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검
2018.04.23

검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정의’일 겁니다. 정의의 확립, 공정한 판단과 의의 심판.. 이런 것들이 검에서 연상되는 이미지 일 겁니다. 잘못을 저지른 이에게, 검은 심판이고, 질서를 잡아야 하는 권력자에게, 검은 위협과 경계의 수단입니다. 불의를 심판 하기 위해 검을 휘둘러야 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휘둘러 대는 검은 양면에 날이 있습니다. 단면에 날이 선 칼과는 달리, 검은 적도 아군도 모두 벨 수 있습니다. 양면의 날이 선 검은 또한 그 끝이 자신을 향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검을 사용하는 데 있어 매우 신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베어 내는 것은 부패한 것입니다. 검은 베어내기 위해 사용되어집니다. 도려내거나 잘라내는 것은 칼이 더 유용할 것입니다. 베어 낼 때에는 각도를 예리하게 해서 단번에 베어내야 합니다. 무딘 칼질을 하느라 여기저기 쑤셔대는 일을, 검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베어내는 것은 병든 것입니다. 부패한 것이고 상한 것입니다.
검의 다른 기능은 관통하는 것입니다. 검은 그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워 목표물을 관통합니다. 그래서 최종적입니다. 숨을 끊어 놓습니다. 그러므로 그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 더욱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검에는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함부로 사용할 수 없고, 사용할 때에는 단번에 정확한 힘을 요구하기에, 그리고 그 결과는 단절과 절명이기에 효과는 극대화됩니다.

우리는 상처 덩어리를 안은 채로 치유할 수 없습니다. 환부를 그대로 가진 채로, 또는 곪은 상처를 가만두고서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오랜 그것은, 그것 자체로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것은 숨 쉬고 번식하며 증식합니다. 나무 덩쿨처럼 소유한 대상을 휘감아 들어가고, 영혼은 점점 질식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해야 할 일은 놈의 숨통을 끊어 놓는 일입니다. 가벼울 때에야 메스로 환부만 도려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검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어둠의 심장을 겨냥해야 합니다. 자칫 어설픈 칼질로 놈을 몸부림치게 해버려, 소유한 상대의 숨을 더 조여오게 만들어선 안됩니다.
그래서 기사들은 검을 사용합니다. 칼질로는 휘감아 들어오는 적의 촉수들을 효과적으로 베어낼 수 없습니다. 자칫 자신도 휘감아져 말려 올라가게 될 뿐입니다.
거리를 두고 정확하게 적의 심장부를 겨냥하여, 단번에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합니다. 한 번에 되지 않을 때에라도, 당황하여 마구 휘저어 들어오는 촉수들을, 냉정하게 베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위험한 일입니다. 상대는 적의 넝쿨에 휘감겨 있고, 자칫하다간 상대도 다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두었다간 상대의 심장은 적의 피로 물들게 되고, 결국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검은.. 그것의 중요한 기능은 바로 신분의 증명입니다. 검은 그것으로 적을 베어내고 숨통을 끊어 내는 일에 사용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상대의 검을 찾아내어 그의 손에 쥐어 줌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고 증명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신분을 확인하는 일.. 기사로서의 자신의 신분, 귀한 신분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일.. 그것은 그것 자체로 막강한 힘을 얻게 됩니다. 자신의 신분을 깨달은 거지왕자처럼..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막장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치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의 신분을 깨닫게 된 주인공이, 이제까지의 비루한 어둠의 넝쿨들을 베어내고, 자신의 심장을 조여오던 두려움의 박동을 끊어내며, 당당하게 검을 들고 자신의 두 발로 일어서는 순간.. 부터 치유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니 그것으로 치유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대는 수많은 자칭 힐러(Healer)들을 쫓아다니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힐링의 메시지들에 귀를 적시며.. 여전히 끌어안고 있는 자기 연민의 어둠과 직면하지 않은 채, 도망 다니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달달한 메시지와, 아무래도 괜찮다는 허울뿐인 위로에, 귀만 적시고 눈만 달랬습니다. 그러나 어둠에 휩싸인 그대는 아무것도 달리진 것이 없습니다. 따뜻할 것 같던 그 손이, 환부를 도려내 주기는커녕, 자꾸 만져 대 덧만 나게 하고.. 위로를 줄 것 같던 그 도닥임이, 실은 어둠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마약일 뿐이었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그 사이.. 어둠은 더 많은 영역을 잠식해 들어왔습니다. 두려움과 고통은 그대 삶의 더 많은 부분들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구원의 기사를 애타게 불러보아도, 말을 잊은 입과 빛을 잃은 눈으로는.. 누구도 그대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자, 여기 검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이것뿐입니다. 아무도 너의 어둠과 대면하여, 그 숨통을 대신 끊어 줄 수 없습니다. 재크의 콩나무처럼 자라난 그대의 어두움은, 오로지 그대만이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검을 든 손에 필요한 것은 자비가 아닙니다.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쥐여진 검.. 그리고 그 검이 상징하는 그대의 신분입니다. 신분이면 되는 일입니다. 나는 왕이다. 나는 기사다. 나는 무엇이다.. 선언하면 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그대의 미래에 잠들어 있던 자신의 능력을 깨워내는 일이며, 어둠의 공포에 숨죽이며 감춰져 있던 과거의 꿈이 깨어나는 일입니다.
검을 든 그대는 일체의 타협을 거절해야 합니다. 신분을 획득한 자에게 굴종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불타오르는 검..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높이 들어 올리는 일일뿐입니다. 치유는 이것입니다. 이것으로 치유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치유하는 검.. 그것은 검이 상징하는 신분입니다.
자, 여기 검이 있습니다.
그대는 누구입니까?
이 검으로 무엇을 하렵니까?
ziphd.net
ziphd.net
ziphd.net
ziphd.net
ALEPH 알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