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는 두려움을 먹고

+ 마스터 회의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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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가 구원하리라

 

거미 대장 : 아이작? 서편에서 왔다고? 음.. 그래요. 어디 한번 말해 보시오.

아이작 : 외람되지만, 대장께서 궁금해하시는 제국의 미래에 대해 제 설명이 조금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기심이란 기술로서 극복해야 한다는 게, 우리 서편 세계의 생각입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충돌할 때, 그 중간 어디선가 합의점이 생겨나고 거기서 시장이 형성된다고 우리는 믿어왔습니다.

거미 대장 : 오, 이건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긴데? 누구더라..

찰스 : 아, 대마법사 아담스의 이론이죠.

거미 대장 : 맞다, 아담스. 근데 그가 마법사였소?

찰스 : 글쎄요. 아마도.. 후후

아이작 : 그 보이지 않는 손을 우리는 언제나 믿고 기다려 왔죠.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은 보이지 않는 손을 자주 거부해 왔어요. 이익이 눈에 빤한데도 때론 복수를 위해, 감정의 해소를 위해 협력을 거부하거나, 이익이 되지 않는데도 허영심과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시장을 넘어서거나 훼방 놓곤 했지요.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인류는 대공항에 직면하거나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켜야 했어요. 몸부림을 친 것이죠. 물론 보이지 않는 손은 그때마다 더 큰 동작으로, 인류의 경제를 제자리로 돌려놓거나 한 단계 성장시키곤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인류가 당면한 문제는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이렇게 매번 몸부림을 치는 방식으로는 더이상 인류의 문제를 해소하기 어려워요.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 경제는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거든요. 몸부림도 공간이 남아 있어야 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미 공간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앞서 멀린이 말한 것처럼 카니발라이제이션을 하지 않으면 모두가 공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테크놀로지는 언제나 인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인류를 자신의 땅을 넘어서 미개척지를 찾아낼 수 있게 했고, 현실 세계의 정복전쟁이 끝나자, 테크놀로지는 온라인이라는 무한대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어요. 가상의 현실, 온라인의 세계는 이제 겨우 개척을 시작했을 뿐입니다.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려면 무엇보다 선결되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상상력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상상력의 지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류는 이제 겨우 그 세계를 열었는데, 아직은 현실 세계의 산업을 가상의 세계로 이동시키는 정도만 하고 있어요. 개척지에 금과 은이 널렸는데, 자기 땅에 심던 올리브나무나 심고 있는 꼴이지요.

거미 대장 : 오호~ 이거 흥미로운 얘기로군. 그렇다면 인류는 그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기 위해 무얼 해야 한단 말이오?

아이작 : 이 가상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와 다릅니다. 그걸 먼저 받아들여야 해요. 한정된 자원, 한정된 재화를 바탕으로 하는 희소성의 원칙에서 먼저 벗어나야 합니다. 온라인의 세계는 무한하니까요. 우리는 먼저 제한된 사고부터 해방시켜야 합니다. 그게 인류가 넘어서야 할 다음 단계의 사고적 진화인 것입니다.

찰스 : 하하하 아이작, 역시 서편 마법사 답군요. 맞습니다. 대장께서도 현실 세계의 인식에서 좀 벗어나셔야 합니다. 제국도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언제 도태될지 몰라요. 아직도 저렇게 장부를 일일이 찾고 있어서야 쯔쯧.. 이래서야 인류의 진화속도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거미 대장 : 음.. 우리 제국의 시스템을 무시하는 거요? 가상, 가상 너무 좋아하지들 마시오. 우리는 어차피 3차원 세상을 살고 있는 것 아니오.

아이작 : 맞습니다. 우리는 3차원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물리적 인간이지요. 하지만 우주의 진화는 이미 인류를 3차원과 4차원의 경계로 이끌고 있어요. 누군가는, 마치 영혼을 빼앗긴다며 사진 찍기를 거부했던 개화기 사람들처럼, 여전히 3차원적 질서를 신봉하며 변화를 거부하겠지만, 개척자들은 벌써 4차원 세계의 질서를 세상에 가져오고 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만나고 거래하고 이윤을 발생시키고 있으니까요.

