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커뮤니티의 방식
+ 다빈치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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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남기는 방식
아이작 : 역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차원 이동을 하면 뭐합니까? 이렇게 바에 앉아서 햄버거 먹는 것만 못한 데..
멀린 : 일이니까 하는 거죠, 뭐. 후후 그렇게 다니시면 외롭지 않나요? 다른 세기에서 상호작용해 봐야 돌아오면 모두 사라지는 거잖아요?
아이작 : 외롭죠. 허망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생도 역시 죽고 나면 똑같은 거 아니겠어요? 어쩌면 영혼은 수많은 차원을 떠돌아다니는 그저 먼지 같은 존재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관계를 맺으려 드는 게 아닐까요? 인간이 말이에요. 공동체를 추구하고 사회를 구성하고, 지옥 같아도 관계망에서 떠나지 못하는 인간 심리가 다 사라짐의 공포에서 오는 건 아닐까요? 결국 자신은 타인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렇게 떠돌다 보면 어느 세기에서도 제 자취를 발견할 수가 없게 돼요. 관계 맺음을 통해 자신의 흔적을 찾는 일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으면 어려우니까요.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사회든, 공동체든..
멀린 : 그래서 요원들이 그렇게 염문을 만드는 건가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아이작 : 하하하 그건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네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요원은 염문을 남긴다, 음.. 그럴 듯한데요?
아이작, 표정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씁쓸한 듯 연신 맥주를 들이킵니다. 신분을 숨기고 관계로부터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요원이지만, 그만큼 반대로 구속의 갈망 또한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구속되지 않는 자유의 깊이 만큼 외로움도 더해지고, 외로움의 깊이 만큼 다시 구속에 대한 갈망도 강렬해지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우주의 균형감각이 한 요원의 마음에 남기는 상처와 결핍의 방식입니다.
멀린 : 인간의 본성은 양방향으로 뻗어 있어요. 내면으로 외면으로, 자신에게 타인에게, 수렴하고 발산하기의 균형을 끊임없이 조절하고 성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나 5:5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죠. 한쪽으로 90이었다가 다른 한쪽으로 40이었다가, 마치 시소가 오르내리고 유리관 속 액체가 이쪽저쪽으로 흘러 다니듯, 편차와 움직임에 따라 동력이 생겨납니다. 낙차가 클수록 에너지도 증가하는 것이죠.
인생을 고해라고 하지만, 고해라는 것이 일방향이라면 그 축적된 에너지는 탈출구를 찾아 반대로 방향을 선회하기 마련입니다. 이를 역이용하면 우리는 공덕을 쌓음으로써 고통을 만회하고, 칭송과 추앙의 에너지를 겸손과 양보로 감할 수 있습니다. ‘견디고 망가지고’를 잘 활용하면 인생의 국면을 잘 전환 시킬 수 있죠. 에너지의 낙차를 이용하여 활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말 그대로 인생역전이죠. 멀리 티벳 밀교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일상에서 이런 에너지를 잘 사용하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도 지혜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이 에너지의 방향과 수준에 민감하다는 거예요.
세상의 이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류는 오랜 세월 개인이었고, 무리 지었으나 억압받지 않는 시간을 수십만년 살아왔어요. 반대로 문명사는 억압의 시간이고 서열의 시간이었지만, 밀집된 역량은 기술과 정신세계의 발달을 극대화했고, 중앙집중이 강화될수록 인류는 점점 신에 가까워졌죠. 바벨탑을 쌓은 거죠.
사회적 인간의 출현은 문명의 출현으로 인한 것입니다. 공동체란 문명의 소산인 것이죠. 그러나 문명의 극단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만나며 철저히 개인으로 분화되었어요. 생존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이제 정신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된 것이죠. 욕구의 수준이 올라간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발견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 발견한 ‘나’를 확인시켜주고 증명해 주는 것은 타자란 말이죠. 아이작의 말처럼 자아의 확인은 타인을 통해 완성되니까요.
