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스테이블 Stable 하다는 것

by mmerlin

[코인이즘 Koinism] May 11. 2022 l M.멀린

 

역시 그냥 지나가지 않는구나. 루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자산을 줄줄 쏟아내고 있는데 마법사라고 피해 갈 묘법은 없다. 게다가 5월이 아닌가. 한때 500배 수익률을 기록해주던 마법사의 루나 자산은 (그게 비록 원금이 100원일지언정) 뒤늦게라도 따라붙은 탓에 적지 않은 포션을 차지하고 있었더랬다. 계속되는 하락장에도 든든하게 뒤를 받쳐 주는 안전자산이었건만. 스테이블이길. 스테이블이라더니.

2018년부터 들고 있었으니 거의 4년을 들고 있었는데, 게다가 300원대 손절을 속죄하려고 단 한 번도 팔지않고 스테이킹에 고이 담가 놓았는데,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앵커 담보대출 스토리에 이건 안 하면 바보라니 그럼 마법사도 한번, 하고 손을 대보았더랬다. b루나가 어쩌고 UST가 어쩌고 담보 비율이 어쩌고 뭐가 뭔지 모르겠고, 암만 블로그를 들여다보고 유튭을 뚫어져라 봐도 통 감이 오지 않는 그것에 ‘다들 좋다하니 뭐 괜찮겠지. 몸빵 테스트는 마법사의 몫 아닌감’ 하고 용기 있게 가진 루나를 풀로 박아버렸다. 스테이블이라자나, 알고리즘이라자나. 그리고도 계속 잘나가던 그것들. 순항하던 그것들. 그런데 어제 그제 쏟아져 내리는 그것들을 보고 알아버렸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지구는 둥글고 자전하고 공전하니까 안정된 것, 고정된 건 없다고.

암호화폐에 투자한다는 것은 변동성 속에서 자산을 불리겠다는 것이고, 다들 좋아하는 스노우 이펙트는 굴리고 굴려야 불어나는 것인데. 스테이블은 뭘까? 안정적으로 늘어나는, 안정적으로 불어나는 것은 뱃살뿐이 아니던가. 그러면, 그렇게 안정적이기만 하면 누가 사고 누가 팔까? 어느 때에 사고 어느 때에 팔까? 변동성이야말로 인생의 진리이고 오르고 내리는 것이 에너지의 원천인데 가만히 불어만 나면. 우리는 그것을 암세포라고 부르지 않는가.

암세포를 키우고 있었으리라. 가만히 500배가 불어나는 자산을 보며 씨는 내가 뿌려도 키우는 건 시간이라고 망중한을 즐겼던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면 그건 믿음 없는 손절에 대한 속죄일까? 그러나 이제까지 루나가 달려온 길도 스테이블 하지만은 않았단다. 비슷한 폭락이 계속되었고 그럼에도 돌파하고 넘어서고 넘어서서 여기까지 온 것이란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끄는 이들에게 이 과정은 알고리즘에 따라 스테이블 하게 흘러온 것이 아니다. 대응하고 대처하고 막아서고 극복하고. ‘미리 정해진 수학적인 알고리즘에 따라 공급을 조절한다.’는 이 방식의 수학적 알고리즘은 넘고 넘어서는 것이고 대응하고 극복하는 일이다.

이런 일은 이 세계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이에 도전하는 이들은 수도 없는 ‘언페깅’ 곡괭이를 맞아가며 소멸되고 추방되고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험한 파도를 넘고 넘어 살아남고 살아남은 그것의 대명사가 되어 가던 테라는 이번에도 잔인하게 테러를 당한 듯하다. 백조의 분주한 물밑 헤엄처럼 스테이블을 제공하려는 이들의 테러블한 일상은 멈추지 않는구나.

암호화폐의 궁극적 목표인 실생활에서의 사용을 위해서는 결국 이 ‘스테이블’이라는 과정을 넘어서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모든 도시의 목표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일상을 위하여 스테이블 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도시는 유령도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근간에는 교환수단으로서의 화폐가 있다. 관계를 이어주는 교환수단으로써의 그것은 ‘스테이블’ 하지 않을 수 없다. 주고받는 것이 다양해지고 거래의 대상이 많아질수록 교환수단인 그것은 간결하고 명쾌해야 한다. 변동성을 품어 안을 수 있는 풍부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에 기반해야 할까? 무엇과 페깅 되어야 사람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까? 그간, 루나는 얼마나 유저들의 신뢰를 확보해 왔을까? 그것은 속절없이 쏟아내는 자산들의 양상이 보여주리라. 커뮤니티의 신뢰는 얼마나 서로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는가가 증명해줄 테니까.