거미 대장 : 아아,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오. 그러니 이렇게 당신들 얘기를 들어주고 있는 거 아니오. 그런데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인류를 공멸의 위기에서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이오?

그때 잠자코 듣고만 있던 남준이 아이작의 말을 받아 답변을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을 넘어

 

남준 : 블록체인, 암호화폐가 그중 하나의 길이 될 수 있겠죠. 인류는 이미 성장을 충분히 경험해 왔습니다. 지구를 탈탈 털어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포식자로서의 지위를 마음껏 누려왔죠. 그러니 이 가상의 세계에서도 성장은 잘해나갈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분배예요. 어떻게 부를 분배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인류는 성장의 속도 만큼 제도를 발전시켜오지 못했어요.

아이작 : 네 그렇습니다. 인류는, 특히 우리 서편세계는 분배의 문제를 시장에 의존해 왔습니다. 이기심이 만나는 지점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개별 주체들에게 적절한 이익을 형성 시켜 줄 거라고 믿어왔죠. 그런데 그 믿음을 실현시키려면 성장을 멈추어선 안 되었어요. 성장이 멈추면 이기심은 약탈로 변질되거든요. 그래서 우리 서편 세계는 끊임없이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해 왔죠. 그런 끝에 이 온라인의 가상 세계 역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인류가 무한대로 퍼먹어도 부족함이 없을 새로운 파이를 찾아낸 겁니다.

남준 : 그런데 이 세계는 좀 다릅니다. 그렇게 시장에 의존해서만은 진입할 수 없는 무엇을 가지고 있어요. 그건 4차원 세계의 특성일 거예요. 희소성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 독특한 세계말이죠.

거미 대장 : 글쎄, 그럴까? 어차피 사람의 숫자가 한계가 있으니 소비의 희소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오?

아이작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있구요. 선진국들을 제외한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자원의 문제가 도래하겠죠. 우리는 어쨌든 3차원 물리 공간에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문제는 결국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인류는 우주로 나아가게 될 테니까요.

거미 대장 : 우주? 우주로 나아간다고? 뭐 화성 이주 같은 걸 말하는 거요?

남준 : 화성뿐이겠습니까. 저 태양계 너머, 지구와 같은 환경을 가진 어떤 별이라도 인류는 찾아갈 겁니다. 그게 아니면 각 행성에서 채취해낸 자원을 활용하여 우주 공간에 도시를 건설할 수도 있겠죠. 공중으로, 바다 심해에, 땅속 깊숙한 어딘가에도 도시를 건설할 거예요.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예상보다 빠르니, 우리는 이미 우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몰라요. 게다가 인공지능은 인류의 발전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킬 거예요. 그들은 잠도 자지 않고 연산하고 연구할 테니까요.

거미 대장 : 음.. 그런데 그러다 그들에게 지배당하면 어떡하지? 왜 SF 영화 보면 기계들이 인류를 멸망시키는 그런 스토리들 천지 아니오?

남준 : 하하하. 제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대장께서 겁도 많으십니다. 인류는 언제나 테크놀로지를 통제해 왔습니다. 조지오웰은 <1984>란 작품에서 빅브라더와 인류의 동물농장화를 예언했지만, 인류는 온 세상에 CCTV와 도청과 감시가 가능한 개인 단말기를 깔아 놓구서도 민주사회를 발전시키고 있어요. 1984년으로부터 34년이 지난 지금, 테크놀로지는 발전했지만 인권은 더욱 개선되었다구요. 테크놀로지는 두려움을 먹고 자라납니다. 두려움을 소화해 낸 이들이 테크놀로지 사회의 영웅이 되었죠. 인공지능의 역습? 우리는 오히려 대장의 포승줄이 더 무섭습니다. 하하하

거미 대장 : 음.. 그럴듯한 얘기군. 당신 이름이 뭐요?

남준 : 남준입니다.

