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나, 다니엘, 마법사

[CITY 100] Jun 22. 2023 l M.멀린

타르수스에 가기로 했다. 기독교인들이라면 ‘다소’라는 지명으로 더 익숙한 사도 바울의 고향이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 나는 마법산데. 여기까지 왔으니 가보는 거다. 뭘 볼 게 있는 건 아니다. 이미 가 본 케말의 말에 의하면 생가라고 가봐야 낡은 우물과 집 하나가 전부라는데. 그래도 뭐 바울의 생가라니까. 옛날 생각에..

근데 막상 가보니 뭔가가 새로 생겼다. 사도의 생가에 말이다. 번듯한 건물이 세워져 있길래 여기가 맞나 틀리나 번민하던 케말은 인포메이션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가 ‘폴’의 생가가 맞냐고. 일단 올라가 보란다. 여긴 역사박물관인데? 어쩌다 여기 역사박물관이 생긴 거지?

역사는 신석기 시대로부터 시작된다. 타르수스의 역사가 말이다. 꽤나 오래전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 그리고 부흥했다. 여기가 로마 시대의 뉴욕이었다나. 면세지역에 통화도 직접 발행했단다.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다고. 그래, 그랬겠다. 그 유명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를 영접한 장소가 바로 이 도시라니. 그 벽인가, 문인가가 여기 어디 있다는데. 그러니까 뉴욕 맨해튼쯤은 돼야, 세계 최고의 미녀와 최고의 권력자가 밀회를 나눌 만 하지 않겠는가. 아, 사도는 맨해튼 출신이었구나.

그러니까 이 사도는 태생이 주류였던 거다. 지금으로 따지면 미국 시민권자에, 아버지가 텐트 메이커였으니 뉴욕 맨해튼의 건축업자쯤 되려나? 그는 사도로서의 사역을 하면서도 아버지로부터 대를 이은 직업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사역자에게 ‘이중직’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했는데. 자기가 직접 돈 벌어 가며 사역하는 성직자 말이다. 돈이 되었겠지. 그의 직업이 말이다. 놓기가 아까웠을지도. 아무리 회심을 했다해도 잘나가는 직업 놔두고 사역자로만 헌신할 수는 없는 일. 주께 하듯 돈을 벌어도 좋다고 인정받았나 보다. 다른 사도들에게서. 그리고 그는 예수께 천국의 열쇠를 받은 제자 대빵 베드로에게도 신랄한 비난을 해댈 수 있는 위상을 빠르게 확보했다. 제자도 아니면서. 예수를 본 적도 없으면서. 그게 다 어디서 나왔겠는가? 자고로 돈줄을 쥐어야.. 아, 나는 모른다. 신학자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닌 한낱 마법사니까. 그냥 추론해 보는 거지. 뭐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고. 어쨌든 공동체를 위해 사용했을 테니.

사실 기독교는 ‘예수교’라고 부르기보다 이론적으로는 ‘바울교’로 부르는 게 더 적합할 정도로, 그의 이른바 <이신칭의> 이론에 기대어 있는데.. 어쩌구 저쩌구 더 떠들다간 이단 딱지 붙겠다. 나는야 정통 마법사.

어쨌거나 안타깝게도 그곳에 생가는 없었다. 다만 사도 바울에 관한 소개 코너가 하나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전 세계에서 (특히 한국에서, 그날도 한무대기의 대한민국 기독교인들이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바울 생가라고 찾아오는 기독교인들이 다소 못마땅했나 보다. 그래도 관광 수입은 생겨나는 거니까, 기왕이면 그 자리에다 타르수스의 역사박물관을 만들어 니들이 추종해 마지않는 ‘바울’은 그저 찬란한 타르수스 역사의 한 코너에 불과하다고 콕 눌러 버리고 싶었나 보다. 그들의 경전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니.

이게 뭐야 싶었지. 차라리 생가터라고 우물이라도 있으면 이게 2천년 전거란 말이지, 바울도 이 물을 마시고 자랐단 말이지 하고 사진이라도 한 장 박아볼 텐데. 없앤 건지, 못 찾은 건지. 뻔하디뻔한 박물관 디스플레이 속에 가둬져 버린 사도의 흔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허탈한 마음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데 생각지도 못한 기록을 만나게 되었다. 여기, 타르수스에 다니엘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다니엘이라고? 사자 굴 속의 다니엘?’ 그래, 그 다니엘. 사자 굴 속에서도 살아남은, 불 속에서도 살아남은, 꿈을 해석하는 Futurist, 대마법사 다니엘. 아니, 그의 무덤이 여기 있다고? 이럴 수가!

