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연대기_ 후기後期
[아니마 연대기 l PART 2. 2016-2026] M.멀린
제3장_ 총수님을 찾습니다
그때, 이 혼란스러운 공간에 누군가 등장해서 이상한 방榜을 붙였습니다. 자신을 30세기에서 시간을 거슬러온 마법사로 소개한 이는, 이 주인 없는 금광에 창작자를 위한 도시를 세워보지 않겠냐며 그럴 용기를 가진 이가 누가 없냐며 <총수님을 찾습니다>라는 방을 붙인 것입니다. 마법사는 이 새로운 시스템이 콘텐츠 플랫폼을 넘어 상상이 현실이 되고 관념이 물질이 되는 새로운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며, 이 일에 사람들을 일으킬 깃발을 들고 자신의 삶을 투자할 총수가 어디 없냐며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마법사의 수소문에 자신의 미래기억을 떠올리며 운명적으로 반응한 두 명의 총수가 등장하였습니다.
한 명의 총수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친구들과 함께 만들고 싶었던 인생의 꿈이라며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는 한때 오체투지를 하며 티벳독립운동을 하던 전사였고, 인도 라다크의 산골짝에서 서로의 재능을 통해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카페를 열며 커뮤니티를 꿈꾸던 이였습니다. 그는 라총수 입니다. 또 한 명의 총수는 분산화되고 개인화된 앱 생태계를 꿈꾸며 정책이 아닌 시스템으로 분산화, 탈중앙화의 이념을 구현하고 싶어 하는 개발자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스팀시티]의 비전이라면 자신의 IT 기술이 그 비전을 실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며 ‘저요!’ 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한열총수 입니다. 모두가 수긍은 하지만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작당作黨에 용기 있게 자원한 두 명의 총수 덕분에 [스팀시티]는 비로소 닻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30세기에서 날아온 마법사와 자신의 때를 기다리던 두 총수의 미래기억이 21세기의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이 주인도 없고 룰도 없는 금광에 창작자를 위한 미래도시를 세울 총수의 역할은 분명했습니다. ‘모든 권한을 가지고 모든 책임을 진다.’ 말 그대로 총수總帥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커뮤니티를 할 수 없고 거주민이 없이는 도시가 생겨날 수 없으니, 이 새로운 도시에는 함께 커뮤니티를 이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초청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없이 펼쳐진 황금 들판에 누군가 금을 긋고 경계를 세운 뒤, 함께 도시가 되어보지 않겠냐고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래가 이미 곁에 와있는데 그 미래를 현실로 가져오려는 움직임은 좀처럼 보이지 않으니, 우리가 먼저 움직여서 그 미래를 우리의 삶으로 가져오지 않겠냐고 사람들에게 제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도시의 이름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도시, start in motion [스팀시티]라 명명하고 이 위대한 여정에 동참할 시민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새로운 시도에 관심과 호기심을 느끼고,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팀시티]의 시민이 되기 위한 조건을 마련했습니다. 그것은 100권의 책, 100편의 영화, 100곡의 음악과 100개의 도시를 경험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었습니다. 콘텐츠 플랫폼 [스팀시티]의 시민으로서 문화적 소양과 콘텐츠에 대한 열정을 갖추는 일은 기본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역사회를 넘어 세계 현장에서 경험하는 일은 네트워크 시티를 지향하는 [스팀시티]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코스모폴리탄적 자격인 것입니다.