거미 대장 : 아.. 그럼 혹시 백남준을 아시오?

남준 : 알다마다요. 저희 계열의 수장이시죠.

거미 대장 : 오호 그렇군. 백남준 계열이란 말이지. 내가 그 퍼포먼스를 봤소. 그 뭐였더라.. 아, ‘굳모닝 미스터 오웰’! 그 퍼포먼스 말이요. 그게 얼마나 쇼킹했는지 아오? 내가 그때 소학교 학생이었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인상에 깊게 남아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그 퍼포먼스가 전 세계에 중계되지 않았소?

남준 : ‘굳모닝 미스터 오웰’을 보셨군요. 네 맞아요. 전 세계에 위성을 통해 생중계되었죠. 백남준은 조지오웰에게 영상편지를 발송했어요. 당신이 말한 1984년이 왔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이죠. 조지오웰이 경계한 공산주의 빅브라더 시스템은, 그 뒤로 10년도 흐르기 전에 무너지고 말았죠. 테크놀로지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아니 어떤 이념이든, 기술이든, 인간이 만든 것을 인간이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인간이 극복할 수 있어요. 두려워야 해야 할 것은 우주이죠. 인류 너머에 있는 것들은 경외해야 해요. 그러나 인류는 언제나 테크놀로지가 야기하는 문제를 제도와 시스템으로 극복해 왔어요. 보세요. 지금은 인류 역사의 어느 시절보다 개인의 인권이 신장되어 있습니다. 개인은 점점 신적인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구요.

거미 대장 : 그렇다면 신으로서의 책임도 져야 하지 않겠소.

남준 : 네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해요. 인식만으로는 언제든 뒤로 후퇴할 수 있어요. 인류의 의식은 발전하기도 하지만 퇴행하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기술과 제도는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죠. 낡은 것은 사라지니까요.

찰스 : 허허, 이제 대화가 비로소 도달해야 할 지점을 향하고 있군요. 그래서 블록체인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멀린, 답을 해줘야 할 시점이에요.

거미 대장이 마법사들과의 대화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하자, 찰스는 안심한 듯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흐뭇해졌습니다. 거미 대장과의 대립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마법사들의 마스터 회의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한 주제에까지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찰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멀린에게 재차 물었습니다. 기술의 진보와 인류 진화의 역사 속에서, 위기에 봉착한 인류의 경제 시스템에 새롭게 등장한 신기술, 블록체인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게 될 것인지.

 

희소성의 종말

 

멀린 : 답이라니요. 제가 어떻게 답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직접 뛰어들어 지켜본 결과, 어떤 실마리는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블록체인이 인류의 이기심과 분배의 문제를 해결할 진일보된 시스템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이제 인류는 사춘기에 들어서고 있거든요. 개인은 더이상 중앙 시스템으로서의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어요. 아직 촬영음을 강제로 고정해놔야 하는 나라가 있기도 하지만, 이제는 함부로 ‘예쁘다’ 소리도 할 수 없을 만큼, 개인의 인권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시대에 접어들었죠. 그 과정에서 인류는 많은 ‘중앙’들을 해체해 왔어요. 서편 세계의 신이 그랬고, 동편 세계의 가부장 역시 해체되고 있는 중이죠. 그 과정에서 개인들을 연결해 줄 구심점 역할을 해 온 것이 바로 국가인데, 그 국가 시스템마저 해체의 영광을 안을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죠.

거미 대장 : 아.. 블록체인 말이오? 국가 시스템의 해체를….

