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바다 단편선] Jul 31, 2021 l 교토바다

 

 

 

 

 

“결심하셨습니까?”

집도의로 보이는 하얀 가운의 의사가 병원 현관문에서 두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하얀 가운의 깃 부분은 로만칼라로 마무리 지어져 있었다. 가운만 보면 의사인지 신부인지 알 수 없어 보였다.

“의사 선생님이신가요? 어디선 뵌 분 같은데.”

남자가 묻는다. 왠지 남자는 이 집도의를 어디선가 본 듯하다. 어디서 봤는지, 당신은 혹시 나를 아는지 묻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으로 밀려왔다.

“누군가는 의사가 아니냐 하고 또 누군가는 신부냐고도 묻지요. 저는 단지 묶는 사람일 뿐입니다. 아멘.”

신부인지 의사인지 알쏭달쏭한 집도의는 한 손에는 수술용 메스와 다른 한 손에는 성경책처럼 보이는 챠트를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검은 마스카라를 한 간호사인지 복사인지 알쏭달쏭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의 명찰에는 ‘안내양 미아’라고 쓰여 있었다.

‘미아라.. 저 이름도 어디서 많이 봤는데.’

남자는 안내양의 이름을 보고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며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리려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분 손을 잡으시고 따라 오셔요. 수술이 끝날 때까지 손을 놓아선 안 됩니다. 손을 놓으시면 피가 쏟아질 수 있어요.”

안내양의 섬뜩한 안내에 남자는 당황하면서도 일단 여자의 손을 잡았다. 손을 놓으면 피가 쏟아진다니.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으나 이 도시에서 가장 수술을 잘한다고 소문이 난 곳이라니 일단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남자는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말이 목구멍에서 탁 막혀 내뱉어지질 않았다. 긴장한 탓일까?

집도의와 안내양은 두 사람을 뒤로하고 성큼성큼 복도를 걸어갔다. 그리고 복도 끝에 위치한 수술실에 들어섰다. 수술실은 마치 예배당 같아 보였다. 긴 장의자들이 여러 개 놓여 있고 제단처럼 보이는 수술대가 정면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천정에서 쏟아진 하얀 불빛이 수술대를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수술실에 들어서자 갑자기 결혼행진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자, 수술대 앞으로 걸어오시죠. 저희 안내양의 안내대로 절대 손을 놓아선 안 됩니다.”

남자는 어리둥절해 하며 여자의 손을 잡고 수술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긴 장의자들 사이로 붉은 카펫이 놓여 있고 그 양 옆으로 검은 장미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남자와 달리 여자는 침착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카펫 위를 걸었다.

“카펫이 붉은색인 건, 그 길을 걷다 손을 놓은 커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놓지 말라고 했는데 그걸 못 참고. 쯔쯧.”

집도의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더니 수술대 옆에 놓인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한 잔 내렸다. 커피가 든 머그컵에는 초록색 사이렌 요정의 이미지가 새겨져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피로 물든 카펫이라는 집도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서로의 손을 더욱 꼭 붙들었다. 여기까지 와서 피를 볼 순 없지 않은가. 묶는 일도 요즘은 레이저로 피 한 방울 보지 않고 깔끔하게 끝낸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자,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묶기로 결심하신 거 맞으시죠? 두 분 모두 답하셔야 합니다.”

“네. 결심했습니다.”

집도의의 질문에 여자는 거침없이 답했다. 그녀는 마치 모든 상황을 이미 알고 왔다는 듯 확고한 표정이다. 반면에 남자는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여자의 요구를 따르기로 했지만, 이 이상한 상황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여자의 뜻을 따르기로 했으니 별수 없다.

“흐음.. 저도 뭐 따르겠습니다.”

“따른다고요? 뭘 따르죠?”

“네? 아, 저 그러니까 이 사람의 뜻을 따르겠다는.. 저도 결심을 했다는 말입니다.”

“어허. 이거 큰일 날 소리를 하시는군요. 이 수술이 무슨 수술인지 모르고 오셨습니까?”

“네?? 정관수술 아닙니까? 그렇게 들었는데요?”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런데 그걸 아시는 분이 따른다는 말씀을 하십니까? 이거 이대로 수술을 강행할 수는 없겠는데요. 사모님,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까?”

