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되는 개인과 괴물이 되어가는 개인

+ 마스터 회의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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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利己心)과 이기심(理氣心)

 

“아.. 그렇습니까? 동편은 이기심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찰스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질문을 던집니다. 회의 주제가 엉뚱하게 서편 연합의 지역갈등으로 번질까 불안하던 차에, 아예 포커스를 동편으로 옮기려나 봅니다.

남준 : 한자로 보자면, 서편의 이기심(利己心)은 이로울 ‘이(利)’에 몸 ‘기(己)’자를 사용하는데, 동편의 이기심에는 그것 말고 다른 의미의 ‘이기심(理氣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치를 뜻하는 ‘이(理)’와 기운, 즉 몸을 상징하는 ‘기(氣)’,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발로인 마음 ‘심(心)’. 그러니까 정신세계를 물질세계와 대응하여 보고 있단 말이죠. 물질세계의 성장이라면, 그것은 눈에 보이고 수치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일 겁니다. 애덤스의 이기심은 아마도 그런 물질에 대한 추구로 이해할 수 있겠죠. 그것 역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 동편 세계관에서의 이기심은 물질적인 부분만큼 정신적인 세계를 중요시합니다. 그러니까 정신과 물질의 상호작용이 진화의 근원이다 이 말입니다. 물질로서의 개체는 물질적 성장이 가장 중요한 덕목일 것입니다. 그것에는 생존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겠지요. 생존과 성장. 물질적 생존과 성장은 분명히 드러나지는 것이고, 눈에 보이는 물리적 개체의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동편의 세계관에서는 정신과 물질의 조화와 독립의 관점을 더 중시한단 말입니다.

물질은 개체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아닌 우리, 나를 나로 인식해주는 너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무인도에서 홀로 키가 한치나 자라난들, 그게 과연 살아있는 것인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이죠. 동편의 세계에서 너, 타자는, 나를 실존케 하는 신적 존재나 다름없습니다. 분리된 나와 너,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확정 지어주는 우리라는 동질체, 이것을 커뮤니티라 부른다 이 말입니다. 서편의 커뮤니티가 물리적 연합과 분리로 확정된다면, 동편의 커뮤니티는 물리적인 연합 이상의 정신적 연합과 분리가 매우 중요한 가치로 작동된다는 말씀이죠.

아이작 : 듣고 보니 동편의 세계관이 매우 신비로운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우리 서편의 세계관이 물질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말씀은 과도한 해석이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세계에도 정신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우리 서편 세계관의 정신적 영역은 인간을 초월해 있습니다. 신과의 공동체, 성가족으로써의 커뮤니티야말로 우리 서편 세계관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죠. 동편 세계관에서 말씀하시는 ‘이(理)’라는 것이 우주의 보편 원리로서의 정신세계를 뜻하는 거라면, 우리는 그 영역이 신적 의지로 표현되어 있지요. 어버이로서의 창조주와 피조물로서 형제자매 된 인류의 공동체, 이것으로 보자면 서편의 세계관에서도 역시 정신적 영역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준 : 아, 물론 그렇죠. 신적 영역으로서의 정신세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신적 영역에 대한 이해가 그간 서편 세계의 역사 속에서 철저히 사변적이고 관념적이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신학자나 종교지도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해석된 신적의지가, 과연 하나하나 개별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반영해 왔는가 이 말이죠.

아이작 : 아니, 우리 세계의 철학을 무시하시는 겁니까? 교조적이었던 중세에만 국한해서 우리 서편의 정신세계를 평가절하하는 것 같이 들립니다. 우리 서편 세계도 르네상스의 과정을 거치며, 신적 질서로부터의 독립을 이룬 역사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정신세계를 탐구한 철학의 발전이 있었구요. 오히려 신적 질서, 초월적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건 동편이 아닙니까?

남준 : 평가 절하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서편세계가 정신세계의 탐구로서 철학을 발전 시켜 왔음은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하고, 인류 자신에 대한 탐구에 크게 이바지 해왔으나, 그게 개별 인류의 정서와 정신에 대한 탐구로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인류의 정신세계라는 것이 얼마나 넓고 광대합니까? 게다가 그 중 개별 정신의 발현에 대한 부분은 파도 파도 끝이 없는 하나하나의 개별 우주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서편 철학의 발전은 인류를 하나의 덩어리로 상정하고, 무수하게 뻗어 나가는 수많은 정신의 갈래들을, 그냥 인류의식 하나로 퉁친 채 분석하고 해석한단 말입니다. 그것에 어떤 최종 이론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생각한다고 인간이고, 신은 죽었다 선언하면 끝이 아니란 말입니다. 자꾸 결론을 내려고 접근하는 서편 철학의 태도가 동편 세계에서 보기에는 한정적으로만 보인다 이 말씀입니다.

