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연대기_ 전기前期
[아니마 연대기 l PART 2. 2016-2026] M.멀린
마법의 도시를 찾아서
21세기 초,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창작자를 위한 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안정적인 창작기반을 마련하고, 창작자와 독자를 블록체인 상에서 연결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창작자에게 직접 환원할 수 있는 마법의 구조를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창작자를 위한 마법의 도시 [스팀시티]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스팀시티]는 암호화폐로 기능하는 네트워크 시티를 꿈꾸며 실물경제와 암호화폐를 실질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커뮤니티가 그렇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소명과 운명을 깨닫지 못하고, 꿈과 사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갈등과 몰이해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위에서 마법의 도시를 만나 그 도시의 시민이 되기 위해 그들은 먼저 꿈의 암호를 풀어야 했던 것입니다.
[스팀시티]의 마법사 멀린은 ‘암호화폐와 실물경제를 연결하는 일,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연결하는 일은 모두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입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보여지고 만져지는 현실로 가져오는 일입니다. 그래서 [스팀시티]는 꿈꾸는 대륙이며, 꿈이 이루어지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것을 세상 속에 드러내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듯 바라보던 [스팀시티]는 결국 자신의 때를 따라 가라앉았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암호는 무엇이었을까요? 마법의 도시를 세상에 드러내는 꿈의 암호는 무엇이었을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입력해야 할 암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막연했기 때문입니다.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암호 입력에 실패하자, [스팀시티]는 결국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어디에 가라앉았는지,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스팀시티]는 가라앉으며 자신을 찾아오라고 메시지를 남기었습니다.
‘나를 찾아올 것,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라도..’
[스팀시티]는 어디에 있을까요? [스팀시티]는 어느 대양 속으로, 어느 대륙 속으로 가라앉았을까요? 가라앉은 대륙 아틀란티스도 이러했는지, 사라진 대륙 뮤도 이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스팀시티]를 찾아 나서기로 하였습니다. 지구를 몇 바퀴 돌아서라도 가라앉은 도시 [스팀시티]를 세상에 반드시 드러내기로 서로 약속하고 지구를 걸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나를 만나게 될 거야.’
어느 대륙, 어느 대양에 잠들어 있는지 모르지만, [스팀시티]는 둥근 지구를 자꾸 걸어 나가면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메시지를 남기었습니다. 그리하여 가라앉은 도시를 찾기 위한 지혜와 용기의 레이스가 시작된 것입니다.
제1장_ 인류의 무의식을 채굴하다
우리는 스팀잇이라는 블록체인/암호화폐 기반 블로그 플랫폼에서 만났습니다. 이 플랫폼은 신기하게도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읽는 행위에도 보상이 주어지는 마법의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상품을 만들고 팔아서 수입이 생기는 것은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경제활동이지만, 무언가를 읽고 즐기고 소비하는 것으로도 수입이 발생할 수 있다면 인류의 경제활동에 혁명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히 주어져야 할 부분이 생략된 관행입니다. 경제활동의 주체로는 생산자+투자자+유통자+소비자가 있을 텐데 소비자는 상품을 구매하는 최종 행위를 할 뿐 직접적인 수익을 얻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소비 없이 성립할 수 없습니다. 자본은 생산자와 투자자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비해 줄 주체가 없으면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생산자는 자본과 유통, 소비가 없어도 자급자족을 위해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때에 생산자는 곧 소비자이고 투자자이겠죠. 여기에 다른 소비자가 있다면 유통자도 생겨납니다. 두 주체는 생산자와 무언가를 교환하게 됩니다. 이때의 유통자와 소비자 모두 용역이나 교환 물품의 생산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생산자를 겸하게 되고 곧 광의의 의미로 자급자족을 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인류는 화폐라는 교환수단을 발명함으로써 경제활동을 확대하기 시작했습니다. 화폐는 신기하게도 당장 교환할 실물이 없이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물교환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 가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인류는 꿈꾸게 되었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동력을 화폐를 통해 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인류는 자동차와 비행기를 발명하고 우주선을 쏘아 지구 밖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고층 빌딩을 올리고 초고속으로 달리는 기차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물 가치만 인정하는 물물교환의 경제로는 이룰 수 없는 일들입니다. 