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린’s 100] Jan 14. 2024 l M.멀린

 

예정대로 빈털터리가 되었다.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예정된 길이므로. 그리고 이 지점에서 진짜와 가짜가 가려진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저 운이었는지.

이 지점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삶의 염려증은 이러한 생각 자체를 금기시하고 있으니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소수의 어떤 사람들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보다 소수의 어떤 이들은 말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거기까지, 거기까지다. 행동과 실천은 남의 몫이다. 그리고 응원을 한다. 숟가락을 얹는다. 세상 누군가라도 그렇게 사는 이들이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긴다. 그리고 나 이 사람이랑 잘 안다고 스스로에게 대견해 한다. 멍청이들, 그게 감옥인 줄도 모르고.

지점을 통과하면 알게 된다. 별거 없다는걸. 하늘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솟아날 구멍이 이렇게 많은 줄 알았으면 좀 더 과감해져 볼걸. 살짝 후회가 되기도 하다. 하지만 화장실 나온 뒤의 마음일 뿐. 게다가 한 번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솟아날 구멍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매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공포를 온몸으로 견뎌야 한다. 그걸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 하지만 즐길 수 있다면 공포가 아니다. 공포가 아니면 차별도 초월도 아니다. 그래서 너는 아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짧은 역사에도 이런 순간이 숱하게 지나갔다. 무관심 속에 일부는 떨어져 나가고 일부는 멀어졌다. 너무도 멀어졌다. 이 지점은 한 번 보면 다시 접근할 엄두가 나지 않는 지점이므로 그들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쫄보들이라. 쫄보 퇴치에 매우 효과적이다. 이 지점 말이다. 빈털터리가 되는 이 지점.

말만 하는 이들이 시끄럽게 굴면 마법사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 피리를 분다. 절벽으로 향한다. 그러면 알게 된다. 누가 쥐 떼였고 누가 백조였는지. 모두 함께 달려 온 줄로 알지만, 백조는 박차고 날아오르고 쥐 떼는 하수도로 추락하겠지. 당연히 쥐 따위에게 달아줄 날개는 없다. 하지만 쥐가 아니냐? 쥐! 시궁창이 고향인 쥐. 잘 살아남을 거다.

박차고 날아오른다는 건. 뭔가 눈에 보이는 거창한 결과물을 얻게 된다거나, 챔피언 벨트를 차게 된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더 이상 하늘도 절벽도 두렵지 않게 된다는 거다. 그리고 이륙의 매커니즘을 알게 된다는 거다. 내가 날개를 달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거다. 그건 꿈이 아니라 기능이었다는 것.

어디든 내려앉을 수 있다. 언제든 날아오를 수 있다. 우리는 날개를 가지고 있으니까. 초월적 지점이다. 시궁창을 벗어나고 싶어 마법을 좇는 이들에게, 접근금지, [Dangerous] 표지판이 내걸리는 차별적 지점이다. 쥐새끼들은 고향 앞으로 뒤로 돌앗! 미운오리새끼들은 날개를 펼고 앞으로 점프!

우리는 절벽에서 날아올랐다. 하늘을 날고 있다. 공포는 시궁창에서 소리를 지르지만, 우리는 창공 위에서 비루한 현실을 내려다보며 유유히 바람을 가르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 무너져 내리는 하늘의 공포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우주를 향해 대기를 벗어나는 중이니까.

안녕,
차별적 지점을 지나버렸어.
초월적 지점을 통과해 버렸어.
숨겨진 세상 속으로,
우리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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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s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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