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 연대기_ 전기前期
[아니마 연대기 l PART 1. 2006-2016] M.멀린
行福共作所와 오작교
나는 2005년에 [行福共作所]라는 문화연구소를 만들었어. 그래서 호칭이 최소장이 되었지. 行福共作所의 ‘行福’은 道를 깨우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道로 이끈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나의 문화적 토양이었던 Christian 문화가 막 쇠퇴하던 시점이라, 나는 Christian 문화의 부흥과 아티스트들의 활동 영역 확장을 위해 <오작교 프로젝트>라는 기획안을 만들었어. 그리고 나는 이 프로젝트를 같이 할 만한 동역자를 찾기 시작했지.
“오랜 세월 단절된 채 소통할 수 없던 신과 사람 사이에 죽음으로 다리를 놓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처럼, 우리는 공간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 나아가 지역사회를 향한 섬김으로 소망합니다.”
가수 변진섭의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침 연출자로 온 감독이 성감독이었어.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야. 기억해 보니 고등학교 같은 동아리 출신이었던 거야. 서로 다른 학교였지만, 우리는 예술제와 연합집회 등 서로 안면을 익힐 기회가 많았거든. 반갑게 인사하고, 나는 <오작교 프로젝트>에 대해 나누었지. 성감독은 매우 흥미로워하며 같이 해보자고 했어.
우리는 그해에 몇 개의 큰 공연을 같이하면서 관계가 더 돈독해졌고, 구체적으로 <오작교 프로젝트>를 준비해 갔어. 그러다 시작하게 된 것이 <기독교 문화기획 아카데미>였어. 우리는 현대적인 감각의 찬양집회를 먼저하기로 했었는데, 집회를 하려면 제작진이 필요하니 먼저 제작진을 양성할 아카데미를 하게 된 거야. 집회 타이틀도 정했어. [STEEL]이라고. 뭔가 지금의 쇼미더머니 무대처럼 철재로 이뤄진 공간에, 음악도 일렉트릭 사운드가 강력한 새로운 집회를 기획해 보자고 했었지. 그래서 집회 명칭도 <강철>이라고 지었는데. 이걸 했어야 했어.
미니스트리와 비즈니스
아카데미는 홍보도 부족했고 준비도 부족했는데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어. 기획파트와 연출파트로 나누어 기획파트는 내가 맡고, 연출파트는 성감독이 맡아서 아카데미를 진행했지. 그런데 아카데미가 진행되던 중 새로운 방향성이 등장했어. 성감독이 맡은 연출반에 마침 대형교회 청년부 드라마 팀장이 학생으로 있었는데, 이 친구가 팀장은 맡았지만 드라마라는 걸 처음 해 보는 터라 성감독이 이 교회의 행사를 도와주게 된 거야. 그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뮤지컬 한 편을 기획하게 되었고, 성감독은 이걸 상업 뮤지컬로 제대로 제작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내게 함께 제작해 보자고 제의를 했지.
그런데 나는 제작에 동참할 수가 없었어. 지난 몇 편의 공연을 제작하면서 관찰한 성감독의 성향상, 사업이 아닌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었고. 이제까지 비즈니스만 해왔던 성감독에게 아카데미와 새로운 집회는 미니스트리를 훈련할 좋은 과정이 될 거라고 나는 생각했어. 그래서 좀 더 순수하게 미니스트리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미니스트리를 기반으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성급하게 비즈니스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거야.
결국 성감독은 나 대신 아카데미를 하면서 같이 합류한 영실장이라는 친구와 함께 뮤지컬을 제작하게 되었어. 영실장은 이 전에 대형 뮤지컬을 제작해 본 경험이 있었고 성감독과는 같은 교회 친구라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서 일을 진행할 수 있었어. 또 마침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교회 대부흥100주년 대회>에 내가 프로듀서로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뮤지컬 제작에서 빠지게 되었지.
실행력이 뛰어난 성감독은 매우 빠르게 뮤지컬을 제작했고, 마침내 <우연히 행복해지다>라는 뮤지컬이 탄생하게 되었지. 뮤지컬 초연을 본 나는 놀라 자빠질 정도였어. 뮤지컬을 한 번도 만들어 보지 않은 연출가, 작가, 작곡가, 배우들이 모여서, 포텐이 작렬하는 에너지 넘치는 작품을 탄생시켰었던 거야. 게다가 콘서트 연출가로서의 성감독의 장기를 살린, 아마도 한국 최초의 시도였을 ‘콘서트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등장에 매우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어. 공연이 끝나고 나는 성감독을 찾아가서 얼싸안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찬사를 늘어놓으며 격려하고 축복했지. 초연은 지금 생각해도 훌륭했어. 뮤지컬은 상승세를 타며 여기저기서 공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그리고 문제점도 함께 드러나기 시작했지.