아이작 : 그러니까요. 공동체는 파괴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럴수록 공동체에 대한 욕구는 더 강화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에너지가 분화될수록 결집하고자 하는 심리 역시 더 강화될 테니까요. 말씀하신 대로면 인류는 개인화가 가속될수록 역방향으로 결집하려고 할 텐데, 그것은 또 어떤 모양일까요?
멀린 : 아이작 생각은 어떠세요?
커뮤니티의 방식
아이작 : 글쎄요. 서편의 정신적 흐름을 따르자면 그것에는 어떤 절대성이 배제된 새로운 커뮤니티의 탄생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군요. 절대 권력을 중심으로 인류가 다시 헤쳐모이기에는 개인들이 너무 성장해 버렸으니까요. 개개인이 하나의 왕국이 되어 가고 있으니, 조직의 부속품으로 개인이 종속되기에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을 넘어서고 있는 듯해요. 다시 덩어리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지금의 개인들은 자신을 자본주의 노예로 폄하하지만, 원하는 모든 말을 할 수 있어요.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심지어 개인이 방송국보다 더 큰 영향력과 수입을 얻을 수도 있게 되었어요. 여론의 눈치를 보는 정치 권력을 움직이는 건 오히려 인싸, 셀럽들이라구요.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라고 했지만, 지금은 모든 개인이 국가인 셈이죠. 다만 독립을 유보한 채로..
멀린 : 그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방향이 된 것 아닌가요? 인류의 진화 방향으로 굳어진 듯하죠? 아무래도?
아이작 : 우드로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들고나왔을 때 이미 식민제국주의가 막을 내리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국가형태도 곧 종식을 고하고 변화하지 않을까요? 민족국가, Nation State라는 것도 인위적이고 제한적이어서, 나라와 지역마다 결집의 방식이 천차만별이에요. 중동처럼 여전히 종교가 절대권력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거나, 아프리카 대륙처럼 소수민족들 간의 갈등과 내전이 멈추지 않는 곳들을 보면, 아직 인류가 적절한 커뮤니티의 형식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멀린 : 오히려 사이버 공간에서는 그것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해요. 취향과 세계관에 따라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그것은 가차 없이 회원수, 조회수, 접속빈도로 가치와 힘이 증명되죠.
아이작 : 유튜브와 SNS가 민족자결주의를 넘어 개인자결주의를 향한 물꼬를 틔워준 것인가요?
멀린 : 하하 그렇다면 블록체인/암호화폐는 일종의 독립운동이 되겠네요. 결국 실질적인 힘인 금권의 유통생산구조를 독립하겠다는 얘기니까요.
아이작 : 그래서 말이죠. 그게 정말 될까요?
멀린 : 마법사로서 물으시는 겁니까? 아니면 코린이의 입장을?
아이작 : 하하 같은 마법사끼리 입장을 물을 건 아니고, 저는 뭐 아직 시작도 못 했으니 코린이의 입장이 뭔지 들어도 이해도 못 할 것 같습니다. 개인으로서 말입니다. 멀린님 개인으로서는 이러한 흐름이 어떻게 느껴지냐는 거죠.
멀린 : 뭐 크립토 시티를 건설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낙관적이라고 말씀드려야겠으나, 쉽지는 않겠죠. 21세기판 개인독립운동 아니겠어요? 아 그러고 보니 아이작은 대영제국에 살아오신지라, 독립운동을 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시겠군요?
아이작 :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저도 나름 스코틀랜드 출신이라구요. 그 영화 안 보셨어요? Freedom!!
멀린 : 아, 브레이브 하트! 아이작이 스코틀랜드 출신이셨군요.
아이작 : 작은 섬나라지만 우리도 분열과 갈등의 역사가 깊답니다. 아.. 전생이라 잘 기억을 못 하시는군요. 후후 저보다 더 잘 아실 텐데.
