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연대기_ 후기後期
[아니마 연대기 l PART 1. 2006-2016] M.멀린
불가능한 꿈
민대표와 결별하게 된 나는 어느 주말, 허탈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어. 뉴스채널의 방송국에서 문화사업팀장을 모집한다는 공고 자막이 흐르더군. 그 때 직관이 말했어. 너의 다음 스케쥴이라고. 나는 매우 열받았어. 아니, 이 마당에 다시 직장 생활을 하라고? 다시 출퇴근을 하라고? 매우 매우 열받아서 무시해 버렸어. 그리고 1달이 지났는데, 이미 끝났을 모집 공고 자막이 또 흐르는 거야. 더 이상 거부할 수가 없었어. 재정이 바닥난 나는 자동차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거든.
이전 해, 나는 다른 방송국의 같은 포지션으로 이미 입사가 확정된 상태였어. 재정이 바닥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년 선거에서 민대표가 의원이 될 것을 직관한 나로서는 그를 한번 더 돕지 않을 수 없었어. 끝을 봐야 하니까. 끝을 보고 싶으니까. 나는 입사 대신 입학을 선택했어. 그의 사무실 인근 모 대학 정책대학원에 입학하고는 수업이 끝나면 그를 한밤중에 찾아갔지. 그는 실연의 아픔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었거든. 그런데 다시 입사를 하라니.
화가 많이 났지만, 직관이 너무도 분명해서 피할 수가 없었어. 요나의 심정으로 원서를 억지로 냈어. 원서 사진도 운전면허증 사진을 핸드폰 카메라로 대충 찍어서 올리고, 성장배경과 경력사항을 묻는 각종 복잡한 문항들을 모두 ‘첨부파일 참조’라고 써버리고는 달랑 프로필 하나를 첨부해서 보내버렸어. 의무를 다하는 기분으로. 그런데 전화가 왔어. 면접을 보러 오라는 거야. 다시 불성실하게 양복도 입지 않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면접장에 갔어. 정장을 쫙 빼입은 지원자들 틈에 불량하게 앉아서 면접도 대충 보고 나왔지. 그리고 며칠 뒤 전화가 왔어. 출근하라고.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게 3번째 다시 낸 공고였다고 하더군. 앞의 지원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2번이나 합격을 취소하고, 3번째 만에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거야. 상사가. 이런 제길.
드라마 ‘미생’에도 나오는 회사 앞 찜질방에서 첫 출근을 했어. 그리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3개월을 다녔어. 뉴스채널에서, 예산도 없이, 무슨 사업을 할 수 있나. 여기저기 붙여봐도 영 답이 나오지 않아서 답답했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결국 똥줄이 타버렸어. 말 그대로 똥줄. 스트레스로 항문이 터져서 바지가 피로 흥건하게 젖은 걸 회의장을 나오면서 발견하고는 수술대에 올랐지. 아 정말 똥줄이, 타는구나.
그만두려 했는데 오기가 드는 거야. 어차피 여기까지 온 마당에 불가능한 꿈을 꾸어보자. 그래도 나름 방송사인데 방송사의 지위로 해볼 수 있는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꾸어보자. 그때 생각난 게 <서태지 콘서트>였어. 나름 이 바닥에서 오래 일을 해왔는데 ‘커리어 하이’ 하나는 하고 끝내자. 공연을 안 한 지 오래된 서태지. 그의 콘서트라면 도전해 볼만하겠다 하고. 그때 오래 잊고 있던 누군가를 떠올랐지.
그래 콘서트를 하려면 성감독을 찾아가야지.
