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序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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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니다. 생의 첫 책의 제목이 ‘개새끼 선언’이라니.. 좀 더 간지나고 멋드러진 제목을 하고 싶었지만, 내 삶을 이끌어온 직관은 ‘아니야 ‘개새끼 선언’ 이게 맞아’라고 나를 압박하며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제목 때문에 출간을 망설이고 망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국 나는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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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책 제목에 ‘개새끼’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항변하며 출간을 미루던 내게, 직관은 ‘이제 더 이상은 안 돼!’하고는 내 눈앞에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박열 열사를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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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z개새끼

zzz나는 개새끼로소이다
zzz하늘을 보고 짖는
zzz달을 보고 짖는
zzz보잘 것 없는 나는
zzz개새끼로소이다
zzz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zzz뜨거운 것이 쏟아져
zzz내가 목욕을 할 때
zzz나도 그의 다리에다
zzz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zzz나는 개새끼로소이다

zzz– 박열 <조선청년>,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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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 모르고 있던 박열 열사의 감동스러운 삶이며.. ‘알았다. 그래도, 그런데, 꼭 그 제목이어야겠니?’ 박열 열사의 시와 인생을 접한 다음날 직관은 내게 또 한번 확인사살을 가했다. 뜬금없이 어머니가 읽어보라고 던져준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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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는 인류에게 지배적 시선에 붙잡히지 말고 ‘개와 소년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촉구했다. ‘끊임없이 놀라운 곳’으로 세계를 다시 발명할 것을, “언제나 놀랄 준비가 된 상태”로 살아갈 것을, 권력의 시선에서 벗어나 “다르게 보는 법”을 실행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를 위해 그가 자기 일생을 스스로 요약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나는 개새끼다.” 사람으로 태어나 작가로 살았으나, 마침내 개로 살고 죽을 수 있었으니, 그 인생은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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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지배적 시선에서 벗어나 다르게 살아보기’ 대선배 존 버거의 권고는 또한 내 글의 주제이기도 하다. 고정관념과 통념, 관습적 시선에서 벗어나 ‘개와 소년의 눈’으로 삶과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 그거 하겠다고 이 책을 쓴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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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미래학자 짐 데이토 교수는 미래를 예측함에 있어 ‘Ridiculous’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Ridiculous
; 웃기는,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있다. 그것은 존 버거의 말을 빌자면 지배적 시선에서 벗어나, 개와 소년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소년의 천진난만하고 가식과 통념이 없는 시선뿐 만 아니라, 심지어 개새끼라고 불릴지언정, 변화하는 삶과 미래를 도덕과 이념, 관습과 시스템의 한계에 구속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예언자적 시선 말이다. 그것은 신체발부가 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이던 시절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상투를 자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상투를 자를 수 있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돌팔매를 당하고 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그래도 지구는 태양을 돈다’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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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또한 수백 년 뒤의 미래 인간들을 위해 쓰여진 21세기 보고서이다. 나는 수백 년 뒤 미래로 날아가서 미래 인류를 만나고 돌아온 뒤, 그들이 모르고 있던 21세기의 인류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21세기에 관한 자료들은, 온통 주변 시선들을 의식하며 쓰여진 왜곡된 자료들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관찰한 현시대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죽고 난 뒤 열어보라고 쓴 일기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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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 책을 읽고는 (아니 쓰여진 순간 그들의 서재에 이미 꽂혀있을)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세상에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살았다니’, ‘어머나 시험이란 게 있었네’ 심지어 ‘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 돼? 그건 로봇이나 하는 거잖아’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차라리 낫다. 수백 년 뒤의 미래 인류들에게 21세기의 사회상이, ‘차라리 그때가 좋았네’ 로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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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래서 마법사 멀린의 동방견문록이다. 개와 소년의 시선으로 기존의 고정된 율법의 담장을 훌쩍 뛰어넘는 ‘馬法士’이자, 지배적 시선을 과감히 탈피하여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삶과 인생의 방방곡곡을 열심히 헤집고 다니고 있는 개새끼 소년의 위험한 여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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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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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소년 Ridiculous Boy


[1] ‘지배적 시선에서 벗어나 다르게 살아보라’, 문화일보, 2017년 3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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