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은퇴 준비 명령

 

 

 

 

 

로마에서 마법사는 병이 나버렸다. 백일 간의 플랑드르 혈투에서 마법사는 기력을 모두 쏟아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서 의심하고 과신한다. 그 양상은 엇박자를 타기 일쑤여서 조심해야 할 때는 과신하고 결심해야 할 때는 의심한다. 위기와 기회를 반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기회 앞에서 사람들은 의심한다. 그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의심은 병이라 잘 고쳐지지 않지만, 기회는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다. 인생에 몇 번이나 반복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평상시에 의심하는 태도로 삶을 무장하는 이에게 기회는 없는 거다. 기회는 의심의 향수를 페로몬처럼 두르고 나타난다. 치명적인 유혹. 그래서 횡재가 아니고 기회. 절반의 가능성.

절반이기에 사람들은 의심하고 점검하려 든다. 그러나 기회가 어찌 그런가. 그것은 타이밍이고 시간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지나간다.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흔한 말로 기회의 여신은 뒤통수에 머리카락이 없으니 붙들 수도 없다. 그러니 기회를 마주하면 해야 할 것은 결심뿐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는 의심하고, 조심해야 할 위기 앞에서는 당당하다. 두려움으로 무장해 온 사람들은 위기 앞에서는 언제나 어깨를 활짝 편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심하고 가볍게 여긴다. 그러다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한 사람들은 더 큰 두려움으로 무장한다. 위험과 기회를 모두 품고 있는 삶은 사람을 늘 시험한다. 그리고 가진 거라곤 두려움뿐인 사람들이 여지없이 모두 당하는 것이다.

마법사도 당했다. 기회를 열어주려 한 것인데 의심을 샀기 때문이다. 점검했어야 했다. 의심했어야 했다. 기회는, 기회를 기회로 인식하는 이에게만 기회인 것. 그러나 사람들은 주저한다. 그리고 기회를 위기로 전환시킨다. 보험도 없으면서.

보험이 되어주려고 매번 몸빵을 해온 마법사는 이번에도 당했다. 상대에게는 기회였는지 모르나 마법사에게는 조심했어야 할 위기였던 것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주무기로 하는 마법사는 타이밍을 놓칠까 두려워하다 기회를 위기로 전환시켜 버렸다. 벌써 몇 번째 중단인가. 기회는 의심에 부딪혀 튕겨 나가 버렸다. 마법사 역시 두려움을 떨쳐 내지 못한 것이다. 타이밍을 놓칠 거라는 두려움.

‘밥은 먹어야지.’

마법사는 로마의 낡은 호텔 방에서 한발도 나오지 못하고 며칠을 끙끙거렸다. 탈진한 몸은 무엇으로 회복할까? 마법사는 한국인이다. 밥을 먹어야 한다. 김치 유산균이 몸에 퍼져나가면 온몸의 백혈구들이 의기 탱천하여 전투에 임할 것 같기만 하다. 하지만 한발을 움직이기에도 로마의 작열하는 태양은 버겁다.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이끌고 테베 강을 건넜다. 저 멀리 바티칸 성천사의 성을 지키고 있는 천사상들이 석양빛을 받아 붉게 물들어 있다. 마법사의 눈에는 그것이 전장을 물들인 전혈(戰血)처럼 보였다. 천사들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두려움에 휩싸인 전사들의 마음을 깨우려. 그들은 온갖 신호와 표적들로 전사들의 마음을 일깨운다. 그 길이 아니라고, 이것은 기회라고. 그러나 자신의 가능성을 믿지 못한 채 두려움에 물든 사람들은 외면한다. 그리고 검은 어둠 속으로 숨어든다. 그러면 천사들은 붉은 피눈물을 흘린다.

더 걸을 수가 없다. 마법사에게는 남은 기력이 많지 않다.

‘좀 쉬자. 이대로는 더 못 걷겠어.’

마법사는 분수대가 놓인 작은 광장 계단에 걸터앉았다. 분수대 앞에서는 이름 모를 무명 밴드가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지네

‘아, 이 노래는.. 한국 노래잖아.’

아무리 K-POP이 난리라지만, 로마의 작은 광장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 밴드가 흘러간 한국 노래를 부를 줄이야. 마법사는 반가운 마음에 귀를 기울였다.

