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린’s 100] Jan 03. 2024 l M.멀린

카르마에 관한 존윅적 해석

 

사람들은 ‘보복’이란 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카르마의 세계에서 보복은 원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일이야. 게다가 그건 자신에게 일어나지. 참아서 생긴 암덩어리 말이야.

報復 보복
報 갚을 보 復 회복할 복

갚는 일이야. 회복하는 일이지. 그것이 원한인지 은혜인지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이야. 그러나 현상적으로는 명확해. ‘행위에 대한 행위’. 행위가 있었으니, 행위에 반응하는 행위를 하는 것. 행위가 온 방향으로 되돌려 주는 것. 그렇지 않은 건 다 나빠. 강자한테 맞은 뺨을 약자에게 행하는 행위. 가해진 폭력을(정신적이든, 물리적이든) 그대로 감수하는 행위. 물론 이런 건 용서일 수도 있는데, 그 용서는 마음뿐만 아니라 내 몸과 영혼이 감수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거야. 그 척도는 성숙이고.감수할 수 없는 행위는 폭력이고, 영혼까지 다치게 하니까. (무의식에 새겨져. 그것까지 파헤쳐서 치유하려면 몇 번의 생을 거듭해야 할지 모른단다) 어린아이의 주먹질 정도야 맞아도 아프지 않으니까, 맞아서 아파도 그 정도 감당하지 못할 게 아니니까, 용서, 할 수 있어. 하지만 상처를 입었는데 돌려주지 않으면 그 에너지는 내 몸을 해하던지 엉뚱한 다른 방향의 누군가, 무엇에게, 돌려지지.(대부분 더 약한 쪽으로, 인간은 비겁하니까) 그럼 나는 다시 가해자가 되는 거야. 카르마의 500만生 대하드라마가 시작되지.

 

내 영혼의 카르마

‘보복報復’ 하는 일은 ‘보은報恩’ 하는 일만큼 중요해. 그리고 가능하면 이번 생에 마쳐야 할 중요한 과업이야. 아니면 저 보기 싫은 놈을 다음 생에도 봐야 하니까. 네가 찾아갈걸. 갚아줘야 하니까. 혹 지난 생에 에너지를 엉뚱한 곳으로 흘렸다면 엉뚱한 이가 찾아올 거야. 이유도 없이 네게 갚아주겠다고. 그도 나도 모른 채로 우리는 새로운 카르마에 얽혀들지.

그렇다고 어떻게 모든 일을 계산해서 돌려주겠어. 하지만 네 마음에 남는 것부터 ‘정산定算 ‘을 해야 해. 뜬 눈으로 밤새게 만든 그것들,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는 기억들, 상처들 말이야. 자, 하나하나 차분히 돌려주렴. 정당한 방법은 가해진 방향으로 돌려주는 거야. 그게 누군지는, 너는 알지.

마음 약한 이들이 정산을 두려워해. 왜냐고? 끝없는 보복의 순환을 감당할 자신이 없거든. 그래서 거룩하게도 자신의 영혼과 몸에 매장시키는 거야. 계속 난지도 쓰레기장처럼 끝없는 카르마 산을 쌓아가는 거지. 그리고 그는 어느 생에 괴물이 돼. 인류를 위협하지. 나비의 날갯짓 정도까지 계산하면 무시무시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할 텐데, 어째 우린 살고 있는 걸까? 예수는 십자가에서 그 카르마를 끊었다고 선언했어. 미래의 그것까지. 그래서 ‘복음復音’ 이라지. 어쩌면 그래서 아직 인류가, 우주가 멸망하지 않았는지도 몰라. 그러나 그렇게 거대한 카르마는 신神 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고, 우리는 ‘내 영혼의 카르마’를 어떻게 정산할지 고민해야 해. 너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해. 이 글을 괜히 봤겠니.

카르마는 상호작용의 산물이야. 우리는 숨만 쉬어도 죄를 짓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니까. 말은 더하지. 얼마나 더러운 말들을 내뱉었니? 오늘은? 그러니 숨을 멈추기 전까지 카르마는 멈추지 않아. 아니 죽었다고 달라지나? 너가 남긴 염念들이 남아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텐데 말이야. 그러면 타노스에게 부탁해서 손가락을 두 번 튕겨달라고 할까? 세상을 無로 돌리게 말이야. 그러면 얼마나 좋겠니? 그런데 그건 신의 영역이래. 내일 날씨도 못 맞히는 인간이 뭘 어쩌겠어. 닥치고 카르마의 법칙을 따라야지. 그건 주고받는 일이야. 창조의 법칙 그 자체지.

 

 

플러스와 마이너스, 음과 양, N극과 S극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여 만든 게 우주잖아? 창조라고. 그러니 카르마가 멈추면 우린 없는 거야. 반대로 우주의 성장은 모든 요소들의 카르마,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거라고. 그리고 그것에는 선과 악이 없어. 반대되는 두 개의 힘만이 존재하지. 그런데 멀리 떨어져서 바라만 보고 있으면 아이가 생기겠니. 만나서 부딪쳐야지.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창조가 일어나는 거야. 앗, 수준 낮게 이딴 설명을 하고 있네. 원리에 대한 설명은 널리고 널렸으니 알아서 찾아보고.