서태지 아니 조용필 콘서트
성감독은 몰락해 있었어. 신촌의 작은 지하공간에서, 자기가 직접 만든 작은 무대에서, 복수극 <언제는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있었나요>를 몇 년째 힘겹게 끌어오고 있었어. 근 5년 만에 다시 찾아간 거야. “오랜만이에요” 반갑게 인사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지. 콘서트를 다시 해보자고. 그는 탐탁지 않아 했어. 나름 자기 작품을 하고 있는데, 가수 비위 맞춰야 하는 콘서트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그래도 생각해 보라고,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결국 그해 겨울 코엑스에서, 성감독으로서는 손쉽게 할 수는 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사렛 같은, <봄여름가을겨울> 콘서트를 하게 되었어. 공연이 끝나고 성감독은 5년 전 지급하지 못했던 기획료 500만 원을 나에게 돌려주었어. 알고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으로 나는 둘 사이의 빚은 청산되었다고 받아들였어. 재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으니. 그러자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성감독에게 집회를 해야 한다고, 교회를 해야 한다고, 공동체를 해야 한다고 말했지. 신학대를 중퇴한 성감독 인생의 한 부분이 이것과 겹쳐있음을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직관하고 있었거든. 돈이 없다 했어. 성감독은 다시 뭘 시작하려고 해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그런데 하늘이 기회를 열었지. <조용필 콘서트>를 하게 된 거야.
우연인지 예정인지, 억지로 하다시피한 그 겨울 콘서트장에 우연히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소속사 사장이었던 이가 들르게 되었고, 뉴스채널에서 새로 문화 사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을 보인 거야. 그래서 나는 성감독을 통해 <서태지 콘서트>를 하고 싶다는 의중을 전했고, 그는 알아보겠다고 하더니, 도리어 서태지 말고 <조용필 콘서트>를 하면 어떻겠냐고 역제안을 한 거야. 그래서 우연히(?), 외부 투자를 받는 일도 없고, 어느 방송국과도 단독으로 콘서트를 진행한 적이 없다던 <Hello! 조용필 전국투어 콘서트>를 하게 되었어.
조명만 있으면
콘서트는 대박이 났어. 언제 적 조용필이냐며, 흥행이 되겠냐며, 투자받기도 쉽지 않았는데. 뚜껑을 열자, 가왕은 ‘헬로!’ 인사하며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 괴력을 발휘했지. 성감독의 삶에도. 성감독은 그길로 지하공간을 나와, 신촌 번듯한 대로변에 공연장 2개를 만들었어.
나는 이제 공간도 생겼으니 집회를 해야 한다고, 교회를 해야 한다고, 공동체를 해야 한다고 했어. 성감독은 알겠다 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도 움직임이 없는 거야. 왜 시작하지 않냐고 물었어. 공연장 세팅하는데 무리를 해서 조명 살 돈이 없다는 거야. 나는 그 자리에서 천만 원을 내놓으며 이거면 되냐고, 조명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냐고 물었어. 이거면 된대. 그러면 조명사라고. 조명 사고 빨리 시작하라고. 이건 헌금이니 갚지 않아도 된다고.
그즈음에 어느새 한국에 들어와 있던 현목사에게서 전화가 왔어. 공간이 필요하다고. 멤버들이 좀 모여서 이제 모임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공간이 어디 없을까 하고. 그간 현목사는 미국을 중심으로 계속 사역을 시도해 보자는 내 제안을 무시하고 한국에 들어와 버렸어. 살던 집도 팔지 말랬는데 팔아 버리고 한국에 들어와 버렸어(물론 그 집은 팔자마자 배로 올라버렸다는). 가족들까지 데리고. 너만 왔다 갔다 하면 어떻겠냐고도 했는데. 모두 데리고 들어봐 버렸어.
내가 다녀간 후 현목사는 자신의 교회에 방문했던 어린이 뮤지컬팀과 한국에서 사역 일정을 잡았어. 그리고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해 버렸어. 빠른 실행력으로 앨범도 만들고 한국에서 뮤지컬팀과 함께 새로운 사역을 시도한 거야. 결과물이 잘 나왔어. 이를 본 현목사의 가족들이 마음을 크게 샀고, 그의 동생은 형의 사역을 후원하겠다 자원했지. 결국 사역을 위해 동생이 형의 생활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현목사는 한국에 들어와 버렸어.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더니, 어느새 밴드를 만들어서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하는 거야. 나에게.
나는 고민했지. 그리고 성감독을 소개시켰어. 이런 공간이 있기는 한데. 판단은 네가 직접 하렴. 근데 몇 개월 만에 쫓겨나게 될지도 몰라.