멀린 : 작은 섬나라라.. 요즘 한국에는 영국이 섬나라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아이작 : 네? 정말입니까? 아, 이거 섭섭한데요. 아니 좋아해야 하나? 유럽대륙의 절반이 영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멀린 : 절반까지는.. 암튼 영연방의 이미지가 워낙 크다 보니, 한때 세계의 1/4이 대영제국의 식민지 아니었습니까? 아, 캐나다, 호주만 해도 도대체 영국의 몇 배나 큽니까? 그러고 보니 국력의 차이는 대륙의 크기에서 오는 건 아닌데 말이죠. 분리 개별화되는 새로운 사회의 권력도 결집된 인원의 크기에서 나오는 건 아니겠죠?
아이작 : 인구의 힘이 국력이면 중국, 인도를 어떻게 이기겠어요?
멀린 : 그러고 보니 두 나라 모두 영국한테 탈탈 털렸었네요. 결국 개인화된 사회에서도 양보다는 질이라는 얘기인데.. 영국은 어떻게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었죠?
아이작 : 다 운이죠.
멀린 : 하하하하 네! 맞습니다. 운이죠. 그렇다면 운이 서진西進한 건가요? 대륙에서 브리튼 섬으로, 다시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간 셈이네요.
아이작 : 그러다 중국에서 막혔네요.
멀린 : 마약으로 어찌해보려고 했으나.. 후후 인도는 지배할 수 있었는데 중국은 왜 접수하지 못했을까요?
아이작 : 무슨 소리세요? 당시 중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었지 않습니까? 자기 영토 챙기기에도 바쁜, 몸 큰 거인이었죠. 결국 청나라도 무너졌으니, 영국에서 운이 떠나가는 시점이 아니었으면 또 어땠을지 모르죠. 운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으니까요.
멀린 : 그러네요. 당시 영국이 꼭 지금의 미국 같았네요. 그런데 미국이 전 세계를 헤집고 동구권, 소련까지 무너뜨렸는데, 다시 중국이란 장벽에 부딪히고 있는 거군요. 요즘의 상황을 보면.. 이건 또 어떻게 될까요?
아이작 : 운이 어디로 흐르고 있을까요? 멀린은 어떻게 보세요?
멀린 : 한국으로? 하하하하하
아이작 : 미국에서 중국으로 가다 멈췄으면 한국이겠네요. 하하하
멀린 : 농담입니다.
아이작 : 아니에요. 일리가 있어요. 요즘의 한류 현상도 그렇고. 당시 청나라의 문화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었잖아요? 근대 후반에는 일본 문화가 그랬고. 그런데 지금은 한류가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잖아요. 아, 근데 BTS 싸인은 어떻게 안 되겠죠??
멀린 : 쩝.. 제가 한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소속사 건물 앞에서 주문이라도 좀 외워보도록 하죠. 그런데 한국은 여러모로 좀 미약하지 않나요? 제국주의 시대 영국에 비하면 아직은..
아이작 : 글쎄요. 국력을 단순비교하기는 그렇지만, 멀린 말씀대로 개인화 시대에 개인의 역량만을 보면, 한국에서 개인화된 새로운 사회가 먼저 시작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사이버 공간에서 한국의 역량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지 않습니까?
멀린 : 네 그렇긴 하죠. 무슨 투표만 했다 하면, 국내든 해외든 서버를 마비시켜버리기 일쑤니까요. 인구밀도도 높고, 도시화가 발달한 사회라서 유행과 문화의 확산속도가 엄청 빠르죠. 덕분에 정보화 사회에 비약적인 변화속도를 경험할 수 있었죠. 한류도 역시 사이버 공간의 확장속도와 함께 영향력을 갖게 되었구요.
아이작 : 그건 마치 영국이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과 같은 일이 아닐까요?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가 제국주의 시대의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미지의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바다, 대양. 지금은 사이버 공간이 제2의 바다, 대양이 아니겠어요?
