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섬 너는 새 1

by mmerlin

[교토바다 단편선] Jul 30, 2021 l 교토바다

 

 

 

 

 

“묶어, 묶고 가. 그냥은 못 보내.”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왜? 뭐가? 너 안 묶고 가면 거기서 묶여.”

“나는 파랑새가 아니야. 미안해”

“이런 병신 같은 게.”

비뇨기과 앞, 여자는 남자에게 정관수술을 종용하고 있다. 여자에게 중요한 건 앞으로 닥쳐올, 아니 이미 오래된 남자의 부재가 아니라 불행의 반복이고 습의 연속이다.

“그래 너는 파랑새가 아니야. 그걸 내가 몰랐을까 봐. 내가 그렇게 바보로 보이니? 난 섬이라고 섬. 새가 찾아오기만 기다리는 섬이야. 그런데 너는 왜 날지 않는 거야? 문제는 내가 아니라 너야. 넌 날지 않고, 아니 날지도 못하고 바닥만 쳐다보고 있잖아. 그래 그년은 하늘이 되어 주겠다던? 넌 그년의 하늘에서 얼마나 날 수 있을 것 같아? 섬도 못 벗어나는 주제에. 그러니까 묶어, 갈 거면 묶고 가라고.”

“넌 뭘 자꾸 묶으라는 거야. 내가 언제 새라고 했어. 너가 날 새 취급한 거지. 난 그저 답답할 뿐이야. 갑갑할 뿐이라고.”

“이 바보야. 그러니까 날아야지. 그렇게 무거워서 넌 날지도 못하잖아. 날아야 나한테 오지. 날아야 내 섬으로 오지. 흐흐흑”

여자가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는 남자에게 날으라 하고 있다. 무거워 뒤뚱거리다 자꾸 고개를 처박는 남자에게 제발 훌훌 털어버리고 날으라고, 저 높이 날아올라 섬인 자신을 찾아오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섬이야, 섬이라고. 혼자 있어서 섬이 아니라 너를 기다리느라 섬이야. 무엇과도 연결되지 않은 채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넌 어렸을 때부터 사람 외롭게 하는 데 뭐가 있었지. 난 그래도 좋았어. 기다릴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섬은 외로워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하지만, 모두와 연결된 대륙에서 아무와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면 그게 더 외로운 건데. 그게 더 힘든 건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몰라.”

“널 떠나겠다는 게 아니야. 내가 널 어떻게 떠나겠니. 이제껏 너뿐이었는데.”

“난 집이 아니야. 섬이라고. 넌 자꾸 날 집 취급해. 그러니까 자꾸 나가잖아. 집은 돌아올 곳이지 날아올 곳이 아니야. 난 네가 다시 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 모습에 반했는데. 넌 날 집 취급하며 더이상 내게 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잖아. 아니 나는 법을 잊어버렸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니..”

“나도 더이상 자신을 속이고 살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이 바보야. 왜 그러고 살았어? 왜! 왜 속이고 살았냐고! 날아야지. 훨훨 날아야지.”

남자는 말이 없다. 남자는 떠나려는 게 아니다. 남자도 알고 있다. 나는 법을 점점 잊어가는 자신이 자꾸 초라해질 뿐이다. 날고 싶다면 날개를 펴야 하는데 날개는 사용하지 않아 굳은 지 오래다. 언제였을까? 이걸 펴고 훨훨 날던 때. 아, 아마도 그때 하늘 위에서 여자를 처음 본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수직하강했지. 그녀에게 닿으려.

여자는 자신에게 돌진하는 남자가 당황스러웠지만, 그건 자신의 꿈이기도 했다. 멀리멀리 떠나고 싶은 자신의 꿈. 하지만 이번 생은 섬으로 살기로. 이렇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떠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면 떠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떠돌아다녀야 한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누가 맞아주기만을 바라며 떠돌아다니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외로워도 기다리는 편이 낫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나는 섬, 그러니까 기다릴게. 나는 새, 언제든 날아올게. 함께 하는 시간의 길이는 중요치 않다. 둘은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남자의 비행 솜씨는 비상해서 어디서든 그에 관한 소식이 들려왔다. 바람이 전해주고 구름이 전해주는 남자의 소식은 함께 있을 때보다 더 자세하고 드라마틱했다. 그것은 섬에게 기쁨이다. 새는 날아야 하니까. 뒤뚱이는 새를 보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없다. 사랑이라면.

