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션’의 가브리엘 신부의 오보에가 히틀러를 괴물이 되게 했다는 거예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그런데 세상 일이 다 그래요. 세상만사가 다 연결이 되어 있어 개인의 날갯짓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어 생각지도 못한 사건으로 귀결되곤 해요. 그래서 우리는 매사, 매 순간 깨어지 있지 않으면 안돼요. 놓쳐 버린 버스가 다음 교차로에서 교통사고가 날지, 아니면 간신히 올라탄 버스에서 평생의 인연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에요.
인류를 엄청난 재앙으로 몰고 간 히틀러가 어쩌다 가브리엘 신부의 오보에로 괴물로 변하게 되었을까요? 이 나비효과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19세기 파라과이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파라과이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아시다시피 남미는 대부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어요. 그런데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정복하자, 남미에서 스페인의 지배력이 약화된 거예요. 이 틈을 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대대적인 영토 확장을 도모했는데, 이 두 나라 사이에 끼어있던 나라가 파라과이와 우루과이예요. 우루과이는 브라질이 점령하고, 아르헨티나는 파라과이나 가져가야겠다 하고 별 고민 없이 파라과이에 손을 댔다, 된통 혼이 나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파라과이는 다른 남미 국가들과 달랐거든요.


▲영화 ‘미션’은 이 당시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에요.
가브리엘 신부와 같은 예수회 선교사들의 노력이 과라니족을 보호했고, 그 바람에 대멸족을 피한 과라니족들은, 아르헨티나의 침공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여 아르헨티나 원정군을 물리칠 수가 있었어요. 덕분에 파라과이는 1811년 독립을 선포할 수 있었어요.
독립 초기 파라과이의 성장은 순조로웠어요. 초기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독립으로 이끌어 준 셈인 나폴레옹을 흠모하며, 계몽군주 역할을 자처했어요. 이들의 꿈은 파라과이를 과라니족 중심의 원주민 유토피아로 구축하는 것이었어요. 국민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과라니족들도 이들을 잘 따르며 국가를 세워갔어요. 특히 이 초기 계몽군주들은 의무교육제도를 실시하고, 읽기 쓰기 뿐만 아니라, 예술교육도 중시해 5 천개의 플롯을 수입했대요. (오보에는 비싸니까요 ㅎㅎ)
이런 노력들 덕분에 파라과이는 주변 국가에 비해 문맹률도 낮고 사회 통합수준도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산업화 정책을 펼쳐 유럽 국가들로 부터 제철소, 조선소, 군수공장들의 설비를 수입하고, 철도와 전시망을 구축하는 등 산업화를 가속했어요.
말도 안 되는 전쟁
여기까지 순조롭죠. 호사다마라고 모든 일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찾아오기 마련이에요. 1세대 계몽군주들이 모두 죽고, 뒤를 이어 즉위한 로페즈(Francisco solano Lopez)는 야심이 가득한 인물이었어요. 그는 유럽을 방문해 나폴레옹과 나폴레옹 3세를 만나고는 마음에 야망을 가득 채우고 돌아와요. 그런데 그게 심해져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등을 보이는 것을 금할 만큼 과대망상적 인물이 되어가요.

모든 전쟁이 참혹한 결과로 막을 내리지만 파라과이의 피해는 실로 막대했어요. 전후 파라과이 인구는 16만 명이었는데, 이중 15세 이상 남자는 2만 9천 명에 불과했어요. 6년간의 전쟁으로 인구의 70%가 감소한 거예요. 극단적인 여초사회는 비극적 문화를 양산하게 되는데, 성인 남자가 거의 사라진 파라과이에서는 성폭력과 성도덕의 타락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요. 강간과 매춘이 구분도 되지 않은 채 마구 벌어지고, 이러 것들이 일종의 남자의 특권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펼쳐지게 돼요. 우리도 그런 경험이 있죠. 전쟁은 끔찍해요. 특히 여자와 아이들에게 더욱 그래요.
1차적인 전쟁의 원인은 로페즈의 과대망상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단지 미친 군주의 엉뚱한 짓 만이었을 까요? 혼란스러운 세계사의 틈바구니에서 과라니족, 파라과이 국민들이.. 자신들이 얻게 된 행운을 자신들의 역량으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요? 그런 국민적 자신감 없이 6년간의 전쟁이 가능했을까요? 기껏 제국주의 폭력에서 예수회 신부들의 헌신과 지정학적 유리함으로 살아남았는데, 제 발로 전쟁을 일으켜 스스로 씨를 말리는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한 거예요.
게다가 그 과정에서 피어난 이상한 민족적 우월의식은 다른 인근 민족들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어요. 실지로 전쟁의 과정에서 흑인 브라질 군인들에게 겁탈당한 파라과이 여인들은, 자신들의 아이가 흑인이면 태어나자마자 죽이는 끔찍한 전통을 만들었다고 해요.
이미 북미에서 남북전쟁(1861~1865)이 끝나고 노예제를 철폐해 가고 있는 와중이었어요. 백인들 입장에서는 흑인이나, 과라니족이나, 도찐개찐.. 어차피 유색인종일 뿐인데.. 과라니족들은 자신들이 흑인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고 있었나 보죠. 뭐 우리 사회라고 그런 의식에서 자유로운 건 아닙니다만..
과라니족의 이러한 과도한 자신감과 민족적 우월감은 전후 복구 과정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전후 파라과이 정부의 당면 과제는 인구 확대였어요. 전쟁으로 씨가 말랐으니까요. 파라과이 정부는 유전적으로 우월한 인종을 받아들여 국가를 융성시켜 보겠다는 해괴한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그 바람에 파라과이가 아이러니하게도 나치의 비밀기지가 되는 나비효과가 발생해요. 그리고 그 중심의 엉뚱하게도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 니체가 있었어요.