STEAL이 아니고 STEEL이라고
성감독은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어. 생각이 독특하고 감수성이 뛰어나. 그런데 모든 걸 혼자 해야 해. 아마도 개척 시대에 목회를 시작했다면 대형교회를 만들었을 거야. 그런데 그는 자신감이 없어. 자신이 누군지, 어떤지 잘 몰라. 특히 미니스트리와 공동체에 대해서는. 그래서 쭈뼛대고 버벅대. 공간도 생기고 여건도 마련되었는데 자신은 신학교 중퇴라며, 자신이 없는 거야. 대놓고 교회 개척을 시작하거나 집회를 할 자신이 없는 거야. 이단 소리 들을까 봐 겁이 나는 거야. 더한 소리도 수도 없이 들어놓구선 말이야.
그래서 나는 둘이 만나게 했어. 현목사와 성감독. 판단은 본인들이 직접 하라고 했어. 현목사에게서 전화가 왔어. 들어가기로 했다고. 사용료는 별도로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성감독이 그랬다고. 그래? 그런데 네가 성감독과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그리고 성감독 스타일상 거기 금방 쫓겨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겠니? 성감독에게서 여러 부분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이제 확장되기 시작한 팀의 안정을 빨리 도모하고 싶었을까? 암튼 나는 빠진 채로, 성감독과 현목사가 조우했어.
현직 목사 타이틀을 가진 동역자가 나타난 거야. 성감독은 이제 교회를, 집회를, 공동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어. 나는 일부러, 들르지도, 개입하지도 않았어. 아직 모두에게 성숙할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나와 관계가 틀어지면 다음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니까.
몇 번의 모임을 갖는 듯하더니, 성감독은 그의 스타일과 씀씀이대로 결국 공간을 유지하지 못했어. 왜 <STEEL>을 하기로 해놓구선 <STEAL>을 만들었을까? 콘서트를, 집회를, 교회를, 공동체를 하기로 했는데. 좋아하지도 않는 뮤지컬을 또 만든 거야. <STEEL>도 아닌 <STEAL>을 뮤지컬로. 덕분에 김감독은 모든 것을 쏟아부은 신촌의 공연장을 STEAL 당해버렸지.
도서관 가는 길의 탄생
그래도 소득은 있었어. <도서관 가는 길> 말야. 몇 번 안되는 밴드와 성감독과의 공동 작업 중 성감독이 과제로 내준 ‘작곡 해오기’의 결과물이 <도서관 가는 길>이었다더군. 그 난리 블루스 중에도 역사는 전진했고 <도서관 가는 길>은 자신의 발현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천만 원의 의미
다시 현목사에게서 전화가 왔어. 신촌에서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글쎄? 생각해 보자. 며칠 후 다시 전화가 왔어. 연대 앞에 스튜디오를 얻었다고. 그래 잘되었구나 같이 가보자. 연대 앞 스튜디오에 현목사와 함께 갔어. 보증금 천만 원에 월 얼마였더라. 비용은 어쩔라고? 멤버들이랑 나눠 내기로 했어. 엥? 그건 아니지. 미니스트리를 한다면서 멤버들에게 부담을 주면 리더십이 생기겠니? 그럼 어떡하지? 고민이 되었어. 공간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도 않고, 미니스트리를 시작하면서 구성원들과 1/N을 하면 결과가 뻔했거든. 내가 아는 작가님이 게스트 하우스를 오픈하려고 하는데 거기로 가볼래? 그래서 이번에는 홍대로. 작가님은 운영팀이 필요했고, 밴드는 공간이 필요했고. 새로 세팅해야 되긴 하지만 좋은 조건인 듯 서로에게. 세팅에 필요한 비용 천만원은 내가 헌금하기로. 소개한 책임도 있고, 밴드는 공동체고 미니스트리라니까. 그리고 나는 일정대로 여행을 떠났지. (요양 여행을. 암수술을 받았거든. 괜히 똥줄이 탔던 게 아니었어)
그 사이 성감독과는 관계가 다시 중단되었어. 나는 집회를, 교회를, 공동체를 한다고 해서 조명 구입비 천만 원을 헌금했을 뿐. 그러나 이번에도 성감독은 미적대었고, 자신 없어 했고, 기적을 믿지 않았지. 집회를 열기만 하면, 교회를 시작하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났을까? 정처 없이 떠돌던 민대표가 국회의원이 되었듯 기적이 일어났을까? 교회를, 공동체를, 미니스트리를 한 것이 아니게 되었으니, 성감독은 다시 내게 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되었어.