남준 : 네 맞습니다. 인류는 이제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야 해요. 4차원의 가상현실이든, 우주든.. 이제 인류에게 필요한 자원은 상상력이에요. 온라인의 가상현실과 우주는 무한하거든요. 한정된 재화와 한정된 자원, 한정된 인력과 한정된 인식으로 작동되는 구질서는 이제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권력은 그 한정된 희소성을 장악하는 데서 발생해 왔죠. 그러나 그 희소성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기 시작하고 있는 거예요. 희소성에 기반한 권력이 힘을 잃기 시작한 거죠. 우리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이미 열었다구요. 이 세계를 개척하고 발전시키려면 먼저 개인이 독립해야 해요. 서편의 세계가 신을 극복하였듯이, 우리는 국가라는 신을 극복해야 해요. 유일하게 남은 중앙 시스템, 이제 누구도 가부장에, 회사에, 학교에 종속되는 것이 절대 선이라고 인식하지 않아요. 우리는 모두 부모를 떠나 독립!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신이 자리하던 자리에 나와 너가 동등한 존재로 연결되어야 하죠. 그걸 블록체인이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멀린 : 네 그렇게 되어야겠죠. 아니 그렇게 되겠죠. 블록체인이 아니어도 또 다른 무언가가 결국에는 등장할 테고, 그것이 국가를 극복하여 개인과 개인이 연결되는 새로운 관계의 방식을 제시해 줄 거예요. 그래야 해요. 그래야 개인의 상상력이 해방될 수 있어요. 중앙에 종속된 사고방식으로는 개인의 상상력을 해방시킬 수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마법사 일론은 그걸 소시지로 극복했어요. 하루를 1달러로 살 수 있으면, 취직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겠다 생각하고, 그 돈으로 소시지를 사다 먹으며 한 달을 버텼죠. 그리고 자신의 상상력을 해방시켰어요. 그는 지금 로켓 열차를 만들어 화성에 가려 하고 있죠.

블록체인은 개인에게 발권력을 선사했어요. 그건 국가만 가지고 있던 거라구요. 그리고 이를 추종하는 선각자들이 기꺼이 ‘쓸 사람’이 되어 주었죠. 피자를 사 먹음으로써 말이죠. 그래서 세상에 등장했고,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당당히 국가화폐와 경쟁하기 시작했어요. 국가 대 개인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깨어나는 개인이 많아질수록 이 게임의 결과는 너무나 명확하죠.

남준 : 국가라고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랍니다. 어차피 그건 허상이니까. 그것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조차 한계에 부딪혔음을 인정하고 있어요. 뒤로는 이미 블록체인 시스템에 접속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중국은 이미 자체 시스템을 개발했죠. 하지만 이건 블록체인, 암호화폐가 아니에요. 발권력이 개인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방송국이 유튜브 한다고 성공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이건 상징이죠.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는..

거미 대장 : 그.. 그.. 그렇다면 결국 국가 시스템은 종말을 고하게 된단 말이오? 우리 경시청도??

아이작 : 국가가 왜 필요하죠? 치안과 안보가 국가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까? 개인에게 국가가 필요 했던 것은 세계가 블럭으로, 민족으로, 땅의 경계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온라인 세상에서는 그런 경계가 무의미합니다. 언어도, 민족도, 다 의미를 상실한단 말입니다. 오로지 취향과 세계관에 따른 다양한 커뮤니티와 무리들만이 존재하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 어떤 정치적 국가, 영토적 국가에 소속되어 제공받는 서비스를, 이제는 기업이, 시스템이, 개인이 모두 담당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저 정치적 불안이 팽배한 제 3세계 국가의 군대보다, 제국 경시청 요원 출신들이 제공하는 경호 시스템이 더 훌륭하고 효과적일 겁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이미 메일 시스템을 다국적 기업에 넘긴 상태예요. 이전에는 모든 나라가 각자의 우정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었지요. 뭐 지금도 없어지진 않았습니다. 고지서만 배부하는 수준이지만. 통신 시스템 역시 왓츠앱, 페이스타임, 스카이프와 같은 다국적 기업의 서비스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택시는 우버를 타고, 배달은 딜리버리 히어로가 전담하고 있죠. 심지어 전기, 수도와 같은 기간산업들에까지 다국적 기업들의 영토가 넓어져 가고 있어요.

거미 대장 : 그렇다면 국가를 기업이 대체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기업보다는 국가가 낫지. 국가는 어쨌든 국민들이 지도자를 직접 선출하지 않소?