우연히 행복해지다
이 뮤지컬 탄생에 중심 역할을 한 인물은 성감독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를 구성한 작가와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 등, 두 사람이 더 있어. 작곡가는 성감독 교회 후배로 이미 CCM 분야에서 나름 인지도를 가지고 활동하던 작곡가였고, 작가는 내 학교 후배의 지인이었어. 신학대의 기독교교육과를 다니던 자매였는데. 앞에서 대형교회의 드라마 팀장이 되었다던 그 친구야. 이 친구가 드라마가 처음이라 배우고 싶은데 비용을 마련할 형편이 안 된다고 후배가 부탁을 해서, 그러면 와서 칠판이라도 지우라고 하고 합류하게 된 거야.
이 작가는 성감독의 연출반 소속이었는데, 성감독은 옛날 생각이 난다며 기꺼이 무보수로 그 교회의 행사를 도와주었어. 성감독의 옛날 생각은, 교회학교 시절 찬양팀을 만들기 위해서 낙원악기상가에 갔다가, 돈이 없어서 원하는 장비를 못사고 계단에 걸터앉아서 울었던 기억을 말해.
나는 이야기를 듣고 아름다운 스토리라고 생각했어. 우연히 만나서, 우연히 만든 뮤지컬이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그런 이야기 말이야. 제목에 걸맞게 그 친구는 인생이 바뀌게 돼. 어머님이 대학교수셨는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에 열등감이 크다가, 생각지도 못한 작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고, 우연히 참여한 뮤지컬이 큰 반향을 일으키자, 비로소 어머니에게도 인정받고 화해하게 되었거든. 이후에 이 작가는 학교를 한예종으로 옮기고 지금은 유명 연출가 밑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어.
그때 내가 <오작교 프로젝트>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리고 성감독을 우연히 변진섭 콘서트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우연히 학창 시절의 얼굴을 기억해 내고 말을 걸지 않았다면, 아카데미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칠판 지우기라도 시켜달라던 요청을 무시했다면. 수많은 우연이 운명처럼 겹쳐서 한 사람의 인생에 대반전을 이루었지. 물론 이 작품은 참여한 모든 이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어.
그런데 축복과 저주는 동전의 양면처럼 마주하고 있고 조화롭게 다루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하루아침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뒤바꾸게 돼. 우연히 행복해진 이들은, 준비 없이 맞은 행복을 미숙하게 다룸으로써 하루아침에 배신과 상처의 이야기로 뒤바꾸어 놓았지.
복수는 나의 힘
성감독은 원래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아. 심지어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적대적이기까지 했지. 그런데 지금도 뮤지컬을 하고 있어. 시작은 한동안 잘 풀리지 않던 비즈니스의 돌파구로써야. 뮤지컬 말이야. 콘서트 연출가로 활동한 성감독은 콘서트 연출의 한계에 답답해하고 있었어. 콘서트 연출이란 것이 가수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연출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예민한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 그래서 늘 자기 작품에 목말라하고 있던 차에 뮤지컬을 하게 되고, 자신의 컨텐츠를 만들게 되자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 거야.
그런데 상업 뮤지컬을 제작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지. 흥행을 보장받을 수도 없고. 미니스트리로, 비지니스적 대가에 대한 고민 없이 공익적 목적으로 시작한 아카데미의 방향을 비즈니스로 전환했을 때, 문제는 이미 안고 시작한 거나 다름없어. 선생과 학생의 입장에서, 비용을 직접 조달하고 마케팅을 해야 하는 제작자의 입장과 정당한 페이를 보장받고 싶어하는 피고용인의 입장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혼란은 당연한 일이지. 다 까놓고 보면 처음 뮤지컬을 제작하는 초보 제작자의 어설픈 예산 감각으로 상업 뮤지컬을 감당하기 쉽지 않아 생겨난 일인 거야. 작가와 배우, 스탭의 개런티가 제대로 지급되기가 쉽지 않은 구조에서 일을 벌여버린 거야. 혼란에 빠진 회사나 단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밀린 월급과 대관료 체납, 쏟아지는 빚 독촉과 구성원 간의 갈등 심화는 결국 뮤지컬을 파국으로 몰고 갔지. 파국은 저작권싸움으로 번졌어. 작가와 작곡가, 배우들이 제작진이었던 성감독을 몰아낸 거야. 그 와중에 뮤지컬 저작권 관련 이해가 부족했던 성감독은 모든 걸 빼앗기고 쫓겨나는 꼴이 되어 버렸지.