500만원, 천만 원은 내게 상징적인 금액이야. 보증금 500만원 짜리 월셋집에 살던 시절, 소원이 보증금 천만 원짜리 집에서 살아보는 것이었거든. 500만 원은 기획자로서의 나의 가치이고, 천만 원은 일종의 이상향이지. 나는 경험하지 못했던 그것을 나누는 것. 그것이 나의 힘.
모래알 같아서
게스트 하우스 오픈일이 다가오고 있었어. 나는 캐나다를 여행 중이었고 그 와중에 게스트 하우스 운영 경험이 있는 한 친구가 합류하게 되었다지. 내가 소개하긴 했지만 합류시키라고 한 건 아닌데. 그냥 정보만 얻으라고 소개해 주었는데 어느새 설립 멤버가 되어 있더군. 그리고 커뮤니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지. 작가님은 계속 내게 연락을 해서 이 팀 구성으로는 사업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불안해했어. 모든 비용을 대고 있는 것은 자신인데 자꾸 배제되고, 현목사와 새로 합류한 친구의 의사가 빗나간다는 거야. 나는 신중하게 좀 더 지켜보고 판단하자고 했어.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어. 헌신 서약. 1년 동안 이러저러한 조건으로 밴드 공동체에 헌신하겠다는 문서 서약을 모두가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 하지만 게스트 하우스의 책임자인 작가님은 결국 이 밴드와 함께하지 못 하겠다고 선언했지. 커뮤니티가 모래알 같아서 함께 할 자신이 없다고. 몬트리올쯤이었던 것 같아. 급하게 현목사에게서 연락이 왔어.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어떡하냐고. 얘야. 넌 어른이야. 매번 이렇게 내게 묻는 건 아니지. 하고 싶었지만, 어쨌든 소개한 책임이 있으니. 스튜디오 세팅 비용으로 내가 천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었으니 그 예산으로 공간을 얻어보렴.
왜 못하는 거야 자꾸 하는 척만 하는 거야
귀국 후 한 달여가 지나서 현목사의 스튜디오에 처음 방문했어. 앞으로의 계획이 어떠냐고 했더니 내가 예전부터 해보라고 했던 미주투어를 여름에 가기로 했다고 하더군. 그래? 그럼 나도 같이 가지. 그동안 아마도 1집 앨범이 나오게 될 거라고. 아 그래? 보람이 있구나. 공동체가 이제 자리를 잡아 가는구나. 그리고 잊었어. 2015년 여름까지 나는 이들이 그저 미니스트리로 잘 성장해 가고 있는 줄만 알고 있었어.
한편, 성감독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어. 교회를 시작했다고. 엥? 무슨 교회요? 후배가 여러 나라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오랜만에 우연히 길에서 만나고는 자기네 가정과 후배 목사 가정 중심으로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이야. 아, 그러니까 직접 하는 건 아니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는 말. 암튼 뭐 그거라도 아닌 거보단 낫지. 그런데 목사 사모가 영국 무역청에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말. 그래요 그럼 한 번 만나나 보죠. 교회? 어쨌든 아직 미니스트리의 연장선에 있으니, ‘재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 원칙은 유효. 천만 원 헌금도 유효.
그렇게 돼서 한동안 손 놓고 있던 기획을 여차저차하게 되었어. 일부러 의도한 것도 아닌데, 이번 기획의 핵심도 <NEWBOX>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되어 버렸어. 미국과 호주, 영국, 중국 등 인맥과 인프라가 많다던 목사 부부의 네트워크라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어. 게다가 영국 무역청에서 일한다는 사모는 예전에 나랑 대형 콘서트를 같이 했었던 스탭이라는 것도 흥미로운 우연이었어.