아이작 : 결정론적 태도에 대한 지적이라면 그 부분은 마법사로서 공감하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우리 서편 세계는 중세 마녀사냥의 시대를 거치며, 인간 개별 정신세계에 대한 귀납적 접근을 모두 신비주의로 몰아붙여 제거해 버린 과오가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은 우리 선조 마법사들은 대대로 개별정신에 대한 언급보다 덩어리로서의 보편 인류에 대한 연구를 가장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야 위험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뭐 동편 세계처럼 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한번 와서 살아 보세요. 이 석회질 땅에서 할 만한 게 별로 없습니다. 전쟁은 또 얼마나 끝도 없이 일어났습니까? 한가하게 앉아서 개별 인간의 정신세계를 탐구하고 있을 새가 없었단 말입니다. 덕분에 집단으로써의 인류의식에 대한 연구는 많은 성과를 내긴 했지만 말입니다.

남준 : 그래서 ‘표준’이라는 이상한 덕목을 발명해 내셨죠. 정신세계에 어떻게 표준이라는 게 있을 수 있습니까? ‘정상’이라구요? 그거야말로 폭력이죠.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지구촌 시대에 표준이라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소통을 할 수 있겠어요. 그것은 상호 간의 이해를 위한 기준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그것에 자를 대고 팔다리를 절단당하고 있잖아요. 동편 세계의 정신적 자유로움이 그것 때문에 얼마나 제한당하고 박탈당했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작 : 아니 뭐 동편이라고 한없이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절대왕정과 중앙집중적 권력 제도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건 오히려 동편이죠. 서편은 그런 제도적 측면에서의 자유도와 융통성이 더 발전했다는 것은 남준 마법사님도 인정하시는 사실이 아닌가요?

찰스 : 자자.. 토의가 좀 삼천포로 빠지고 있는 것 같죠? 최초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남준 마법사의 질문이 뭐였죠? 아. 그래요. 개별화된 인간이 어떻게 커뮤니티를 이룰 수 있냐는 질문이었죠? 이에 대해 아이작 마법사, 덧붙이실 말씀이 있습니까?

 

집단적 개인

 

아이작 : 그렇다면 다시 이기심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겠네요. 개인으로서의 성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사회적 동물인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인류는, 반드시 커뮤니티를 찾고 만들어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진화의 디폴트 값으로 인류의식에 확고부동하게 자리하고 있죠. 그러나 문제는 소사이어티가 우선되어선 안 된다 이 말입니다. 호모가 모여서 소사이어티를 이루는 것이지, 소사이어티를 위해서 호모가 모여야 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순서는 개별자로서의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기심의 방향이 자유롭게 펼쳐져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이기심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모여들고, 그렇게 모인 이기심의 연합체가 커뮤니티를 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입과 탈퇴, 합류와 이탈이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것을 강화하는 형태로 진화해 왔어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씨족을 근거로 한 소사이어티에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부족 커뮤니티로 진화한 것은 매우 엄청난 변화인 것입니다. 불가역적인 혈통을 소사이어티의 정체성으로 삼다가, 가역적인 지역성을 근거로 혈통을 넘어서게 되었으니까요. 지금의 국민국가는 그것보다 훨씬 더 진화한 결과이지요. 아주 자유롭지는 않으나 국적조차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으니까요. 저는 이것도 부족하다 생각합니다. 개인의 선택에 따라 무리와 집단, 국가와 공동체를 언제든 선택하고 탈퇴할 수 있어야 해요. 중력의 끌어당김, 개인의 선호, 이기심의 방향을 따라 자신의 공동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에는 가족도 예외가 아니에요.

남준 : 아니 그렇다면, 가족도 가입, 탈퇴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아이작 : 네 물론입니다. 동편의 세계관으로는 더 받아들이기 힘드시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떠한 것도 인간의 선호와 이기심의 방향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속 공동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커뮤니티를 강제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 때문에 자꾸 갈등이 양산된다구요. 진화에 제동이 걸린다구요.