“날지 못한 지가 너무 오래되었어. 하지만 이젠 좀 날아볼 수 있을 것 같아. 너가 아니어서 미안해.”

“미안할 건 없어. 내가 보고 싶은 모습도 그거니까. 그리고 너는 날아야 해. 울지 말고 날으라고.”

“그런데 왜 나를 여기로 데려온 거야? 이렇게 너를 마주하고 있는 나도 고통스럽다고.”

여자는 대답이 없다. 눈물이 잔뜩 고인 얼굴로 남자를 빤히 바라본다. 쏟아내지 못하는 눈물은 여자의 얼굴에만 고여 있다. 여자의 얼굴이 수정구슬처럼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묶지 않으면 넌 묶일 거야. 그건 너무 지독해. 그럼 넌 날 수 없게 된다고. 영원히. 내가 널 모르니? 자식을 낳겠다고? 널 묶어두지 않으려고 나도 포기했는데, 거기다 집을 짓겠다고? 그건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그럼 나도 섬이 될 수 없잖아.”

새가 날아오지 않는 섬은 죽은 섬이다. 여자가 섬이 될 수 있는 건 남자가 새이기 때문이다. 새와 섬으로 만나는 건 남자와 여자에게 허락된 유일한 방식이다.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유효하다는 걸 여자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물론 집을 꿈꾸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여자는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남자를 만나고는 더이상 자신에게 집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바로 알아버렸다. 남자와 여자가 사는 세상에서 집은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집을 얻기 위해 서슴없이 자신의 영혼을 저당 잡혔다. 모두가 미쳐서 집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는 집에 꼼짝없이 갇혀 서로를 할퀴어대면서도 집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와 집을 짓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그를 받아들였다.

‘이 남자는 새야. 그러니 집을 짓자는 얘기는 하지 않을 거야. 그와 나는 평생 섬과 새로 살 수 있어. 그건 사람들은 모르는 새로운 관계의 방식이지. 사랑은 하는 거지 짓는 게 아니니까. 짓는 건 업이고 카르마지. 사랑은 불태우는 거야.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거라고.’

그래서 어쩌면 세상의 안주인과 바깥양반들에게는 만행처럼 보일 수많은 비행들이 섬과 새 사이에 오고 갔다. 섬은 모든 것을 보고 또 모든 것을 들었다. 그것은 새의 비행, 그것뿐이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며 왜 집을 짓지 않느냐고 추궁을 해댔지만, 여자는 알고 있다. 집을 지으면 남자는 죽게 되리라는걸.

“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한 두 번이니. 그래도 집은 안 돼.”

“집은 널 줄게.”

“이 멍청한 새끼. 그 집을 말하는 게 아니잖아.”

“위자료를 달라는 거야? 너도 알잖아. 이 집이 내가 가진 전부라고.”

“너 그것밖에 안 되니? 그런 생각밖에 못해? 그러니까 너가 날지 못하는 거야.”

남자는 여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자는 살고 있는 집을 달라는 게 아니다. 여자는 남자가 다른 곳에 집을 지을까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감옥 같은 집을. 그러면 남자는 죽는다. 그걸 막으려고 여자는 남자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도시에서 가장 정관수술을 잘한다는 비뇨기과.

“수술을 받으라고? 이걸 왜 받아야 하는데? 우리 사이에 이게 무슨 필요가 있어?”

‘넌 집을 지으면 안 돼. 아이를 가지면 너는 갇히게 될 거야. 집을 짓게 될 거고, 쓸데없이 강한 책임감에 묶여 꾸역꾸역 버텨대다 죽어갈 거라고. 나 같은 여자는 너에게 또 없어. 이미 보여주었잖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사랑, 웃기시네. 그래 얼마든지 하렴. 그래도 집을 지어선 안 돼. 그건 네 생명이 달린 거라고.’

여자는 속으로 수만 마디를 외쳐대고 있다. 남자는 들을 수 없는 말들, 이야기들. 그것은 마치 인어공주의 잃어버린 목소리처럼 내뱉을 수도, 말해서도 안 되는 무엇이다. 물거품이 되어버릴 테니까.

여자는 신에게 서원했다. 남자를 신께서 보낸 새로, 섬인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신께서 보내주신 영혼의 짝으로 받아들이겠노라, 남자가 나는 법을 잊지 않도록, 그를 날지 못하게 묶는 집 따위는 짓지 않겠노라 서원했다. 그리고 그 서원을 지키기 위해 지난 세월을 함께 버텨왔다. 불안도, 슬픔도, 고난도 이어졌지만 남자는 그때마다 비상했고 매번 멀리, 더 멀리 날았다. 그런데 왜 남자는 나는 법을 잊게 되었을까?

