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과 가리워진 길
2018.04.24

가보지 않은 길
가보지 않은 길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는 알지 못하니 그저 가던 길을 갈 뿐입니다. 그러다 갈림길이 나타나면 망설이게 됩니다. 가던 길을 계속 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어떤 길일까요? 내가 가던 길은.. 저 두 갈래, 세 갈래, 네 갈래, 무한 갈래의 갈림길 중 어떤 것일까요?
이런 순간이 우리 사는 인생에 자주 출몰합니다. 아니 우연의 순간을 모두 합한다면 늘 이런 선택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오늘도 무의식적으로 버스,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했겠지만.. 대구 지하철의 그들도, 성수대교 위를 지나가던 버스 속 그들도.. 무의식적 선택을 반복했을 뿐입니다.
운명이었다면..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리고 어느 생엔 가는 이유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택이었다면, 엄마가 먹고 가라던 아침밥을 거절하지 않았더라면.. 이상하게 오늘따라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싶었는데 무시했다면.. 책임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는 겁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바라보게 되는 경우는, 다시 떠 올리게 되는 경우는, 지금 내가 선택한 이 길이, 가야 할 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때입니다. 후회가 되는 때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입니다.
그때에는 알게 됩니다. ‘아.. 이 길이 아니었구나.’, ‘아.. 그 길을 갔어야 하는 거구나.’ 그러나 막다른 길만 아니라면, 모든 길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깨달은 시점이 어떤 때이든.. 비록 한참을 돌아가게 되더라도.. 가고 또 가면 결국 모든 길은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막다른 길이 나타나면.. 심지어 그것이 절벽이라면.. 어쩌겠습니까? 돌아 나오면 되지 않겠는가 싶겠지만.. 맞습니다. 돌아 나오면 됩니다. 힘들더라도, 잘 못 들어선 분기점으로 돌아가, 가보지 않은 길을 다시 가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너무 멀리 와버린 때가 있습니다. 이미 들어선 길.. 건너온 다리가 불살라져 버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길은 그대로여도, 너무 멀리 와버려, 돌아갈 에너지와 의욕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울증이 엄습해 오고 무기력에 빠져듭니다.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 그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게 됩니다. 시간의 성에 갇히게 됩니다.

그렇게 여러 생이 지나갑니다. 폭풍이 몰아치고 뙤약볕이 쏟아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 뒤에야, 땅이 솟고 물이 차올라, 절벽 너머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런 끝에, 다시 길을 나아가게 된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마법사를 만난 이들은, 그러한 수많은 생의 끝에, 그 기다림에 탄복한 하늘의 은총으로 마법사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마법사가 선택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길을 알려 줄 뿐입니다. 갈림길에서, 이 길로 가면 무엇이 나오고, 저 길로 가면 무엇이 나오는지 알려 줄 뿐입니다.
언제나 선택은 자신의 몫입니다.
오랜 생을 제자리걸음 했건만.. 누군가는 여전히 번민하고, 누군가는 단숨에 알아듣고 자신의 길을 찾아갑니다. 잘 찾아가는 이들에게 마법사는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그들 자신이 마법사 일 테니 말이죠.
마법사가 필요한 이들은 번민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길에 대해 확신이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도 오랜 생을 제자리걸음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직접 선택하고, 가보지 않은 길을 돌아 나오고 돌아 나오고 했었더라면, 어떤 길이든 결국 만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선택을 타인과 세상에 의존했던 이들은, 나의 길이 아닌, 남들이 가본 길에만 의존해 왔습니다. 그들은 남들이 남긴, 남의 지도만 보며 이 길이 맞다고 우겨 왔습니다.
그러나 마법사의 직관의 네비게이션에는 교통체증과 공사 중, 심지어 사고예정 구간까지 표시되어 있습니다. 선택은 어디까지나 그대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어날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예정된 사고가 거두어지는 게 아닙니다.
가리워진 길
마법사는 가리워진 길을 찾아줍니다. 일상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직관의 눈, 믿음의 눈으로만 보이는, 가리워진 길을 드러내 보여 줍니다. 그러나 가리워진 눈으로는 그 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리워진 마음으로는 그 길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많이들 그렇습니다. 고정된 마음과 어두워진 눈으로는 그저 옆 사람들의 어설픈 충고에만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마법사는 속삭이지 않습니다. 그저 보여줄 뿐입니다. 선택은 여전히 그대의 몫입니다.
그래서 마법사는 배척당하기도 합니다. 선택을 대신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선택을 당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스펙을 쌓고 줄을 섭니다. 선택 당하는 일은 책임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임은 선택하는 자의 몫이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당신의 삶을 책임지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위해, 당신을 선택할 뿐입니다. 그러니 필요가 사라지면 그대의 자리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마법사를 만나 본 적이 있나요?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주변에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마법사를 만나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법사를 부정합니다. 왜냐구요?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선 안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누구도 만나보지 못한 마법사를, 나만 만나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사람들의 줄에서 이탈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회식 중에 화장실을 갈 수 없는 이유와 같습니다.

