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쌍꺼풀
사내의 눈에 쌍꺼풀이 졌다. 사내는 쌍꺼풀이 없다. 아니 점점 무거워지는 눈두덩이에 눌려 쌍꺼풀이 눈썹 안으로 접혀 들어갔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설명이겠다. 사내는 피곤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도 한참의 젊은 시절에는 부리부리한 쌍꺼풀을 자랑하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눈은 매서웠으며 그의 눈은 날카롭고 서늘했다. 부리부리한 쌍꺼풀은 상대로 하여금 강한 인상을 지닌 사내라는 느낌을 받게 하는 주요한 특징이었다. 그는 그러한 쌍꺼풀이 부담스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랑스럽게 여겼다. 어쨌든 짙은 눈썹과 쌍꺼풀은 한동안 시대적 미남이 갖추어야 할 기본 아이템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때의 나는 매우 역동적이었지.’
사내는 스타벅스 테이블에 턱을 괴고는 쌍꺼풀이 짙게 지던 시절을 회상하며 사색에 잠겼다. 어느 때든 인생의 황금기 같던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무엇에도 자신이 넘치고 무엇에도 열정이 타오르던 그때 말이다. 사내에게도 그러한 시절은 추억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내는 무거운 눈두덩이를 이겨내기에도 벅찰 만큼 지쳐있다.
‘수험생 시절 나는 입시를 앞두고 운동장을 하루에 열 바퀴씩 달렸어. 코앞의 입시보다 체력장에 신경을 더 쓰고 있었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시험을 6개월쯤 앞두고 나는 갑자기 체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휩싸이기 시작했어. 남들은 남은 시간을 ‘4당5락’* 해도 모자란다면 모든 체력을 쏟아 붇는 시점에 나는 도리어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거꾸로 생각했지. 그래서 평상시에는 전혀 하지 않던 새벽운동을 시작한 거야. 입시를 앞둔 마지막 방학, 나는 아침이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집 앞 학교 운동장을 뛰었지. 다른 입시생들은 도시락을 두 개씩 싸서 공부를 하기 위해 등교하던 시간에 나는 홀로 운동장을 달린 거야.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어.’
* ‘4시간 자면 합격, 5시간 자면 불합격’이라는 수험생들의 관용구
사내는 인생의 역동적이던 순간들을 떠올리다 입시를 5개월여 앞두었던 당시를 회상하며 쓴웃음을 짓고 있다. 응당 입시를 앞둔 학생으로서 마지막 학습에 전념을 다 해도 부족한 판에 체력단련은 웬 말인가? 하지만 무리한 체력단련 탓에 코피를 쏟아 낼 때까지 사내는 달리고 또 달렸다.
‘아마도 나는 지구력을 기르고 싶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오래달리기를 잘할 수 있으면 남은 입시 레이스에서도 지치지 않고 경쟁을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물론 1학년 때부터 했으면, 아니 더 어린 시절부터 체력단련을 이어왔으면, 입시를 몇 개월 앞둔 이 중차대한 시점에 이런 일을 감행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왜 그런 거 있잖아. 사람이 당장 눈앞에 엄청난 일이 닥쳐오면, 의외로 평상시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소한 일에 집중하게 되는 거 말이야.’
그것은 합리적인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짓거리임에 틀림이 없다. 당장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책장을 정리한다든가, 평상시에는 하라고 해도 하지 않던 대청소를 시작한다든가, 생전 연락도 하지 않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가나다순으로 정리하기 시작한다든가 하는 일 말이다. 희한하게도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우선순위에 대한 감각이 도리어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비단 나만의 현상이 아니었어. 처음에는 혼자 새벽을 달리고 있었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자 한두 사람 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거야. 물론 맨 처음에는 내 동생이 나의 뜀박질에 동참했지. 나보다 서너 살이 어린 동생은 형의 입시 행보를 매우 기민하게 관찰하고 있었거든. 아마도 지금부터 시작하면 자신은 형보다 무엇이든 3~4년은 앞서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 자식은 그렇게 하면 나를 앞설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오산이야. 그렇잖아? 생각이 중요한 거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나 앞서 생각하지. 그것을 아무리 바짝 붙어 뒤쫓은 들, 생각은 언제나 뒤에 있는 거야. 물론 3~4년의 나이 차가 주는 간격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녀석이 나이 차로 얻을 수 있는 어드벤티지는 군대에 갈 때까지뿐인 거야. 그 뒤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겨야 하니까. 모델링이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만 옳은 것이니까.’
