방에 전파해 버렸다. 칭기즈칸 이후 최대 영토다.

그러나 그들이 상상한 세상 역시 계절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져, 칭기즈칸의 몽골제국마냥 한 세기를 넘기지 못했으니. 힘의 제국의 계절이란 원래 그리 짧은가? 종교의 제국은 수천 년을 이어가는데. 부르주아 제국의 노동자들은 단결하지도, 각성하지도 않으며, 각자도생과 의자 뺏기에 열을 올리고 있고, 자본가의 이익에 복무하는 대출을 규제한다고 아우성치는 프롤레타리아들의 계급 상승 투쟁은, 오로지 영끌 투쟁을 통해서만 단일 대오를 이루고 있으니. 세상에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선포한 우리 빨간 마법사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빨간 마법사들이 자본가들의 반대편에서 시소를 힘차게 밟아주어 세계가 균형을 이루었던 것처럼, 지금의 세상 역시 또 다른 어떤 이단적 생각이, 어떤 대단한 우정이, 이 폭주하는 세계의 반대편에서 힘차게 발을 굴러 균형을 맞추어 주어야 할 텐데. 여름의 희생 없이 봄이 올 수는 없으리라.4601.jpg

*엥겔스의 대단한 희생은 마르크스와 가정부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까지 입양했단다. 친구를 불순한 소문들로부터 보호하여 혁명의 불씨가 사그러들지 않도록. 덕분에 엥겔스는 본인의 명예가 훼손되고 손가락질받는 수모를 감당해야 했지만, 이 사실을 임종할 때까지 밝히지 않았다고. 혁명을 꿈꾸는 이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이 정도라면?4602.jpg

마법사를 이 도시로 이끈 건, 실은 이 계절에, 이 도시에서, 마녀들의 춤 잔치가 열린다는 전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처녀들은, 이 도시에서 시작되어 꽃을 피운, 무용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의 <탄츠 테아터(Tanztheater)> 소속 마녀들인데, 그녀들은 도래하는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희생제 <봄의 제전 Das Frühlingsopfer>을 열기로 했단다. 아름답고 순결한 처녀 중 한 사람을 뽑아 봄의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4607.jpg

사람들이 마녀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녀들이 희생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희생을 두려워한다. 지금의 안정을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겨울이어도 말이다. 꽁꽁 얼어붙은, 불타는 지옥이어도 말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들이 각성하게 될 거라고 믿었던 순진한 빨간 마법사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사람들은 지옥이어도, 얼음장이어도, 심지어 불꽃 용광로 속이어도, 지금의 위치와 처지를 사모하고 사랑한다. 그것을 지키려 애를 쓴다. 거기에 둥지가 있으니까. 신은 그러한 세계에 밤과 낮, 봄여름가을겨울로 순환하는 계절을 내림으로써 사람들을 각성하게 했다. 강제로. 둥지를 빼앗고 소멸시켜 버리는 것이다. 나뭇잎이 사라지면 새들은 어디에 숨을까?

그리하여 혁명은 계절처럼 불어오는 것이다. 때가 이르면 꽃처럼 각성이 피어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누군가를 지목하는 것이다. ‘쟤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희생양을 삼는 것이다. 소멸 없는 탄생이 없고, 희생제물은 그러한 소멸을 대신하니까. 그리하여 진정한 희생은 여름이다. 여름이 죽지 않으면 겨울이 올 수 없고, 겨울이 오지 않으면 대지를 녹이는 봄이 올 수 없는 것이니, 여름을 붙든 이들에게 낙엽을 전해주어야지. 그리고 프록코트를 입혀주게나. 그래야 봄이 올 것이다. 봄은 희생으로 말미암는다.

마녀들은 그것을 안다. 희생 없이 봄이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녀를 두려워한다. 우정을 거부하지 않는 친구들을 이단자라고 화형대에 매달아 올림으로써 희생양을 삼는 것이고, 마녀들은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야 세계에 봄이 올 테니까.4604.jpg

<봄의 제전 Le Sacre du printemps>, 이 작품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는 꿈에서 본 원시 종교의 제전을 토대로 이 작품을 완성했단다. 그리고 1913년, 파리에서 초연을 열었는데 관중들이 불쾌함을 견디지 못하고 실제로 폭동을 일으켰다고. 이단아들의 창작물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계절이 물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니까.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다는 소실을 전해오니까. 사람들은 지옥이어도 현재에 머물고 싶어 한다 했다. 그리고 봄은 희생제물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안다. 그게 자신이 아니길 바라며 희생양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비난과 폭동으로 폭탄 돌리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나만 아니면 되니까.