마음은 얼고
나는 그곳에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지.
마치 얼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놀라서 있던 거지.
달빛이 숨어서 흐느끼고 있네.

마법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많이 들어본 노래였지만 가사를 음미해 본 적은 없었는데. 외국인 가수의 서툰 한국어 발음이었어도, 노래 가사는 마치 마법사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내리는 듯 또르르 마법사의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우 떠나버린 그 사람 우 생각나네.
우 돌아선 그 사람 우 생각나네.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나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이미 그대 돌아서 있는 걸
혼자 어쩔 수 없었지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그들은 왜 마법사를 외면했을까? 같이 걷고 있는 줄 알았던 그들은 왜 돌아서 버렸을까? 마법사는 지난 생 거쳐온 수많은 인연들을 떠올렸다. 중단된 인연들, 단절된 관계들. 생의 찬란한 순간들을 꿈꾸며 함께 달려가다가 파탄이 나버린 사람들, 마음들 그리고 장면들이 조각난 필름처럼 광장에 쏟아져 내렸다.

우 떠나버린 그 사람 우 생각나네
우 돌아선 그 사람 우 생각나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했지만 마법사는 매번 관계를 중단해야만 했다. 그것은 중단이고 단절이다. 종료가 아닌. 커뮤니티의 마법사들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마법 학교의 필수 과정이기도 하다. 상호작용의 처리방식 말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관계를 종료해선 안 된다. 커뮤니티의 마법사들은 그것을 혹독하게 훈련받는다. 상호작용이 실패하거나 위기에 봉착하거든 일단 중단하거나 단절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중단된 단면은 언제든 걷어내고 새롭게 접붙일 수 있지만, 흐지부지되어 생명력이 사라진 관계는 무엇으로도 회복 할 수 없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그래서 매번 관계를 중단해 왔다. 중단해야 했다.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든 회복 가능한 상태로 단절 처리를 해왔다. 그러나 다시 이어지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많은 관계들이 하나의 생을 넘어 다음 생으로, 같은 방식으로 또다시 중단되는 일을 반복해 오고 있었다. 지겹도록.

‘이제는 더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마법사는 그간 중단된 수많은 관계들에 지쳐 있었다. 매번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왔건만, 두려움에 휩싸여 자신의 가능성을 업신여기는 마음들 앞에서, 상호작용은 언제나 중단되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겨우 작은 성취 앞에서도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건 단지 시작에 불과했음에도 사람들은 작은 성취가 사라질까 두려워했다. 그리고 마법사의 보상은 미뤄졌다.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선(先) 보상을 요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행한 마법으로 사람들은 작은 성취를 경험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두려움을 더욱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작은 성취를 상실할 것 같은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법사는 매번 보상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잖아도 두려움이 가득한 이들에게 마법사의 보상을 먼저 제시하면 그들은 화들짝 놀라 도망치거나,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드냐며 의심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내 성취를 어떻게 탈취할까? 세상에 공짜가 없는데, 마법사는 자신을 이용하고 성취를 모두 탈취할지도 몰라. 의심은 기적에 비례했다. 기회는 그들에게 쥐덫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쏜 의심의 화살은 마법사에게 날아와 비수처럼 꽂혔다. 마법사의 심장에는 날아온 화살들이 빼곡히 박혀있다. 그리고 이제 쓰러지기 직전인 것이다.

“마법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는 은퇴를 준비하시지요.”

회한의 눈물을 비 오듯 쏟고 있는 마법사 앞에 붉은 천사가 나타났다. 마법사의 눈에는 그 붉은 빛이 석양인지 핏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다만 커다란 날개 펼치고 서 있는 그 존재가 천사인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찾을 때는 그렇게도 나타나지 않더니.

“부를 때는 매번 묵묵부답이시더니. 만신창이가 되어 죽게 생기니까 나타나시는군요. 왜 병력에 손실이 가는 게 본부 입장에서는 아쉽답니까?”

