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바다 단편선] 에필로그

 

 

 

 

 

‘아니요. 저는 선생님을 따라가지 않겠어요. 저는 서울에 가고 싶을 뿐이거든요. 여기 무진에서, 안개 속에서, 어느 개인 날을 그리워하고 있는 저를 나무라지 마세요. 제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은 선생님의 자유이지만, 흔들리기로 마음을 여는 것은 제 마음이랍니다.

저도 사랑하고 있어요. 선생님을 본 순간, 제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속삭여 주었죠. 무진은 자유거든요. 안개 속에서는 누구도 서로를 탓하지 않아요. 드러나는 것이 없으니까요. 여기라면, 자유로운 누구의 몸짓도, 안개 속에 가려 시시비비를 따질 수 없게 되죠.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해석해요. 각자의 시선으로, 각자의 생각으로, 각자의 판단으로.. 그러면 뭐 하겠어요. 안개 속인데. 누구도 자신의 생각과 판단, 심지어 보았던 시선조차 의심해 버릴 수밖에 없어요. 내가 뭘 본 건지, 확인할 수가 없으니까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선생님은 바람의 등을 타고 날아가실 거라는 걸. 그걸 모를 만큼 어리석었다면 무진에 내려 오지도, 머물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안개 속에 숨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도 가리워진 사람이랍니다. 알기를 포기한 사람, 주어진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무진에 남을 수 있어요. 그러니 선생님은 훨훨 날아가세요. 그러려고 이곳에 오신 거잖아요. 이곳에 들르신 거잖아요. 바람의 여신이 선생님을 황혼에게로 이끌어 줄 거예요. 저는 이곳 무진에서, 안개 너머 어딘가를 활공하고 있을 선생님을 그리워할 거예요. 그걸로 무진을 버텨낼 테니까요.

감사해요. 선생님의 손길을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무진에서, 안개 속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일은 그것뿐이죠. 감각과 촉감. 눈으로 본 것은 금세 사라지고, 안개로 뒤덮이고, 확인할 수 없게 되고, 본 것조차 의심하게 되지만. 감각과 촉감만은 영원히 남아 가슴에 새겨지죠. 그래서 제 손에서 빼앗아 주신 그 칼로 우리의 사이에 금을 그으시더라도, 저는 기억할 수 있어요. 방죽을 걸으며 맞닿은 우리 손, 멈춰 서 맞닿은 입술의 감촉을 잊을 수가 있겠어요. 그건 무진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경험이었으니까요. 안개 속이 아니라면, 선생님도 저도 용기를 내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러니 어서 가세요. 홀로 가세요. 무진에서의 기억은 남겨두고 바람 따라 홀가분하게 날아가세요. 저랑은 생각도 마시고 혹이나 저를 서울로 부르시려는 생각은 날아가는 바람결에 흘려보내시고, 뒤도 돌아보지 마시고 서울로, 태양으로, 대지로 날아가셔요. 그러실 거라고, 결국 그러실 거라고 알고 있었기에, 오빠라 부르고, 응석도 부리고,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때도 쓸 수 있었던 거예요. 앙큼하다고 욕하지 마시고, 이것도 무진 생활을 이어가는 방편이라 너그러이 받아주시어요. 그리고 부끄러워 마시고 이제 떠나간 그 여인은 잊으시는 거예요. 버리고 떠나가는 일도, 버려져 나뒹구는 일도, 동전의 앞, 뒷면 같은 일이니, 자책일랑 그만두시고, 원망일랑 놓아버리시는 거예요. 그러시면 되어요. 그러시면 저도 선생님을 원망 없이, 후회 없이, 기억할 수 있을 거예요.

부디 다시 오지 마시기를.. 안개 속 인숙이는 안개 속에 묻어 두시기를, 햇살 내리쬐는 어느 개인 날에는, 가만히 앉아 떠오르는 목소리에 마음을 열어 두고, 무진이 아닌 순천을, 인숙이 아닌 바람의 여신을, 방죽을, 해풍을, 황혼을, 흑두루미를 기억해 주시기를..’

인숙의 편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 편지는 이듬해 초여름, 사내가 더러워진 폐를 씻어내던 그 방, 인숙의 조바심난 칼을 빼앗아주던 바로 그 방에서 발견된,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한 여인의 시체 속에서 나왔다. 부패의 정도가 심해서, 그 여인의 시체가 인숙의 시체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인숙의 편지가 그 여인의 시체에서 나온 점을 빌어, 그 시체가 인숙의 시체이거나, 인숙의 편지를 가지고 있을 만큼 친분이 있는 다른 여인의 시체가 아닐까 하는 추측만을 남기고 있었다. 그것이 추측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누군가 안개 속에서,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인숙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자꾸 들려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인숙도 사내도 무진을 떠나버리자 (인숙은 떠난 것인지, 남은 것인지 확인된 바가 없지만), 안개 속에 남은 사람들에게, 어디선가 한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어디선가 두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세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네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에 통금 해제의 사이렌이 불었다.

잠들지 못하는 무진의 사람들에게, 햇빛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을 합성해서 만든 수면제를 처방해 줄 의사는 세상에 없다. 그들은 모두 바람의 등을 타고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러니 혹 누군가 무진을 찾거든, 여기는 순천이지 무진이 아니라고 말해 줄 것이다. 무진은 지나간 것들을 놓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에 피어나고 있을 거라 말해 줄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손을 들어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가리킬 것이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다.

‘당신은 무진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세기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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