상표권이라도 등록을 했어야 했어. 그냥 앉아서 홀랑 빼앗기고 복수심에 불타게 된 거야.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하기보다 복수심에 불타며 열을 내지. 현명하게 권리를 되찾을 방법을 모색하기보다, 더럽고 치사하다며 자신의 남은 권리마저 집어던진 채 복수 에너지를 불태우는 거야.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언제는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있었나요>. 제목에서부터 분노가 느껴지지 않니? 성감독은 전작의 실패를 교훈 삼아 작가와 작곡가 등 모든 역할을 혼자 수행한 자신만의 작품을 빠르게 다시 탄생시켰어. ‘복수는 나의 힘’이었던 거지. 전작만큼의 완성도와 짜임새는 없었지만, 강렬한 느낌만큼은 분명한 나름 좋은 작품이었어. 특히 후반부의 콘서트 하이라이트 연출만큼은 여전히 신선하고 짜릿했어. 점점 입소문이 나고, 홍보도 없이 1만 명의 회원을 모으고, 70번씩 관람한 골수팬들도 생기고. 나름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 성감독은 그 과정에서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고, 골방에서 생수병으로 목욕을 하기도 하고.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지. 나름 자리는 잡아가는듯 한데 크게 도약은 하지 못한 채 현상 유지를 해가고 있었어. 이 과정을 나는 밖에서 지켜 볼 수밖에 없었어.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나는 성감독과 헤어지게 돼. 왜냐하면 뮤지컬과 함께 사세 확장을 위해 여러 행사를 수주하던 성감독은 내게도 크리스마스 콘서트 등 기획료를 지급하지 못했거든. 나는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라는 격언을 미니스트리와 비즈니스를 조화시키기 위한 중요한 표지로 여기고 있었어. 그래서 재물이 분명하게 운용되지 않는 조직, 개인과 미니스트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지. 원칙에 따라 나는 성감독과의 관계를 멈추었어.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게 되지.
나는 성감독과는 별개로 아카데미 2기를 준비하게 돼. 그 과정에서 <오작교 프로젝트>는 업그레이드되어 <NEWBOX>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어. 우실장이라는 사람과 2기 아카데미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우실장은 스튜디오와 음향을 시공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영업을 잘해서 꽤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었어. 소개로 만나게 되어서 <NEWBOX>에 대해서 비전을 나누게 되고, 음향감독으로서 아카데미를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지. 시공만 하다 보니 크리에이티브한 일에 목말랐던 우실장은 흔쾌히 같이 해보자고 했고. 우리는 건물을 하나 얻어서 연습실과 스튜디오, 사무실이 같이 들어가는 센터를 만들기로 하고 공간을 물색했어. 한사람이 다 확보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ㄷ니까, 각자 흩어져 있던 몇 단체가 한 곳에 모여서 센터를 이루기로 한 것이지. 마침 내가 아는 무용가 한 분이 연습실을 만들겠다고 해서, 우실장이 찾은 마포의 한 건물에 먼저 들어가게 되었어. 그런데 우실장은 미적거리더니, 입주하겠다고 한 스튜디오를 입주시키지 않고 다른 곳으로 움직였어. 이유는 알 수 없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붕 뜨게 된 연습실 비용 일부를 돕기로 하고 우실장과는 관계가 중단되었어. 우실장에 관해 언급하는 이유는 우실장이 후에 뮤지컬 <우연히 행복해지다>를 인수하게 되기 때문이야. 어떻게 서로 만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성감독과 갈라선 작가와 작곡가는 우실장과 계약을 맺고, 매달 저작권료로 수백만 원씩을 받기로 하고 뮤지컬 공연을 지속하게 돼. 영업력이 좋았던 우실장은 처음에는 순조롭게 공연을 확장시켜 갔어.
반복되는 우행
그런데 저작권 개런티를 그런 식으로 지급하는 방식은 통상적인 것이 아니야. 더군다나 뮤지컬 초짜에 불과한 작가와 작곡가의 작품 개런티는 보통 제작사에서 일시불로 지급하거나, 관리 단체를 통해 소정의 저작권료를 지급받는 게 일반적이지. 성감독이나 우실장이나 모두 뮤지컬 제작이 처음이었던 터라,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일이 진행되었어. 우실장은 재리에 밝은 사람이었음에도, 시공업자의 한계를 벗어나 창작자, 제작자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싶었던 터라 무리해서 작품을 끌어안게 되었지. 이 와중에 본업에도 무리수를 두어서 시간이 흐르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어. 우실장은 홍대 일대에 여러 개의 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문을 닫게 되거나 다른 업체에 넘어가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우실장은 한동안 도망을 다니는 처지가 되었어. 결국 <우연히 행복해지다>의 작가와 작곡가와도 분쟁이 생겨서 여러 건의 상호 소송에 얽히게 되었다고 해.