남준 : 그럼 그렇게 개인의 욕심으로만 커뮤니티를 구성하면 어떻게 집단이 서로를 규제합니까? 아니 규제 없이 커뮤니티가 성립할 수 있습니까?

아이작 : 욕심이라니요! 규제라는 그 말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신적 존재인 한 개인을 누가 어떤 권리로 규제한단 말입니까? 인간 개체 하나보다 우월한 존재가 있습니까? 모든 생명이 평등한 것입니다. 모든 생명이 신적 존재이고 모두가 유일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이기심이란 것도 모두 신적 의지의 표현이란 말입니다. 성장하는 존재로서의 우주와, 성장을 촉발시키는 진화적 매커니즘이 개인의 이기심으로 표현되는 겁니다. 그러니 규제가 아니라 경쟁이 있을 뿐입니다. 성장을 위한 경쟁, 상호 간의 경쟁만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규제라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입니까? 어떻게 개인의 주권이 영구하게 집단에게 위임될 수 있습니까? 개인의 주권은 선택에 의해 잠시 위임될 뿐입니다. 커뮤니티를 선택할 때에 사전에 합의된 사항에 따라 잠시 위임될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영구적일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위임한 개인의 동의가 없이도 기본권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다른 개인의 기본권에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남준 : 아, 그러니까 아이작님 말씀은, 커뮤니티는 이기심의 성장 방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일시적 공동체라는 말씀이군요. 개인은 필요에 따라 입, 탈퇴를 자유롭게 하고, 커뮤니티는 구성원의 사전합의에 따라 위임된 권한을 행사하지만, 기본권에 관해서는 구성원의 사전합의를 넘어서는 보장이 필요하다 이 말씀이시죠?

아이작 : 정리를 잘하시네요. 네 맞습니다. 철저하게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모든 커뮤니티가 말이죠. 그러므로 완전한 개인은 어떻게 커뮤니티를 구성하게 되느냐는 남준님의 질문에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개인의 이기심이 서로를 끌어당길 것이다. 그 중력의 공간에서 커뮤니티가 발생한다. 그리고 자성이 끊어지면 커뮤니티는 언제든 중단되거나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의 기본권에 관해서는 어떠한 자성과 중력에도 보장되어야 한다. 여기서 기본권은 진화적 경쟁에 참여할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생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 자유 말입니다. 경쟁에 참여함으로써 생겨나는 위험과 책임을 감수할 자유까지도.. 경쟁에서의 도태를 일방적으로 방지하자는 게 아니구요.

남준 : 네 잘 알겠습니다. 매우 감명 깊은 답변이었습니다. 기본권에 대한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커뮤니티가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한 입장은 충분히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더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말씀하신 신적 존재로서의 개인은 물질적 구분으로서만 존재하는가? 개인은 반드시 분리된 물적 존재로만 정의되는가?

앞서 말씀드렸듯이 동편 세계관에서 개인은 이(理)와 기(氣)의 상호작용을 통해 현존합니다. 그러니까 개인이란, 원리와 현재적 상태란 말입니다. 그것은 때로 공동체의식, 집단지성의 형태로, 물리적 개인의 범주를 넘어 정신적 일체로서 존재하기도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하나의 정신, 집단화한 정신이 다양한 물리적 육체를 입고 거대한 커뮤니티를 구성하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서편 세계와 동편 세계의 개인에 대한 정의가 때로는 서로 상충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앞서 서편 세계의 공동체를 신과의 성가족 공동체로 표현하셨는데, 신과 분리된 인간, 창조주와 피조물로서의 명백한 구분이 있는 서편의 세계관과, 정신과 물질의 연합체로서 개인을 정의하는 동편 세계관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편 세계에서의 개인은 물리적 개체로만 한정 지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때에는 일가족의 형태로, 또 어떤 때에는 팬덤의 형태로, 또 어떤 때에는 국민, 지역민의 형태로 매우 다양하게 그 개인이 발현됩니다. 물리적 개체는 수백, 심지어 수천만일지언정, 그들을 구성하고 있는 정신적 개인은 하나의 의식 형태로 존재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디까지가 개인이고, 어디서부터가 커뮤니티이고 공동체일까요? 그게 구분이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현상적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현상적 커뮤니티에서 물리적 개인은 규제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물리적 개인이 집단의식으로서의 개인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그 순간 타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공동체의 보호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런 집단의식의 폐해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동의되지 않는 집단의식에 조금이라도 반기를 들었다가는, 일순간에 분리된 적으로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어제까지 하나였다 오늘 적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이런 때에 물리적 개인은 자신의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분화한 개인으로서 집단의식이라는 거대한 개인과 맞서야 하는 경우가 생겨납니다. 그것이 집단의식으로서의 커뮤니티에 반하는 의견일 경우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동편 세계의 개인이란 딱히 뭐라고 정의하기가 어려운, 매우 집단적인 문제임을 먼저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작 : 물리적 개인과 집단의식으로서의 개인, 그리고 커뮤니티라.. 어렵군요. 그렇다면 동편 세계에서 물리적 개인의 이기심은 어떤 식으로 발현됩니까?