아이작 : 기업도 주주들이 경영자를 선출하죠. 오히려 기업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바로 잘립니다. 정치인은 성과와 상관없이 권력을 휘두르지만요. 그러나 앞으로는 기업조차 의미가 달라지게 될 겁니다.

멀린 : 블록체인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는 거예요. 블록체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서비스는 합종연횡이 매우 용이하죠. 이렇게 모였다 저렇게 모였다, 연합과 탈퇴가 매우 자유로워요. 국가의 경계도 없고. 전기와 수도 같은 기간 서비스도 개인이 할 수 있어요. 국가의 경계가 점점 옅어지면 세계정부 같은 것이 출현하던지, 극단적으로는 취향과 세계관에 따른 새로운 국가가 생겨날 수도 있어요. 그건 국가라기보다 커뮤니티겠지만요. 그렇게 되면 그 자리를 기업이 대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기업이란 것도 지금처럼 설립자와 투자자로 이루어진 컴퍼니가 아니라, 사용자들이 주축이 된 주주와 이를 대리하는 기능적 서비스로 간편화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전기, 저런 수도 서비스를 사용하고 싶은 사용자들이 블록체인 상에서 펀드레이징을 하고, 모인 자금으로 관련 기능을 직접 구현할 수도 있죠. 전문가들을 고용해서 말이죠. 그러면 전기는 이 커뮤니티의 전기를 사용하고, 수도는 저 커뮤니티의 수도 서비스를 사용할 수도 있죠. 그 과정은 모두 블록체인상에 기록되어 있으니 국가와 같은 중간자가 통제하고 조정할 필요가 없어요. 불투명하고 효율이 떨어지는 서비스는 도태되고 말 테니까요.

찰스 : 맞소. 이거야말로 진정한 ‘보이지 않는 손’의 등장인 것이오. 거미 대장, 당신에게도 이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겁니다. 언제까지 국가의 노예로 살아갈 셈이요? 이제 도래하는 새로운 세상에서 국가의 경계를 벗어나 자신의 재능을 온 세상에 알려 보지 않겠소?

크아아아아아~

그때 괴성이 회의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찰스가 거미 대장을 바라보며 새로운 세상에 마음을 열 것을 권유하자, 갑자기 거미 대장이 벌떡 일어서서 크게 포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미 대장의 포효가 회의장을 가득 채우며 메아리처럼 울리자, 그의 몸 여기저기에서 기포 같은 것들이 올라오며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마치 헐크처럼 그의 제복이 뜯겨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포효하던 거미 대장의 입에서 갑자기 이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오오오~ 그렇소. 그래서 우리 마법사들은 이제야 비로소 완전한 개인의 등장이 가능하게 되었다 기대하고 있는 바요. 더이상 개인이 중앙 시스템의 노예로 자신의 자유를 헌납하며 생존권을 하사받을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오. 개인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원하는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이오. 모두 보시오. 우주의 자원은 무한하오. 우리는 단지 지구에 스스로를 구속시켜, 희소성의 노예로 자신을 제한 시켜 왔소. 그러나 무한한 우주가 모두 인류의 새로운 땅이요. 우리는 얼마든지 나아가고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소. 이것이야말로 신이 인류에게 내린 지상명령이니,

‘세상 끝까지 나아가 정복하고 다스리라!’

세상 끝은 어디요? 21세기의 인류에게 주어진 세상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우주이고 무한한 온라인의 세상이오. 환경파괴? 파괴는 무슨.. 인류가 뭐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파괴 운운하지? 모든 것이 다 자연의 작용이고 우주의 섭리일 뿐이오. 환경이 요동치는 것은, 인류로 하여금 지구를 벗어나 무한한 우주 공간으로 나아가라는 우주의 계시인 것이오. 도전하고 모험하기를 멈춘 인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 인류의 사명이란 끊임없이 자연과 우주를 파헤치고 자극하여 진화를 가속하는 것이니까. 그러니 우리는 한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무한한 세계로 인식을 확장해야 하오. 더이상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희소성의 전쟁을 멈추고! 우주로, 온라인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단 말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모두 두려움을 멈추고 나아가시오. 도전하시오. 모험의 세계로 자신을 내던지시오! 그대들을 기다리는 미지의 별이, 넘실대는 우주의 공간이,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소. 정복하시오., 다스리시오, 온 우주에 인류의 씨앗을 뿌리시오. 우주와 맞서 진화의 섭리를 가속하고 증폭하시오.

