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거절하고 ‘최상’을 향해 달려가라

2011.03.30

 

가치기준이 높은 사람은 언제나 ‘최상’을 생각하지. 하지만, 가치기준이 낮은 사람은 ‘차선’에 만족해. ‘최악’이 아닌 것에 안도하는 거야. 부자는 늘 ‘최고’를 찾지만, 거지는 그저 ‘최악’이 아니면 돼. 먹을 수 있기만 하면 되고 입을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절약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가치를 그저 ‘최악을 면한 삶’에 머물게 하는 거야. 그런 기준으로 무슨 성장이 있겠니? 그저 하루하루를 적당히 수습하며 살면 되는 거야.

‘최상’을 생각하는 사람은 쉽게 만족하지 못하지. 언제나 목 마르고 부족해 끝없이 노력하게 되지. 도전하고, 시도하고, 실패해도, 원인을 찾아내고, 또다시 부딪히지. ‘최악’을 면하고자 하는 사람은 시도하지 않아, 그저 위험이 자신을 운 좋게 비켜가기를 끝없이 바라며, 몸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지. 어떤 기회가 와도 그 기회가 가져다 줄 부담을 피하려고만 하지. 그래서 성장은 없고 아슬아슬한 생존만 있지. 어렵고 힘들어도 올라와 버리면 그만 일 것을, 지뢰밭에서 한발 한발 아찔한 비켜가기만을 반복하고 있지.

‘최상’을 생각하는 사람은 ‘최선’에 만족하지 않아. 인간에게 ‘최선’이란 무얼까? 뇌의 1%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인간에게 ‘최선’이란 그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과일 뿐이야. ‘최상’을 생각한다면 ‘최선’을 다했어라고 만족하지 않을 거야. 이것은 ‘최상’의 결과를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어야 해. ‘최선’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순간 너는 도전을 위한 모든 동력을 상실하게 되는 거야. 이것은 그저 ‘최악’을 면하는 삶 보다 더 잔인한 거야. ‘최선’에 만족해버린 너는, 다시금 도전하려 들지 않고 지금 현재의 수준으로 네 능력을 한계 지을 테니까 말이야.

‘최상’을 생각해야 해. 네가 처음 그렸던 바로 그 수준까지 도전해야 해.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죽기 전,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말이야. 이제 곧 신체기능이 정지해 버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순간이 오기 직전, 이생의 삶과 이별을 고하기 직전에나 쓰는 말이야. 너는 힘이 남아 있는 동안은, 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동안은, 네 머리로 사고할 수 있는 모든 순간 동안, ‘최상’을 목표로 해야 해. 네가 원하고 바라는 그 꿈과 소원의 가장 궁극적인 순간에 이르기까지 말이야. ‘이거야 내가 원하던 게, 내가 바라던 모습이 바로 이거야!’라고 소리칠 수 있을 때까지 말이야.

자원은 충분하지. 네가 가진 자원만으로도 얼마든지 ‘최상’의 결과를 낼수 있어. 최소한 너는 생각할 수 있고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니? 금치산자가 아닌 이상, 정신분열이 아닌 이상 너는 무언가 목표를 정할 수 있고 꿈꿀 수 있어. 그러면 되는 거지. 그러면 너는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이루어질 때까지 줄기차게 달려갈 수 있는 거야.

그런 네게 누군가 “최선을 다했으면 됐어”라고 위로한다면, 그 위로는 그저 반환지점에 목을 축이라고 놓인 음료수에 불과한 거야. 잠깐 목마름을 달래고 또 달려가야지. ‘에고 모르겠다. ‘최선’을 다했으니 됐어’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 너는 다음날 같은 목마름에도 너를 질러 달려간 그 누군가의 사진을 신문 일 면에서 보아야 하는 거야. 그리고 너에게 “최선을 다했으니 됐어”라고 말했던 그 사람들을 그 사진에서 발견하게 되는 거야. 일등을 향해 환호를 보내고 있는 그들을 말이야. 왜 일등이 기분 나쁘니? 행복이 일등한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래 그럼 완주를 하자. 네가 정한 목표를 위해 다음에 또 도전하려면 적어도 완주라도 하는 거야. 밤을 새우더라도 말이야. 사람들은 안쓰럽다는 이유로 ‘최선’이라는 말을 건네지만 그건 너를 중도에 포기하게 만드는 마약 같은 거란다.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겠니? ‘최선’을 거절하고 ‘최상’을 향해 달려갈 수 있겠니? 너는 아직 네 능력에 1%도 사용하지 못했어. 10%만 써볼까 20%만 더 써볼까?