“선생님, 부탁입니다. 그냥 집도해주세요. 이 사람에게는 수술 후에 제가 따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저희는 얘기를 충분히 나누었고 결심도 동일합니다.”

집도의와 여자 사이에 묘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남자는 당황해하며 여자와 집도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따른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 말은 나도 결심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데, 집도의는 그 표현을 지적하며 문제를 삼고 나섰다. 여자는 도대체 이 집도의와 사전에 무슨 얘기를 나누었길래 남자의 이해와 상관없이 수술을 강행해달라 부탁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수술은 도대체 무슨 수술이기에 이런 이상한 상황이 계속되는지 남자는 더욱더 의심스러워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수술을 할 수 없다니요. 아니 당신이 설명을 좀 해봐. 무슨 수술을 받아야 하는 거야? 정관수술 받기로 한 거 아니었어?”

“맞아. 그리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돼. 그냥 잠자코 있어. 끝나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어허, 무슨 말씀이십니까? 잠자코 있으라니요. 이 수술은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본인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단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수술인데. 안 되겠네. 안내양, 이 환자분에게 안정제를 놔드리게. 이대로는 위험해서 수술을 진행할 수 없겠어.”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집도의 뒤에서 한심한 듯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안내양은 수술기구들 사이에서 커다란 주사기를 들더니 검은 용액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용액이 차오르자 안내양은 주사기를 살짝 펌핑하여 주사기 끝으로 몇 방울의 용액을 마치 사정하듯 뿜어냈다.

“자, 환자분 하의를 좀 내려 주시겠어요. 엉덩이에 주사를 놔야 하니까요. 좀 아파요.”

안내양은 당황한 남자의 하의를 덥썩 잡아 내리고는 주사기를 바로 꽂아버렸다. 남자는 당황한 나머지 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안내양에게 버럭 호통을 쳤다. 그런데 그때 획 돌아서던 남자의 움직임에 두 사람의 잡은 손이 떨어지고 말았다.

“아앗, 이런. 결국 두분도 손을 놓으셨군요. 절대 손을 놓아선 안된다고 그렇게 당부를 드렸는데.”

두 사람의 떨어진 손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며 자리에 주저앉았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마치 몸에서 모든 피가 쏟아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아니다. 그건 느낌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수술실 바닥이 남자의 손에서 흘러내린 피로 흥건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의 귀에서 집도의와 안내양,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아아 이런 이를 어쩌죠? 이 안정제는 부작용이 있는데. 절대 손을 놓으시면 안 되는데.”

남자의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집도의가 여자에게 뭐라뭐라하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고 있다. 이 용액은 부작용이 있다고, 피가 모두 빠져나가면 피부마저 투명해져서 투명인간이 되어버린다고. 집도의는 그러게 손을 놓으시면 안 된다고 자기가 몇 번을 말했냐며, 수술실이 피로 물들어 손해배상을 하셔야 한다고 여자를 협박하는 목소리. 집도의는 배상액으로 스타벅스 프리퀀시 별을 자신에게 양도하라며 윽박을 지르고 있었다.

‘이건 뭐지. 나는 왜 손을 놓쳤을까? 어떤 상황이 와도 손을 놓지 않겠다고 서원했었는데. 그녀에게 내려앉은 그날. 우리 사이에 어떤 위기가 와도 손을 뿌리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는데. 그리고 나의 손은 날개가 되었어. 당신의 손을 잡는 일은 훨훨 나는 일이지. 날갯짓은 당신에게 손을 흔드는 일이야. 나는 잘 있다고.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마음을 뿌려대는 일이지. 아, 그렇구나. 날지 못하게 된 나는 손을 놓았던 거구나. 그게 마음이 사라져 간 이유였구나. 너의 손을, 너의 손을 놓았어. 내가 말이야. 그랬던 거야. 그래서 묶으라고 했구나. 놓지 말라고. 어디에, 누구와 있더라도 날기를 멈추어선 안 된다고. 당신은 그 말을 하고 있었던 거구나. 아.. 왜 이렇게 졸리지. 눈이 떠지질 않아.’

남자의 몸에서 피가 거의 다 빠져나가자 남자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누가 그를 발견할까? 누가 하늘을 나는 투명한 새의 비행을 볼 수 있을까? 새는 다시 섬에게 가 닿을 수 있을까? 더이상 새들이 날지 않는 하늘에 검은 구름이 깔리고 까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교토바다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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