“넌 그 책임감이 문제야. 도대체 왜 날 찾아온 거야.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얘기를 하는 거니? 미안하다고? 그 말이 하고 싶었어? 그게 너의 책임이야? 네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거? 그게 너의 책임이냐구.”

“거짓말을 할 순 없잖아. 그리고 앞으론 네 옆에 있을 수도 없고. 물론 널 떠나겠다는 말은 아니야. 그냥 내가 이렇다고. 이런 놈이라고. 너도 알잖아.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좀 안 할 수 없니? 뭐가 미안해. 너가 미안해해야 할 건 날지 않는 거야. 비행을 멈춘 거라고. 날 섬이 아니라 책임져야 할 집으로 취급한 건 너라고. 내가 아니라.”

새들이 비행을 멈춘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집에 미쳐가기 시작하자 새들은 더이상 날 수 없게 되었다.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집값의 상승과 함께 점점 하늘에서 새의 비행이 사라져가기 시작했다는 걸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파트가 너무 높이 올라가 새들이 자꾸 유리창에 부딪혀 죽어 그렇다 하고, 또 누군가는 전자파 때문에 새들이 모두 떠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새가 왜 비행을 멈추었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새들은 대신 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구경거리, 동정거리가 된 새들은 사람들이 자꾸 먹이를 던져주자 그것에 안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날지 않고 뒤뚱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날았다가는 먹이 주위로 빠르게 모여드는 새 무리에서 밀려나 바닥에 떨어진 먹이를 주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냥하던 새들도 바닥에 떨어진 쉬워 보이는 먹이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들끼리 질서를 만들었는데, 줄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는 꽤 오랫동안 홀로 날았다. 함께 날던 이들이 자꾸 사라져 갔지만 그래도 자신의 본성을 버릴 수 없던 남자는 날고 또 날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절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혼자 날고 싶었던 게 아닌데. 남자는 홀로 나는 지겨움에 대해, 비루함에 대해 체감하기 시작했다. 점점 비행이 무의미해져 갔다.

“넌 내가 나는 법을 잊었다고 하지만 혼자 날 순 없어. 그게 얼마나 참담하고 허망한지 아니? 무리들에게서 배척당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아무도 날지 않는 하늘에 혼자 떠 있는 것만큼 절망스러운 건 없어. 내가 원해서 비행을 그만 둔 게 아니야.”

남자는 혼자 나는 일에 지쳤다. 함께 날던 때를 떠올리며, 속도를 내고 서로를 격려하며 대열을 이루던 때를 떠올리며 눈물짓는 날이 많아졌다. 한숨과 수심이 가득한 먹구름이 남자를 뒤덮기 시작하자 날개는 한없이 젖어 들었고 점점 무거워져 들어 올릴 수도 없게 되었다. 눈물을 쏟아낼 수 없는 남자는 삼켜버린 눈물 때문에 자꾸 무거워졌다. 그리고 어느새 새가 아니라 섬이 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섬은 그녀로 족해. 나마저 섬이 되면 우리는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될 거야. 나는 날아야지. 아니 걸어서라도 그녀에게, 나를 기다리는 섬에게 다가가야 해. 그 길에 뭐가 기다리고 있더라도.’

남자는 떠나는 게 아니다. 그녀에게로, 섬에게로 다가가는 길이다. 그 길 여기저기에 인연이 놓여있고 그건 잠깐이든 영원이든 남자로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길의 끝에 누가 있는지는 분명한 것이다. 그게 여자에게로 돌아가는 길인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날아오르겠지. 길 위에서 다 쏟고 나면, 흘리지 못한 눈물을 피땀으로 흘려보내고 나면 다시 가벼워지리라. 그때에는 그때에는 날아오르겠지. 그리고 닿겠지. 너에게. 기다리는 너에게.

“그러자. 알았어. 수술받을게.”

도시에서, 집이 가득한 도시에서, 정관수술을 가장 잘한다는 비뇨기과 앞에서 여자와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묶는 일이지만 묶이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남자는 이제 묶은 채로 걷기 시작할 것이다. 처음에는 걷겠지만 곧 뛸 거고 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그리고 섬은 기다릴 것이다. 남자가 결국 자신에게 닿으리라는 걸 신께서 알려주셨으니.

 

 

 

 

 

 

교토바다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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