상상하고 꿈꾸던 것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하여 자원을 사용하고 에너지를 투여하는 일 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웹Web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창조하여 그곳에 0과 1의 디지털로 구성되는 새로운 인간세계를 구현해 내었습니다. 이 세계는 물리적 자원이 없이도 상상이 현실이 되고 관념이 현상이 되는 마법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인류는 새로운 교환의 방식을 찾아내었습니다. 그것이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스템입니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자본주의가 애써 숨기고 외면하고 있던 소비자의 몫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투자와 생산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는 자본주의 핵심. 그것은 사용하고 소비해주는 주체 없이는 자본주의가 존속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인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출산율에 목을 매는 이유입니다. 식민지의 자원뿐만 아니라 식민지의 소비인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리하여 이 새로운 시스템은 그동안 투자자와 유통업자가 스리슬쩍 독식하며 얘기해주지 않던 소비자의 몫에 대해 깨어나게 한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몫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경제활동입니다. 그것으로 발생한 수익을 공유해야 할 당연한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광고를 보아주는 행위, 상품을 구매하고 서비스를 사용해 주는 행위 역시 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행위입니다. 아니 최종적이고 가장 중요한 경제 행위인 것입니다. 이것은 할인이나 1+1 보너스를 가장한 환원의 방식이 아닌 공정한 부가가치의 측정을 통해 분배되어야 하는 마땅한 권리인 것입니다. 한때 자본주의 세계는 상품을 잔뜩 만들어 놓고는 심화된 부의 격차로 사람들이 소비를 멈추자 대공황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소비자들의 급여를 올려주는 일이었습니다. 실업수당이라도 지급하여 소비를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회사가 적자가 나고 재고가 쌓여 있는데 노동자들의 월급을 올려주라니요?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면서 일하지 않는 실업자에게 왜 수당을 주는 걸까요? 대공황은 경제주체이자 부가가치 발생의 핵심주체로서 소비자의 당연한 몫을 보장하지 않아 생겨난 일이었던 겁니다. 자본주의는 소비자 없이 유지될 수 없다는 걸 증명해 보여준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경제활동의 가치를 화폐에 모아놓고 화폐 발행과 유통의 권한을 소수가 독점하는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에 인류는 너무 오랜 시간 속고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발행하는 화폐를 사용할 소비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소비자는 화폐의 유통을 통해 발생하는 권리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는 아티스트와 투자자, 유통자만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비해 주는 팬들 역시 자신들의 몫을 정당하게 수익으로 얻는 일 말입니다. 팬이 없으면 아티스트와 투자자, 유통자도 수익이 생겨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시혜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주체이자 주주로서 말입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 구현이 가능합니다.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개인이 되찾아 오는 것입니다. 화폐 발행과 유통의 주체로 개인과 개별 커뮤니티가 권한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차와 간편성 때문에, 또는 국가라는 거대 공동체와의 계약 때문에 종속되어 있었다면, 이 새로운 가상세계에서는 모두가 국가이고 모두가 화폐의 발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스템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그 화폐를 사용하는 모든 주체가 이익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을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동안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상의 웹 Space와 블록체인/암호화폐 System이 인류의 무의식에 잠들어 있는 새로운 보석을 찾아 곡괭이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래 화폐의 채굴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채굴은 시작되었지만 이것의 비의를 푸는 암호는 잠겨있습니다. 이 암호를 어떻게 해독할 수 있을지 인류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판도라의 상자에 넣어 영원히 봉해져 있던 절대반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채굴은 이미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노다지를 발견한 듯 혈안이 되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들은 만났습니다. 움직이는 사람들의 도시, start in motion [스팀시티] 라는 이름으로.
제2장_ 고래 전쟁
[생각의 가치 ; 당신의 생각과 글은 소중합니다. 스팀잇은 고급 콘텐츠 생산자들과 큐레이터들에게 투명한 금전적 보상을 지원합니다. 지금 참여하세요.]
