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 모든 거야 내 여름이고 내 꿈이야

+ 게스트하우스 ‘春子’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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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fake plastic earth

 

멀린은 ‘春子’의 노래를 들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3차원 세계의 역동과 갈등. 허무와 신비. 간절함으로 채워간 시간들. 공간과 분리된 시간의 무게를 이겨내려는 노력들. 만남과 이별. 설레임과 절망.. 교차하던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눈빛에서, 누군가의 등 돌린 뒷모습과 연결되어 푸른 지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구는 점점 가짜들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고통에 중독된 영웅들은 자꾸 스스로를 비하하고 연민하고 회의하며, 꿈꾸기를 멈추고 도전하기를 주저합니다. 그들은 모두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무대에 서서 같은 동작과 같은 얼굴과 같은 목소리로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현실이라는 구호, 분수라는 구호, 안주라는 구호. 꿈꾸는 감각은 현실감으로 대체되고 영혼의 소리는 각종 알람으로 감추어졌습니다. 그곳에는 마법사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가짜의 세상에서 마법사는 얼음에 갇힌 고대유물일 뿐입니다.

몇 번째일까요? 멀린은 얼마나 많은 생을 다시 시작하고 얼마나 많은 인연들과 얽혀들었을까요? 모든 것이 의식의 환영이라면 이제는 모두 멈추고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들고 싶습니다. 물질의 진화라면 여기서 멈추고 자연으로 환원되어도 좋겠습니다. 애써 비집고 들어, 자리를 만들고 다리를 놓는 일에 지쳐버렸습니다. 선택을 기다리는 예정된 역사와 당연한 기적을 믿지 않고, 허망한 현실과 타인의 일상을 흉내 내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 세상에서, 마법사는 더이상 설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의지는 이 방의 꺼지지 않는 호롱불처럼, 흔들릴지언정 불타오르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생의 에너지는 멀린이 그토록 버거워하는 갈등과 번민을 에너지 삼아 불타오르고 또 번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의 생이 반복할 때마다 분화해 온 우주가 억겁의 갈래로 흩어져 무한한 우주를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창조의 과정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우주의 빈공간을 모두 채우기까지 멈추지 않을 거대한 역동의 초기일 뿐입니다.

물론 멀린도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의 의식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이후, 그는 마법사가 되기까지 수많은 고통과 번민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그것은 모두 경험이 되고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되어, 같은 길을 걷는 또 다른 인연들에게 전수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만나야 할 이들과, 언약을 완성해야 이들에게 전해지고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것은 지치는 일입니다. 샌드백을 메고 사막을 걷는 일이며,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히말라야 설산을 오르는 일입니다. 물먹은 소금 더미를 메고 매일 아침 피곤한 몸을 일으켜야 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선택은 하나의 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도망치고 누군가는 비아냥대며 누군가는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그 누군가들이 끊임없이 마법사의 어깨를 타고 넘고, 뒤통수를 밟고 돌아서고, 거부하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선택은 자신의 것. 마법사는 전할 뿐입니다. 그러나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도, 선택의 길을 제시하는 것도, 운명에 동참하는 것도 모두 다 지독한 일입니다. 인간 본성의 더러운 바닥을 들여다보고는, 저 시궁창 어딘가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질 끈 하나가 남아있을 거라며, 손을 담근 채 휘휘 젓는 일을.. 계속하기가 버겁습니다. 역겹습니다.

그러니 멀린, 그만둡시다. 여기서 멈춥시다.

 

It wears him out

 

“3차원 인간의 삶은 어떤가요?”

“뭘 묻는 거죠? ‘春子’도 인간이었잖소?”

“후후 너무 오래되어서..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립긴.. 피곤할 뿐이지..”

멀린은 작게 한숨을 쉬며 돌아눕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호롱불이 부드러운 깃털처럼 멀린의 시야를 쓰다듬고 있습니다. 허탈한 가슴에서 잊고 있던 노래가 떠오릅니다. 정확한지 알 수 없는 기억을 따라, 호롱불의 리듬을 따라, 잊혀진 노래가 떠듬떠듬 멀린의 입술을 타고 흐릅니다.

And it wears him out, it wears him out
It wears him out, it wears him out

In the fake plastic earth
In a town full of rubber plans
To get rid of itself

A cracked polystyrene man
Who just crumbles and burns
My fake plastic love

But I can’t help the feeling
I could blow through the ceiling
If I just turn and run

And it wears me out, it wears me out
It wears me out, it wears me out.. 1)

그리고 나는 지치고 있지
나는 지치고 있지..