멀린 : 그런 거라면, 개인화되는 사회의 새로운 커뮤니티는 한국에서 먼저 시작될 수도 있겠네요. 제국주의가 식민지의 개척, 통치방식을 설정했던 것처럼, 개인화된 사회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방식 역시 먼저 시작한 이들이 표준을 정하게 되겠죠?
아이작 : 그건 또한 무서운 권력이죠. 그 시대로 돌아가서 무자비한 수탈이 아닌 문명의 교류로 접근했더라면, 인류는 어떤 역사를 만들었을까요? 뭐 교훈 같은 걸로 변화되는 게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멀린 : 한국은 여러모로 사이버 공간의 표준 같은 것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온라인 게임 같은 경우는 한국을 빼고는 설명할 수가 없죠. 미래에는 게임의 방식이 커뮤니티의 방식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좀처럼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알 수 없는 과도기이기는 하네요.
아이작 : 멀린, 블록체인/암호화폐는 어떤가요? 그거야말로 직접적으로 정치, 경제를 다루고 있잖아요?
멀린 : 글쎄요. 이제 시작단계라.. 아무래도 기존 국가 커뮤니티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아요. 컨센서스를 구성하는 방식이나 커뮤니케이션 방법들이 뭔가 새로운, 개인화되는 사회의 표준을 찾아가야 할 텐데, 지금은 기존의 방식이 여기서도 유효한가를 실험해 보는 수준이라고 할까요?
아이작 : 그렇다면 시행착오가 많겠군요.
멀린 : 네 그런 단계죠. 그래서 더 파격적이고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기존의 방식과 다른, 전혀 새로운 차원의 커뮤니티의 형식을 찾는 거 말이에요. 물론 지금의 국민국가처럼 민주주의, 공화정,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 하나의 형식으로 규정되거나 하지는 않을 거예요. 개인화된 사회는 커뮤니티의 양상이 수만, 수천가지일 테니까요. 다만 그것을 찾고 형식을 갖추는 과정에는 어떤 표준들이 등장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발생에서 모둠을 만들고 형식을 갖추는 일련의 과정에서 말이죠.
아이작 : [스팀시티]가 그 모델이 될 수 있겠군요.
멀린 : 저도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전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네요. [스팀시티]를 시작하고 이런 일들이 있을 줄은 1년 전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아이작 : 직관을 따르는 마법사들의 삶이 다 그렇죠. 저도 멀린과 출장 뒤풀이를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하하하
멀린 : 아이고, 이런 민폐를.. 하지만 뭐, 우리 팔자가 그렇죠.
팔자타령을 해대는 두 마법사는 마주 앉아 감자튀김을 연신 집어 먹으며 낄낄대고 있습니다. 이런 진지한 얘기를 겨우 햄버거나 먹으며 떠들어대고 있는 마법사들이 우스워 보이기도 하고 측은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새 로마 공항 활주로에는 붉은 석양이 깔리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멀린 : 그런데 제가 요즘 좀처럼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있는데요. 아이작이라면 힌트를 주실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아이작 : 어떤 거죠?
멀린 : 그러니까 이 국민국가의 다음 모델이 되는 개인화된 커뮤니티는, 취향과 세계관에 따라 자유롭게 헤쳐모이게 될 테고, 입,탈퇴가 자유로울 것이며, 블록체인/암호화폐의 발달에 따라 저마다 개인화된 화폐와 생산, 유통구조를 가지게 될 거라는 정도는 알겠는데, 그 국방의 문제, 군대, 치안, 안보의 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이게 핵심일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아이작 : 글쎄요? 그건 정말 어떻게 될까요? 중앙화된 권력이 무력으로 대응하면 사실 속수무책이긴 하죠. 그건 진화의 방향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기도 하고.. 결국 근대국가도 해상권을 장악한 군사력으로부터 시작된 거긴 한데. 음.. 아! 멀린, 혹시 몰타 기사단에 대해서 들어보셨어요?
멀린 : 네? 몰타 기사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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