사내는 갑자기 동생에 대한 비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형제란 늘 신경 쓰이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터울이 크지 않은 형제간에는 모든 것이 비교되고 모든 것이 경쟁 구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내는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자신도 모르게 동생과의 레이스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뭐 어쨌거나 동생 놈이 따라붙은 건 그렇다 치고, 갑자기 웬 낯선 사람들이 뜀박질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신기한 현상이었어. 늘 그 학교 운동장을 지나 등교해 왔지만 그렇게 아침에 뜀박질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거든. 무슨 일일까? 왜 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걸까? 처음에는 그게 너무 궁금했지.’
뜀박질의 행렬은 사내로부터 시작해 한두 명씩 늘어나더니 급기야 수십 명의 행렬로 불어났다. 그들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왜 무엇 때문에 뛰고 있는지 서로 알지 못했다. 다만 인원이 늘어나다 보니 서로 아는 얼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들의 일부는 일간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오랜만이네. 근데 너 왜 뛰고 있는 거야?”
“글쎄, 그런 너는 왜 뛰고 있는 거니?”
“.. 뭐 어쨌든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우리 열심히 하도록 하자.”
“음, 그래야지. 파이팅이다!”
얼굴을 알아본 일행들은 서로 격려를 나누고는 여전히 각자 달리고 있었다. 아마도 시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보아 모두들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인 듯했다.
‘처음에는 나처럼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행렬이 늘어나면서 개중에는 아저씨도 있고 아주머니도 보이고 연세 든 할아버지도 보이기 시작했지. 모두들 서로의 사연이 궁금한 듯했지만 모르는 이에게 새벽부터 개인의 사생활을 질문할 수는 없었던 거야. 그래서 다들 열심히 달리기에만 집중했지.’
뜀박질은 매일 반복되었다. 저마다 어떤 사연을 안고 새벽을 달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서도 하나 되는 일체감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언의 에너지 같은 것이었다. 언어는 말로서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같은 정념의 시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의 테두리 같은 것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열정을 전염시키고 정체된 사회와 공동체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합리적인 행동과 방식에만 집중하고 인위적인 것들로 에너지를 일으키려고 하지만, 실은 매우 작고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들이 사람들의 연대를 강화하고 이끌어 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작고 별 것 없어 보이는 행위의 숨은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강화하는 일은 사내의 중요한 업(業) 중 하나이다. 사내는 운동장에서 뜀박질하던, 그 쌍꺼풀이 짙었던 시절부터 이러한 감각을 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뜀박질이 계속되자 서로 얼굴을 익힌 사람들끼리 음료수쯤을 주고받는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 수고했다는 의미와 무언지 알지는 못하지만, 서로의 목표를 지지하고 격려한다는 의미를 함께 담은 주고받음이었지. 그런데 누구도 고맙다는 인사 이외에는 서로의 개인적인 일에 관해 묻는 이가 없었어. 그것은 이 뜀박질 연대의 암묵적인 합의 같은 것이었지. 무엇이든 좋으니 함께 뛰자. 그리고 이루자! 나는 날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견고해지는 이 그룹의 연대에 마음이 흥분되기 시작했지. 그런데 열정이 너무 앞섰는지 그러다 실수를 하고 만 거야.’
사내는 이 뜀박질 연대의 시작이 자신으로부터였다는 것에 매우 감개무량하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종말의 시작이었다. 주인의식을 갖는 행위 말이다. 아무도 누가 불러서 시작한 뜀박질이 아니었으니 그것은 모두 개인의 자발적 행위이며, 오롯이 각자만의 의미가 담긴 성스러운 미션수행의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그 시발점으로 사내가 첫 포문을 열었을 뿐인 것이다. 물론 누구든 시작의 문을 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디론가 터져 나오지 못하고 맴돌던 에너지가, 작더라도 그 숨구멍을 틔워주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거대한 의식의 소용돌이 속으로 쏟아져 나오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시작하는 자의 역할은 물꼬를 틔우는 것, 그것까지이다. 무언가를 주도하려고 하는 순간. 모든 작용은 다른 흐름을 타고 흐트러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어린 사내는 아직 알고 있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행위에 사람들이 고무되어 운동장에 달려 나온 것이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의 심각한 착각이었어. 사람들이 먼저 뛰고 있는 나를 보고 자신들도 뛰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줄로 안 것 말이야. 물론 뒤이어 나온 사람들이 먼저 뛰고 있는 누군가를 보고 달리기 시작하게 되면, 아무래도 분위기상 주도권이 먼저 나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경향이 생겨나는 건 사실이야. 그렇다고 그러한 권한이 먼저 뛰기 시작한 사람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인 것은 아니지. 다만 사람들의 암묵적인 양보와 합의에 따라 그러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인데. 그것이 당연한 권리인 듯 행사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불쾌해지기 마련이야.’
