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100] Sep 01, 2021 l M.멀린

 

 

기억은 흐름을 거슬러 항해하는 배이며
나는 노 젓는 자다.

모기가 물어대는 통에 잠에서 깨어버렸다. 이러면 하루가 몽롱한데.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잠은 다시 오지 않고. 직관은, 일어난 김에 글이나 쓰지 하고 속삭인다. 이것은 꿈일까 생시일까.

그건 모두 기억이 결정한다.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는 기억으로만 알 수 있다. 아니 기억에 의존되어 있다. 진실은 모른다. 우리는 모두 현재로서 경험하지만, 경험한 것을 꿈인지 생시인지 판단하는 건 모두 기억이다. 꿈이었다고, 과거였다고 결정하는 건 기억이란 말이다. 기억이 이건 꿈이었어 해주면 꿈이 되는 거고 ‘어젯밤 꿈에 말이야’, 기억이 과거라고 말해주면 ‘라떼는 말이야’ 하고 과거가 되는 거다.

경험. 모두 경험이다. 꿈에서든 현실에서든 경험하지 않은 것은 없다. 다만 꿈은 잘 기억나지 않고 기억은 생생하다. 아니 틀렸다. 어떤 꿈은 현실의 기억보다 생생하고 어떤 기억들은 어렴풋하거나 아예 떠올려지지도 않는다. 잃어버린 지갑처럼.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기억이다. 우리는 그에게 종속되어 있다.

과거만큼 중독적인 건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하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이 있을까?
혹은 인생의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을
다시 돌이켜보는 걸 말이다.
심지어 좋은 기억들조차 욕구가 강하니
방심하면, 과거는 우릴 집어삼킨다.

이 종속으로부터 어떻게 풀려날까? 휴잭맨은 그런 기술을 개발했다. 과거의 기억, 꿈인지 생시인지 환상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뇌가 저장해 놓은 그 기억을 되살리는 기술. 그리고 그것을 저장할 수 있다.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심지어 뇌를 고정시켜 계속 그 기억 속에 머물게 할 수도 있다. 이런 건 대박이라고 확신하는 휴잭맨. 그러나 그조차 기억의 노예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창조자일지라도.

그는 자신의 기억을 좇아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 시공간들을 넘나든다. 사랑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그녀 때문에. 그녀는 왜 사라졌을까?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단서는 기억이다. 사람들의 기억을 뒤지고 자신의 기억을 뒤져 그녀를 찾아 나선다. 그는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과거에 붙들려 살지 말라고 말한다. 물론 마법사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남는 건 기억뿐이고 추억뿐이다. 그리고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생생해 진다. 레미니센스. 이 영화의 제목이 그런 뜻이란다. 시간이 지나서 더 생생해지는 기억, 추억.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 인간이라면 가장 좋았던 그 시절, 그 순간에 평생 머무는 것은 어떨까? 그럴 수만 있다면, 휴잭맨이 그런 장치를 만들어 준다면 당신은 그 기계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머물고 싶을까?

현실이 암울하면 사람들은 도피한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과거 속으로 도망친다. 미래는 더이상 나을 게 없고 그러나 좋았던 과거의 기억이 있다면 거기서 살고 싶을 거다. 아니다. 마법사는 도망칠 과거가 없다. 어떤 과거로도 도망치고 싶지 않다. 삶이 점점 더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 믿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어서 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러고 싶다. 이건 잘못된 믿음이 아니다. 그리고 과거에 머무는 것 역시 잘못된 선택이 아니다. 과거든 미래든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우리는 어디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문제는 머물고 싶은, 영원히 멈추고 싶지 않은 그 시공간이 너에게 있는가이다. 없다면 지금부터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고, 있다면 그리고 더이상 그만한 순간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 같다면 그 과거에 머무는 것도 틀린 선택이 아니다. 휴잭맨이 그 기술을 개발해 준다면 말이다.

현실에 살지 않고 과거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서 기억 주거권을 빼앗을 권리는 누구도 없다. 어떤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이 죽어서 이생을 떠나도 자신이 살던 그대로, 자신의 기억속 가장 좋았던 환경을 그대로 구현해서 스스로를 가두어 놓는 영혼들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게 고통과 폭력의 현장이기도 하다니. 역시 사람은 매조키스트 인가. 암튼 그것이 고통이든 기쁨이든 모두 영혼이 선택한 기억이고 순간일 테니 우리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볼 뿐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는 끝이 없는 법. 끝나는 것은 모두 슬픈 것들이니. 지금, 이 순간 내가 경험하고 있는 그것만이 진짜 리얼인 것이다. 가상일지라도.

People like us don’t fall in love.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지 않아요.

We plummet to places, deep and dark. But love?
우리는 깊고 어두운 곳으로 곤두박질치죠. 그런데 사랑이라구요?

Love is the thing we climb to.
사랑은 우리가 올라가야 할 것이죠.

Rung after rung, we pull ourselves out of ourselves, reaching for something greater.
계속해서 울려 퍼지다가,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빼내어 더 엄청난 것을 향해 나아가요.

If we could just hold on.
우리가 견뎌낼 수만 있다면 말이죠.

견뎌낼 수 있을까? 미래로 나아가는 것도 과거에 머무는 것도 모두 견뎌내야 하는 것. 현재를 견뎌내지 않으면 그 어떤 곳으로도 나아갈 수 없다.

아무리 휴잭맨이 주연이라지만 어설픈 80년대식 액션씬이 거슬리고, 인터스텔라의 각본을 쓴, 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이 이번에도 각본을 쓰고 이번에는 그의 아내가 감독을 했단다. 소재와 발상은 좋은데 형의 빈자리가 많이 느껴지는 영화이다. 차라리 책으로 봤으면 좋았을 듯.

그래도 한 번 볼만하다.
보고 나면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과거에 살고 싶을까?
그런 과거가 내게 있을까?
없다면 마법사와 함께 나아가자.
과거는 만들면 되니까.

새로운 과거로.

 

 

위즈덤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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