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 놈

by mmerlin

[멀린’s 100] 2018.02.11 l M.멀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즐기는 놈’ 있다고 합니다. 요새들 그렇게 말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즐기는 놈’ 위에,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 놈’이 있습니다. 성취도와 지속성을 놓고 보자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즐기는 놈’은 재미 없어지면 그만입니다. 즐기는 게 최고라고 하지만 좋아야 즐기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걸 꼭 좋아서 시작하게 되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어떤 일, 어떤 업종에도 반드시 그걸 좋아하는 ‘덕’들만이 모이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 따라왔다가, 우연히 시험에 붙어서, 남들이 좋다고 하니.. 뭐 이런저런 이유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어디나.. 그중에 즐기는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로 흘러들어왔다 흘러나가버리는 사람보다야 당연히 낫겠지만, 일이라는 게 흥망성쇠가 있고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이니, 위기란 것이 당연히 들이닥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큰 위기는 ‘권태’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도통 재미도 없고 실력도 늘지 않는 순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성취를 위해서라면 열에 아홉만큼은 그런 시간들을 견디어야 일정 수준에 도달하게 됩니다. 즐기는 사람도 여기까지는 합니다. 재미없어 금방 관둔 사람을 즐기는 사람이라고야 할 수 있겠습니까. 일의 흥망성쇠, 우여곡절을 경험하는 것까지 즐길 수 있어야 그것을 즐긴다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무서운 것은 ‘권태’입니다.

권태가 잠식하기 시작하는 일에서 우리는 재미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권태는 즐길 수가 없는 거니까요. 그러면 재주 많은 순서대로 일과 업계를 빠져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재미를 찾아야 하니까요.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은 결국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 놈’입니다. 어쩌면 동네 형이 좋다고 해서 따라왔다가,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 되어 마냥 그것만 하고 있는 누군가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업계에 남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들은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아주 일을 즐기고 있지도 못합니다. 다만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고, 그거라도 하고 있어야 해서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그들은 매우 성실한 이들입니다. 일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일의 흥미와 상관없이 성실하게 숙련해 왔고, 천부적인 화려한 재주를 가지고 있지는 못해도, 시간을 견디어 낸 역사의 마디를 손에 지니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결국 끝까지 남습니다. 산업 자체가 와해되기 전까지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킵니다. 그리고 오히려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추게 되는 시점에 산 역사로 남게 됩니다.

그런 일들을 우리 조상들은 하며 살아왔습니다. 먹고살고 생존하는 일. 그래서 할 줄 아는 게 하나씩 있었던 시절 말이죠. 그러다 팔방미인들이 기계의 힘과 기술의 발전을 빌려 그들의 영역을 하나씩 잠식해 들어갈 때에도, 결국 골방으로 골목으로 밀려나면서도 자신의 영역을 지켜나갈 수밖에 없던 그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 평생 해 먹고 살 일. 그것을 말이죠. 우리는 너무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발전의 속도를 지나치게 높인 탓으로 말이죠. 그러나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시대는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 내게 마련이고, 할 줄 아는 그것은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이 시대에는 일과 취향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 데 그것을 즐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지난날의 인류의 과오를 탓하기 보다, 우리는 빠르게 달려온 만큼 놓친 것들이 있는지 뒤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놓친 그것은, 어쩌면 아무도 하지 않고 있는 일들 일 테니까요. 그런 것들을 찾아내어서 먼지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시간의 나이테가 묻어나는 것을 사람은 좋아합니다. 그것은 안정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한결같이 같은 일을 반복해 왔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주인장의 사람됨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실은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재주가 많으면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고 싶고 나이테를 만드는 일에 소홀하게 됩니다. 그렇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남는 것은 1년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주소록 뿐입니다. 한 우물을 파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할 줄 아는 게 너무 많지 않은지 돌아보자는 말입니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 사람은 어쨌거나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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