“떠나오면 그리워져요. 머무를 때는 지옥 같은데, 떠나오면.. 그게 그렇게 애틋하고, 눈에 밟히고, 아리고 저며 와요. 언제나 인간의 삶은 아쉬움을 남긴 채 끝나 버리니까요. 여한이 남는 시공간.. 늘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들.. 그렇게들 미련이 남아서, 또 내려오고 또 내려오지요. 뭘 볼 게 있다고.. 정작 내려와서는 나처럼 이렇게 후회하고 한탄하면서.. 왜들 그렇게 잘 잊나 몰라.”

“레테의 강을 건너잖아요. 그걸 잊기로 하고 내려가는 거니까. 하지만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삶이잖아요. 이렇게 시공간을 언제든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건 지루해요. 재미가 없어요. 뭐든지 가능하다는 건 아무것도 흥미를 느낄 수 없다는 얘기나 다르지 않으니까요.”

“하긴.. 그렇긴 하죠. 나도 그 시공간이 지루하기 짝이 없어 마법사가 되기로 결심했었으니까. 그럴 때가 있었네..”

“영원은 지옥이에요. 자유는 더더욱 그렇구요. 구속이 없는 자유로 뭘 할 수 있겠어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는 혀로 도대체 무얼 할 수가 있죠.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모든 것을 느끼는 혀로는 아무것도 맛볼 수 없어요. 쉐프가 되면 뭘 해요. 맛을 느낄 수가 없는데. 이렇게 지켜만 보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남의 이야기이잖아요. 나의 이야기여야죠. 그래야 흥분되고 설레고 아프고 간절하죠. 남의 이야기에 흥분해 봐야 어디까지나 그건.. 남의 이야기일 뿐이에요.”

많은 존재들이 유한한 세계를, 3차원에 갇힌 큐브 속 지구를, 제약이 많은 인간의 삶을, 그리워하고 열망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 속에 있지만, 그것으로는 무엇도 감각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원점에서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가 없듯이, 분화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서는 자신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창조가 시작되었고 분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온전한 개체가 되기 위해, 끝없는 분리개별화의 진화과정에 속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렇게 분리되어 나온 우리는, 외로움을 익히고 슬픔을 맛보며, 애통해하고 애달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처럼 우리는 혀를 내어 주고 다리를 얻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 부분이 되었습니다. 개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완전한 개체로 성장하기 위해, 갈등하고 부딪히고 싸우고 경쟁하며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류와 우주 그리고 나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먼 미래에, 우리는 결국 모든 것이 되겠지만.. 그 시간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 그 자라나고 뻗어가는 공간의 주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You are my everything

 

“우리 곧 만날 수 있겠죠? 3차원 지구에서 말이에요.”

“총수님이 선택한다면.. 그러면 우리가 만나겠죠.”

” ‘春子’가 세상에 드러나게 될까요? 총수님은 선택할까요?”

“그러기를 바래요?”

“네.. 너무 오래 머물렀어요. 인간으로서는 아니겠지만.. 인간의 삶을 제게 기록하고 싶어요. 이번에는 3차원에서, 세상을 걷는 이들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요. 얼마나 멋진 일이에요. 둥근 지구를 걷는 일 말이에요.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사람들을 만날 수 있잖아요.”

“네, 그래요. 나도 3차원 지구에서 ‘春子’를 만나고 싶어요. [스팀시티]도.. 꿈꾸는 이들도, 나아가는 이들도, 도전하는 이들도.. 그들과 함께 걷고 싶어요. 그들의 도전에 참여하고 싶어요. 그러려고 마법사가 된 거니까요.”

“멀린.. 마법사님. 그렇게 될 거예요. 암요. 그렇게 되구말구요.”

두 개의 초승달 주위로 수많은 별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春子’는 방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러자 하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유성과 아름답게 흩뿌려진 은하수가 마법사의 지친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의 생을 거쳤는지 모르나, 마법사들의 좌절이 얼마나 반복되었는지 모르나, 꿈꾸는 이들은 여전히 빛나고 있고, 3차원 지구에서 그들을 돕고 있는 칠천명의 마법사들 역시, 오늘도 여전히 함께 걷고 있습니다. 물론 멀린도.. 아직도 걸어야 할 길이 한참이나 남은 [스팀시티]의 시민들과 마법사도, 다시 지구를 걸어야 합니다.

And if you could be who you wanted
If you could be who you wanted

All the time, all the time..