문제적 여인 엘리자베스 니체
엘리자베스는 니체의 여동생이에요. 그녀는 오빠를 매우 숭배했어요. 니체의 아버지는 목사였는데 니체가 5섯살 때 뇌경색으로 돌아가시자, 니체는 집안의 유일한 남자로서, 집안을 이끌고 갈 가장으로 떠받들어졌어요. 어머니, 할머니, 두 명의 고모와 여동생까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성장해야 했던 니체. 이 집안의 여자들은 당시 신동 소리를 듣던 니체를 두고 서로 경쟁을 벌일 만큼 집착적이었다고 해요. 뭐 시대상이 그러했겠죠. 연식이 좀 되시는 분이라면 MBC 드라마 ‘아들과 딸’의 귀남이쯤으로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여동생 엘리자베스 역시 한 집착했는데.. 여혐주의자로 알려진 니체에게도 흠모하는 여인이 있었어요. 그녀의 이름은 그 유명한 ‘루 살로메’.. 니체, 릴케, 프로이트,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 등등 수많은 당대 지성인들의 뮤즈였던 루 살로메에게, 니체는 그의 친구 파울레에를 통해 청혼을 해요. 자신도 루 살로메를 흠모하고 있던 파울레에는, 루 살로메에게 세 사람이 함께 동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요. 평소 그녀가 원했던 2명의 지성과의 동거를 제안받은 루 살로메는, 이를 흔쾌히 허락하지만 니체는 당혹스러웠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나영이 같이 살자는데, 원빈 있다고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한 편 엘리자베스도 결혼을 하는데.. 그녀의 남편은 베른하르트 푀스터. 이 남자는 극단적인 반유대주의자에다 극우 독일민족주의자로, 훗날 나치즘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에요. ‘순수 아리안 혈통인’, ‘유대인은 독일의 기생충’ 등의 수사와 개념을 최초로 만든 인물이래요. 독일판 일베의 창시자쯤 되나요? 니체는 여동생이 이 사람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심각하게 분노했대요. 그는 차별주의자를 매우 싫어했으니까요.
흔히 니체는 반유대주의자로 알려져 있기도 한 대, 실제로 니체는 반유대주의자를 매우 싫어했대요. 니체가 반대한 것은 유대인의 고리 대금업등 부패한 행실들이지, 유대민족 자체를 인종적으로 박해하고 차별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했다고 해요.
베른하르트 푀스터.. 이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는 새로운 무브먼트를 시작하는데 그것이 “Nueva Germania” 신독일 건설운동이에요. 이름이 참 거시기해요. 신독일.. 신한국.. 새누리.. 뭐 암튼 신자 들어가는 이름치고 제대로 된 걸 보기 어려워요.
극단적 민족주의의 파라다이스, 파라과이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남편 푀스터는 아리안족 유전자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1887년 파라과이에 아리안족 정착촌을 건설해요. 이게 “Nueva Germania” 운동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듯이 인구의 70%가 전쟁으로 사라진 파라과이의 국가 재건 프로젝트가, 유럽의 인종주의 세력과 조우하게 되는 역사적인 현장이에요.

