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아래 살면서

[에필로그] Jan 08. 2023 

강백호의 본명은 ‘사쿠라기 하나미치櫻木花道’이다. 벚꽃처럼 화려하게 꽃피우고 퇴장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가부키에서 배우들이 공연을 마치고 퇴장하는 길을 부르는 명칭이기도 하다. 혼신을 다해 열연한 배우에게 팬들은 하나미치를 따라 꽃을 던진다. 끝났으니까.

30년 만에 다시 만난 강백호는 이미 은퇴한 지 오래다. 북산의 다음 이야기는 쓰여지지 않았다. 꽃은 졌으니까. 그래서 이번 이야기 역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흐드러지는 벚꽃처럼 불태웠던 산왕과의 마지막 경기. 나는 알았다. 공동체를 흠모하기 시작한 때가 언제였는지.

30년이 흐르도록, 이미 박수칠 때 떠나버린 북산을 재현하고 싶었나 보다. 마법사는. 하자고 하자고,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내밀었다. 슬램덩크 못해도 좋으니 북산하자고. 북산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나도 강백호였으니까.

과거를 잊지 못해 현재를 살지 못했나. 넌 참 현실성 없는 얘기만 하는구나. 북산은 모두 졸업한 지 오래라고. 그런 말이 들려 올 때마다 나는 과거를 사는 게 아니라 미래를 살고 싶은 거라고, 공동체가 자꾸 사라지고 해체되고 있으니, 도리어 언젠가는 공동체가, 커뮤니티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을 때가 올 거라고, 커뮤니티가 돈이 되는 때가 올 거라고. 그러나 돈 때문이면 공동체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북산에 모여든 아이들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고. 그래서 반가웠다. 블록체인/암호화폐, 커뮤니티가 아니면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는.

그건 방주 같은 건지 모른다. 무식하게 비도 오지 않는 사막에서 120년 동안 한 사람, 한 가족이 지어 올린 그것. 비가 내리고 그것에 올라탈 기회는 한 사람의 가족을 제외하곤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다.

한 사람에게 인생에 3번의 기회가 있다면, 그게 진짜 있다면 2명이면 6번, 3명이면 9번, 100명이면 300번의 기회가 있으리라. 그 한 번의 기회로 모두가 먹고 살 수 있다면 공동체야말로 천국이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손을 내밀었으나 한 번의 기회가 자신의 기회가 되자 본전 생각들을 하더라. 나의 기회는 나의 기회고 너의 기회도 나의 기회고. 나의 보상은 내 것이고 너의 보상은 나누어야 하고. 자꾸 공동체가 깨어져 나갔다. 이걸 시스템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여기가 그런 데인 줄 알았지. 너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지. 여기는 북산이 아니고 나도 강백호가 아니었나보다. 서태웅도 채치수도, 송경섭도, 정대만도, 안경선배도, 안선생도 만나지 못했으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을 스크롤을 내렸다 올렸다 하다가, 기대 없이 훔쳐보았다. 연출이 남다르다 했더니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의 작품에는 늘 대안가족, 커뮤니티,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번 드라마는 <어떤 가족>의 해피해피 버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따뜻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둘 다 함께 살고 싶은 진짜 가족 이야기.

저런 건 드라마에나 있는 걸까? 감독의 전작 한국 영화 <브로커>는 왜 실패했을까? 왜 <브로커>의 가족은 <어떤 가족>의 가족과 다르게 느껴질까?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는 왜 ‘공동체’, ‘협동’ 같은 것을 그린 한국 작품은 드문 걸까? 물었더니, 춘자는 그런 건 일본에나 있다고, 한국은 각자도생의 사회가 아니더냐고 일침을 놓았다. 그런 건가? 그런 건가 보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이 사회의 공동체성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대동大同’ 말이다. 그것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개인은 숨 막히는 사회라고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이힐로 발가락이 부러지게 밟아놓고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못 하는 사회가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을 보니 감독의 전작, 한국 영화 <브로커>가 왜 실패했는지 알 것 같다. (마법사의 평가) 일본 배우들의 몸에 밴 연기는 아니 생활은 손끝 하나에서도, 하다못해 접시 하나를 건네주는 동작에도 ‘존중’과 ‘배려’가 물씬이다. 그건 지문에 나와 있는 게 아니고 그 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지극히 당연하다 못해 몸에 배어 있는 자연스러운 ‘스탠다드’ 그것이다. 우리 사회의 ‘스탠다드’가 ‘(재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편을, 아내를, 아빠를, 엄마를, 자식을 흘겨보며) “아, 닥치고 밥이나 처먹어”‘인 것처럼 말이다. 그걸 누구도 어색해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뒤집어, 그 친절함의 이면이 억압이고 통제고 혼네고 다테마에라고 폄하해도, 대신 내놓을 것이 각자도생의 지옥이라면 그건 뭐 그리 잘났을까.

“꿈을 좇아 마이코가 되기 위해 함께 교토에 온 두 친구.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이지만,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드라마를 소개하는 이 문장의 핵심 문구는 ‘꿈을 좇아’도, ‘뗄 수 없는 단짝’도, ‘서로 다른 길’도 아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이다. 그리고 그 한 지붕 아래 사는 이들이 어떻게 가족을 이루는지, 지켜내는지를 보는 것이다.