또한 세계는 지식과 정보의 사회를 거쳐 지혜와 영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주입된 지식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삶의 경험으로 축적된 지혜가 아니고서는 답을 알 수 없는 포스트 모던의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지켜가기 어렵습니다. 관념과 물질의 경계,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21세기에서 마음과 생각의 본질, 직관과 이성의 관계를 분별할 영성의 관점을 갖추지 않고서는 소외와 공허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소통과 경험으로 체득된 지혜와 영성이야말로 21세기의 경쟁력이자 미래 시민의 소양인 것입니다. 그러한 지혜와 영성은 삶의 경험과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으로 축적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과정을 <위즈덤 레이스>라 이름 짓고, 이 과정에 참여하는 미래의 [스팀시티] 시민들을 <위즈덤 러너>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증거로 약 100만 원 상당의 스팀파워를 임대받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반응한 60여 명의 사람들이 <위즈덤 레이스>를 선언하였고, 그 결과 30,776.761의 스팀파워가 @stimcity 계정으로 임대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온라인에서 처음 만난 생면부지의 관계였으므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역량과 한계, 선호와 태도를 먼저 경험해 보아야 했습니다. 또한 이 암호화폐가 정말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한지 자신들에게 먼저 증명해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행사를 하나 열기로 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암호화폐로 거래 활동이 직접 이뤄지는 <미니 스트릿>, 일종의 플리마켓 행사를 열기로 한 것입니다. 이것은 추후 [스팀시티]의 시민들이 제작한 콘텐츠와 상품들을 유통하고 [스팀시티]가 발행하는 화폐로 결제되는 쇼핑 스트릿 조성을 위한 일종의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계절은 여름을 향해 있었고 곧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일주일 같이 느껴지는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시간 관념상 빠른 시간 안에 행사를 런칭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한 달여의 짦은 준비기간을 감수하고 일단 행사를 열기로 했습니다. 스팀잇에는 글 쓰는 작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 상품과 핸드 크래프트, 아트 상품들을 만드는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상품을 모아 전시 매대를 꾸미고 각 상품을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로 하였습니다. 행사장에는 셀러뿐만 아니라 살롱, 영화상영, 타로 상담 등 다양한 이벤트가 함께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가진 역량과 다양성이 어느 정도인지 모두가 함께 경험하고 판단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기대와 관심으로 행사 참여를 신청하고, 방문계획을 세우며 새로운 소식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2018년 6월 30일과 7월 1일, 합정동의 kkumer라는 공간에서 열린 <스팀시티 미니 스트릿 인 서울>은 많은 호응 속에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아마도, 적어도 국내 최초였을 암호화폐로 결제되는 플리마켓이라는 새로운 시도는 모두에게 많은 가능성을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꿈꾸듯 행사를 준비했고, 눈앞에서 서로의 실체를 확인했으며, 이 플랫폼의 가능성에 대해 확신하고 또 새로운 고민들을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에서 눈으로만 확인하던 것을 실제 오프라인 공간으로 끌어내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관념이 물질이 되고 생각이 현상이 되는 일을 펼쳐 보인 것입니다.
제4장_ 지구행진 그리고 위즈덤 레이스
<미니 스트릿>의 이틀째 날은 폭풍우가 몰려왔습니다. 종일 비가 내렸고, 이는 마치 [스팀시티]의 앞날을 예언하는 듯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커뮤니티는 탐색과 환상의 시기를 거쳐 갈등의 폭풍 속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폭풍기를 거쳐내지 못한 관계는 결국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폭풍을 지나며 단단해진 관계만이 커뮤니티의 울타리에 안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호응과 관심 속에 출발한 [스팀시티]에도 여지없이 이러한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균열을 함께 자극했습니다. 빠른 시도와 높은 관심은 커뮤니티의 다른 주체들을 자극했고, 그들은 어떤 의도에서든 [스팀시티]의 행보에 딴지를 걸고 싶어 했습니다. 또한 관계를 성숙시킬 만큼 충분한 소통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이제 막 시작된 커뮤니티는 의사소통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촉발된 갈등은 커뮤니티의 근간을 흔들 만했고, 이를 미리 감지한 마법사는 선제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러자 커뮤니티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스팀시티]의 구성원들이 침착하게 대응한 것에 반해 [스팀시티] 밖의 커뮤니티에서는 큰 소동이 일었습니다. 일부의 <위즈덤 러너> 지원자들이 이탈했고, [스팀시티]의 파운더 중에서도 이탈자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갔는지 마법사는 폭탄같은 예언을 남기고는 돌연 사라졌고 두 명의 총수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커뮤니티를 존속시킬 것인가? 중단할 것인가? 그러나 총수들의 반응은 분명하고 확고했습니다. 유쾌하고 호기롭게 그리고 거침없이 몰려오는 폭풍 속으로 진입했고 [스팀시티]는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정확히 41일 만에 귀환한 마법사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스팀시티]는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마법사는 [스팀시티]가 왜 가라앉았는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스팀시티]가 사라지며 남긴 미션을 전해 주었습니다.
‘나를 찾아올 것,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라도..’,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나를 만나게 될 거야.’