피나 바우쉬의 그것도 처음에는 관중들로부터 야유와 비난을 견뎌내야 했다. 이제까지의 발레가 아니라고. 그러나 지금은 뭘 좀 안다 하는 이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다. 정상에 올라 교양이 되었으니까. 변하지 않는 계절이 되었으니까. (그의 무용단은 1977년 시작된 해외 투어 이후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켰고, 1984년 LA올림픽 아트 페스티발 개막작으로 공연되며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공연 투어를 하는 단체가 되었단다. 물론 이 마녀는 전설이 되었다.)4605.jpg

객석에 젊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동양 무당들(데몬 헌터스와 데몬 슬레이어)의 귀신 잡기 놀이에 다들 흠뻑 빠져 있으리라. 영원히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안온한 일상’이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고, 유럽의 젊은이들은 이 유령 잡는 헌터스에 열광하는데, 정작 불편한 창작물이 고전이 되어버린 현실은 사냥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유령이 되어버렸다. 시절 행운의 열매를 모조리 독식해 버린 것도 모자라 미래 세대의 앞길까지 봉쇄해 버린 구세대의 바리케이드를 무엇으로 뚫을까, 얘들아! 모두 새로워지기를, 그러지 않으면 탄식의 마녀 서스피로룸이 잠들게 할 거야. 봄이 와야 하니까.4606.jpg

*피나 바우쉬와 그의 무용단은 영화 <서스페리아 (Suspiria), 2018>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마녀무용단은 세대교체를 거부한 채, 새로운 세대의 몸을 취해 영생하려는 기성세대 마녀들의 처형으로 새 시대를 개막한다. (상징적이게도 세대교체를 거부하는 구(舊) 무용단장의 이름은 마르크스이다.)

그리하여 그녀들이 추는 춤 속에서 마법사는 탄식을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어머니 서스피로룸(Mater Suspiriorum)의 탄식을 이어받아, 우정도 희생도 없는 폭주하는 세계를 보며, 대체 얼마나 엄청난 반동이 일어나야 세계가, 세대가 뒤집힐까 탄식하는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하늘에 매달아 달리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 그 말을, 그 기적을 기다리는 것이다. 누군가 생각해 낼 미래 기억. 하늘을 달리는 기차를 말이다. 하늘에 지은 집을, 도시를 말이다. 유한한 땅을 조금이라도 더 따먹으려 친구도 없이 사는 인생들에게, 하늘을, 우주를, 열어 줄 대단한! 우정이 어디에 없는가? 희생을 거부하는 구(舊) 마녀 마르크스를 처형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마녀 수지는 언제나 자신을 기억해 낼 텐가!4609.jpg

하고, 이 도시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 도시는 마법사에게 아스피린을 처방해 주었다. 두통에 효험이 있을 거라며. (아스피린의 제조사 바이엘(Bayer) 역시 이 도시가 낳은 기업이란다. 물론 이 기업은 아우슈비츠에 독약을 납품하기도 한 전범기업이다. 병 주고 약 주고) 엥겔지수 만땅인 마법사에게 고작 아스피린 따위가 두통을 해결해 줄리 없다. 엥겔스의 생가를 다녀와 마법사는 이상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밥집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때 마침 눈에 띈 것은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 ‘돈 까밀로와 빼뽀네’. 아, 이것은 이 도시가 보여주는 미래인가? 동명의 소설책은 마법사의 어린 시절,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사회과학 교과서였으니. 우연이 아닌 표지가 등장하여 마법사의 두통과 허기를 한 방에 해결해 준 것이다. 그것은 이런 식이다. 독일에 왔으니 독일 음식을 먹어야겠는 마법사는 슈니첼(Schnitzel, 독일식 돈까스)이 있냐고 물었으나, 주인장은 우리는 피자와 파스타를 팔지만, 독일에 있는 레스토랑이므로 독일 음식 슈니첼도 있다고 친절히 안내해 주는 것이다. (실제로 이 레스토랑은 동명의 소설을 테마로 만들었다고) 독일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는 독일 음식이라니. 다혈질 공산주의자 이장 ‘빼뽀네(Peppone)’와 카리스마 넘치는 독선적인 신부 ‘돈 까밀로(Don Camillo)’의 티격태격. 평상시는 서로를 죽일 듯 미워하지만, 마을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협력을 아끼지 않는 우정을 그린 이 소설은, 이상이 (그것이 풍요든, 분배든, 인권이든) 강제하는 이상한 사회 속에서 지속 가능한 공존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해준다.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고 머리에 새겼으며, 슈니첼은 맛있었다.4610.jpg

다시 입맛을 다시며, 친구를 기다린다. 우정을 기다린다. 서로를 알아보는 단 두 사람의 우정이 세상을 뒤집었으니, 세상에 편만 한 연대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너의 생계를 책임지는 친구, 동지의 허물을 대신 뒤집어쓸 수 있는 우정. (그런 것은 저 윗동네에 널렸지만, 돈과 권력으로 산 우정이라 패스) 그러면 그것은 봄이리라. 바야흐로, 다가오는 이 봄에 누가 희생제물로 죽음을 맞이할까? 빨간 드레스를 서로 물리며, 외로운 카페에서 눈 감은 채 나를 안아달라고 여기 부딪히고 저기 부딪히는 인간들 사이에서, 누가 너의 악필을 알아볼꼬.46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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