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화염
“몇 명이랑 자 봤어?”
남자는 집요하게 묻는다. 여자는 대답하면 안 된다. 그것은 불화의 지름길이다. 여자도 안다. 그러나 남자의 집요함을 계속 거절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왜 자꾸 물어..그런 거 꼭 알아야 해?”
“그냥 궁금하니까, 뭐 어때 다 지나간 일인데.”
지나간 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지난간 일이 아니다. 남자의 머릿속은 당장이라도 질투의 불길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남자의 집요함에 넘어가는 일은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심지에 불을 당기는 일이다. 그러나 계속 성냥을 그어대는 남자의 질문을 무한정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오빠는 몇 명이랑 자 봤는데?”
“나야, 셀 수도 없지. 나 인기 많은 거 너도 알잖아?”
“치이~”
여자는 치이~ 하고 쓴웃음을 삼킬 뿐이다. 방어하던 여자가 공격으로 수세를 전환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자칫 역공을 만들어 낼 위험이 농후하다. 이런 긴장 속 대화는 언제나 오해와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역으로 이전의 관계들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고 들면 종국에는 같은 질문이 돌아오기 마련이고 그럼 이제는 말길을 돌릴 수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오빠 우리 내일 어디로 놀러 갈까?”
여자는 역공을 당할까 두려워, 남자의 당당한 대답에 반격도 하지 못하고 일단 말길을 돌려 본다.
“왜 질문에 대답은 안 하고 딴소리야?”
남자는 좀처럼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이 남자 오늘 작정한 듯싶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여자는 머리를 초고속으로 굴려 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과거의 관계는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뭐 모태솔로가 아닌 이상, 관계가 없었을 리도 없고.. 그건 서로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 것쯤 덮어두고 새로운 관계에 집중해야 하는 게 매너 아닌가 여자는 생각하고 있다.
‘오늘은 대답을 들어야지.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어.’
남자는 궁금하다. 아니 남자가 궁금한 것은 여자가 몇 명이랑 잤는지가 아니다. 남자가 궁금한 것은 질투의 불길이 자신을 덮쳐 올 때의 느낌이다. 뒤는 알고 싶지 않다. 그 대답의 결과로 질투의 화염이 자신을 뒤덮어 상처로 난자된다 해도, 이미 내뱉은 말과 기대되는 결과의 경험은 포기할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원시 수렵채집 시대 사냥꾼의 심정 같은 것이다. 자신의 몸보다 몇 배나 더 큰 맹수들을 뒤쫓으며, 그러다 들키면 그 엄청난 위력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그 맹수와의 대면을 피하려 들지 않는 사냥꾼의 심리 같은 것이다. 노련한 사냥꾼이라면 전후 상황을 모두 종합하여 안전을 확보하고 최적의 타이밍을 노리겠지만, 처음부터 노련한 사냥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대면의 과정이 필요하다. 비록 절명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다 한들 시작은 언제나 직면부터이다.
그것은 이 대화의 시작이었다. 여자의 마음을 얻은 남자에게 잔존하는 사냥꾼의 본능, 그것은 다음 표적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질투의 화염’ 말이다.
“말하고 싶지 않아. 이건 좋지 않다구, 그런 얘기 들어봐야 기분만 나쁘잖아..”
남자는 모르고 묻는 게 아니다. 지금 여자에게 다음 표적의 위치를 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표적은 너가 아니고 그들이다. ‘질투의 화염’ 그것 말이다.
인간의 사랑은 소유의 감정을 동반한다. 인간은 가지고 싶은 것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가질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한다. 그것은 열정의 불길을 평생 타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동경, 그것은 특히 사냥꾼의 DNA를 지닌 남성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계를 탐험하고 오지로, 밀림으로, 찾아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누군가를 돌볼 수 없다. 그래서 가족과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여성들에게서는 사냥꾼의 DNA가 꺼져 들어간 지도 모른다. 자신의 안위를 염려하지 않으며 대면의 세계로 나아가고 찾아가는 사냥꾼이었던 남성들은, 자신의 힘을 소진할 대상을 잃고 말았다. 현대의 세계는 남성을 길들이고, 길들여진 남성들은 가축이 될 것인지, 반사회적 인격 또는 사이코패스가 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중간은 없다. 현대의 남성에 주어진 운명은 그렇다. 너가 죽던지, 내가 죽던지. 지금 남자는 여자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나는 너를 얻었으니, 이제 너의 과거의 시간들을 정복하고 싶은 거야.’