생각의 가치를 보상하겠다며 등장한 이 새로운 플랫폼에 많은 이들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기존 플랫폼에서 평생 글을 쓰며 많게는 수백만의 독자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단 한 푼의 금전적 수입도 얻어보지 못한 파워블로거부터, 고래의 꿈을 꾸며 많은 자본을 투자해 코인을 구입한 투자자와 평상시에 즐겨 읽던 작가의 글을 읽기 위해 가입한 단순 유저까지, 이 새로운 플랫폼에는 다양한 주체들이 저마다의 관심과 의도를 가지고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해 가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거대 포털들은 단지 필드를 제공했다는 것만으로 막대한 이익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그 포털의 가치는 창작자들이 제공하는 콘텐츠의 양과 질,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 접속하는 소비자들의 클릭수와 페이지뷰로 측정되고, 그것은 광고와 부가사업으로 연결되어 막대한 부를 빨아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포털의 가치증대에 핵심적으로 기여한 창작자와 소비자들은 아무런 대가를 얻지 못합니다. 자신의 콘텐츠를 가져다 팔고 회원을 끌어 모아놓구선 그것에 대한 대가는 파워블러거라는 딱지 하나를 붙여줄 뿐인 것입니다. 불만은 고조되고 있었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는 시절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창작자에게 수익을 배분하겠다며 등장한 유튜브는 많은 창작자들로 하여금 영상제작자로의 전환을 유도했습니다. 수많은 창작자들이 대열에 합류했고 새로운 직업과 부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적절한 배분인지는 의심스럽지만, 적어도 창작자에게 수익을 배분하려는 시도는 혁신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을 보고 감상해주는 소비자들의 몫은 배제되어 있습니다. 구독과 조회 수를 늘려주는 대가는 무료로 콘텐츠를 감상하는 것뿐인데, 그마저도 광고를 보아주거나 구독료를 별도로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사라질, 가상 공간의 착취 방식으로는 좀 대범합니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쉽게 싫증을 내고 플랫폼을 바꿔 버립니다. 그것이 유일한 권리이므로. 그럴 때마다 창작자들은 매번 다시 시작해야 하며 포털 사업자 역시 빠르게 치고빠지지 않으면 한때의 영화에 취해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유저들을 바라보며 몰락해 가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커뮤니티란 신기루 같은 것일 겁니다.
그런데 이 새롭게 등장한 블록체인/암호화폐 기반 콘텐츠 플랫폼은 창작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은 물론이요, 그것을 읽고 ‘좋아요’를 누른 독자와 콘텐츠 소비자에게까지 보상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단지 콘텐츠를 감상하고 ‘좋아요’를 눌렀을 뿐인데 보상을 주다니, 이것은 혁신을 넘어 자본주의의 본질에 다가서는 혁명적인 시도였습니다. 사람들은 흥분했고 많은 창작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기치로 모여들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을 빠르게 읽은 투자자들 역시 이 플랫폼의 코인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어리둥절했던 것은 소비자였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제시스템에 이걸 받아도 되는지 당황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스템은 이미 확고한 방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방향에 따라 콘텐츠 소비자에게도 좋은 콘텐츠를 선별해 주는 ‘큐레이터’라는 새로운 명칭과 함께 금전적 보상이 주어졌습니다. 그러자 모두 고래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이 마법의 커뮤니티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금전적 보상을 전제로 하고 있어서인지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가지고 있는 막말과 악플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곧 평판과 연결되도록 시스템이 구성되어 있었고,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하면 보상을 극대화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매우 친절한 페르소나로 무장한 채 서로를 존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커뮤니티에는 매우 안정적이고 매너 넘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친절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닫힌 마음을 쉽게 열 수 있는 마력을 풍겼고, 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도 쉽게 얘기하지 못할 개인사와 상처, 고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이에 진정성 있는 위로와 격려로 화답했습니다. 마치 천국이 도래한 듯한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생경한 풍경에 닭살 돋아 하며 당황해했고 또 어떤 이들은 마치 천사라도 만났듯 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칼이 사용하기에 따라서 무기가 되어 사람을 죽일 수도 수술용 메스가 되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처럼, 이 마법 커뮤니티의 페르소나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안전장치로 사용될 수도 위선과 가식의 신세계를 여는 악마의 가면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고래의 꿈을 꾸는 이 새로운 커뮤니티에서 페르소나가 어떤 방향으로 사용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의 마음에 진심과 의심이 마구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에서 페르소나를 유지시키는 동력은 결국 보상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라면 막말을 내뱉었을 리플에도 정중하고 매너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평판과 보상에 그것이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든 힘과 질서는 보상시스템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팀잇은 그 보상시스템에 대한 구성원의 합의가 전제된 채로 시작된 플랫폼이 아니었습니다. 