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행전] PART 2 l Jun 09. 2024 l 에필로그

 

 

그곳에 나도 가끔 가본 적이 있어.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마지막 장소로 선택할 만한 곳이라고 생각해. 나라도 그곳을 떠올렸을 거야. 이별하기 좋은 곳. 서울의 마지막 장면.

<하얀거탑>에서 그를 처음 보았어. 인상적이었어. 그리고 우리가 또래라는 걸 알게 되었지. 드라마가 잘 되었어. 그때가 우리 또래들의 시작점이었나 봐. 그도 나도 좋은 때를 만났지. 행사장 먼발치에서 보기도 했는데 말이야. 그러다 십 년 전쯤 어디선가 길이 갈라진 듯해. 같이 뭘 했다는 말이 아니고, 또래들의 인생이 갈라지기 시작한 지점이 그쯤이었던 것 같아. 그는 유독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지. 또래 중 흔치 않게 말이야.

멀리서 보고, 스크린에서 보고. 성실하고, 진정성 있고, 잘하는데 뭔가 그보다 성과가 더 좋아 보였어. 운이라고 할까? 또래들 중 다른 길을 간 이들은 (선택이었다고 하진 않을게. 길을 걷다 보니 달라졌을 뿐. 물론 부러워할 일도 아니지.) 번번이 배제되고 상실되고 있던 그때에 말이야. 계속 올라가는 이와 제대로 올라서 보지도 못하고 정체돼 있거나 혹은 내리막길을 타는 듯했던 인생들이 말이야. 점점 갭이 크게 벌어지는 듯했지. 그가 출연한 작품이 칸에까지 갔을 때는 더더욱.

그리고 며칠 전 비보를 들었을 때는 마음이 복잡했어. 뭔가, 저 길도 다른 길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가지 않은 저 길도 말이야. 그가 연기한 길은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나의 아저씨>와 <하얀거탑> 속 최도영은. 정작 운명은 그를 장준혁의 삶으로 끌고 간 걸까?

이 길도, 그 길도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했던 걸까? 종국에 선 이 자리는 그도 우리도 책임질 수 없는 자리가 아닐까? 그와 나의 길이 갈라지기 시작한 십여 년 전 그맘때, 나는 그 공원 자락을 걸어가면 나오는 인근 산등성이 담장 어딘가에서 서울 하늘을 내려다보고 있었어. 그때의 마음은 그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처럼 억울한 마음은 덜했는지 죽음으로 증명하고 싶지는 않았지. 다만 누구나, 언젠가, 그 자리에 서게 되면. 자신에게 해줄 말은 있어야 할 거라고, 그런 생각을 했어. 그리고 나는 내게 말해주었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여 모든 것을 다 이룬 듯했던 하칸의 비보를 들은 것은 막 그의 나라에 도착해서였어. 심장마비가 왔대. 그가 이룬 가족을 보며, 가부장제의 아름다움을 보았다고, 한없는 부러움을 느끼게 했던 그였는데. 그리고 겨우 100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버렸어. 가족들과 여행을 다닐 거라고 캠핑카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는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으니 원망은 없겠지만, 남편과 아빠 없이도 남은 생을 행복으로 채워야 할 가족들은 어떤 마음일까. 어린 에즈린의 마음은.. 뭔지 모르겠는, 말할 수 없는 비통함으로 그의 나라를 걸었지.

떠난 친구들이나 남겨진 이들이나 생이, 운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계속 걸어야 하는 나는, 이 길이 아니면 저 길이, 어떤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 옳은지 괜찮은지, 알 수가 없어. 그리고 모든 길이 그 공원으로 통한다면. 허망한 마음으로 이별해야 하는 그곳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하루하루는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은 삶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이는 삶도
그리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막막하기만 한 삶도
모두 서울 하늘을 내려다보며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작별하는 거라면

안녕,
2023년도
나의 친구들도
같이 잠들 때까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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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적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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