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가을] Sep 21, 2021 l M.멀린

 

 

잔치에 관하여

사람들은 슬픈 일을 함께 위로해주는 일이 값진 일이라고 말하지만 기쁜 일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일이 더 값진 일이다. 슬픈 일을 동정하는 것에는 조금의 안심이 묻어 있다. 나는 당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위치가 설정된다. 슬픔 속에 있는 자와 슬픔 밖에 있는 자. 아무리 많은 이유를 가져다 대도 어쨌든 위계가 설정될 수밖에 없고 슬픔을 당한 너는 나의 아래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손을 내밀어 볼 수 있는 거고. 그래도 그게 나쁜 일이겠는가. 그런데 종국에는 나빠지고 만다. 위로의 끝은 책망과 질책이 아니던가. 심지어 위로를 가장한 윽박지름까지.

그러나 기쁜 일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일은 너무나 값지다. 그건 정말 너를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게 행운이든 실력이든 지금 이 순간 너는 내게 없는 것을 가졌구나, 그런데 나도 그게 기쁘다 하는 것이다. 진심이 드러나 진다. 괜한 빈말인지. 정말 그러한지. 그래서 상갓집에 가는 것보다 잔칫집에 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 같은 빈말이라도 효과가 큰 것은 잔칫집이다.

그래서 마법사는 친구를 가리려거든 너의 슬픔을 위로해 주는 이가 아니라 너의 기쁨에 진심인 친구를 사귀어라고 말한다. 슬픔에 진심인 사람이 많을 필요는 없다. 많은 이의 위로는 더더욱 슬픔이니까. 그러나 많은 이의 축하는 더더욱 기쁨이다. 만일 그것이 진심이라면, 그 사람은 지금 죽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21세기의 인간상은 수많은 팬덤에 둘러싸인 스타가 아닐까? 팬들은 진심으로 기뻐해 주니까. 뭘 돌려받는 게 없는 데도 말이다. 게다가 둘러싸였으니.

그래서 21세기의 인간 관계는 서로 팬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팬이 될 수 없다면 그저 빈말을 주고받는 껍데기로 남기 쉽다. 그런 인간 관계는 주소록에 1,000명을 가지고 있어도 하등 쓸모 짝이 없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느슨한 인간 관계가 비즈니스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며 그것을 지향하지만 그러다 너는 외로워졌다. 그렇게 서로를 도구로만 활용하려고 가볍게 잡은 손은 강력한 팬덤에 마구 잘려 나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나라 정세가 이 모양이 아닌가. 우리는 강력한 손이 필요하다. 서로를 꼭 붙들은 강력한 손 말이다. 그것은 인위적일 수 없고 자발적일 수밖에 없다. 우러나지 않는데 어떻게 기뻐할 것인가? 슬퍼하는 척은 계속 할 수 있어도 기뻐하는 척은 계속 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그건 세 살짜리도 안다.

그런 관계들을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일이고 그게 돈도 된다는 걸, 돈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블록체인/암호화폐를 통해 구현해내고 있다. 그게 [스팀시티]다.

한국의 명절은 그 빈말들, 가짜 위로의 향연이라 이제 모두들 안보고 안 만나려 한다. 게다가 누가 기쁜 일이라도 생기면 트집을 잡지 못해 안달이다. 일단 축하한다는 말은 했으니, 배가 아픈 걸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만나는 건 반갑고 좋은 일인데 보고 싶기도 한데.. 설거지를 해야 할 위로와 염려를 가장한 막말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우리는 이 좋은 만남을 모두 포기해 버렸다. 넷플릭스가 너의 명절상이 된 지 오래다. 매우 오랜 세월의 명절을 흘려보낸 마법사 역시 이게 슬프다. 이 슬픔을 승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부턴가 그런 이들끼리 모여서 명절 파티라도 열면 어떨까 생각해 왔다. 진짜 잔치 말이다. 그런데 잔치를 혼자 할 순 없지 않은가. 너, 너가 보고 싶단 말이다.

그래서 20세기의 가을에 나름 잔치를 준비했다. 이름하여 <추석극장>. 반가운 이들과 같이 둘러앉아 떠드는 것도 잠깐이고 명절에는 영화가 메인이니, 함께 콜라와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몰아보자. 그리고 사이사이 올라와 수다도 떨고 개그도 해보자고. 어차피 너 혼자 방에 틀어박혀 그러고 있을 거 아니냐고. 함께 하면 즐거울 수 있다고. 넷플릭스는 혼자 보지만 추석영화는 같이 보는 거니까. 팝콘도 준비하고 콜라도 맥주도 준비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고 있었다.

