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

by mmerlin

[멀린’s 100] 2018.04.22 l M.멀린  

 

po.png

ziphd.net
사람들은 힘을 숭상합니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능입니다. 힘의 형태가 달라지고 대상이 달라질 뿐, 그것을 갈망하지 않는 존재는 없습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어른은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장을 거부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성장을 거부하는 존재는 없습니다. 누군가 그러고 있다면 역행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겁니다. 성장을 멈추도록 강제함으로써 자신의 초월적 지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러니 누구나 힘을 숭상합니다.

자존감이 높고 내면의 힘이 강한 사람은 타인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존감이 낮고 내면의 힘이 약한 사람일수록 타인을 의지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요. 모두가 어쨌든 힘을 숭상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가지고 있든 남이 가지고 있든 힘 자체를 갈망하고 있는 겁니다.

힘, 파워, 권력, 자존감, 자존심, 자기 효능감.. 다 같은 말입니다. 더 많은 표현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힘이고 강한 것입니다. 그것을 열망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나쁜 일은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힘이 많이 듭니다. 모두가 YES 하는 자리에서 NO라고 말하는 일, 모두가 NO라고 말하는 자리에서 YES라고 말하는 일, 다 힘이 듭니다. 저항은 힘이 없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둘 중 하나의 태도를 취합니다. 복종하거나 지배하거나. 지배. 자신을 지배하거나 타인을 지배하거나.. 그러나 복종은 오로지 타인에게만 가능합니다. 자신에게 하는 것은 복종이 아니라 자유일 테니까요. 힘을 내부에서 찾을 수 없는 존재는 힘을 외부에서 찾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대상과 일체화되기를 갈망합니다. 대표적인 대상은 신神입니다.

신을 갈망하는 인간의 심리는 대자연의 힘을 직면할 때 더 강렬해집니다. 지진, 홍수, 태풍.. 천재지변 앞에 무력한 인간은 비로소 신을 찾습니다. 힘을 갈망하지 않는다면 그럴 일은 없겠죠. 힘을 갈망하고 그 힘을 내부에서 찾을 수 없으니 외부의 존재에게서 그 힘을 빌어오려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힘을 확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근거리를 좁히는 겁니다. 권력자와의 거리가 권력을 크기를 보여주니까요. 종교지도자들의 단상이 일반 신도보다 적어도 한 단은 높은 이유입니다. 조금이라도 하늘에 가깝게 표현하는 이유입니다. 유치하더라도..
ziphd.net

170407020954012_thumb_400.jpg
설교단을 저렇게 공중에 매달아 놓기도 하고

ziphd.net

hqdefault.jpg
심지어 배경을 하늘 사진으로 하기도 합니다.

ziphd.net
복종은 힘을 얻는 가장 큰 방법입니다. 복종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태고로부터 힘을 숭배해 왔습니다. 태양과 동물에서, 이성이 생겨나자 이성을 초월하는 신神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그게 필요합니다. 복종의 대상 말이죠. 그러나 그것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복종의 대상은 동화되거나 넘어서거나, 성장의 기준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힘을 얻고자 하는 인간이 내면에서 그것을 찾을 수 없을 때, 그래서 외부에서 그것을 빌어와야 할 때 우리는 권력을 찾아 복종하려 듭니다. 반발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만큼 내면의 힘이 존재하는 겁니다. 그러니 권력자의 압제 아래 있는 일은 이렇게도 좋고 저렇게도 좋습니다. 권력자의 힘에 동화되거나, 반발심을 일으켜 내면의 힘을 강화하게 되거나.. 어쨌든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도망치면 그는 성장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반발력도 생겨나지 않고 빌어 올 힘도 없으니, 이런 이들은 그냥 루저로 살거나 기회주의자가 되는 겁니다. 그냥 여기저기 새 나오는 찰나를 포착하여 이리 타고 저리 타고 자리 이동만 하는 겁니다. 성장은 없습니다.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그 짓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복종의 욕망을 인간은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순종과는 다릅니다. 순종은 의지가 없습니다. 순종은 납득되었고 받아들여졌기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종에는 반발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종은.. 힘이 큽니다. 반발했던 의지도 강하고, 그것을 어쨌든 눌렀으니 누르는 힘은 더 클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종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내면의 힘이 어느새 자라나 있습니다. 물론 맹목적인 복종도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순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맹목적 복종에는 의지가 없으니까요.

