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는 시대의 연애

by mmerlin

[멀린’s 100] 2018.11.07 l M.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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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더 이상 결혼하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는 시대라고 해서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혼하지 않는 시대의 연애는 무얼까?

 
그리움이다.

 
그리움 때문에 결혼을 생각한다. 헤어지자마자 보고 싶어 결혼한다. 함께 있고 싶고 시간을 공유하고 싶어 결혼을 한다. 삶을 공유하는 것이 결혼이지만.. 정작 결혼을 한다고 해서 삶이 공유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움 때문이다.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외로움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좋을지 모른다. 외로움을 달래 줄 수 있는 존재라면 차라리 곧 등장하게 될 사이보그 휴먼이 더 좋을지 모른다. 내게 최적화된.. 그런 결혼은 대상일 뿐이다. 나는 그저 내 결핍을 채워 줄 누군가가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외로움이 그리움은 아니다. 그리움은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너가 그리운 것이지, 내가 외로운 것이 아니다. 심지어 너를 만난다고 해서 외로움이 해소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운 것은 너다. 그러므로 너를 만나야 하고 너랑 살고 싶다. 그래서 결혼을 한다.

 
그리움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너다. 그리운 것은 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것에는 다른 무엇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결혼은 그리워야 한다. 필요한 것도 아니다. 필요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있고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움은 너뿐이다. 너만이다.

 
그리운 존재를 만나는 것.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무엇을 그리워할 것인가? 생판 모르는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는 없다. 그냥 아는 사이를 그리워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이 좋다고 해서 꼭 그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죽을 만큼 밉고 힘들었어도 우리는 그립다. 심지어 군대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지독했던 학창시절이 문득 그리워질 때도 있다. 죽일 만큼 싫어도 누군가가 은근 그리워질 때도 있다. 그립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일까? 그리운 모든 것은 어쩌면 사랑이었을지 모른다.

 
그리운 존재는 태생적이지 않다. 나에게 맞는 누구는 태생적일 수 있다. 모든 것이 잘 맞고 신기할 정도로 일치할지라도 그 누군가는 아직 그리운 대상이 아니다. 그것에는 시간의 역사가 있다. 그리움은 시간의 역사를 먹고 자라난다. 물론 시간의 밀도는 시간의 길이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잠시 잠깐 만났더라도 한없이 그리워지는 존재 또한 있을 테니.. 그렇다면 그리움은 결국 내 마음을 얼마나 내어주었는가와 비례하는 것일 테다. 마음의 부비부비 말이다.

 
우리는 마음을 내어 준다.

 
마음을 흘리기도 하고 기꺼이 내어주기도 한다. 밉고 싫은 존재조차 부볐던 시간 때문에 그리움의 목록에 오르기도 한다. 그것은 부벼댄 시간의 결과일 테다. 그러므로 연애는 모든 것의 부비부비일 것이다. 마음을 부벼대고 살갗을 부벼대고 삶을 부벼댄다. 그것때문에 생채기가 나기도 하고 숨이 꼴딱 넘어갈 만큼 당황하기도 하지만.. 부벼대는 일이 즐겁지 않다면, 그것에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면,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부벼대다 보면 뒹굴고 싶어진다.

 
그래서 결혼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부벼댈 바에 제대로 뒹굴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뒹굴다 보면 그리움의 간격이 사라질 테고,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히 몰입되어질 수 있을 거라 믿고 싶다. 그래서 결혼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래서 결혼을 했다.

 
안다. 그리움을 크게 하기 위한 결과가 얼마나 감당하기 어렵고 참혹한지.. 그럼에도 부벼댄 시간만큼, 부벼댄 마음의 크기만큼, 그리움 또한 자라나 있다. 그리고 결혼은 그리움의 무덤이다.

 
그립지 않으려고 결혼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게 된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리움이 더할리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움의 본질이 아니다. 그리움은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움은 부비부비와 함께 자라나니, 부비부비의 시간만큼 그리움도 함께 자라나야 한다. 그러나 그리움이 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새 서로에게 질식되고 있는 것이다.

 
떨어지면 알게 된다.

 
사랑이었는지.. 그리움이 없다면, 그것이 옅다면, 그만큼 우리는 지난 시간 무엇과 함께였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립다면 그리운 만큼 사랑이었다. 아쉬움과 후회, 미련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그리움의 적들이다. 그것들이 들어서지 못할 만큼 충만한 시간을 그리움이 채우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못했다면 질식할만하다. 그리움에는 서로의 호흡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질식할 리가 없다. 상대의 호흡이 나의 호흡이 되지 못했다면 질식해 가는 게 당연하다.

 
결혼하지 않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그리울 것인가.

 
사회적 의미의 결혼은 의미를 상실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그리움의 해결책으로 또는 그리움의 완성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자리는 아무것도 채우지 못한 채 진공으로 남아 있다. 서로를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그리움의 힘은 이제 무엇으로 그 형식을 새롭게 창조할까? 동거, 사회적 계약, 대안 가족 여러 형태의 모색들이 있으나, 그 무엇도 그리움의 강력한 인력을 감당할만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움의 대상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은 찾아오는 것이고, 엄습하는 것이고, 압도하는 것이기에 피할 도리가 없다. 낡고 구닥다리가 같아도 아직 썩은 동아줄은 아니기에 여전히 결혼제도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고, 일단 시작되면 감당할 자신이 없어 아예 시작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이것도 저것도 좋으니 파괴되더라도 그리움의 맛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 과도기적 시대에 어쩌면 연애는 최후의 보루처럼 지켜져야 할 인간성의 얼마 남지 않은 본질일지 모른다.

 
자연의 일원으로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자연법칙 속으로 회귀하는 것도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우리는 이러한 자연법칙을 뒤집고 헤집으며 우주의 진화를 가속화할 사명 역시 자연스럽게(?) 가진 존재들이 아닌가? 모든 것이 자연 속으로 회귀되고 있는 이때에, 사람들이 아직 연애를 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움의 씨앗이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안정된 토대 위에 열매를 맺기는 어렵게 되었으나 인간은 그 해답을 또 찾아낼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그리움을 멈추지 말자.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망설이기에는.. 머뭇거리기에는..

 
뭐 하러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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