상갓집에 아무도 오지 않는 건, 견딜 만 할 것이다. 일단 당한 슬픔이 크고, 위로한답시고 보고 싶지 않은 이들이 마구 몰려오면 그것도 스트레스일 테니까. 위로는 진심을 가진 한 명이면 족하다. 그러나 잔칫집에는 보고 싶지 않은 이들도 반갑다. 빈말 빈 웃음이어도 준비한 공간을, 준비한 음식을 먹어주는 이들로 기쁘다. 잔치를 준비한 이는 이미 준비하는 시간 내내 기대로 가득 차 있었을 테니. 그리고 너가 와준 것이다. 기쁘게도 말이다. 그러나 텅 빈 잔칫집은 슬픔의 극치를 경험하게 해 준다. 초라해도 이렇게 초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심지어 하객을 돈 주고 사기도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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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예수님은 다시 비유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을 위해 결혼 잔치를 베푸는 어떤 왕과 같다. 왕은 종들을 시켜 잔치에 초대한 손님들을 불렀으나 그들은 오지 않았다. 왕은 또 다른 종들을 초대한 사람들에게 보내 ‘살진 소를 잡아 모든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해 놓았으니 어서 잔치에 오십시오.’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들은 척도 않고 어떤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가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여 버렸다. 그러자 왕은 화가 나서 군대를 보내 살인자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나서 왕은 종들에게 말하였다.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초대받은 사람들은 자격이 없다. 그러니 너희는 길거리에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잔치에 초대하여라.’ 그래서 종들이 나가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만나는 대로 데려오자 잔치 자리가 가득 찼다.

왕이 손님들을 보려고 들어갔다가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그대는 어째서 예복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는가?’ 하고 묻자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때 왕은 종들에게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곳에 던져라. 거기서 통곡하며 이를 갈 것이다.’ 하였다. 이와 같이 초대받은 사람은 많지만 선택받은 사람은 적다.</sub>

마법사는 하객을 살 돈이 없다. 그리고 거짓을 말할 수도 없다. 손님이 없었냐고? 설마 그럴 리가. 한 팀이 있었다. 20세기소년의 참 친구인 지영쌤과 그의 친구들이 함께 영화를 봐주었다. 팝콘도 먹고 맥주도 먹어주었다. 저녁에는 올라와 초밥도 먹고 족발도 함께 먹어주었다. 아, 그리고 우리의 참 친지 푸사장님도 있었다. 초밥을 사 들고 잔칫집에 와주었다. 아니다. 우리는 어제 바베큐 잔치를 벌였지. 20세기소년의 자랑인 그린 테라스에서 우리는 고기를 구웠다. 예의 질책을 남기고 훌쩍 가버린 푸사장님의 가족들이 남기고 간 고기를 우리는 화로에 올려놓고 구워버렸다. 그리고 맛있게 냠냠. 잔치는 함께 하는 맛이니 건너편 횟집에도 한 접시 드렸더니 생생하게 살아있는 생새우와 생선을 또 한가득 주셔서 그것도 냠냠. 잔치는 끝난 게 아니었다. 심지어 오늘은 왕이 베푸는 잔치가 예정되어 있다.

“추석 때 우리 집에 오실래요?”

킴리님은 이 잔치를 몇 주 전부터 준비해 왔다. 20세기소년에 오고, 그의 집을 궁금해하던 우리를 그는 모두 초대했다. 그리고 언제 올 거냐고 계속 물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추석날이 그날이 되어버렸다. 그는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며 온갖 음식들을 거론했고 그건 너무 많지 않을까요? 그건 너무 헤비하지 않을까요? 하는 우리의 말에 계속 상차림을 변경하며 신경을 썼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는 우리가 볼 수도 없는 공간까지 종일 청소를 했단다. 초대하는 이의 마음이란. 그리고 우리는 이번 추석잔치의 하이라이트를 그의 집에서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밭으로 가고 장사를 하러 가느라 아무도 오지 않으면 그는 분노하여 20세기소년을 모두 불살라 버릴지도 모른다. 물론 그럴 일은 없다. 마법사는 꼬옥 갈 테니까. 그가 마법사의 추석극장에 와 주었으니까. 보지도 않을 영화를 굳이 팝콘과 콜라 세트를 사서 영화관 쇼파에 앉아 자리를 지켜 주었다. 앉아서 딴짓을 할지언정. (아, 그는 심지어 마법사의 잠시 빈자리를 대신해 영화를 틀어주기까지 했다. 그러니 마법사는 오늘의 설거지 담당.)

아,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일은 장충동의 동네친구들이 20세기 스튜디오에서 함께 영화제를 하기로 했다. 그들의 영화제의 시작을 여기서 하기로 한 것이다. 영화제의 주제는 ‘가족’. 우리는 같이 영화를 보고 프랑스에 가 있는 20세기소년을 불러내어 GV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추석에는 모두 모였다. 선택받은 사람들, 예복을 입고 잔치에 참여할 줄 아는 이들이 말이다. 마법사의 빈 명절을 가득 채워 준 모두들에게 감사하다. 그대들은 천국에 들어갈 참 자격이 있다. 그런데,

너, 그런 친구들을 가졌는가?
너, 넷플릭스 좀 그만 봐라.

휘리릭~

 

 

 

 

20세기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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