마법사는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다니엘의 무덤이라니. 다니엘은 마법사의 어린 시절 우상과 같은 인물이다. 아니다 우상 말고 롤모델? 미래상? 영웅? 뭐라 표현을 못 하겠네. 그러니까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듣던 그 이야기들 중 가장 재미나고 멋지고 흥분되던 ‘옛날 용맹스럽던 다니엘의 경험’의 바로 그 다니엘. 그의 무덤이 여기에 있다니. 나의 영웅의 무덤이.

그랬다. 마법사는 신실한 주일 학생 시절, 성서의 수많은 인물 중 다니엘을 가장 좋아라했다. 그는 마치 슈퍼히어로, 흠 없고 순전한, 완벽한 영웅 그 자체였다. 신구약 성서에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다니엘만큼 완전하고 완벽한 인물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예수를 제외하고. 오히려 그런 면 때문에, 그러니까 실수투성이이거나 어딘가 흠이 있고, 인간적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기에 성서의 많은 인물들이 공감을 얻고 사람들로 하여금 감정을 이입하게 만드는데, 어린 마법사는 그런 게 쫌 없어 보였다. ‘왜 다들 실수투성이인 거야? 왜 인간은 하나같이 바보 같지?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지. 왜 믿는다면서 저딴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지?’ 그게 어린 마법사의 성서 속 인물들에 대한 인상비평이었다. 신의 용서와 자비를 강조하려니 그랬겠지. 완벽한 인간들만 존재하면 죄가 존재하고 신이 용서할 구석지가 없잖아. 그런데 다니엘, 다니엘은 그렇지가 않은 거지. 뭐야, 이렇게 흠 없고 순전한, 완전무결형 인간이라니.

누가 반박할 텐가. 성서에는 그의 흠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 그러나 그 흠 없음은 ‘바른 생활’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의 흠 없고 순결함은 신념과 용기에 관한 것이다. ‘옛날 용맹스럽던 다니엘의 경험’ 말이다.

그의 신분은 제국의 포로였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美 제국의 이민자. 어려서부터 일찌감치 뛰어난 자질을 보인 그와 친구들은 제국의 엘리트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제국을 동경하지도 그의 신분을 차버리고 신분 상승을 하려고 영혼을 팔지도 않았다. 덕분에 시기 질투에 찬 수많은 눈들이 그들을 시험해 댔다. 그들을 아끼는 최고 권력자조차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당당히 말했다. ‘나를 불 속에 던지렴. 나를 사자 굴 속에 던져 넣으렴.’ 그와 그의 친구들은 알았을까? 불 속에서도, 사자 굴 속에서도 무사할 것을 말이다. 아니다. 어린 마법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용맹할 수 있었던 건, 타협하고 자신을 속이는 일은 불에 타죽고 사자의 먹이가 되는 것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결과를 미리 알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알고, 불 속으로, 사자굴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 아니다.

그건 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렇게 살아 본 이들이 안다. 결과를 알면 누가 두려워할까? 용기는 앞을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용기는 흠 없이 정결해야 한다. 불순한 용기는 작은 협박에도 사그러들고 마니까. 흠 없고 순전한 마음은 불에 탈 것이 없다. 연소되는 것은 불순물이다. 두려움이 없는 당당함에는 사자들조차 덤벼들 수가 없다. 맹수가 노리는 것은 두려움에 휩싸인 쫄아든 마음이다.

흠 없고 순전한 용기. 그것은 진실한 믿음, 순도 100%의 신념에서만 나온다. 그것은 흉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다니엘이 죽었단다. 그리고 여기 타르수스에 묻혔단다. 아, 그렇구나. 나의 영웅이 죽었구나. 맞다, 그는 실존 인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인간인 것이다.

마법사의 어머니는 그 시절, 어린 마법사를 위해 기도를 하면 다니엘과 같은 사람이 될 거라는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가졌는지 모른다. 다니엘과 같은 사람이라니. 그는 슈퍼히어로이고 다섯 왕을 섬긴 재상이었다. 아니지. 다섯 왕이 그의 지혜에 의지했다. Futurist로서의 그의 해석에 의지했다. 아니다. 자신들의 운명을 따라 그들은 죽거나 살거나 했다. 그는 운명을 해석하는 자일뿐이니.

보통 마법사의 기원을 솔로몬으로 보지만, 나는 미래를 직관하는 Futurist로서의 마법사의 기원으로 다니엘을 꼽는다. (그의 기록은 요한계시록과 함께 묵시록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꼽힌다.) 미래는 기록된 것임과 동시에 기록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된 것과 되어야 할 것을 잇는 힘은 신념으로 부터 나온다. 직관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신념. 그것이 우주의 진화와 개인의 신화를 추동하는 동력이다. 직관에 임하는 순전한 태도와 자세. 흠 없이 순결한 마음.