그러면 카르마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까? 말이야. 프로메테우스가 엄청난 카르마를 감당하며 건네준 불을 가져다 뭘 하겠냔 말이야. 숲이 다 타버릴지도 모르니 꺼버리자고? 핵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니 전기를 끊어버리자고? 왜? 치질 생길지 모르니 먹지를 말지. 업業을 쌓을지 모르니 無로 돌아가자고? 혼자 가라. 가지도 못할 거면서. 잘 싸고 잘 먹는 법을 터득해야지. 왜 금식을 해.

 

Karma is Good

먹고 싸고, 받고 돌려주고, 맞고 때리고.. 그건 다 좋은 거야. 뭘 하든. 누구에게 어떻게 하는지는, 우주는 관심이 없어. 다만 그게 멈추지만 않으면 우주는 어떤 방향으로든 성장할 테니까. 그 방향이 중요한 건 나뿐이야. 나한테 다 돌아올 테니까. 나한테 다 남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누구한테 맞았으면 누구한테 돌려줘. 애먼 식구들한테 화풀이 하지 말고. 누구한테 받았으면 누구한테 갚아. 꿀꺽하지 말고. 먹기만 하고 안 내보내니까 암에 걸리는 거야. 그렇게 계속 주고받아. 그래야 지구가 돌아, 우주가 자라나. 그래야 세상이 진화해 가는 거야. 물론 그 혜택을 네가 받을지는 우주는 관심이 없어. 아! 오타니는 관심이 있더라. 운을 모으기 위해 운동장 쓰레기도 줍는 다네, 인사도 열심히 하고. 세상에 이렇게 카르마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인간이 있었다니. 하지만 마법사는 운을 모으는 데는 관심이 없어. 이미 인류를 여러 번 구했거든. (너는 모를 거야. 29세기의 우주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마법사에겐 12척의 우주 전함도 없었단다. 맨몸으로 싸웠지. 주문을 외우며. 주문은 간단해. ‘문은 닫혔습니다’ 그렇게 모든 포탈을 닫았단다. 21세기만 빼놓고.)

 

_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오타니의 만다라트

 

덕분에 세상 행복하게 살고 있어. 왜들 오랜만에 만나면 ‘당신이 내 주변에서 제일 행복하게 사는 것 같소.’라고 신앙고백들을 하는지. 그거야 마법사가 쌓은 ‘덕德’ 덕택이 아니겠니. 하지만 마법사는 쓰고 나눠주면 30배, 60배, 100배로 늘어나는 카르마 배가의 법칙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해’. 쓰는 것도 쌓는 것도 귀찮은 일이거든. 900년을 살아보렴. 모든 게 다 헛되고 헛되단다.

다만, 꼭 지키는 하나가 있어. 그건 ‘보복’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어도, 숨만 쉬어도 카르마를 짓는 세상은 마법사를 가만두지를 않는단다. 상호작용이 계속 일어나지. 좋은 일만 있겠니? 좋은 일은 안 돌려받아도 되는데 (다음 생에 받아도 되니까), 나쁜 일은 반드시 이번 생에 돌려주어야겠는 거야. 그 인간 다음 생에 보기 싫으니까. 그래서 샅샅이 찾아다닌단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기회를 주겠소. 서로 좋은 방향으로 다시 주고받아 이 에너지를 전환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보복할 거요.’ 그렇게 속으로 말해. 그리고 콧방귀 끼거든 보복을 가하지. 어떻게? 범인이 누구인지, 다음 편이 어떻게 되는지, 너의 미래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 거야.

이렇게,

열쇠를 나누어 가졌다 말했어. 너는 내게 이번 생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에게 꼭 전달해달라고 너의 열쇠를 뚝 잘라 내게 주었지. 그리고 우리가 만나서 돌리면 그 상호작용으로 너도 나도 세상도 행복해지지. 하지만 문은 하나가 아니야. 닫힌 문은 끝도 없이 계속 나타난단다.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포탈의 문들이.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같이 열어야 해. 그게 우리의 운명이지. 그러나 너는 관심을 멈추는 거야. 작은 복에 겨워. 작은 두려움에 갇혀. 그러면 나는 마법사의 규약에 따라 내 손에 들린 너의 열쇠를 요단강에 던져, 그 열쇠는 너만 찾을 수 있단다. 요단강에서 말이야.

그리고 기록을 남기는 거야. 너의 미래에 관한 기억을 말이야. 다음 생의 마법사에게 전달하는 거지. 이런 일이 있으니 이 인간은 피하라고 말이야. 이런 일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찾으라고.

 

 

이런걸, 보복적 글쓰기라고 해.

마치 데스노트를 적든, 너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거야. 비유적으로 상징적으로. 그러면 마법사의 카르마는 해소된단다. 쓰는 일은 벗어나는 일이니까. 기록하는 일은 글 속에 가두는 일이니까. 암튼 비로소 마법사는 벗어날 수 있어. 상호작용에서, 에너지에서, 카르마에서.

900년쯤 살면 공덕도 악업도 버거워. 마법사는 받은 것을 돌려줌으로(報 갚을 보) 본래의 자신을 회복하고(復 회복할 복) 싶을 뿐이야.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일어난 상호작용을 쌓지 않고 바로바로 돌려줄 뿐이야. 누군가에게는 은혜를, 누군가에게는 복수를. 보복적 글쓰기로 말이야.

그리고 홍보도, 마케팅도 없이 이렇게 잠가놓는 거야. 다음 생에 마법사만 볼 수 있게. 이번 생의 너가 눈치채지 못하게. 이렇게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아무도 접속하지 않는 플랫폼에.

그러나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단다.
ziphd.net
ziphd.net

멀린’s 100

 이전글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