그게 그렇게 소중합니까? 뭐 어쩌겠습니까. 평안감사도 저하기 싫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마법사는 적어도 ‘너는 평안감사란다’라는 말은 전해주어야 합니다. 선택은 마법사의 몫이 아니니, 가리워진 길, 눈이 어두워져 보지 못하는 길을 마법사는 보여주어야 합니다. 알려주어야 합니다. 거기까지입니다. 그만하면 됐습니다. 마법사는 거기까지 하면 그뿐입니다.
물론 묻고 또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 말구요. 그들은 이미 마법사이니 마법사를 만날 필요가 없고, 만나게 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마법사를 간절히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묻고 또 묻습니다. 귀찮아 멀리 도망가도, 어디까지고 찾아와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번이 첫 생이었을 겁니다. 적어도 관성에 젖어, 사람들의 줄을 이탈하지 못하는 그들만큼, 오랜 생을 거듭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들은 눈짓만으로도 자신의 길을 알아챕니다. 그리고 선뜻선뜻 걸어갑니다. 마법사는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흐뭇한 마음으로 뒤를 쫓을 뿐입니다. 그들에게도 마법사는 필요합니다. 첫 생이라, 아직 많은 생을 거듭하지 않았으니, 모든 것이 의문스럽고, 모든 것이 신기할 테니.. 마법사는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 줍니다.
마법사에게 그런 이들만 나타나 준다면 얼마나 해피할까요? 그러나 운명은 마법사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선택의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누어 쥔 열쇠 두 개 때문에.. 마법사도 같은 크기의 고난과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 그만해야겠습니다. 마법사의 넋두리를 하려고 시작한 글이 아닌데..
그리고 그대의 길
가보지 않은 길과 가리워진 길.. 모두 미지의 길입니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길입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그대의 길이 맞는지 얼마나 확신합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걷고 있는 중이라면.. 제자리걸음이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계속 걸어가십시오. 그대가 걷는 길이 그대의 길입니다. 모든 길은 결국 만나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갈림길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두 길 다 망설여진다면.. 또는 두 길 다 나의 길이 아닌 것 같다면.. 마법사에게 물으십시오. 가리워진 길을 보여달라고 말이죠. 망설여지는 갈래의 길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말이죠. 마법사는 답할 것입니다.
어떤 길도 그대의 길입니다.
그리고 어떤 길에도 함께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선택한 길이니까요. 그러나 마법사는.. 떼밀린 길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남들 가는 길에 얹혀 가는 그대와 동행할 수는 없습니다. 길이 아닌 길을 가는 그대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길은 없습니다. 길이 아닌 길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마법사는.. 3년 전의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전해 듣고는, 마음은 비통하고 기분은 통쾌해졌습니다. 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은 이미 기록되어진 일이며, 이루어진 역사였습니다. 단지 오늘, 그것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그는 운이 없었습니다. 마법사는 그에게 가리워진 길을 보여줄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아니 운이 없었던 게 아니라 운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과감하게 선택했고 선택한 길을 홀로 걸어갔습니다. 그 길이 막다른 길이었는지, 길이 아닌 길이었는지.. 마법사는 알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예언은 실현되었고 그는 홀로 남았습니다. 실현된 예언에 기분은 통쾌하지만, 선택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 그를 생각하며 마음은 비통해집니다.
10만원.. 단 돈 10만원에 운명의 상속권을 포기한 그에게, 그것은 사랑이었는가? 묻고 싶습니다. 사랑이었다면 10만원을 깎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랑이었다면 모든 것을 주었을 겁니다. 경험한 기적에 비하면, 너무도 보잘 것 없는 10만원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록된 대로면 그는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어떤 길도 그대의 길입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계속 걸어가십시오. 그러나 마법사가 나타나거든 요구하십시오. 가리워진 길을 보여달라고 말이죠. 바짓가랑이를 붙자고 늘어져서라도, 그에게서 답을 얻으십시오.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묻고 또 물으십시오. 그대가 선택하면 마법사는 동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길이 아닌 길을 가거나, 망설이며 제자리걸음을 하면 마법사는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다시는 마법사를 만날 수 없게 됩니다. 다음 생에도 다른 생에도.. 그리고 그대는 미련이 남은,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한 채로, 소금기둥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수많은 생이 지나고, 물이 바다를 덮을 때에야 비로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비통하며 통쾌한 마법사에게 위로와 찬사를 보내 주십시오.
2018년 4월 24일, 오늘은..
화창한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그런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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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