기획을 하다 보면 아무리 별거 아니어 보이는 기획도, 기획자의 손을 떠나 망가지는 일을 자주 볼 수 있어. 뮤지컬 <우연히 행복해지다>와 관계되었던 모든 사람들이 결국 이런저런 상처와 분노만 안은 채 피해자가 되었어.
우실장은 이 와중에 <우연히 행복해지다>라는 타이틀을 상표권 등록해서 공연명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 버렸어. 엄밀히 따지면 제목의 원저작은 성감독에게 있는데, 성감독은 상표권 등록에 대한 의지를 놓아버렸어. 다시 그런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고 하더군. 말대로 그렇게 되어버렸지. 우실장이 상표권을 등록해 버리고, 공연 내용과 곡을 다 바꿔버린 새 공연을 만들었거든. 덕분에 원 저작자인 작가와 작곡가는 더 이상 공연을 할 수 없게 되었어. 긴 시간 동안 각종 소송에 휘말리고 고생하다 작품마저 잃어버리게 된 거야. 그들 모두 말이야. 관행과 다른 저작권료 지급 조건으로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 모르겠지만, 축복이 저주로 변해 버린 안타까운 이야기가 되었지.
나는 이러한 과정을 외부자로 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휘말리지 않은 것은 매우 잘한 일이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역할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하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야.
민대표와 New Generation Movement
다들 혼돈의 도가니를 통과하는 와중에, 나는 성감독의 소개로 민대표라는 사람을 만나게 돼. 그는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청년 무브먼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어. 처음 만났을 때는 지방에서 올라와 자리를 못 잡고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는데, 나는 직관적으로 이 사람이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어. 그래서 천천히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져가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지. 그런데 이 사람이 강하게 나를 끌어당겨서 우리는 모 선거 전에 청년단체를 만들게 돼. 외곽 조직 비슷하게 시작되었는데, 나는 이를 계기로 ‘New Generation Movement’를 시작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했어. 물론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무언가 될 것 같은 분위기였지. 그런데 민대표는 처음에는 나를 매우 신뢰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영향력을 경계하기 시작했어. 나는 이미 이러한 경험이 많았던 터라 바로 직책을 내려놓고 그룹에서 빠져 나왔지. 이 과정에서 <NEWBOX>는 문화운동에서 ‘New Generation Movement’로 업그레이드되었어.
초기의 민대표는 매우 좌충우돌했어. 그의 단체도 선거가 끝나자 와해되고 민대표는 다시 거처 없이 떠돌게 되지. 그러다 모 대학과 모 여대의 비운동권 총학생회를 당선시킴으로써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돼. 나는 이 과정을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어. 최소한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인생을 풀 열쇠가 있다고 말하곤 했어. 그건 새벽기도.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맞고 기도를 하면 자신의 인생이 풀어질 거라고. 어머니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자신도 그렇게 믿는다고. 그런데 새벽에 일어날 수가 없다고 말하고 또 말했어. 나는 궁지에 몰려 있는 그의 말을 받아 안았어. 그리고 새벽에 그를 찾아갔지.
“일어나세요. 새벽기도 가야죠”
두 달을 매일 새벽 그를 찾아갔어. 그리고 캠퍼스를 돌며 함께 기도했지. 그의 삶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찾아간 캠퍼스에서마다 사람들과 기회가 연결되기 시작했어. 그의 열쇠와 나의 열쇠가 함께 돌아간 새벽이었어. 우리는 새벽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에 대해 기도했지. 그리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임하기 시작했어.
민대표와는 <NEWBOX>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전부터 여러 차례 비전을 나누었고, 민대표는 이 과정을 통해서 조직을 만들고 싶어 했어. 그러다 총학생회 두 곳이 당선되자 이를 동력으로 단체를 구성하고 싶어 했지. 그래서 나는 <NEWBOX>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한국대학생리더십센터>라는 단체를 기획해 주었어. 민대표는 이 단체의 대표가 되었지. 그러다 총학생회 사업 중 여름 농활 사업이 있는데 운동권 색깔이 강한 행사라 이걸 다른 방식으로 풀 수 없겠냐고 부탁을 해서, 나는 이를 대학생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바꾸어서 세팅해 주었어. 그 과정에서 <대학생자원봉사원정대>라는 단체가 또 탄생하게 되었지.
