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라이제이션을 할 수 있겠는가

+ 마스터 회의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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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장난

 

멀린은 공중에 매달려 말이 없습니다. 거미 대장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 버렸나 봅니다. 경시청의 미래는커녕 제국의 미래를, 멀린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마법사는 떠오르는 미래기억에 대응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미래기억은 운명의 순간을 만나기 전까지는 망각의 바다에 잠들어 있을 뿐입니다.

거미 대장 : 이봐, 왜 말이 없나?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내 질문이 질문 같지 않아? 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냐고? 그대가 블록체인에 대해 그렇게 잘 안다며!

멀린 :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저도 블록체인을 접한 지 이제 겨우 일 년 정도가 흘렀을 뿐입니다.

거미 대장 : 뭐, 일 년? 아니 겨우 그 정도 경험해 놓구선 무슨 아는 척을 하고 있는 거야.

멀린 : 그게 그런 게 아니라.. 저도 블록체인의 미래와 사회 시스템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서, 실험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스팀시티]라고…

거미 대장 : 아.. 그래 [스팀시티], 당신네 회의 주제가 그거라고 들었어. 회의 내용도 오면서 대충 들었고, 근데 그 [스팀시티]와 제국의 미래가 무슨 연관이 있지?

멀린 : 네? [스팀시티]와 제국의 미래요?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이 화폐를 발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매우 혁명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될 것 같기는 합니다. 이제까지 화폐는 국가의 전유물이었고, 그것이 국가를 존속시키는 힘이었죠. 앞서 찰스의 말대로 국가를 상징하는 두 개의 힘 중 하나이니까요. 그런데 그게 다 허구고 허상이라는 걸, 사람들이 깨닫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어요. 이 블록체인, 암호화폐가 말이죠. 그러니까 전에는 국가에 있어 화폐란, 마치 팔다리처럼 태어나면 당연하게 생겨나는 일체라고 생각했는데,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권리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개인이 화폐를 직접 발행할 수도 있다는 걸 사람들이 깨닫게 되면서, 그간 국가와 패권자들이 화폐를 가지고 장난을 쳐왔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 거죠.

거미 대장 : 장난이라고? 무슨 장난을 쳤다는 거지?

멀린 : 음.. 그러니까, 금과 은으로 가치를 담보하고 있던 태환 화폐의 경우에는, 실물의 보유량 이상으로 화폐를 발행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현재의 신용화폐는 금과 은 같은 실물과 연동되어 있지 않죠. 무한대로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 화폐 발행권자인 국가 그리고 패권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화폐를 발행하여 유통할 수 있고, 화폐 발행량을 조정하여 국민과 세계인들의 권리를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국가가 말이죠. 미국이 말이에요.

거미 대장 : 이봐, 내가 어디 출신이라고 했지? 내가 제국대학 정경학부 출신이라고 했어 안 했어? 그게 그렇게 단순하고 간단한 게 아니야. 화폐를 찍어낼 수 있다고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고 그런 게 아니야. 이게 경제가 생물이라.. 발행량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가 디플레이션이 일어났다가, 암튼 복잡하단 말이지. 패권자들이라고 지들 멋대로 이랬다 저랬다 할 수만 있는 게 아니야. 그게 워낙 유동적이고 복잡해서 자칫 하다간 경제공황이 올 수도 있어. 패권자들의 재산도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고. 뭘 알고 하는 소리야.

멀린 : 네 맞습니다. 통화 정책이라는 게, 음모론에서처럼 조이스틱 조작하듯이 마음대로 할 수만은 없는 거죠. 다수의 소비자와 생산주체들이 유기적으로 연동하여 만들어내는 일종의 예술 같은 것이라, 패권자들이라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만은 없는 영역의 일이에요. 그래서 더 문제가 되고 있어요. 이걸 누가 마음대로 신처럼 조절할 수 있다면, 어쨌든 어떤 선에서 세계경제가 유지될 텐데. 자칫 손을 잘못 댔다간, 풍선효과가 여기저기서 일어나다 펑! 하고 터져 버려서, 모두가 망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이죠. 말씀하신 공황을 이미 인류가 여러차례 겪었구요.

거미 대장 : 그래, 그게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다고. 그래서 우리 제국이 그간 얼마나 조심스럽게 현금을 확보해 왔는지 알아? 우리 제국의 시민들은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아끼지 않지. 역시 현금이 최고라고.