그 사이 밴드는 미주 투어 후 박살이 나 버렸어. 곪았던 상처가 태양의 도시에서 드러나 버린 거야. 현목사가 다시 찾아왔지. 빨리 정리하고 싶다고. 좀 더 기다려 보는 게 어때? 연말까지 시간을 주었잖아. 어차피 결과는 뻔한데. 마음 떠난 멤버들 마음을 빨리 정리시켜 주고 싶어. 그래? 어쨌든 너는 미니스트리를 계속하는 거지? 그래야지. 그럼 다시 해보자. 대신 이번에는 너희가 천만 원을 펀드레이징 해보렴. 그러면 내가 추가로 천만 원을 지원할게. 그리고 우리는 LA에서 다시 시작해 보자.
다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어. 성감독과 그의 후배 목사 부부에게도 찾아가서 참여를 독려했어. 그런데 그 목사 이상한 태도를 보이더군. 샌프란시스코의 친구들한텐 이미 다 홍보해 놨다고, 마치 자신의 프로젝트처럼. 그러더니 갑자기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거야. 모 교회에서 집회 인도를 그 기간 동안 맡게 되었다는 거야. 대형교회에서 부교역자로 같이 일하자고 제안이 왔었는데도 자신은 거절했다고 자랑하더니, 왜 그 모임의 집회 인도는 거절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후배 목사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성감독은 더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보였어. 덕분에 참여 인원이 늘어나게 되자 현목사는 갑자기 당황스러워하며 불편한 심정을 확 드러내었어. 꼭 그렇게 많이 가야 돼? 성감독 팀 말야. 한 명이라도 더 참여해야 하는 거 아닌가? 게다가 페이도 없이 자기 부담으로 가는 건데. 아마도 현목사는 성감독이 불편했나 봐.
성감독의 후배 목사는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 집회를 인도하다가 목디스크가 와서 반신 마비에 걸려 버렸어. 그래서 집회 인도도 할 수 없게 되었지.
다시 현목사. 어떻게 700만 원을 모았다고 했어. 나머지는 미국에서 펀드레이징할 수 있을 거라고 해서, 그래 그럼 일단 가자 했지. 그러나 출발 당일까지 약속한 재정은 들어오지 않았고, 현목사는 공항에 나오지도 않았어. ‘다른 일’을 하느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목사와 갈라진 팀의 리더인 한스가 (이제는 헌금이 아닌 투자금이 되어버린) 천만 원을 비행기가 막 이륙하기 직전에 입금했고, 나와 선발대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고 24시간동안 감금되어 있다가 추방을 당했어. 일행 중 한 명이 입국 심사관이 얼마 가지고 있냐는 질문에, 10만 원이 있다고 대답했거든. 물론 실수였지만, 이민국 심문관은 미니스트리를 하러 왔다는 우리의 답변을 거짓말이라며, 이 나라에서는 어떤 미니스트리에도 보상을 한다고. 너희들은 비지니스를 하러 온 거라고. 거짓말쟁이라며 추방시켜 버렸어.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던 이는 현목사의 동생이었어. 그의 공장은 밴드가 박살 나 버린 미국 투어 귀국 날, 공교롭게도 불에 타버렸어. 다행히 보험에 들어있어서 손해는 없었는데 이번 일로 깨달은 게 많다며, 이번 프로젝트 재정을 후원하겠다고 했었는데, 미적대다가 결국 그 난리가 나고. 선 보상의 원칙을 지켜내지 못한 나는 추방을 당하고.
너의 재물이 여기에 없구나. 너의 마음이 여기에 없구나. 나는 공항에서 감금된 채로 내내, 아나나와 삽비라 같구나. 너희가. 마음을 들켰구나.
결국 현목사 동생의 사업은 도산을 하게 되었어. 현목사는 밴드와 목회를 관두고 ‘다른 일’에 투신했어. 어쩌면 그는 그 ‘다른 일’을 찾아 돌아온 건지도.