 

개인의 탄생과 괴물의 탄생

 

남준 : 네 좋은 질문입니다. 그 부분이, 요즘 동편 세계의 커뮤니티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간 동편 세계에서 물리적 개인의 이기심은 집단의식에 의해 무시되거나 배제되어 왔습니다. 동편 세계의 집단의식은 그 자체로 자기보호성을 갖기에, 개별 존재의 이기심을 철저하게 규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서편 세계의 영향을 받아 물리적 개인의 이기심이 마구 분화되고 있어요. 덕분에 매우 빠른 속도로 집단들이 해체되고 있지요. 이런 과정에서 많은 충돌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전통적 집단의식과 분화되어 떨어져 나오고 있는 물리적 개인의 이기심, 그리고 성숙할 시간을 갖지 못한 미성숙한 개별 이기심들이 일시적으로 모여 자기 집단을 새롭게 구성하는 패거리 현상, 이 모든 것들이 마구 혼재되어 매우 혼란스러운 과정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실, 서편 세계의 개인주의가 진작부터 신과 피조물의 관계성 속에서, 천천히 경계를 정하고 확정되어 오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왔다면, 동편 세계는 준비과정 없이 급작스럽게 서편 질서에 편입되어 많은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은 먼저 개인의 경계를 확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상식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디까지가 개인이고 어디까지가 집단일까요? 그리고 분리된 개별인격들이 집단을 떠나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세금과 제도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데, 개인은 아직 집단으로부터 분리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하나의 개인으로 봐도 좋을 2인 3각, 9인 10각의 강력한 커뮤니티에서, 반강제적으로 개인을 분리시키는 바람에 넘어지고 부딪히며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아이작 : 그건 매우 우려스럽군요. 어쨌든 우리 서편 세계의 개인주의에 중심을 잡아 주고 있는 것은 신적 절대성에 대한 합의입니다. 절대적 존재 앞의 평등이라는 대전제가 있기에, 물리적 개인의 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 부분이 잘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화로 빠르게 진입하다 보면 많은 문제가 있을 겁니다.

남준 : 네 맞습니다. 사실 우리 동편 마법사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매우 큰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동편 세계에 여전히 절대적 영향을 주고 있는 집단의식이, 서편 세계의 신적 절대성에 근거한 개인의식처럼 어떤 기준을 가지고 분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쏟아져 나와 각자의 억압되었던 에너지를 마구 분출하면서 사회적 문제를 양산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들 중 일부는 물리적 개인으로서의 한계에 부딪히자, 다시 집단을 이루어 편협한 집단의식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홀로 서 본적이 없는 개인은, 자기 자신이었던 집단적 개인으로부터 분리되어, 부모 잃은 고아처럼 덩그러니 버려져 있어요. 살아남으려면, 호혜와 배려 없이 생존에만 급급한 이기주의자로 분해 자신을 방어해야 하죠. 그렇게 버려진 개인들 중 일부는 이상한 연대를,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적 개인을 다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죠.

찰스 : 아.. 그건 거의 괴물이겠는데.