보상의 시스템은 매우 단순합니다. ‘좋아요’를 많이 받은, 그러니까 ‘보팅’을 많이 받은 콘텐츠는 더 많은 보상을 받아 가게 되고, 그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른 소비자도 그 보상을 함께 나누어 가져가는 방식입니다. 모두가 수긍할 만한 콘텐츠의 가치에 따라 (그것이 존재하는지,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 쉽게 정할 수는 없지만) 보상이 이루어지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가진 혁신적인(?) 구조 탓에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거나, 또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콘텐츠보다, 일단 어쨌든 ‘좋아요’를 많이 받는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까지는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명작이 아니고 명작이라고 반드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중의 선택과 명작의 기준은 얼마든지 유리될 수 있고, 어떤 가치가 더 우월한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콘텐츠 가치의 차이가 아니라 자본의 규모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보상을 ‘좋아요’ 개수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시스템의 코인량, 그러니까 자본의 크기에 따라 차등해서 계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00명에게서 ‘좋아요’를 받아도 그것이 자본이 없는 이들의 ‘좋아요’라면 보상이 형편없이 작고, 2명에게서 ‘좋아요’를 받아도 그것이 많은 코인을 보유한 이들의 것이라면 보상이 턱없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음치가 분명한 고래가 부른 노래가 상금을 거의 독차지 하는 형국이 벌어진 것입니다. (음치가 분명합니다. 심지어 점 하나를 찍은 포스팅일지라도 엄청난 보상을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자본의 논리에 따라 많은 자본을 투자한 이가 많은 보상을 가져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콘텐츠 플랫폼에서 핵심 상품인 콘텐츠가 그 콘텐츠 자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자본의 규모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양태에 커뮤니티가 혼란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재단은 별다른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DPoS(위임지분증명) 방식으로 운영되는, 즉 선출된 증인들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는 스팀잇의 의사결정 구조를 따르자면 결국 유저들이 대표자들을 통해 직접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 커뮤니티를 자신의 공동체로 자신의 소속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신생 커뮤니티는 수많은 장점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개별주체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단순 소비자로서의 독자 유저 뿐만 아니라 기대를 걸고 진입한 콘텐츠 생산자와 자본 투자자 모두 이 새로운 실험이 잘되기를 바라지만, 여차하면 보따리 싸서 떠날 준비를 한 채로 엉거주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암호화폐들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이 춘추전국시대에 화폐로서 기능하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자본을 유치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므로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는 재단은 투자자의 수익증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점 하나를 찍고 막대한 보상을 가져간다 해도 일단 자본의 유입이 늘어나는 게 중요할 테니까요. 그러나 생각의 가치를 보상하겠다며 콘텐츠 플랫폼을 선언하고 나선 마당에 창작자와 큐레이터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투자자는 조금만 수익성이 떨어져도 썰물처럼 떠나가지만, 창작자들은 자신의 콘텐츠들이 쌓여있는 공간을 쉽게 떠나갈 수 없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결국 양질의 콘텐츠가 이 플랫폼의 가치를 보장해 줄 것이기에 그들에 대한 보상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요소인 것입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입니다. 읽어주고 보아주고 큐레이션 해 줄 소비자들을 유입시키고 머물게 하는 것이 마케팅의 모든 것일 텐데, 그들이 양질의 콘텐츠를 경험하면서 보상까지 얻어 갈 수 있다면 단순히 접속자 수, 페이지뷰를 보장하는 역할을 넘어 소비자들 자신이 투자자와 창작자로 전환될 수 있는 미래 기회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역사상 최초로 콘텐츠 소비 행위에 직접적 보상을 지급하는 이 실험은, 새롭고 막강한 콘텐츠 포털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걸 모두가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흥분하고 모두의 열정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명 ‘고래 전쟁’. 세 마리 토끼를 쫓으려다 보니 입장을 가질 수 없게 된 현실적 운영 주체인 재단이 침묵하는 가운데, 투자자와 창작자 그리고 소비자가 저마다의 입장과 견해를 내세우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글에 자신이 보팅하는 일명 ‘셀봇’과 몇몇 투자자들이 서로 보팅을 주고 받는 ‘보팅풀’ 등의 행위를 불공정 행위로 지목하며 공격하기 시작한 창작자 진영과 투자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데 누가 투자를 지속할 수 있겠느냐, 결국 창작자들이 받아 가는 보상도 투자자들의 자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냐며 반격하는 투자자 진영의 대립이 극심하게 이어졌습니다. 창작자들은 황금알을 낳아 줄 거위의 배를 자르지 말라며 투자자들을 설득, 협박, 공격하고 투자자들은 알이 먼저냐? 거위가 먼저냐? 만족할 만한 보상 없이 어떤 거위가 이곳에 황금알을 낳겠느냐며 반격하였습니다. 입장은 대립할수록 팽팽해졌고 합의점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고래가 되고 싶고, 고래가 되기 위한 방식을 갑론을박하는 가운데 고래 전쟁은 점점 극단으로 치달아갔습니다. 그리고 새로 진입하는 뉴비들에 의해 잠잠해지다 다시 반복되는 무한루프를 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피곤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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