멀린 :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물가상승률이나 세계경제의 상승 속도를 보면, 오히려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손해를 보는 일이에요. 산업 성장률보다 이자율이 현저히 떨어지니까요. 게다가 태환제 종식 이후 세계는 마구 통화를 발행해 왔어요. 돈이 엄청나게 시중에 풀려 있다구요. 반면에 금리는 점점 떨어지고 있죠. 돈이 귀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가만히 현금 깔고 앉아서 거지가 되어가고 있는 거예요. 현대 자본주의는 움직이지 않으면 굴러 떨어지는 산악자전거 타기처럼 되었단 말이죠.

거미 대장 : 음.. 그런가? 그럼 뭔가 계속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현금을 가지고 있지만 말고, 투자해서 뭘 만들어 팔아야지. 기술도 개발하고.

멀린 : 네 다들 그러고 있죠. 전 세계가 모두 그리로 달리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뭘 만들어도 살 사람이 자꾸 줄어드는 거예요.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니까요.

거미 대장 : 그게 무슨 소리요? 아니 애 안 낳는 선진국들이야 그렇다 쳐도, 전 세계적으로 보면 환경파괴의 원인이 될 만큼, 세계 인구는 이미 포화상태가 아닌가?

멀린 : 물론 그렇죠. 인구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만, 경제력을 가진 선진국의 소비인구는 자꾸 줄고 있고, 경제력이 떨어지는 제 3세계의 인구들은 늘어나고 있어요. 세계경제가 지속성을 확보하려면, 선진국에서 제 3세계로 부가 이동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제 3세계가 소비여력을 확보하려면 선진국이 스스로 ‘카니발라이제이션’을 해야 해요.

 

제국의 카니발라이제이션

 

거미 대장 : 카.. 카? 카, 뭐라고?

멀린 : 아 그러니까, ‘카니발라이제이션’이라고 자기 스스로 가치를 다운시켜서 새로운 동력을 찾는 것을 말하는 데, 선진국들이 그걸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예요. 그건 한 나라 안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경제력이 기성세대에서 새로운 세대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와 산업이 발전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성세대가 부를 독점하고 있죠. 새로운 세대로 부가 이전되지 않으니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아이도 낳지 않게 되는 거예요. 아니 낳을 수가 없는 거죠. 키울 경제력이 되지 않으니까.

거미 대장 : 그건 그래. 우리 애들도 좀처럼 새로운 도전을 할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고. 공무원 같은 안전한 직장이나, 것도 안되면 평생 알바나 하면서 살 생각인 것 같아서, 사람이 태어나서 큰 꿈을 꿔야지, 젊은 놈이 그게 무슨 생각이냐고 내가 한 번 크게 혼을 낸 적이 있는데, 아빠가 내 인생 책임질 거냐며 대들더군. 아빠도 공무원이면서 무슨 소리냐고. 난 단순히 국가의 녹이나 축내는 월급쟁이가 아니야. 제국의 안보를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고. 신분이 공무원일 뿐, 나는 나의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해봐야 요즘 애들 귀에 들리지가 않아.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우리 젊었을 때에는 온 세상이 ‘메이드 인 제국’에 환호했는데 말이야.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어. 제국의 신화가 저물고 있다고. 이걸 어떻게 하지?

이봐 멀린, 카 머시기, 그걸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세대 간에 부를 이전하고, 국가 간의 격차 역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게 해서, 다 같이 좀 더 나아지면 되는 게 아닌가? 그래야 있는 사람도 더 잘 살고, 없는 사람도 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 그런 게 아니냔 말이지.

멀린 :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걸 나눠서 모두가 함께 잘 살게 되면, 결국 나의 부도 증가할 거란 말. 너무 이상적이지 않나요? 인간의 이기심이 그걸 용납할까요?

거미 대장 : 다 같이 공멸하지 않으려면 그래야 하지 않나?

멀린 : 하하하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우면 세상이 이렇게 되지 않았겠지요. 기후 문제를 보세요. 지구의 환경파괴가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어요. 그래서 탄소배출량을 좀 줄여보자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결국 자국의 이익 앞에서 각국이 얼마나 미적거리고 있어요? 서울은 이미 마스크 없이는 밖에 나설 수도 없는 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구요.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가 되어가고 있어요.

거미 대장 : 아, 그거야 그러니까 이웃을 잘 둬야지. 다 그 중국 놈들 때문에 그런 거 아니오.

멀린 : 후훗, 제국의 원전은 어떻게 돼가고 있죠? 제국에서 방사능 바람이 불어온다는 괴담이 한국에서는 심심하면 한 번씩 돌아다닌답니다.