이슬람 전승에서는 예언자 다니엘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다니엘은 예언자의 아들입니다. 다니엘의 아버지도 이스라엘 자손의 예언자이며 그의 이름은 HEZKIL 또는 HEZKİYAL입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아버지 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예언자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의 사역지는 예루살렘이며 그곳에서 사람들을 알라의 ONENESS로 초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바벨론 왕 부툰나스르 Buhtunnasr는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다니엘과 그의 신도들을 포로로 잡아 바빌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부툰나스르가 죽을 때까지 다니엘은 그가 사람들을 알라에 대한 믿음으로 초대했기 때문에 그를 상대로 많은 투쟁을 벌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극심한 갈등이 많았습니다.

부툰나스르가 사망한 후, 다니엘은 그의 원래 사역지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비를 기원하고 조언을 하기 위해 TARSUS에 왔습니다. 방문하는 동안 그는 TARSUS에서 (자연사) 사망했습니다.

TARSUS의 지역 주민들은 (다산의 예언자의) 시체를 석관에 오랫동안 숨겼고, Caliph OMAR의 통치 기간에 Ebu에 의해 다른 사람들이 그의 무덤을 발견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묻었습니다. 그의 무덤은 TARSUS의 MAKAMI-DANİYALI NEBİ CAMİ에 있습니다.

오스만 연감에는 “예언자 다니엘의 안식처는 도시 TARSUS의 중심에 있고 그 옆에 모스크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추신 :
일부 출처에서는 다니엘이 바빌론 왕 BEHMEN 시대에 바빌론 왕 부툰나스르BUHTUNNASR 대신 바빌론 도시 SUS에서 사망했다고 언급되었지만 날짜가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기원전 606년에 태어났습니다. 이즈펜디바르의 아들인 그는 기원전 338년에 그의 형제에게 살해당했습니다. 해당 날짜를 기준으로 하여 다니엘이 SUS 시와 BEHMEN 시대에 사망한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바벨론 왕은 꿈에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소년이 왕위를 흔드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태어난 소년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 때문에 예언자 다니엘은 태어났을 때 죽음을 면하기 위해 산꼭대기 동굴에 버려졌다. 암사자와 암사자의 후원 아래 동굴에서 자란 예언자 다니엘은 청년이 되어 그의 부족으로 돌아왔다. 흉년이 들던 해에 다소에 초대받은 선지자 다니엘이 다소에 오자 그곳이 풍족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예언자 다니엘은 바빌론으로 다시 보내지지 않았고 그가 죽었을 때 오늘날 마캄 모스크로 알려진 타르수스에 묻혔다.

회교 17년, Hz. 오마르 시대에 타르수스가 정복되었을 때 예언자 다니엘의 무덤이 열렸고 커다란 석관 안에 금실로 짠 천에 싸인 키 큰 시체가 보였다. 유태인들이 이 시체를 훔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Hz. Ömer의 명령에 따라 그는 이전 장소에 ​​깊이 묻혔고 Berdan River 의 작은 물줄기가 무덤 위로 흘러 아무도 무덤을 만지지 못하도록 했다. 실제로 모스크를 마지막으로 수리하는 동안 매우 깊은 수심의 모스크 뒤쪽과 바닥의 물 입구에서 매우 두껍고 매우 규칙적인 격자 철이 발견되었다. 예언자 다니엘의 무덤은 이 흉벽을 통과하는 물 아래에 있다. 해당 지역을 발굴한 결과 2014년부터 무덤이 발굴 및 조경되어 예언자 다니엘의 무덤으로 방문객들에게 공개되었다.

다니엘의 무덤이 있는 타르수스에서, 그리고 사도 바울의 생가가 있는 다소에서, 마법사는 권세와 능력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몰이해 속에서 흠이 없는 용기와 순전한 직관으로 자신의 신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던 예언자로서의 Futurist의 시대가 종료되었음을 직관했다. 그리고 ‘이중직’사역을 감당하는 텐트 메이커로서의 ‘사도 마법사’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직관했다.

마법사는 뿌연 흙먼지를 뚫고 고대도시 타르수스를 떠나오며, 비로소 온몸과 마음으로 버티고 서서 자신의 직관을 증명해야 했던 <시즌 1: 예언자 시대>의 고단한 이야기가 끝이 나고, 바야흐로, 당당한 신뢰 제국의 시민으로서 돈줄을 쥔 채로(?) 공동체를 견책하고 견인하는 <시즌 2: 마법행전>의 신기하고 놀라운 이야기의 서막이 시작되고 있음을 직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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