방어에 지쳐 감정이 상해버린 여자는 말이 없고, 냉랭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남자는 여자에게 속으로 말을 걸고 있다. 내게는 정복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너를 완전히 얻으려면 너의 과거도 정복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처럼 보인다. 지나가 버린 시간을 무엇으로 정복할 수 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로 돌아가 그녀의 남자들에게 결투를 신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만일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남자는 백전백승일 것이다. 그녀의 과거의 남자들은 어쨌든 관계에 실패한 미래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승리는 현재의 남자일 테니, 이 결전은 해보나 마나 뻔한 것이다. 그래서인가 보다. 남자가 자꾸 집착하는 것은 과거의 남자들에 대한 정복감을 경험하고 싶어 그러는 것인가 보다. 그러면 여자는 말하면 되는 것인가? ‘이런저런 남자들과 이런저런 관계들이 있었어. 하지만 결국 지금 내 눈앞에는 당신이 있어. 그러니 당신이 최종 승자야.’ 이러면 되는 걸까?
‘미친 새끼, 왜 자꾸 물어보고 지랄이야. 지도 졸라 복잡했으면서.’
여자는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 복잡한 관계들로 따지면 남자가 훨씬 많은 과거들을 가지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남자의 과거들을 대면하고픈 생각이 없다. 과거의 그녀들과 싸울 생각도 없다. 여자가 원하는 것은 지금의 남자이다. 그와의 현재의 순간이고 지금의 느낌이다. 그것만이 소중하다. 이제는 자신을 떠나버린 남자들 따위 관심도 없다. 그것은 심지어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기억이다. 물론 하나하나 따지고 보자면 행복했던 시간이었고 사랑했던 순간이었다. 어쩌면 매번 최선을 다해 사랑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소중한 감정들, 기억들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지나가 버렸다. 내 곁에 남아있지 않다. 여자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의 미래이다.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언제나 함께 해 줄 삶의 동반자. 그것이 더 중요하다. 과거의 누구 따위, 지금은 내 눈앞에 보이지도 않는 누구 따위를 입에 올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나는 지금의 당신, 너가 가장 소중하다.
그래서 불안하다.
자꾸 자신의 과거를 캐고 들려는 남자의 집요함이 더더욱 불안하다. 그것은 뭐랄까? 총점으로 따져서 승리를 가리는 그런 컴페티션이 아니다. 이것은 지키려는 자와 정복하려는 자 간의 치열한 줄다리기이다. 이런 대결에 불리한 쪽은 지키려는 자이다. 여자는 이 관계를 지키고 싶고 남자는 여자의 과거까지 정복하고 싶다. 정복하려는 자는 결과를 감당하려고 하고 지키려는 자는 위험을 회피하려고 한다. 게다가 칼을 빼든 남자는 무라도 자르려고 덤비고 있다. 그러나 여자는 그런 남자가 더욱 불안하다. 자칫 빗장을 열었다간 질투의 화염에, 남자뿐 아니라 두 사람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시간과 앞으로 만들어나갈 핑크빛 미래의 보금자리까지, 모두 앗아갈 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남자는 빼어 든 칼을 거두기가 쪽 팔리고 여자는 빗장을 열었다가 쏟아질 질투의 화염이 두렵다. 남자에게, 빼어 든 칼을 거두라고,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고 비난과 핀잔을 주고 싶지만, 그런 무모한 정신이 아니었다면 여자의 마음 또한 얻지 못했을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 어떤 지점도 그러한 무모함, 용기, 만용의 혼연일체의 에너지장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것은 처음부터 남자를 얻음과 동시에 함께 따라오는 그림자인 것이다.