문제는 그것에서 시작되었다. 뜀박질을 하는 인원들이 불어나자 경쟁 아닌 경쟁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은근슬쩍 주변 사람들이 어떤 속도로 뛰는지, 나보다 몇 바퀴를 더 달리는지, 어떤 운동화를 신었는지, 어떤 운동복을 입고 달리는지, 물통은 들고 뛰는지, 아니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달리는지 등의 본질과는 전혀 무관한 주변의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뭐 인간사에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그러다 말, 일시적인 무엇인 것이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매우 심각한 근본주의자였던 사내는 그러한 본질에서 벗어난 현상이 매우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이라 생각하며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으나, 날이 갈수록 사람들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심해져 가는 것 같이 느껴지자 마음이 매우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결국 사내는 뜀박질이 시작되는 운동장 초입의 담벼락에 방을 붙이고 만 것이다.
방: 새벽의 전우들에게 고함.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 운동장을 달리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서로 얼굴을 알지는 못하지만 모두 함께 이 운동장을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간이 벌써 꽤나 흘렀고 모두 각자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정진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우리 공동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나아가 우리 사회와 우리 국가에 새로운 동력을 심어 줄 매우 중차대한 협력적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 일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는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놀라운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우리모두는 매우 기대에 찬 시선으로 서로를 독려하며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공동체를 위협하는 좋지 않은 현상들이 목격되고 있는 바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남들을 의식하는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매우 저열한 의식이며 인식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운동화와 운동복 브랜드를 시기에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며 따라 하려 애를 쓰고, 또 어떤 사람들은 뜀박질의 본질보다 기록경신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몇 바퀴를 달리든 모두가 각자의 체력의 한도 내에서 적당량을 소화하면 될 터인데, 경쟁심리로 말미암아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무리를 해서 종종 엠뷸런스에 실려 가는 몹쓸 행위가 목격되고 있는 바입니다. 게다가 이 뜀박질 연대의 소중한 원칙인 서로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규칙을 침범하며 무례하게 자꾸 말을 걸어오는 신입 회원들이 눈에 띄는 바입니다. 기존 회원들은 이러한 신입회원들이 눈에 띄거든 미리미리 주의를 주고 경고를 하여, 바람직한 뜀박질 연대의 분위기를 훼손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뜀박질을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이 뜀박질 연대의 바람직한 발전상을 위하여 매일같이 고민하고 있는 바, 이러한 사항들이 시정되지 않을 시, 자의에 의해 이 연대의 문을 닫을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바입니다. 아무쪼록 유념하시어 우리 생의 찬란한 날들을 위한 이러한 훈련과 연단의 시간에 서로에게 누가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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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아마도 미친 것이다. 잠깐 정신줄을 놓아 버린 것이다. 자기가 뭐라고, 어떠한 권리로 그들을 나무라며 감히 연대의 문을 닫고 열고 한단 말인가. 각자 제 의사대로 공개된 학교 운동장에서 뜀박질을 하고 있건만, 그들이 서로 어떤 시선에 매몰되며, 분위기를 훼손하든 말든 사내가 판단하거나 심판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이미 뜀박질의 최초 시작자로서의 자부심과 허세에 경도되어 앞뒤 분간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으니..
‘뭐, 그다음은.. 온갖 비난이 쏟아졌지. 지금처럼 온라인 게시판이라도 있었으면 신상 까발리기에다, 악플 세례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지도 몰라. 다만 아직은 온라인의 세계가 열리기 이전이고, 사람들도 나름 잘 모르는 타인을 함부로 비난하거나 대놓고 욕하던 시절은 아니라 그 정도였지. 솔직히 더 이상 새벽 뜀박질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냉랭한 시선이 쏟아졌어.’
사내는 당시의 분위기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지정해 준 것도 아닌데, 뜀박질의 최초 시도자로서의 암묵적 대우로 행렬의 맨 첫 줄에서 선도하듯 뛰어온 사내였다. 그러나 방이 붙고 난 뒤부터는 무리들이 사내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반 바퀴 이상의 거리를 둔 채 좀처럼 사내를 행렬 속으로 포함시켜 주지 않는 것이었다. 일종의 왕따. 누구나 그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따돌림의 기운이 새벽의 공기를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에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어. 다 서로 잘되자고 한 얘기였는데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아니 그리고 다들 똑같이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닌가? 용기 내서 얘기한 것을 칭찬해 주지는 못할망정 나를 왜 따돌려.’