거미 대장 : 그 말은 좀 삼가면 안 되겠소? 뭐 우리라고 사고를 내고 싶어 냈겠냐고.

멀린 : 네 맞습니다. 중요한 건, 인간의 이기심에만 맡겨서도, 인간의 선한 의지에만 맡겨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거미 대장 : 그럼 어쩌란 말이오? 그냥 다 같이 다가오는 종말을 속수무책으로 맞이 해야 한단 말이오? 마법사들은 무슨 방안이라도 있소? 찰스, 찰스 당신이 그랜드 마스터라고 하지 않았소? 당신이 말 좀 해보시오.

찰스 : 네? 왜 갑자기 나를.. 아니 뭐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회의를 개최한 게 아니겠소. 우리도 사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되어갈지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라오. 그러다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했고, 여기 멀린 마법사가 직접 몸으로 뛰어들어 실험을 시작했다길래, 그 얘기를 들어보자고 모였던 거요. 그러니 당신도 우리를 이렇게 구속하지만 말고 같이 방법을 논의해보는 게 어떻겠소?

거미 대장 : 음.. 그럴 수는 없소. 내가 지금 놀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오. 이게 다 공무를 수행하는 중이란 말이오. 쩝, 근데 이거 궁금하단 말이지. 이게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 건지..

아, 그러니까 그때 우리 제국이 대동아 공영권을 구축했어야 하는데, 그놈의 핵폭탄 때문에.. 온 세상이 우리 제국의 시민들처럼 살면 얼마나 좋아. 당신들 ‘오족협화’라고 들어봤어? 우리 제국 경시청의 위대한 예언자이신 이시와라 간지께서 일찍이 만주국을 세우시고, 일본족, 만주족, 조선족, 한족, 몽골족 등 오족이 힘을 합하여, 만민 공영의 제국의 시스템을 전 세계에 보급하고자 했던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구. 그게 다 우리 제국만 잘 먹고 잘 살 거면 그냥 식민지로 만들어서 자원만 수탈하면 될 일이었다고. 그러나 우리 제국의 영도자들은 위대한 꿈을 꾸시어, 이 동아시아 전체의 근대화를 앞당기려 노력하시었던 거야. 대동아 전체에 우리의 제국의 시스템을 보급함으로써, 모두 함께 협력하여 선진 사회를 이룩하고자 했던 제국의 ‘카니발라이제이션’이었다 이 말이지. 안타깝게도 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말이야. 만일 그게 실현이 되었으면, 지금의 이런 세상은 없었을지도 몰라. 이시와라 간지께서는 핵폭탄의 등장도 예언했었다구. 실제로 개발도 했었어. 제국 해군에서. 좌절되긴 했지만 말이야. 만일 우리가 핵무기를 먼저 개발하고 그걸 뉴욕에다 꽂았으면, 지금 미국의 자리에 우리 제국이 있겠지. 당신들은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제국’에 살고 있을 테고. 얼마나 좋아? 우리 제국의 시스템은 아주 훌륭하거든. 기본적으로 실물에 기반해 있지 않은 것은 믿지를 않으니까. 게다가 매우 개인주의적이면서 또한 공동체적이야. 내가 앞에서 다 얘기했잖아. 우리는 자신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기 위해서 사회의 기준에 최선을 다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양보와 배려도 언제나 생활화되어 있지. 그런데 이노무 서방 놈들은 지들만 생각한단 말이야. 공동체는 안중에도 없어. 아주 이기적이라구. 그나저나 세상이 저 놈들 손에 있으니 어떻게 돌아가려나. 이거 아주 큰 일이구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지구인들의 미래기억을 관리해 온 마법사들에게도, 제국의 안보를 담당해 온 거미 대장에게도, 당면한 인류의 미래는 참으로 급박하고 해답을 찾기가 어려운 난제입니다. 많은 이들이 공멸을 이야기하고 침체와 절망을 내다보지만, 마법사들은 언제나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인류의 미래기억을 되살려 왔습니다. 이 도래하는 새로운 시스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인류에게 새로운 번영과 공존의 해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요? 마법사들에게 멀린의 [스팀시티] 실험이 주목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아이작 :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거미 대장 : 누구?

아이작 : 아, 저는 서편에서 온 마법사 아이작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불투명한 인류의 미래를 전망하며 고심에 빠져 있던 순간, 서편 마법사 아이작이 거미 대장에게 발언권을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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