마법사는 한껏 뿔이 난 목소리로 천사에게 쏘아붙였다.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마법사로 사는 건 매우 고독한 일이다. 마법사의 존재를 아는 이도 없고 이해하는 이도 없으니 말이다. 마법사는 본부에 동료들을 좀 보내달라고 지원요청을 수차례 했지만, 매번 돌아오는 응답은 숨겨진 마법사 칠천이 이미 활동하고 있다는 메시지뿐이었다. 칠천이든 십만이든 당장 도움을 받을 수 없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마법사는 본부의 답답한 탁상행정에 숨이 찰 노릇이었다. 게다가 서편지역에서는 자주 출몰하여 전세를 뒤바꾸어 놓기도 하는 천사들의 지원은 더더욱 받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끊어진 보급라인을 기적적으로 이어놓기도 하고, 때론 사람들에게 현현하여 두려움을 무너뜨리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마법사는 그런 지원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지독한 팔자 탓에.

“그러니까, 왜 하필 이 타이밍이냔 말입니다. 은퇴라니. 대체 뭘 했다고 은퇴를 하란 말이죠? 아니 은퇴 좋습니다. 나도 이 짓에 신물이 나니까. 은퇴하고 싶은 건 오히려 납니다. 그런데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화려한 은퇴식까지는 아니어도 점잖은 퇴장은 만들어 줄 수 있잖아요. 이게 뭡니까? 만신창이가 된 마법사한테 광장 구석에서 은퇴 통보라니.”

“문자로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법사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나마 로마에서의 은퇴 통보만으로도 그렇게 격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지금 은퇴를 하시라고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법사님이 이제 은퇴를 준비하셔야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겁니다.”

“은퇴 준비요? 은퇴가 아니라?”

은퇴도 아니고 은퇴 준비는 또 뭔가? 마법사의 은퇴는 도대체 무엇으로 준비를 할까? 마법사의 머리에는 온갖 불평과 불만이 떠올랐다. 이게 900년을 헌신적으로 일해 온 마법사에 대한 대우란 말인가.

“그러니까, 은퇴 준비를 하라구요? 그 은퇴는 이번 생의 은퇴입니까? 아니면 제 900년 마법사 과업 전체의 은퇴를 말하는 겁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아시다시피 마법사님의 과업이 다음 생으로 이어질지 아닐지는 마법사님의 인연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들이 생을 이어간다면 마법사님 역시 언약에 의해 다시 마법사를 이어가시게 되겠지만, 그들이 거부하고 생을 연속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은퇴 확정이 되겠지요.”

“참, 그 지독한 언약을 왜 내가 서약했는지, 후회가 막심하네요.”

“저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십시오. 마법사님 심정은 이해하지만 저는 그저 본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령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자, 이거나 받으셔요.”

천사는 마법사에게 무언가를 전달했다.

“이게 뭡니까? 이건 태블릿인가 본데.”

“네 맞습니다. 그 태블릿을 가지고 귀국하시면 곧 누군가 연락을 해 올 겁니다. 그가 하자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것으로 마법사님의 은퇴 준비 과정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럼 전 이만.” 휘리릭~

사라졌다. 천사는 마법사에게 태블릿을 넘겨주고는 마법사가 자신을 붙들고 계속 하소연을 해댈까 싶어 휘리릭 사라져 버렸다. 아니 성천사의 성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 이게 뭐라고 고작 태블릿 따위. 돈이나 주지. 이딴 걸로 은퇴를 어떻게 준비하라고.”

마법사는 태블릿을 바닥에 툭 내려놓고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여전히 열은 내리지 않고 만신창이가 된 몸은 여기저기 욱씬 대고 있다. 특히 심장에 박힌 화살들은 열로 뜨겁게 데워져 점점 옥죄어 왔다.

‘이건 어떻게 뽑을 수도, 녹여버릴 수도 없으니. 아, 이거 빼는 방법이나 물어볼 것을.’

광장에는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로마의 골목길에는 가로등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었다. 마법사는 한 손에 태블릿을 들고 일단 한식당을 찾아 나섰다.

‘먹어야 해. 어쨌든 은퇴라니까, 고생도 여기까지겠지.’

마법사는 겨우 찾은 한식당 테이블에 앉았다. 손님을 끌기 위해 틀어놓은 대형 모니터에서는 한류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상영되고 있었다. 낯선 땅, 낯선 나라에서 은퇴 준비를 통보받은 마법사의 마음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불시착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뿐만 아니라 이번 생을 통틀어 변하지 않는 마법사의 스탠스였다. 가여운 마법사는 한국보다 배는 더 비싼 김치찌개와 김밥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춘 짜디짠 김밥을 우걱우걱 씹어 넘겼다. 살자고.

‘김밥이 짜구나. 왜 로마는 뭐든 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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