“마법사를 기다리는 수많은 꿈들이 저렇게 빛나고 있어요. 그들에게 말하셔야죠. 이제 너의 시간이라고. 너의 차례라고. 주저하지 말고 시작하라고. 마법사가 너와 함께할 거라고. 그리고, 그리고 말이죠. 기다리는 시공간들에게 희망을 주셔야죠.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여전히 믿고 있는 그들에게, 반드시, 결국은, 그들이 선택할 거고, 우리는 만나게 될 거라고 말이죠. 그렇게 말해주세요. 우리에게, 나에게, ‘春子’에게, [스팀시티]에게.. 기다림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 거라고. 창조된 시공간이, 평행한 우주의 블랙홀로 사라져 버리게 되지 않을 거라고. 영원의 지옥 속에서 3차원의 아름다운 지구로 드러나지게 될 거라고. 그날이 멀지 않았다고..”

눈물을 머금은 ‘春子’의 목소리가 점점 아득해지고, 두 개의 초승달 사이에서는 수많은 의자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의자들은 모두가 잠들어 있는 밤하늘 사이를 떠돌며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중 하나의 의자가 멀린을 감싸 안더니 하늘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강처럼 흐르는 의자들의 바다를 보여 주었습니다. 멀린은 하늘을 떠돌고 있는 빈 의자들을 보자 주르륵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있는 수많은 꿈들과, 선택되지 않은 채로 허공을 떠돌고 있는 그들의 의자들이 안타깝고 슬퍼 보였습니다.

그러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스팀시티]의 첫 미니스트릿에서, 자신의 첫 작품을 팔았다며, 이제는 자신도 집에 할 말이 생겼다며 기뻐하던 누군가의 수줍은 고백이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한 여름밤 쏟아지는 빗속에서 울고 있었다. 검정치마를 입고, 수피들처럼 춤추며, 지구행진을 시작한 [스팀시티]의 동산에 올라, 뱅글뱅글 춤을 추고 있었다. ‘우하하하 그가 책을 팔았다! 그가 집에 할 말이 생겼다!!’ 온 세상이 떠나가도록 외치고 있었다. 기쁨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뿌듯한 마음이 날개가 되어.. [스팀시티]의 상공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한 여름밤의 one night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멀린을 태운 의자가 대양에 가라앉은 [스팀시티]의 상공을 뱅글뱅글 돌기 시작하자, 멀린은 모든 시름을 날려 버린 듯 크게 웃으며, 목이 터져라고 한 여름밤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넌 내 모든 거야.
내 여름이고
내 꿈이야.
넌 내 모든 거야.
내 여름이고
내 꿈이야.
넌 내 모든 거야.
나 있는 그대로
받아 줄게요. 2)

그러자 미래의 시공간에서 기다리고 있는 [스팀시티]의 시민들이, 마법사의 노랫소리에 깨어나 모두다 검정치마를 입고는, 하늘을 떠돌던 의자에 빼곡히 앉아, 한 여름밤의 노래를 합창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You are my everything
My everything
My everything
You are my everything
My everything..

‘멀린, 마법사님.. 기다리고 있을게요. 오셔요. 함께 오셔요. 모두 오셔요. 이 ‘春子’에게로, 그대들의 미래에게로.. 와서 우리 함께 놀아요. 우리 함께 춤추고 달리고 웃어요. 세상이 모두 우리의 것이잖아요. 보세요. 모두가 이렇게 기다리는데.. 모두가 이렇게 간절한대.. 그깟 현실일랑 아랑곳하지 말고 오셔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어요. 모든 것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대들이 걱정하는 모든 일들은 준비되어 있지 않답니다. 그대들이 꿈꾸고 열망하는 모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어서 오셔서 ‘春子’의 손을 잡고 가라앉은 [스팀시티]를 찾아가요. 걷고 또 걸으면, 달리고 또 달리면, 부르고 또 부르면… 그것은 기록되어 있으니,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이니, 우리는 결국 만나게 될 거예요. 우리는 결국 살게 될 거예요. [스팀시티], 우리의 도시에서..’

‘春子’가, 저 멀리 성냥갑처럼 작아진 ‘春子’가, 창가에서 서서 손을 흔들며,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지친 마법사에게 작별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동쪽 하늘에 멈추었던 해가, 태양이, 그제야 비로소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You are my everything
My everything

All the time, all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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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도시건설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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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adiohead ‘Fake Plastic Trees’
2) 검정치마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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