칼이 칼을 날카롭게 하는 겁니다. 인생의 수많은 거친 장애물들은 강해지고자 하는 자에게 단련의 대상이 되어줍니다. 그러나 자신自信이 없거든 숭배할 대상을 찾으십시오. 힘의 곁에서 철저하게 순종하며 자신自身을 대상과 동일시하십시오. 그게 신神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만큼 강한 힘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을 수 없는 복종하는 인간들이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듭니다. 그래서 태극기에 자신의 영혼을 담기도 합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성장을 포기했거든 얹혀라도 가야지요. 물론 그것에도 성장이 존재합니다. 라이벌들이 생겨나니까요. 권력자의 지근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복종보다 더 강력한 힘의 경쟁구도가 생겨나기도 하니까요. 뭐든 좋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강해져 가고 내면은 단단해져 갑니다. 그것의 판단이야 성향 따라가는 것이니 정답은 없는 것입니다. 너의 편, 나의 편이 있을 뿐이지.
ziphd.net

gh.jpg
 

눈에 보이는 신이 필요할 뿐입니다

ziphd.net
내면에서 만들어진 것은 신信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자신自信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만들어진 것은 우상입니다. 거친 환경을 극복하며 진화해 온 지금의 인류는,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自神을 가지기 보다 우상을 만드는 일에 더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좋습니다. 동화되거나 극복하거나 좀 더 자신보다 나은 존재를 지향하고 있으니, 그것도 언젠가는 성장으로 이어질 겁니다. 그러나 자신도 없으면서 우상도 만들지 않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재수가 없습니다. 뭘 해볼 생각도 없으면서 뭔가 해 보는 이들을 우상숭배라며 비난합니다. 그들은 광장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촛불을 들든 태극기를 들든, 칼과 칼이 부딪히는 성장의 자리에 참여해야 성장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가만히만 있습니다. 입이나 놀리며 우상숭배를 비난함과 동시에 촛불을 자조함으로 자기 자신을 점점 무無로 환원해 가고 있습니다.

복종을 이해하지 않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내면의 성장과 자신감에 관한 이야기는 세상에 많은 데 복종에 관한 이야기는 세상에 너무 없습니다. 그것은 사드 후작이 200년 전에 잠깐 이야기 한 바가 있습니다. 사디즘과 마조히즘.. 그것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강력한 힘의 역할극입니다. 그대도 S와 M을 바꿔가며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S로, 사회에서는 M으로, 학교에서는 M으로, 연인에게는 S로 또는 S와 M을 교묘하게 조장하며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때로는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다시 폭력의 주동자가 되고..
ziphd.net
freud102830.jpg
ziphd.net
이것을 복종이라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도 복종을 갈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것이 신이든, 우상이든..

힘을 중심에 놓고 극과 극을 이루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계속 폭력을 주고받으며 성장합니다. 그것은 육아의 현장에서, 교육의 현장에서, 업무의 현장에서, 심지어 사랑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재현되고 반복되며, 심화되고 극복되며 성장의 자양분이 되어줍니다. 누구도 그것의 역할을 거부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습니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갈등이 빚어지고 이내 폭력이 가해지지만, 인간은 금세 잊고 또다시 시작합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사건과 사고, 기억과 트라우마가 여전히 존재하고 사라진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웃고 있습니다. 성장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회피해서는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살을 찢고 나옵니다. 엄마는 그 한 번을 위해 매달 피를 보는 연습을 합니다. 사랑의 행위는 폭력을 전제로 합니다. 성기와 성기가 맨살로 부딪히고 찢고 찢어지면서 고통은 환희로 전환됩니다. 일부러 하라면 하지도 못할 짓을 사랑이라며 나누고 즐깁니다. 반복합니다. 그리고 유전자를 이어가며 생태계를 구성합니다.

권력자의 압제에 대항하지만 힘없는 권력자는 무시합니다. 능력을 보이라며 폭력을 행사하기를 요구합니다. 폭력이 두려운 권력자는 폭력에 의해 자리를 찬탈당합니다. 그러나 폭력을 행하는 권력자는 동화되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 떠받들여집니다. 또한 반발하는 이들의 힘을 성장하게 합니다. 그래서 명석한 권력자는 함부로 반발하는 자들을 상대해 주지 않습니다. 그들의 힘을 키워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폭력, 사랑과 폭력, S와 M의 구도에서 보면 모든 것이 확연합니다. 나는 그대들에게 글로써 폭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대들의 마음에는 동화되거나 반발하고 싶은 두 가지 욕구가 일어납니다. 동화하고 싶거든 복종하십시오. 순종은 의미 없습니다. 그건 그냥 동조일 뿐입니다. 가볍게 보고 지나갈 뿐입니다. 반발하고 싶거든 극복하십시오. 넘어서 보십시오. 마법사를 말이죠. 찍소리도 못하게! 나도 그대를 넘어서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 성장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무서운 자는 도망가십시오. 읽지도 마십시오. 잘못 걸렸다 뼈도 못 추립니다.

위험합니다. 마법사는 힘이 셉니다.
그 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S입니까? M입니까?
ziphd.net
ziphd.net

멀린’s 100

 이전글다음글

Scroll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