남준 : 네, 매우 기괴한 집단적 개인들이 마구 등장하고 있어요. 이들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면서, 타인의 권리는 마구 침해하죠. 개별화, 개성화, 개인화에 대한 경험이 미숙한 동편 세계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득할지 몰라 큰 혼란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찰스 : 분출된 이기심이 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은 진화과정의 자연스러운 성장통입니다만, 그러한 과정의 지나친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돕는 것이 우리 마법사들의 역할이니 고민이 더 많아지는군요. 아, 그래서 우리가 이 새로운 시스템에 기대를 걸게 된 것 아닙니까? 멀린이 이 블록체인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과정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더군요. 어떻습니까? 남준 마법사는 이러한 블록체인 시스템이 동편 세계의 혼란을 정리하는 데 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남준 : 글쎄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멀린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아직 유보적입니다. 일단 그간의 동편 세계의 질서를 놓고 보았을 때, 시스템이 아직 덜 매력적이고 덜 강력한 것 같아요. 동편 세계의 집단에너지를 빨아들여 개인화, 개성화의 새로운 질서로 변환시키려면 좀 더 강력하고 훨씬 더 매력적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마치 모두 괴물처럼 개인의 이기심을 극대화하고 있는 시즌이니까요. 무엇보다 이 시스템 속에서 동편 세계의 질서와 서편 세계의 질서가 완충지대 없이 충돌하고 있는 면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한 바구니에 쏟아놓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하는 것은 위험해 보입니다. 보셨듯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동력이자 핵심인 이기심에 대한 이해와 의식이 두 세계가 서로 다르거든요.

찰스 : 아이작은 어때요? 동편 세계에 대한 남준 마법사의 설명이 납득이 가십니까?

아이작 : 물론입니다. 실은 [스팀시티]에 대한 저의 우려 역시 그러한 동편 세계의 특수성에 대한 것이었으니까요. 동편 세계에는 개인의 이기심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서편 세계가 지난 역사 속에서 이루어 온 합의와 연대의 기준이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거든요. 이대로 가면 모두가 공멸하게 될 것 같은 상황을 수도 없이 맞았지요. 2차에 걸친 세계대전 모두 우리 지역의 갈등으로부터 점화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우리 세계는 그러한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해 암묵적 기준, 무의식적 합의와 경계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건 따로 문장이나 법령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 본능 같은 것으로 자리 잡고 있죠.

그러나 이야기를 들을수록 동편 세계에서 이러한 것들을 짧은 시간 동안 해나가기엔 무리수가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그 절대성이란 것이, 그게 아무리 허구라 해도 매우 중요하거든요. 합의된 절대적 기준이란 것이 없이 커뮤니티의 질서가 성립될 수 없으니까요. 일찌감치 헌법 체계를 발전시킨 우리 사회의 질서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니까요. 저는 그래서 지금 매우 자유도를 높이 이 블록체인 시스템이, 동편 세계에 득이 될까 해를 끼칠까 매우 의문스럽습니다. 좀 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며, 국가 시스템의 경계조차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시스템인데, 동편 세계의 집단의식이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남준 : 네, 그래서 저는 [스팀시티]의 시도가 한편으로는 우려스럽기는 하나, 의미 있는 시도가 되어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탈중앙화의 이념은 사실 중앙화된 구조로 발전해 온 동편 세계에 매우 이단적 개념입니다. 아니 그래서 비판을 받았죠. 누굴 믿고 자산을 맡기냐고 말이죠. 그러나 서구사회는 오랜 시간 탈중앙화를 시도하고 경험해 오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초강대국이 되어버린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야말로, 모국이었던 영국으로부터 탈중앙화해서 세워진 국가니까요. 영국 역시 대륙으로부터의 분리와 결합을 반복해 오고 있잖아요. 이런 역사성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편 세계는 매우 강력한 중앙집중 체제로 발전해 온 사회입니다. 심지어 현대 산업사회에서의 급속한 성장 역시 중앙집중적 체제를 최대로 활용한 결과였어요. 서구 사회의 산업사회의 역사가 탈중앙의 과정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발전해 온 것과는 정반대죠. 그리고 이제 그 극단의 지점에서 탈중앙화의 상징인 이 블록체인 시스템과 조우하게 된 것이죠. 참 극적이지 않습니까?

“음.. 그런데 남준 마법사, 동편 세계의 이(理)와 기(氣)의 관점에서 [스팀시티]를 다시 바라보면 어떻겠습니까?”

이따금 헛기침을 할 뿐, 말없이 듣고 있던 그레이트 마스터 이도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토의에 끼어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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