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웃음소리뿐

[14日] Jul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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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캬캬캬캬캬”

멀리서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마치 모든 벽을 뚫어버리는 EMP 전자 폭탄 같아서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최대로 올린 고막조차 아무렇지 않게 강타한다.

그녀가 웃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흥분할 때 웃는다. 또한 긴장할 때 웃는다. 그녀의 흥분과 긴장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잔뜩 긴장했다 풀어지면 안정을 찾는 게 아니라 긴장이 풀어진 사실에 업되어 더욱 주파수를 높이는 것이다. 또한 흥분과 긴장은 한데 어우러져 이것은 긴장인지, 이것은 흥분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공간 전체로 퍼져 나간다. 그것은 에너지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증폭시키는 에너지이다.

그녀의 긴장은 주로 ‘자신감 없음’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좀처럼 자신감이 없다. 결과물과 상관없이 그녀는 늘 자신의 그것에 대해 자신이 없다. 그녀의 친구인 편집장 춘자는 그녀의 글솜씨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지만 그녀는 그건 너가 친구여서 늘어놓는 공치사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 태도는 매우 확고해서 편집장 춘자는 화가 나기까지 한다고 했다. 그녀의 자신에 대한 감感.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감感은 매우 빈약해서 어떤 칭찬으로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다. 심지어 자기비하로까지 확장되는 그녀의 ‘자신감 없음’, 그것은 긴장의 근원이 되고 있다.

그러한 긴장을 커버하는 것은 한없이 높은 웃음의 힘이다. 긴장을 상쇄시킬 만큼 높은 주파수의 웃음소리이다. 그것은 그녀의 매력적인 중저음 보이스를 하이톤의 날카로운 주파수로 변성 시켜 준다. 낮은 자신감을 커버하려는 그녀의 무의식적 습관은 높고 카랑카랑한 톤으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감이 좀 드는 걸까? 아니면 낮은 자신감을 숨길 수 있다고 여기는 걸까? 그건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녀의 높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면 그녀가 긴장하고 있구나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흥분. 그녀는 흥분해도 톤이 높아진다. 흥분하면 누구나 톤이 높아지긴 한다. 그런데 그녀의 흥분은 긴장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만든 칵테일을 손님이 좋아할까?’ 자신감 없는 결과물에 잔뜩 긴장한 그녀가 “야~ 맛 좋은데요? 이렇게 맛있는 칵테일은 처음 먹어봐요.”라는 칭찬을 들으면 갑자기 긴장이 풀어지며 그녀의 기분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그녀의 세상이다.

긴장과 흥분으로 잔뜩 고조된 그녀의 웃음소리는 마구 날아오르며 공간을 가득 채우고 마법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기 시작한다. 쿵쾅 쿵쾅 쿠르르 쾅쾅!! 그녀가 마치 초강력 우퍼를 내장한 슈퍼 돌비 사운드 스피커의 그것같은 웃음소리를 쏘아대기 시작하면, 그 소리에 포박된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내 “이모, 여기 하이보루 한잔 더!!” 주문을 외쳐대는 것이다. 반복되는 주문! 주문!! 긴장과 흥분의 도가니, 여기는 그녀의 세상이다.

그러나 때로 누군가는 그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긴장과 흥분의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것은 간과 심장에 무리가 가는 일이기도 하다. 심장이 약한 누군가, 간이 망가져 가는 누군가. 그들은 높은 주파수의 “으~캬캬캬카캬”가 들려오면 비상 사이렌이 울려 퍼지는 것 같은 두근거림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아.. 이것은, 펍의 매상을 생각하자면 그녀의 웃음소리는 돈을 부르는 소리이기에 멈추어선 안 된다. 로우톤의 매력적인 보이스는 그녀 앞으로 남자들을 줄 세울지 모르나 손님들을 흥분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나긋나긋 조용조용한 클럽 음악 소리에 몸을 흔들어 댈 이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매상을 위해 그녀의 하이톤은 더더욱 이 공간을 휘감아야 한다. 그것은 매우 옳다.

그러나 자신감. 그녀의 자신감을 생각하자면 그 하이톤은 슬프다. 그녀는 왜 자신에 대한 감感을 갖지 못하는 걸까? 우리는 그녀의 긴장과 불안, 심지어 자기비하를 팔아 돈을 벌어야 할까?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천정을 향해 쏘아 올려진 그녀의 긴장한 웃음소리, 그리고 공간 전체로 퍼져나가는 그녀의 높고도 앙칼진 주파수가 손님들의 지갑을 강타해대는 광경은 입이 째지는 광경이며 동시에 굳은 어깨가 슬퍼 보이는 매우 그로테스크한 풍경이기도 하다.

이에 그녀의 수제자인 신참 바텐더는 이색적인 제안을 했다. “차라리 욕쟁이 바텐더가 되어보는 건 어때요?” 그래, 글쟁이가 독자 취향을 맞추려다가는 어쭙잖은 글이 나오기 마련이다. 유행 따라 써봐야 맨날 전속력으로 앞서 달려가는 KTX 매연이나 마실 뿐이지. 차라리 “이 자식들아, 불평 말고 만들어 주는 대로 처 마셔라!” 일갈하는 욕쟁이 바텐더의 불호령이라면, 그녀의 낮은 중저음으로 대갈통을 후려치는 알싸한 칵테일의 맛이라면, 손님이 아닌 독자로서, 그녀의 글솜씨, 칵테일 솜씨의 팬으로서 마음껏 지갑을 열게 되지 않을까? 믿거나 말거나 학창 시절의 그녀는 껌 좀 씹어대며 꼴사납게 구는 선생님께 마구 대드는 반항아이기도 했다는데. 그걸 알고 그러는지 그녀의 유튜브에는 그녀를 백만갑 형님으로 모시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백만갑(담배를 백만갑쯤 핀 듯한 목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며).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게다가 백만갑 바텐더의 쩌렁쩌렁한 호령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잔뜩 긴장해서 쏟아져 나오는 하이톤 EMP 웃음소리보다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칵테일을 즐길 수 있을 텐데.

자기만 모르고 모두가 아는 그녀의 결과물을 이제 그녀도 인정해 주면 좋겠다. 말그대로 그녀 맘대로 멋대로 만드는 “젠젠카세”가 아닌가. 그러면 우리는 긴장이 아닌 기분 좋은 흥분으로부터 비롯된 “으~캬캬캬카”와 자신감으로 변주된 “움하하하하하” 파워풀 나팔소리의 불호령을 들을 수 있을 텐데. 물론 펍의 낮은 조명과 어울리는 그녀의 중저음에 매혹된 신사들이 맥켈란과 글렌피딕을 병 채 주문해대는 입 째지는 광경도 함께 말이다.

20세기의 여름,
그녀의 웃음소리가
그대를 부르고 있다.
그러니
닥치고 마시러 오게나.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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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여름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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