당시를 생각하니 사내의 가슴에 답답함이 다시 밀려오는 것이었다. 의로운 일을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 감당했다고 믿는 사내의 사고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함으로만 다가오는 것이었다.
사내는 그 일 이후 그 학교의 운동장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덕분에 체력단련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던 터라 시험 당일까지 별 무리 없이 체력관리를 잘할 수 있었다. 물론 체력관리에 무리가 없었을 뿐이다. 그것이 시험성적에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 성적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내는 어쩌면 헛수고를 한 지도 모른다. 전력을 다해야 할 시점에 전력을 다하기보다 체력을 비축하려고 했던 사내의 이상한 선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상한 레이스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래서 시작된 이상한 새벽 무브먼트도 사내가 그것을 자신의 공로로 인식하는 순간, 원점 아니 마이너스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일은 매우 기묘한 경험이었어. 처음에는 함께 뜀박질에 동참했던 그 사람들이 나의 뛰는 모습을 보고 영향을 받아 따라서 뛰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나중에 듣고 보니 누구도 나에게서 영향을 받아서 뜀박질을 시작한 게 아니었더라구. 모두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뛰고 싶어졌다는 거야. 그래서 운동장에 나와보았더니 이미 사람들이 달리고 있었다는 거지. 그래서 뭐 다들 달리나 보다 하고 뛰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 그러니까 내가 뛰는 모습을 보고 무언가 마음의 감화를 받아서 달리기 시작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거야. 그냥 어느 날 모두 뛰고 싶어졌다는 거야.’
그러한 일들은 종종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에너지 현상이다. 그러니까 어느 동네에서나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놀이를 한다던가. 이유도 없이 갑자기 치킨 매출이 늘어난다던가. 어느 날 목욕탕에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갑자기 몰려온다든가 하는 현상들. 혹자들은 어떠한 매스컴의 광고나 보도, 또는 각종 거시적, 미시적 통계들에서 그 원인을 찾아내려고 하지만 원인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계절의 변화나 날씨의 변화처럼 정확히 그 정체를 밝힐 수는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 흘러 다니는 에너지의 흐름, 인식의 강 같은 것들이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발현되는 순간에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그러한 인식의 순간들을 여러 차례 경험하기 시작했지. 그것은 마치 불현듯 여섯 번째 손가락을 인식하게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야.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오는 것과 같은 감각의 확장이지. 비록 비슷한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기는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나의 감각이 나날이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에너지를 촉발시키는 그 단순하고 사소한 행위의 시작점을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야.’
문제는 그것이다. 사내의 쌍꺼풀이 점점 눈썹 안으로 말려 들어 가기 시작한 이유가 말이다. 사내는 매번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상심하며 속으로 눈물을 삼켜댔다. 사내대장부로서 아무 때나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며 안으로 안으로 눈물을 삼켜 댄 것이다. 그러한 사내의 버릇은 사내의 눈두덩이를 자꾸 붓게 했다. 부은 눈두덩이는 마치 눈물을 삼켜 대듯이 쌍꺼풀을 안으로 말아 넣기 시작했다. 묘한 현상이었다. 사내의 눈은 점점 가늘어지고 눈두덩이는 두툼해지며 쌍꺼풀은 말아 넣어 점점 희미해졌다.
‘그래서 결국은 쌍꺼풀 없는 눈이 되고 말았지. 새로운 감각을 얻은 대신 쌍꺼풀을 잃어야 했던 거야. 눈물로 대가를 치른 셈이지.’
그런데 그렇게 점점 자취를 감추던 쌍꺼풀이 요즘 다시 사내의 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속으로 삼켜 내었던 사내의 눈물이, 이즈음에 특히 시도 때도 없이 발현하여 눈가를 적셔대는 현상과 연관이 있는 것일지 모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자꾸 눈물을 흘리곤 해. 예전에는 눈물을 자꾸 삼켜 댔는데. 요즘은 삼키기도 전에 주르륵 흘러 버리니..’
삼키지 못하고 주르륵 흘러버리는 눈물. 사내는 새로운 감각을 얻느라 잃어버린 쌍꺼풀을 다시 복원해 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 고인 눈물은 다시 사내의 쌍꺼풀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사내가 새로운 감각을 얻느라 잃어버린 젊은 날의 열정과 때로는 무모한 듯 보이는 용기의 담수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사내의 슬픈 쌍꺼풀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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