아무리 전통예술 계승, 전통문화 보존 이라고는 하지만, 술상이 놓인 자리에서 춤을 추고 손님과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는 견습 게이샤 ‘마이코’가 되겠다고 집을 떠난 십 대의 딸이 우려되는 건 당연하다. 딸을 데려가려고 찾아온 아버지는 마이코들을 책임지고 있는 어머니(마담? 마이코들은 어머니라고 부른단다)에게 묻는다. 손님들이 나쁜 짓이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그때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한다. 오키야置屋(마이코와 게이샤가 머물며 일하는 전통 게이샤 저택)는 ‘멤버스 온리’라 처음 오는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그러니 모두 확실하게 검증된 손님들이라고. 그랬구나. 그래서 <春子>는 ‘Members Only’였구나.

[Teaser] 春子, Members only..

그때, ‘Everything이 아니면 Nothing’이란 말을 남기고 교토로 소환된 마법사는,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 기온의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春子> 라는 이름의 가게를 발견하고는 들어가 보려다가, ‘Members Only’라고 쓰인 푯말을 보고 좌절했다. 일본어도 할 줄 모르는 외국인 마법사는 이 공간에 발을 들일 수 없구나. 멤버도 아니고, 아는 이 중에 마법사를 소개해 줄 <春子>의 Member도 없으니, 나는 영영 이 공간에 들어가 볼 수 없겠구나. 아쉬운 마음을 쓰다듬으며 한참 동안 가게 앞을 서성거렸다. 춘자는 멤버스 온리. 그리고 알게 되었다. 마이코들을 만나려면, 그들의 행복한 밥상을 마주하려면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멤버로서의 자격. 공동체, 커뮤니티 구성원으로서의 자격. 방주에 탑승할 자격. 3번의 기회를 공유할 자격. 블록체인/암호화폐의 문을 열고 지키고 성장시킬 자격. 나는 자격을 갖추었을까? 애는 쓴 것 같은데..

그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지. 적어도 120년, 수백 년에 걸쳐 한 자리에서 대를 이으며 차곡차곡 쌓인 퇴적과 축적의 결과인 것이지. 감독의 전작 <어떤 가족>에서는 아버지로,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에서는 바텐더 아저씨로 등장하는 배우 릴리 프랭키는, 뿔뿔이 흩어져 버린 급조된 가족들에 대한 상처를 안고, 오랜 세월 동안 단단하게 지켜져 내려오는 오카야의 가족 됨을 동경하듯 한 발 물러서서 관조하고 있다. 들어가지도 떠나지도 못한 채. 이제 마법사의 차례가 되었나 보다.

지난 가을, <글쓰기 유랑단>을 끝마친 로마의 어느 광장에서, 마법사는 은퇴를 준비하라는 통지서를 받아 들었다. 당황함 속에 안도와 회한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아, 이젠 그만 소진되어도 되겠구나.’ ‘시작도 해보지 못했는데.’ 가벼워진 마음과 무거워진 가슴을 안고 돌아온 각자도생의 도시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하고, 연말연시를 지나는 내내 마법사의 마음에는 홀가분함과 씁쓸함이 휘몰아쳤다. 이제는 더 이상 기약도 없는 방주 짓기에 인생을 소진하지 않아도 된다니. 결국 이렇게 <春子>의 Member가 되어보지 못하고,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에 앉아보지 못하고 은퇴를 준비해야 한다니.

꽃은 지고 축제는 끝이 났단다.

그것도 30년 전에. 돌아온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마법사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래, 후회도 미련도 없으니 되었다. 회한은 추억으로 남기고 나는 남은 길을 가야지.

1. 마법사가 배회하던 기온의 그 거리는 오카야가 모여 있는 교토 기온코부祇園甲部의 하나마치花街 거리였다.

2. 주인공들이 거니는 배경으로 언뜻언뜻 <春子>가 등장한다.

3. “혼자는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했는데 번듯한 요리사가 되고 싶다면서 갔어요.”

“아무리 그래도 밤에는 어두컴컴하잖아. 넘어져서 다칠까 걱정이네.”

“처음으로 그렇게 의욕에 찬 모습을 보니까 막을 수가 없었어요. 조만간 개 짖는 소리에 쫓겨서 들어올 거예요. 무리하지 않고 키요가 하던 대로 해도 되는데.”

“근데 키요는 길치잖아. 발이 걸려서 자주 넘어지기도 하고.”

마이코가 되는 게 꿈인 친구 스미레를 따라 함께 오카야에 들어 온 키요는 느리고 서툴러서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는다. 계속 스미레 옆에서 비교당하며 꾸중을 듣느니 말이다. 그러나 키요는 스미레와 함께 시작한 도전을 멈출 수 없다. 오카야의 요리사가 되어서 친구와 계속 함께 하겠다며, 번듯한 요리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보여주려 산을 오른다. 그리고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스미레는 이렇게 강변한다.

“키요는 어릴 때부터 달리기도, 먹는 것도 헤엄치는 것도 제일 느렸어요. 그래도 도중에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6교시까지 걸려도 급식을 다 먹었고 아무리 느리게 헤엄쳐도 끝까지 발을 내리지 않았어요. 키요는 그런 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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