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100] 신의 음성을 들었지

[BOOK100] Aug 24, 2021 l M.멀린

 

 

스무 살의 늦여름, 용산의 어느 공원 아름드리나무 아래에 누워 이 책을 보다가 나는 계시 같은 걸 받은 거야.

신의 음성을 듣는다는.

그래. 그는 신의 음성을 듣는다고 했어. 그것도 빵을 구우며 말야.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는군. 빵 굽는 수사는 빵을 구우며 평생 신과 동행했다는군. 나는 생각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건 정말 막강해 보였어. 신의 음성을 듣는다니. 그게 무슨 무당이 듣는 귀신의 음성이 아니라, 절대자의 음성을 듣고 그와 대화하며 평생을 살다간 사람이 있다니. 그건 뭔가 멋있어 보였고 뭔가 강력해 보였어. 그런데 뭘 하고 살았냐고? 평생 주방에서 수도사들이 먹을 빵을 구웠다는 거야. 신의 음성을 듣는 이가 혁명을 일으키지도 엄청난 부를 일군 것도 아니고, 주방에서 빵을 구우며 살았다니.

빵 굽는 이도 듣는 걸, 어쩌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걸, 왜 사람들은 듣지 못할까? 아니 나는 그 음성을 듣고 싶었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생각했어. 어떻게 어떻게 하면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신과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건 고통과 고난의 시작일 수도 있어. 모르는 게 나은.

그리고 듣게 되었지. 매우 이상하고 엉뚱한 순간에 신의 음성이 들려왔어. 나는 상황과 상관없이 감격했지. 그건 말이야. 자유의 말이었고 용납의 말이었어. 어찌나 신이 나던지. 그리고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지. 신께 물으면 되니까. 기적도 시작되었어. 하늘에서 돈이 떨어져 내렸어. 땅에서 솟아난 적도. 선지자가 되었지. 세상에 일어날 일을 모두 알게 되었으니 하지 못할 게 무얼까.

아, 이제 이렇게 살면 되는구나. 이런 것이었구나. 마음은 단단해지고 가슴은 커져갔지. 그런데 어느 날, 더이상 신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거야. 딱 하고 멈춘 거야. 그렇게나 잘 들리던 신의 음성이.

견딜 수 없이 답답했어. 온갖 책들을 뒤졌지. 나 같은 상황이, 나 같은 순간이 선조들에게도 있었는지. 역시나 그들의 책에는 기록되어 있었어. ‘사막의 시간’ 음성이 멈추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사막 같은 시간이 폭풍처럼 몰아닥친다고 그리고 물러가지 않는다고. 아, 시작되었구나.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리 물어도 더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딱 하나의 말만큼은 분명하게 들려왔어. 그것은 매우 단순한 한 문장이었지. 나의 모든 질문에,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렴.

그것뿐이었어. 무엇을 물어도,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아니 그런 답을 원한 게 아닌데. 신의 뜻이 무엇인지, 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왜 내 뜻과 내 마음대로 하라는 거야. 그게 뭔지 모르겠다고. 그러면 그러면 그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 되는 거잖아.

그랬던 거야. 신의 음성을 듣고 싶었던 건 책임을 내가 지고 싶지 않았던 거야. 미래에 대해서, 선택에 대해서. 그러면 나는 감사도 원망도 할 수 있을 텐데. 내 뜻이라면, 내 마음이라면, 감사도 원망도 할 수 없잖아. 그건 너무 무겁잖아. 고통스럽잖아.

사막이 계속되는 거야. 걸어도 걸어도 의지할 것은 내 마음과 내 뜻 뿐인 사막이 계속 펼쳐지는 거야. 방향을 알려줄 무엇도 보이지 않는 거야. 단지 마음의 소리만을 붙잡고 발걸음을 움직여야 하는 거야.

아.. 그런데 그게, 그게 옳은 거야. 신의 음성 따윈 처음부터 없었던 거야. 내가 들었던 것은 내 마음의 소리. 신의 음성이 아닌 내 마음의 음성을 들었던 거야. 내 마음이 원하는 걸, 신이 원하는 걸로, 신이 바라는 걸로 핑계를 대고 있었던 거야. 바보같이.

그리고 알게 되었지. 그 모든 것이 ‘직관’이었다는 걸. 나는 신의 음성이 아닌 내 마음의 소리를 직관하고 있었던 거야. 그건 뭐 대단히 간단한 것. 그러나 대단히 어려운 것. 대단히 망설여지는 것. 대단히 희미한 것. 가느다란 실이 끌어당기듯 분명치도 확실하지도 않은 것.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는 거야. 알아채릴 수 있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나는 마법사가 되었지.
빵 굽는 대신 글 쓰는 마법사가
그리고 지금은
빵 대신 커피를 내리고 있지.

 

 

 

위즈덤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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