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동안 책을 산 게 아니다. 종이를 샀을 뿐이다.

by mmerlin

20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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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책을 산 걸까요? 종이를 산 걸까요? 음악을 산 걸까요? CD를 산 걸까요? 콘텐츠의 가치는 그동안 그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플랫폼에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격 결정권은 누구에게?

모짜르트, 베토벤이 교향곡을 작곡하던 시절, 그 콘텐츠의 가치는 실연을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물론 귀족들의 후원이 주요했지만, 모짜르트의 곡을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연주회가 열리는 실황 현장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이런 경우 콘텐츠에 대한 가격정책은 창작자 또는 제작자가 직접 행사할 수 있습니다.

관객이 오든 안 오든, 공연티켓을 1,000만원에 팔겠다면 그런 겁니다. 가격을 얼마를 받든지 그것은 모두 창작자와 제작자의 권한에 의해 결정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축음기가 발명되고 음악이 실연의 현장을 떠나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는 매체에 담겨지기 시작하자, 가격을 정할 권리는 그러니까 창작자와 제작자가 아니라, 매체/플랫폼에 의해 결정되기 시작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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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형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1시간 2시간.. 러닝타임에 제한을 받지 않던 음악의 형식이, 그것을 담는 매체에 의해 60분, 5분, 3분.. 제한되기 시작한 겁니다. 창작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매체의 한계를 자기 작품의 한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미술작품은 좀 다릅니다. 그 쟝르가 가진 희소성에 의해, 미술작품은 그 작품의 가치를 제법 정당하게 인정받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창작자가 원한다고 해서 원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팔리든 말든 상관없다면 부르는 게 값입니다. 대중이 열광하는 작품이라면 고흐나 피카소의 작품처럼 천문학적인 액수로 가격이 치솟기도 합니다. 미술작품이 투자의 대상이 되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모짜르트의 교항곡은 만 원이면 살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아니 스트리밍으로 듣는다면, 요즘 3천원에서 5천원이면 그의 작품 전체를 감상할 수 있죠. 그러나 모짜르트의 친필 오선지가 아닌 이상, 그의 작품의 가격은 매체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별 시덥잖은 음악의 가격이나 모짜르트의 음악이나, CD를 사면 만 원이요, 스트리밍으로 들으면 몇 천곡, 몇 만곡을 듣는다 해도 3천원, 5천원이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짜르트의 창작품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고 있는 게 아니라 매체, 플랫폼 이용료를 내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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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의 가격을 지불한 게 아니다. 매체/플랫폼 이용료를 냈을 뿐이다.

모짜르트가 피카소보다 예술적 역량이 떨어져서일까요? 그의 천재성이 부족해서 일까요? 물론 매체에 종속되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실연으로만 작품을 판매한다면 모짜르트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테고, 그가 죽고 나면 그의 작품은 사라지고 마는 겁니다.

저장매체가 생겨났다는 건 그 작품에 영원성이 생겨났다는 것이고, 그것은 공간과 시간의 장벽을 넘어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생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10곡에 1만원을 받는 다 해도 CD, LP에 담아 전 세계에서 수 세기, 아니 영원히 계속 판매하는 것이 더 큰 부가가치를 생성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매체의 형식에 음악의 형식을 맞추면서까지, 매체에 종속되어 창작을 해 온 관행에, 디지털 세상은 뒤통수를 쳐버렸습니다.

2000년대 초반 MP3 불법 다운로드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음악은 공짜가 되어 버렸다가 겨우 묶음 상품으로 곡당 이쑤시개 하나 정도의 가격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모짜르트, 베토벤이 들으면 절필을 할 일입니다. 내 곡의 가치가 겨우 이쑤시개 하나보다 못하다니 말이죠. 심지어 한동안은 공짜였어요. 음악이 공공재인가요? 공기인가요? 물도 사먹는 시절에 물값만도 못하다니.. 어쩌다 이렇게 돼 버린 겁니까?

*이쑤시개보다 싼 노래 1곡… 신대철 “음악계는 맨날 블랙프라이데이”