그리하여 가라앉은 마법의 도시 [스팀시티]를 찾아 나서는 지구행진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구행진은 45일 만에 시작되어야 했습니다. 시간은 지체할 수 없고, 동쪽으로 나아가야 하며, 같은 도시를 다시 갈 수 없었습니다. 이에 라총수는 <위즈덤 레이스>의 첫 번째 주자로서 지구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을 거쳐 태평양을 넘고 남미를 돌아 유럽대륙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0개월 동안 펼쳐진 라총수의 <위즈덤 레이스>는 봄의 아이 ‘춘자春子’를 탄생시켰습니다. 콘텐츠 플랫폼 [춘자]는 세계를 내 집 삼아 돌아다니는 수많은 창작자를 위한 공간과 시스템을 세상에 내어놓으려 태어났습니다. 이를 위하여 라총수는 춘자의 성장 과정을 소개하는 <매거진 춘자>를 창간하고 멤버십을 모았습니다. 춘자는 <위즈덤 레이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자라나 [도서출판 춘자]를 설립하더니 마침내 그 열매를 세상에 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위즈덤 러너> 피터님의 <배낭영성>과 [스팀시티]의 첫 번째 투자자 젠젠님의 <어쩌다, 크루즈>가 그 첫 번째 결과물입니다. 젠젠님의 <어쩌다, 크루즈>는 ‘위즈덤 레이스 인 크루즈’로 <위즈덤 레이스>의 바닷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 사이 한열총수는 분산화되고 탈중앙화된 블록체인/암호화폐 세계를 항해할 스팀 전용 디앱 브라우저 [모이또moitto]를 런칭했습니다.
한편 마법사는 암스테르담에서 커뮤니티에 <글쓰기 유랑단>을 제안했습니다. 한 달 동안 함께 유럽을 여행하며 글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묶어 내보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이것은 라총수의 지구행진에 동참하며 자신의 <위즈덤 레이스>를 시작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피터님의 10여 년 간의 영성탐구 기록인 <배낭영성>과 자신을 찾기 위해 바다를 거슬러 올라간 기록인 <어쩌다, 크루즈>가 [도서출판 춘자]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스팀시티]가 가라앉고 <위즈덤 레이스>가 시작되는 동안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 역시 폭풍 속으로 진입했고, 수많은 기대와 호기심들이 커뮤니티를 떠나갔습니다. 시세가 떨어져서이기도 하지만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스템의 근간인 커뮤니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어떻게 성장하는지 이해하고 적용하는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역사를 품어내고 상호작용을 통해 신뢰를 형성하며 인격적 관계를 맺는 일이 마치 멸종 위기의 천연기념물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왜곡된 채 기형적으로 성장해 온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꿈과 선량한 노력을 착취하여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착취에 지친 사람들은 꿈꾸기를 포기한 채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와의 연결을 끊어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 웃자라 버린 자본주의는 성장의 한계에 봉착하여 무너져 내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딛고 선 자본주의의 파멸은 우리 모두의 파멸이기도 합니다. 그때 구원처럼 등장한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스템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으나 인류는 아직 이 세계의 암호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점과 점,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바탕으로 구성된 이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스템은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 사람들의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관계망을 형성해내지 못하면 손만 뻗어대다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지혜와 영성의 마법이 아니고서는 이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미래기억 속에 잠들어 있는 연결에 대한 기억과 꿈의 씨앗들을 찾아내지 못하면 인류는 파멸하는 자본주의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암호를 푸는 열쇠가 가라앉은 마법의 도시 [스팀시티]에 묻혀 있습니다.
<위즈덤 러너>들은 [스팀시티]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스템의 암호를 풀어낼 마법의 열쇠를 찾아내어 인류를 파멸의 위기에서 구해 낼 수 있을까요?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우리는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회전하고 있는 지구처럼 [스팀시티]도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스팀시티]는 가라앉은 상태에서도 춘자를 탄생시키고 계속 자라나고 있습니다. <위즈덤 레이스>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스팀시티]를 찾기 위한 지구행진은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정지된 상태에서도 비록 제자리걸음일지언정 걸음을, 춤추기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스팀시티]의 전반전이 끝이 났습니다.
ziphd.net
ziphd.net
ziphd.net
ziphd.net
ziphd.net
아니마 연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