구한말 조선의 의병은 세계사에 드문 일이었다고 한다. 용병도 아니고 의병이라니. 그런데 이들을 포로로 잡고 보면 이상한 일이 반복되곤 했는데 “오늘은 포로들이 다 고씨야. 어제는 박씨더니. 이상한 일일세.” 했다는 거다. 그러니까 전쟁에 참여한 이들은 조선의 백성들이 아니라 가문의 일원들이었다는 거다. 우리 가문이 참여하는 전쟁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 그것은 생존 공동체이니까. 그런 걸 우리는 결사라 부르고. 이 시대의 가문은 같은 화폐를 사용하는 일원이 아닐까? 그러면 루나 가문의 일원들은 이번에는 어떤 결사를 보여줄까?

자본주의 시대에 돈으로 묶이는 것만큼 강력한 결속이 없다. 그래서 가족은 경제공동체여야 하고 경제력을 상실한 가장은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거다. 암호화폐의 커뮤니티는 더더욱 그렇다. 내 자산이 서로에게 묶여있지 않으면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할 수는 없다.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는 관계. 공동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이 수학적으로 묶여있지 않다면 너는 내가 아니고 나도 우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기득권을 욕하며 경제공동체로 꽁꽁 결합되어 있다 비난 하지만, 그 공동체에 하루종일을 바쳐가며 헌신하고 희생하면서 손가락질하는 건 좀 이상하다. 그건 그냥 나를 끼워주지 않아 삐친 마음일 뿐. 자격이 된다면 끼워주지 않을 리 없다. 누구든 그 경제공동체에 자신의 자산을 연결시킨다면 너도 그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한 공동체는 이익이 사라지면, 줄어들면, 산산이 부서진다. 폭포수처럼 흩어진다. 그건 커뮤니티가 아니고 기득권일 뿐이다.

신뢰를 쌓는 일은 서로가 무언가를 주고받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무언가는 돈이고 물질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그것을 주고받는 일로부터 도시와 공동체의 근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느 도시에 가든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환전인 것처럼 거주의 제일 요건은 자신의 자산을 속하고 싶은 커뮤니티의 화폐로 환산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에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잠시 머물다 가는 경유지에서는 누구나 환전을 최소화한다. 차라리 안 먹고 안 자고 만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그곳에 정착하려면 자신의 자산을 환전해야 한다. 모두이거나 일부라도. 그리고 그 시작은 마음으로부터여야 한다. 마음에 들어야 한다.

많은 크립토 프로젝트들이 백서로 사람들의 마음을 샀다. 그들은 그것에 우리는 이것을 하겠다, 저것을 하겠다, 청사진을 그려놓았다.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으니 그것은 불가능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니다. 가능할 거라 믿는 이들이 자신의 자산을 그들의 화폐로 환전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끄는 이들은 변동성의 바다 위에서 파도타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스테이블조차 믿을 수 없어 생겨난 프로젝트가 할 일은 그것뿐이다. 변동성의 파도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파도타기를 이어갈 수 있는가.

[스팀시티]의 ‘스테이블’ 역시 ‘주고받음’으로 시작되었다. 위즈덤 러너가 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337스파임대로 자신의 믿음과 의사를 증명했고 이에 반응하기 위해 마련된 <미니스트릿>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비용을 마련하려고 애쓰던 과정에서 총수와 그의 친구는 자신들의 자산을 주고 받았다. 그것으로부터 [스팀시티]가 시작되었다. 그것에는 마음과 뜻과 정성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 뒤로 [스팀시티]의 사람들은 계속 무언가 주고받고 있다. 물론 그것은 돈이다. 물질이다. 그래야 한다. 이것은 크립토 시티이니까. 그것이 일상처럼 안정적으로 오갈 때 이 일상은 알고리즘이 되고 그들이 주고받는 그것은 ‘스테이블’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에 왕창 주고 대가를 바라서는 아무런 알고리즘이 생성되지 않는다. 교환이 일상이 되는 일. 잃어버린 자산을 찾아 전국의 책방을 수소문하는 일. 호의를 거절하지 않을뿐더러 권리라고 퉁치고 보상하지 않는 습관을 경계하는 일. 그런 수많은 사례와 동작의 반복이 ‘스테이블’ 한 ‘알고리즘’을 생성하리라.

루나의 커뮤니티가 이번 파고를 잘 넘어서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디서 이루어지는지도 모르는 단톡방, 디스코드 커뮤니티를 넘어서 여기 스팀잇처럼 기록하면 박제되는 안정적인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기를 권고한다. 도대체 지워버리면 그만인 140자 짹짹이로 무슨 공론을 펼치겠다는 건지. 그래서야 당황한 인민들의 마음을 붙들어 놓을 <시일야방성대곡>을 외쳐나 볼 수 있겠는가. 라디오라도 있어야 ‘한강 다리는 폭파하지 않는다.’ 뻥이라도 쳐 볼 수 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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