“…”
“…”
대치 상황은 길어지고 있다. 맞서고 있는 여자의 기운에 남자는 대결의 대상이 옮겨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과거의 남자들을 대변하여 자신과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하는 여자의 자존심의 기운이 남자에게 태세가 전환되었음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링에는 남자와 여자만이 남았다. 계속 과거의 남자들을 링에 올리라는 남자의 요구를 거절한 탓에, 여자 스스로 남자의 링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팽팽한 긴장감은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는 복서들의 눈싸움처럼 날이 서 있다. 자존심 대 자존심의 대결로 전환되어 버린 감정대결의 막이 본격적으로 올라 버린 것이다. 이 대결에는 심판이 없다. 오로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는 자가 나오기까지 끝나지 않는 무한의 KO 전쟁인 것이다.
이제 남자의 손은 망각의 늪을 휘젓고 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여자의 실수들을 하나라도 건져 올려야 하는 것이다. 여자 또한 섭섭함의 목록을 살피고 있다. 이 대결과 관련하여 사용할 만한 섭섭하고 서운했던 순간의 목록들을 최대한 빠르고 명민하게 확보해 내야 한다. 그것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비책이다. 더 많이, 더 자세히, 더 큰 목소리로,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올려붙여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누구 한 사람이 울어 버리든, 자리를 박차고 나가든, 흰 수건을 링에 던지며 패배를 선언하기 전까지 이 싸움은 처절한 자존심의 밑바닥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선혈이 낭자하도록 서로를 자극한 뒤에, 인생의 링은 두 가지의 엔딩을 남자와 여자에게 판결로 내어놓을 뿐이다. 그것으로 파탄이 나버리고 마는 새드엔딩과 하루쯤 지나서 서로 잘못했다며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해피엔딩.
어쩌면 두 사람은 지난한 새드엔딩의 과거들을 거쳐 서로를 만나게 되었는지 모른다. 여자의 말처럼 두 사람 다 모태솔로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비록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리더라도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기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또 다른 새드엔딩을 기록하며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게 될지도..
‘그냥 몇 명이랑 잤는지 말해 줄 걸 그랬나?’
그랬다면 감당의 몫은 남자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 것 때문에 질투에 휩싸여 자폭할 남자라면 처음부터 별 볼 일 없는 남자였을 테니.. 여자는 팔짱 끼고 지켜보면 될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내게는 지금 내 눈앞에 너가 최고야’라는 주문을 미친 듯이 외워대야 했겠지만..
‘괜한 걸 물어봤나? 이런 결과를 보려고 했던 건 아닌데’
그걸 몰라 물었나? 모른 척, 쿨 한 척하고 있으면 한없이 좋은 남친 코스프레 진창하고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언제까지 참고 있을 수 있을까? 그러다 우연히 여자의 과거의 남자들과 조우라도 한다면, 어디선가 과거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라도 된다면.. 심지는 언제나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스스로 당기든, 여자의 말실수에 의해, 제 3자의 짓궃은 언급에 의해 당겨지든, 소유를 전제로 하는 연애감정의 심지는 늘 ‘질투의 화염’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서는 일이야말로 사냥꾼의 DNA를 지닌 남자의 몫인 것이다. 그 어떤 질투의 화염 앞에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마음을 무디게 해서 도망 다니지 않고, 더더욱 날카롭고 예민하게 갈고 닦아 여자의 곁을 지켜내려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 그것을 열망하는 것이 사냥꾼의 사랑인 것이다.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응.. 어디로 갈까?”
“뭐든 너 좋아하는 거..”
팽팽한 긴장을 먼저 풀어낸 것은 남자이다. 그러나 남자는 물러선 것이 아니다. 링에서 여자를 내려놓은 것이다. 여자가 타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버텨내느라 지친 여자를 먹이는 것도 남자의 몫이다. 물론 남자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묻고 또 물을 것이고 캐내고 또 캐낼 것이다. 그리고 남자에게서 그러한 열정이 꺼져 갈 때쯤 여자는 다시 불안해질 것이다.
지독하다. 사랑이 그렇다.
“그런데 너.. 몇 명이랑 자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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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도 카라멜 프라푸치노를 마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