글도 예외가 아닙니다. 필사에 의해 파피루스에나 기록되던 시절, 지식은 모두 구전되었고 그렇기에 현장성.. 지식을 소유한 사람, 그 자체가 가치였을 겁니다. 그래서 대중은 현자를 모시고 지식인을 모셔서 그의 고견을 청취하였습니다. 설교든 강연이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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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인쇄술이 발명되고 지식이 인쇄물에 담기기 시작하면서, 역시 글도 음악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원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전 세계의 지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꼭 러시아를 가지 않아도 톨스토이의 지혜를 접할 수 있고, 타임머신을 타고 16세기 영국으로 날아가지 않아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그 현장성이 제거된 작품의 총 부가가치가 마구 상승하였다고 해서, 독자가 그 콘텐츠의 가치를 지불한 건 아닙니다. 대중이 지불한 건 종이의 가격일 뿐입니다. 그러니 톨스토이의 생의 지혜가 모두 담긴 책 한 권이나, 몰라도 그만인 연예인의 가십거리를 치장해 놓은 에세이 한권이나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된 겁니다. 그건 톨스토이 작품의 가치를 지불한 게 아니라 종이 묶음의 가격을 지불한 겁니다. 구입한 종이 묶음에 톨스토이의 지혜가 적혀있을 뿐이고, 독자가 그것으로 인생을 변화시킬 만한 엄청난 터닝포인트를 얻었다 한들, 톨스토이는 그 종이값의 10%만을 댓가로 받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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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냉정히 얘기해서 콘텐츠의 가치가 아닙니다.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아닙니다. 단지 경제논리에 의해, 매체/플랫폼을 통한 대량판매가 수익적인 면에서 더 크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이루어진 선택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이아몬드 반지의 질과 상관없이, 다이아몬드 케이스의 가격을 일률적으로 매겨, 케이스 가격만 받고 팔아먹은 탓입니다. 조금씩 비싸게 파는 것보다 싸게 많이 파는 게 더 수입이 컸기 때문입니다.

이건 솔직히 작가로서는 자존심을 파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내 콘텐츠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대중성의 가치만을 평가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랬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동안은 그 매체를 통한 판매의 총수익이 비교할 수도 없이 커서, 이런 평가가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콘텐츠의 값이 디지털로 인해 똥값이 된 지금은 어떻습니까?

 

디지털의 배신, 디지털의 기회

더 이상 가수, 창작자들이 곡을 팔아서 수익을 낼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신곡 발표는 어디까지나 공연을 위한 요식행위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은 공연, 행사, CF 등의 이벤트로 받는 개런티가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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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축음기 이전의 시대로 돌아간듯 합니다. 공연의 개런티는 창작자/제작자가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다시 가격 결정권을 창작자/제작자가 가지게 된 것입니다.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기도 합니다. 이러다 엑소나 방탄소년단이 신곡을 음원으로 발표하지 않고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게 한다면, 음악산업과 콘텐츠의 가치는 전혀 다른 방식의 평가를 받게 될 겁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같은 출판 불황의 시대에 책을 낸다는 것은 강연의 보조수단에 불과해졌습니다. 작가는 책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책이 나왔다는 빌미로 열리는 각종 강연을 통해 돈을 벌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글 자체의 가치, 음악 자체의 가치는 어디론가 실종된 듯합니다. 공연이나 강연이나 오프라인의 시공간은 제한되어 있으니, 이것은 산업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이 딴 식으로 계속 흘러갔다가는 누가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겠습니까? 차라리 이쑤시개를 깎는 게 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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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등장한 스티밋.. 아 이 플랫폼은 과연 이제까지 한 번도 제대로 콘텐츠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아보지 못한 글, 음악 그리고 여타 콘텐츠 분야에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게 해 줄까요?

적어도 스티밋에서 글은 종이값에 의해 평가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스티밋에서 작가는 그의 외적 명성에 의해 평가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스티밋에서 콘텐츠는 이쑤시개 취급받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콘텐츠가 콘텐츠 자체로서의 가치를 평가받기 위한 첫 번째 길목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쨌든 그동안 콘텐츠를 산 게 아닙니다. 종이를 사고 CD를 샀을 뿐입니다. 그래서 무한복제가 가능한 디지털의 특성상, 종이값도 CD 값도 들지 않으니, 글과 음악이 공짜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냥 매체/플랫폼에 자신들의 가치를 위임하고 있던 창작자들은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에 자신의 작품들을 팔아버렸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디지털 다이아몬드가 등장하자, 똥값이 되어버린 김중배의 반지를 어쩌지 못하고 이쑤시개랑 바꿔 먹고 있었습니다.

매체/플랫폼의 유통업자 탓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냥 돈을 따라 이리저리 흘러 다닐 뿐입니다. 문제는 자식 같은 작품을 내어 놓은 창작자들입니다. 자기 자식들의 가치를 단지 수입이 많다는 이유로 종이값, CD값에 팔아먹은 부모 된 창작자들의 선택이, 결국 자기 자식들의 가치를 이쑤시개 수준으로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아.. 어쩔까요? 스티밋은 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심순애들을 구원해 줄까요? 콘텐츠의 가치를 후려치며 만행을 부려 온 유통업자 변사또에 대항해, 절개를 지키며 자신의 콘텐츠를 보호해 온, 숨은 창작자 춘향이들을 구원해 줄 이도령의 어사출두는 언제쯤이나 가능할까요?

마법사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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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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