성장을 멈춘 모든 것에 저주가 내리리니.. 아자차카타파하!”

아.. 이럴 수가, 거미 대장의 입에서 나온 그 소리는 그레이트 마법사 이도의 목소리였습니다. 이미 떠난 줄 알았던 이도의 목소리가 어떻게 해서 거미 대장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걸까요? 회의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이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어리둥절하며 얼어붙어 있던 바로 그때, 대관료 납부 대장을 확인하던 검은 제복의 상사가 눈동자를 반짝이더니,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서 헐크처럼 부풀어 오른 거미 대장을 겨냥했습니다.

“이런 반동분자! 제국의 위엄에 도전하다니, 너 같은 작자는 제국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없어! 제국과 경시청의 명예를 더렵혔으니, 나는 제국의 이름을 받들어 너의 존재를 소멸시키겠다. 기꺼이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으라!”

탕! 탕! 탕~

검은 제복 상사의 총구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리고, 총구를 날아간 총알은 한 발은 거미 대장의 심장에, 한 발은 복부에, 그리고 나머지 한 발은 거미 대장의 왼쪽 눈에 가서 박혔습니다. 그러자 총격을 당한 거미 대장은 다시 한번 크게 포효하더니, 정수리부터 두 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칼로 자른 듯 두 쪽으로 쪼개어진 거미 대장은 제자리에 풀석 쓰러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두 쪽으로 갈라진 채 회의장 바닥에 쓰러진 거미 대장의 몸속에는 그레이트 마스터 이도가 누워있었습니다. 그의 눈은 깜빡이며 회의장 천정을 응시하고 있고 입에서는 붉은 피를 토하고 있었습니다.

“마스터시여! 그레이트 마스터시여!”

안전 포승줄에 묶여 공중에 매달린 멀린은, 거미 대장의 쓰러진 몸속에서 피를 토하고 있는 이도를 발견하고, 놀라고 당황하여 목놓아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이도는 멀린을 바라보며 희미한 음성으로 한마디를 남기었습니다.

“새로운 이(理)를 잊지 마시게. 꿈꾸고 사랑하시게. 가나다라마바사..”

“흐흑.. 이도, 마스터시여..”

멀린은 이도를 부르며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회의장 사방에서 문이 열리고, 각지로 떠나갔던 하루카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회의장 중앙으로 다시 들어오고, 멈춰선 하루카 열차에서는 떠난 줄 알았던 7천명의 마법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회의장에 남아있던 100명의 마법사들과 남준, 아이작, 찰스의 눈동자가 모두 하얗게 변하더니, 자리에서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모두 공중에 매달린 멀린을 둘러싸고는 일제히 한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마법사의 노래를 합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 깊고 넓어도
우리 사는 이 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

울부짖던 멀린은 마법사들의 합창과 회전을 바라보며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멀린의 의식 너머로 아득한 환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위대한 발견을 할 줄도 모르면서, 흑사병을 피해 터덜터덜 고향으로 돌아가는 한 마법사의 진로를 망쳐버렸다는 푸념과, 신의 권위에 도전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직면한 채로 20년을 망설이던 마법사의 닳고 닳은 논문, PC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에 광대역 통신망을 예견하고, 로봇의 인간적 죽음을 상상하던 괴짜 마법사의 눈빛이, 멀린의 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자신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먼 미래의 백성들을 연민하며, 자신의 측근들과 논쟁을 벌이는 왕이자 언어학자의 굽힐 줄 모르는 의지가, 우주의 언어로 형상화되어 멀린의 온 몸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파하..
우주 끝까지 이르러, 내 친구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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