그러나 이들의 모험은 아주 실패한 것은 아니어서,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많은 독일인들이 파라과이로 계속 이주를 왔고, 일부는 정착에 성공하여 자체 지역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대요. 게다가 2차대전 이후로는 나치 잔당들의 은신처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그중에는 아우슈비츠 생체실험을 주도했던 죽음의 천사 조세프 맹겔레도 있었는데, 그는 파라과이에서도 소년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이 민족주의적 유토피아 건설의 환상을 꿈꾸던 이들의 결과물들이에요.
민족주의 그것은 매우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늘 인류 전체를 폭력과 광기로 몰아가는 기폭제가 됩니다. ‘우리’라는 개념이 피해의식, 과대망상과 결합될 때, 그것은 핵폭탄보다 무서운 파괴적 결과를 동반하게 되고, 사람을 끝도 없이 황폐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은 크게 국가 단위의 개념까지 가지 않아도 핵가족 주의, 학연, 지연 등 ‘우리’라는 협소한 의미로 가두어질 때, 부패하고 어두운 힘을 배양하게 됩니다. (‘우리’에는 ‘홍익인간’의 개념이 필수에요.)
우리는 자주 의미 없이 그것들을 사용하지만, 그 ‘우리’밖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매우 차별적이고 폭력적으로 다가오게 되죠. 그리고 그 ‘우리’들이 결합하기 시작할 때 그 에너지는 그 ‘우리’들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매우 강력한 융합의 결과가 전 세계를 초토화시키기도 하죠. 열강의 한복판에서,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대립에 들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가 매우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에요.
엘리자베스의 야망이 이루어지다
한편 파라과이 실험을 실패하고 독일로 돌아간 엘리자베스는, 남편 대신 오빠 니체를 통해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가 독일로 돌아올 시점에 니체는 정신병원을 왔다갔다하고 있었어요. 그의 정신병은 한동안 매독에 의한 것이라는 추정이 지배적이었는데, 현재는 가족력에 의한 뇌종양이 정설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상에 맞게 그의 유고를 짜집기 해서 <권력에의 의지 Der Wille zur Macht>라는 위서를 출간하게 됩니다. 이 책은 나치 독일의 교과서로 사용되었어요. 이 책에서 표현된 권력에의 의지와 초인은 모두 아리안족과 히틀러로 병치되어 독일 국민들을 열광케 했죠.

그녀의 야망은 실로 대성공이었죠. 1935년 그녀의 장례식에는 당시 독일 제3제국 총통 히틀러가 직접 참석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신념(?)에 찬 행동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말았어요.
스스로 성장하지 않으면
무서운 일은 사소한 일로 비롯됩니다. 만일 엘리자베스 니체가 루 살로메처럼 뭇 남성들을 자살로 이끌지언정 스스로 독립된 여인이었더라면, 어쩌면 나치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수많은 희생은 다른 방식으로 방지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존하지 못하고 대체재를 찾아 숙주 삼은 비뚤어진 욕망은, 자신과 숙주뿐만 아니라 자연과 공동체 전체를 비극으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파라과이가 받은 가브리엘의 보호는 자신들의 역량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축복을 자신들의 실력 인양 과신했고, 그것은 전 국민의 70%가 사라지는 엄청난 재앙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성공을 경험하고 그것이 모두 자신의 실력으로 인한 것이라 자만합니다. 하지만 간과했던 하늘의 도움이, 운명의 힘이 자만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곁을 떠나갈 때, 우리는 크게 헛발질을 하게 되고, 그것은 받은 축복 모두를 잃게 만드는 재앙으로 되돌아오게 만듭니다.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숙주 삼아 대리 성공의 욕망을 취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또한 하늘의 도우심으로 얻은 모든 성공의 결과를 자신의 것인 양 자만하는 것으로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온전히 스스로 서는 것입니다.
獨 立
파라과이 지도자와 국민들이 가브리엘의 보호를 자신의 권능으로 착각하지 않았더라면, 유토피아를 꿈꾸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린 엘리자베스가 자존하는 여성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면, 천재 오빠의 그늘에서 그를 숭배하며, 자기 야망의 숙주로 호시탐탐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도 루 살로메처럼 뭇남성들의 가슴을 사로잡으며, 독립된 여성으로 역사에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좋았을 겁니다.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전투의 희생자들이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하지만 한강의 기적은 오로지 우리 노력의 결과 였을까요? 우리는 간과하고 있지만 아이들을 숙주 삼아 자신의 야망을 투사하고 있는 학원 앞 어머니들의 카톡에는, 엘리자베스의 야망이 자라나고 있지 않을까요? 그들의 천재적 남편인 검사, 판사, 정치가, 기업가 들의 업적이 위서로 조작되고 있는 건 아니냔 말이죠.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유토피아를 꿈꾸고, ‘우리민족끼리’를 도모하는 우리들의 인식 너머에는, 어쩌면 파라과이가 겪어 온 근대사의 궤적이, 유럽 사회가 겪어야 했던 나치즘의 원형이 자라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너와 나의 의식이 그렇게 왜곡되어 가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인용자료
남미를 뒤흔든 어떤 전쟁 이야기: 루쏘에서 니체의 여동생까지 / santacroce, 네이버 블로그
다시 보는, 철학자 니체의 삶 / 필독,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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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