운 좋게도 이 시점에 대학들이 자원봉사를 졸업 필수 요건으로 채택하기 시작하면서, 대학생 자원봉사 붐이 일었어. 발 빠르게 자원봉사 인증 제도를 갖추었던 원정대는 1인 1기획 등의 아이템으로 확장해 가기 시작했어. 이후에 독도원정대, 발룬티어데이 행사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2만여명의 회원을 둔 전국 단체로 성장하게 되었지.
물론 나는 여전히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기획만 해 주었어. 민대표는 계속 들어와서 함께 일하자고 했지만, 기획자는 나이고 결국 영향력은 내게서 흐르기 시작할 텐데, 그러면 민대표는 나를 다시 배제하고 싶어질 게 뻔했거든. 단체는 몇 번의 고비와 상승 기회를 맞았고, 나는 적절하게 위기와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외곽에서 직관에 따른 아이템과 기획을 제공했어. 그리고 결국 민대표는 나의 직관대로 국회의원이 되었지.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LA
나는 그해 첫날 식사 자리에서 올해는 국회의원선거가 있는 해이니, 기회가 오거든 나가라고 민대표에게 권했어. 민대표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그런 건 머리에 바람 든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자신은 사회 속에서 목회자처럼 살아가는 자신의 사명에 집중할 거라고 막 노여워하더군. 나는 그럼에도 대표님이 걸어온 길이 그길이니 기회는 올 거라고 했고, 그럼 정치 말고 하고픈 게 뭐냐고 물었어. 잠시 생각하더니 민대표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고, 엔터테인먼트를 해보고 싶다고 했어. 그래서 그러면 좋다, 올해부터는 원정대를 기반으로 엔터테인먼트를 해보자고 하고, 뭘 먼저 했으면 좋겠냐고 하자, 민대표는 농구를 주제로 한 뮤지컬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했어. 민대표도 뮤지컬 제작에 관여한 적이 있고, 그전에도 몇 편의 뮤지컬 마케팅 경험이 있던 터라, 어느 정도 감을 가지고 있었거든.
나는 엔터테인먼트를 할 거면, 엔터테인먼트의 본산인 미국을 다녀와야겠다 하고 LA를 방문하게 돼. 그리고 10년 만에 대학 동창인 현목사를 만나게 되지. 나는 현목사에게 <NEWBOX>에 대해 설명하고, LA를 중심으로 미주 사역도 시작해 볼 수 있지 않겠냐고 논의를 했어. 그러다 미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컬쳐 무브먼트에 대해서 듣게 되고,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 단체의 관계자들을 접촉하기 시작했어. 그 과정에서 현목사의 고민을 듣게 되고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와 잘 맞지 않아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중이라고 해서, 뭐가 되었던 자신만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브랜드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을 했지. 실행이 빠른 현목사는 내가 머무는 3주 동안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단체 등록까지 해버렸어.
그러고 있는데 민대표에게서 연락이 왔어. 선거에 나가게 되었으니 빨리 들어오라고.
500만 원이라니까
민대표는 국회의원이 되었어. 나는 <오작교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된 이 과업이 드디어 좀 더 큰 단위의 영역에서 확장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어. 그리고 이제는 중심에서 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지. 민대표도 이제 들어와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지만 결국 나는 들어갈 수 없게 되었어. 성감독이 내게 500만 원의 기획료를 미수로 남긴 후, 나는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나의 보수 기준은
500만 원이라고 직관하게 되었고, 그것을 기준으로 참여 여부를 결정해 왔거든. 민대표의 지속적인 합류 요청에도, 나는 늘 내게 500만 원을 페이먼트할 수 있게 되면 그때 하겠다고 누누이 얘기해 왔었지. 우림과 둠밈처럼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기준이었어. 500만 원은. 하지만 민대표는 처음 제안과 달리 나의 격을 낮추었어. 그의 불안으로 말미암아. 내게 제안한 자리에 다른 이를 앉힌 거야. 차이는 10만 원이었어. 직관이 나를 막아섰어.
‘500만 원이라니까’
나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고, 민대표와의 모든 연락을 중단시켜 버렸어. 결국 그는 재선을 하지 못했어. 내게는 그의 재선 이후의 계획까지 모든 그림이 다 있었고, 믿거나 말거나 실제로 그대로 되었어.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거야. 이후의 그는 보좌관 월급 상납, 선거비용 부정 사용 등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르내리게 돼.
그 역시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니 이 <오작교 프로젝트>, <NEWBOX>와 연결되지 않았다면 국회의원이 되는 일은 없었을 거야. 그리고 사랑하지도 않는 그녀와 결혼하는 일도 없었을 거야. 또 축복이, 기적이, 저주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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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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