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게

by mmerlin

[멀린’s 100] 2018.04.08 l M.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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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공주는 꿈이 뭐야?”

“풀장 완주.”

“에? 25미터? 왜~ 이제사 박태환 될려구?”

“물에 빠지면 죽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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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요즘도 수영을 하니? 미안하구나. 아직도 세상은 바뀐 게 없는 것 같아. 네가 수영을 배울 때, 모두들 이제 수영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으려고 그려냐고 했지만.. 수영하는 법을 모르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어. 물에 빠지면 죽으니까.

너의 고통이 시작된 2004년. 그때에는 누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었니? 그때에는 왜 아무도 너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니? 우리 모두 수영도 할 줄 모르면서 너의 말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구나. 너무 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세상은 여전히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혹해. 수영이 하고 싶어 물에 간 건 아닐 수도 있는데, 세상은 수영을 할 줄 모르면 사람 취급을 해 주지 않아. 여전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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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너의 일을 남의 일처럼 버려두지 않았더라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10년 뒤의 일 말이야. 너와 같은 많은 아이들이 수영을 해야 했어. 수영을 말이야.

우리는 육지에 사는 데 왜 수영을 해야 할까? 우리는 물고기도 아닌 데 왜 수영을 해야 할까? 사람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것은 물이 아닌 대지의 공기를 마시고 살라고 그러는 건대, 왜 우리는 숨쉬기도 어려운 물속에서 살아가도록 강요받는 걸까? 수영할 줄 모르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그런데 왜 모든 사람이 수영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걸까?

그리고 10년이 지났지만, 그리고 또다시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많은 아이들이 있어. 그 아이들은 수영을 할 줄도 모르면서 옥상에서, 교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지. 바다도 아닌 대지에 자신을 던지는 거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데 말이야. 그러면 부모들은 깨어날까? 어른들은 깨어날까? 그 많은 순교의 피는 누가 감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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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너의 친구들, 너의 후배들이 그렇게 세상에 맞서고 있을 때 어른들은 세상과 타협하고 있었어. 타협은 누가 하니? 약자는 타협을 할 수가 없어. 일방적으로 당할 뿐이지. 어른들은 약자가 아니었어. 그 어른들의 시대에는 모두가 수영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가 있었지. 그러나 너희들에게는 수영을 하지 않으면 건너 갈 수 없도록 깊은 해자(垓字)만을 남겨 놓았구나. 그리고는 팔짱 끼고 주욱 늘어서서 초시계를 들고 기록을 재고 있지. 누가누가 빨리 헤엄치나..

그래 어쩌겠니. 너희들은 수영하는 법을 배우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니. 나비처럼 대지를 향해 뛰어내리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너는 꼭 살아남으렴. 그리고 너의 친구들, 후배들에게도 수영하는 법을 꼭 가르쳐 주렴.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니까. 그러나 어른들은 자꾸 너희들을 물로 밀어 넣으니, 너희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게 되기까지는 최선을 다해 헤엄쳐야 해. 그러나 마법사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단다. 그러나 마법사는 너희들 모두가 수영하는 법을 배우기까지 수영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 거야. 단 한 사람이라도, 수영할 줄 모르는 아이가 남아있다면 마법사는 그 아이와 함께 있을 테니, 너는 어서 헤엄쳐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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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어쨌든, 너희들의 땅이 가라앉아 있는 대양에서 만나도록 하자. 그곳에서 지구를 발로 꼭꼭 밟으며 너희들의 세상을 열기 위해 달리고 있는 너희들의 선배가, 아이들을 자꾸 물로 끌어가려는 세상의 힘과 맞서 싸우려는 너희들의 선배가, 너희들의 새로운 땅, 가라앉은 너희들의 꿈의 대륙을 찾고 있으니, 우리는 그곳에서, 어른들은 걷는 법을 몰라 뒤뚱거리는 그곳에서, 걷고 달리고 뛰자.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을 거야.

 

나루님(@ab7b13)의 ‘앞으로’를 들으며.. 마법사의 가슴은 촉촉해졌다. 메마른 지구를 걷고 또 걸어야 했던 지난 시간들이 모두 일어나, 쏟아지는 단비를 맞는 느낌이었다.

마법사는 둥근 지구를 걷고 또 걸어 마침내 아틀란티스 대륙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스팀시티]를 일으켜 내었다. 거기에는 아이가 살고 있었고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이제는 [스팀시티]의 시민들이 세상을 향해 걸어나갈 차례이다. 마법사도 그러했듯이.. 그것에는 많은 서툰 선택과 어설픈 걸음들이 혼재할 것이다. 팬티까지 털릴 수도 있고, 온갖 모함과 배신이 가득할지도 모른다. 오해와 불신, 몰이해와 갖은 험담 속에,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스팀시티]의 개척자들은.. 그것들 속으로 진격해 들어가야 한다.

거기에 우리를 믿고 기다리고 있는 아틀란티스의 소년소녀들과 우리의 서글픈 지난날들을 모두 담고 있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를 몇 바퀴를 돌아야 그들을 만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지구는 둥그니까. 지구도 걷고 있으니까 말이다.

_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누구를 만날까?]

 

 

“공주야, 왜 그렇게 수영을 열심히 해?”

“다시 시작해보고 싶을까 봐.
내 맘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_ 영화 ‘한공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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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일 : 2014년 4월 17일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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