불이 날지도 몰라
서먹해진 성감독과 후배 목사 부부는 한집에 살고 있었어. 나의 직관은 성감독이 그 집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어. 성감독은 공황장애가 심해졌고 그 집은 함께 살기 좋지 않은 구조였어. 그때 영국 무역청에서 일한다는 사모는 영국 관련 신규 프로젝트를 제안했어. 나는 프로젝트 시작 전에 성감독에게 조건을 걸었어. 백만 원을 주며 그 집에서 나와야 한다고. 우리가 영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나와야 한다고. 그게 조건이라고. 이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는 조건이라고. 시간은 흐르고. 집은 알아보고 있냐고. 있다고.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하려면 이 집에 붙어 있는 게 낫지 않겠냐고. 글쎄, 나는 아닌 것 같다고. 암튼 나와야 한다고. 직관이 좋지 못하다고 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무슨 큰 일? 불이 날지도 모르고. 암튼 나와야 한다고. 그래도 그래도. 미적미적. 그리고 우리는 영국에 다녀왔어. 성과가 있었고, 향후 계획에 들뜬 채 시차 적응을 하던 중. 비몽사몽간이었어. 새로 시작된 프로젝트의 미래상이 그려지며 흥분되고 있었는데.
‘근데 이사는 했니?’
잠에서 확 깨고. 이게 꿈이야 생시야. 그런데 직관은 계속 말하고. 나는 성감독에게 메일로 통보할 수밖에 없었어. 미션은 실패했어요. 이사를 했어야 했는데. 이제 우리의 관계도 여기서 다시 중단되는 겁니다. 이럴 거면 그 백만원 받지를 말았어야죠. 깊은 사과의 답신이 오고 즉시 이사를 하겠다는. 그리고 3일 후 듣게 된 후 사정은.
귀국하고 첫날 밤 바닥에서 정체 모를 벌레가 쏟아져 나온 일, 불길한 마음에 부리나케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내 메일이 오고. 이사 갈 집은 정했는데 보증금이 부족해 망설이고 있었던 상황. 다음 날 공연장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려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퍽’ 하더니 조명이 모두 나가버리고, 수리업자를 불러 체크하려는 순간 다시 ‘펑~’ 연기가 나며 전원 전체가 나가버리고, 수리업자는 도대체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 하고. 그 순간 섬뜩한 느낌에 바로 달려가 돈을 구해서 집을 계약하고. 그 길로 목사 부부의 집에서 나와 이사를 하고. 이제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신기하게 그 후로 공황장애 증세가 사라졌다는.
하지만 성감독은 기간 내에 이사를 하지 못했으므로 미션을 완수하지 못했고, 미니스트리를 하고 있지 않으니, 조명사라고 준 헌금 천만 원은 헌금이 아닌 투자금으로 변환되어 다시 상환하지 않으면 나와 함께 할 수 없게 되고. 조명은 연기와 함께 날아가 버렸고. 목사 부부는 갑자기 돌변하여 프로젝트를 중단시켰어. 나는 그들이 가족을 잃게 될 거라고 직관했고, 다음 해 사모는 급작스런 사고로 언니를 잃고, 성감독 가족 대신 언니의 아이들을 맡아 키우게 되었어.
도서관 가는 길
行福共作所와 <오작교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된 이 우여곡절이 없었다면 이 곡은 세상에 나왔을까? 성감독의 숙제로 비롯된 이 곡은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을까? 우연히 행복해졌다던 이들은 왜 축복과 기적을 저주와 절망으로 전환시켰을까? 그들은 그순간만이라도 행복했을까? 이 아이러니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나는 늘 바라보고 안타까워하고 씁쓸해하고만 있다. 저주에 걸려 있는 거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공동체를 꿈꾸는 형벌 말이야.
인생은 우중충했고
제각기의 걸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걸음을 옮겨가며 삶을 살았어.
그런데 어떤 친구들이
뮤지컬을 만들고 밴드를 만들고
사역을 하고 사업을 해.
뭐가 그렇게 유치하냐며 나 비웃었지.
그리고 나서 후회했지.
사랑하고 파.
질투였나 봐.
사랑 너무도 오~
나도 하고 파.
질투였나 봐.
사랑 사랑 오~
_ 2016년 여름, 스미스씨댁 이층에서 박살 난 밴드의 리더 한스에게 보낸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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