원하는 너의 모습에 이르지 못했다면 ‘최선’이라는 말은 절대 꺼내어 들지 말렴. 그건 그냥 기권을 의미하는 점잖은 하얀 수건에 불과 해. 그럴 때 ‘최선’은 ‘그럴싸한 포기’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지. ‘챔피언’이 되어야지. 인생을 즐기는 것이든, 음악에 미치는 것이든, 네가 바라는 그 모습이 될 때까지 너는 도전자인 거야.

너 자신에 대한 기준을 높여야 해. 목표를 설정하는 순간 너의 자동차는 이미 레이스를 시작한 거야. 이제 네 머리에는, 네 눈에는, 네 귀에는, 온통 네 목표와 관련된 내용들만 입력되기 시작해. 그리고 꿈꾸지. 매일 잠들기 전마다, 허리에 챔피언 벨트를 두르고 있는 링 위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잠이 들지. 그리고 언젠가 그 링에 올라서 있는 너를 발견하고 ‘아 이거 정말 실제가 되었네!’하며 어리둥절해지지. 그런데 시합은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너는 상대랑 치열한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거야. 코피가 터지고 이가 부러지면 어때? 이제 곧 ‘챔피언’이 될 텐데. 그런데 너의 코치가 갑자기 하얀수건을 던지며 기권을 외친다면 너는 어떻겠니? 이제 챔피언이 코앞인데 말이야. 무엇을 위해 사는 거니? 챔피언이 되려고 살아온 네 인생인데, 그러다 죽을 것 같아서 시합을 포기시키면 말이야. 너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니? 가족? 미래? 안정된 노후? 그 앞에 무엇을 가져다 놓아도 너는 만족하지 못할 거야. 억울하겠지? 시합을 멈춘 코치가 죽도록 원망스럽겠지? 지금 너의 모습일지도 몰라. 아직 링은커녕 권투장갑도 끼어 보지 못한 네게, 너는 벌써부터 ‘최선을 다하면 돼’라고 스스로 유혹하고 있지는 않니?

그저 ‘최악’을 면하는 삶에서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겨우 설정한 네게, 처음부터 너무 과도한 주문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히 말하고 싶다. 시작부터 겨우 ‘최선’ 따위를 입에 달고 다니는 너라면 그 끝은 뻔하다고 말이야. 그런 너는 반드시 포기하고, 도리어 이럴 거면 차라리 ‘최악’을 면하던 그때 그대로 두지 그랬냐고 따질 게 뻔하지. 포기해 버린 삶은 이미 ‘최악’ 그 자체일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 나는 더욱더 잔인하게 너에게 ‘최상’을 요구하는 거야. 너는 반드시 해낼 테니까. 포기하지만 않으면, 멈추어 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천재지변이 일어나 쓰나미에 쓸려가 버리지만 않는다면, 너는 반드시 해낼 테니까 말이야. 네 능력의 1%, 1%의 1%도 사용해 보지 않은 너니까.

‘최상’이다. ‘최상의 결과’여야 해. 네가 원하는 바로 그것. 국가대표가 꿈인 너를 동대표로 만족시키지 말아야 한다. 메이저리거가 꿈이었던 너를 동네 야구 동호회 4번 타자로 만족시키지 말아야 해. 목말라야 해. 우주는 목마른 자에게 오아시스를 내어주지. 목마르지 않은 자에게는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 거야.  

자! 목표를 다시 정해 보자. ‘최상’으로 말이야. 그것을 이룰 때까지 ‘최선’이라는 카드는 다시 빼어 들지 말자. 어떤 유혹에도 반드시 네가 원하는 그 모습 그대로를 이뤄 낼때까지 도전하자. ‘최상’의 결과를 낼 때까지 스스로를 만족시키지 말자.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아직 1%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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