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남자와 금성여자의 미투
2018.03.13
폭행에 관한 이야기는 더 할 게 없습니다. 그것은 마땅히 법규에 따라 처벌을 받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미투 운동이 폭로, 고발에서만 그친다면 그 본질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까지 오게 만든 원인은 건드려 보지도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 것입니다.
미투 운동의 정치성에 관한 이야기, 갑을 관계의 권력성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남여의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몰이해입니다. 지금은 그동안 억압되어 온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중이라 경황이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 어느 지점에서는, 폭로와 대치국면을 풀고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수와 보복, 그리고 외면과 냉소로 나아가지 않고, 좀 더 인간다운.. 인격적인 소통이 가능하게 될 테니까요.
때가 때인지라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대화를 시도해 보고자 합니다. 몰매를 맞더라도.. 북한과 미국도 대화를 시도하는 데.. 대한민국의 남여도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화성남자와 금성여자
한때 유행하던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제목처럼, 우리 사회 남여 간의 성에 대한 인식은 안드로메다만큼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남여 간의 성인식이 신체구조와 관습, 전통적 인식과 변화하는 사회상에 따라, 한편으로는 억압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따라잡기 힘들 만큼 빠르게 변화해 왔지만.. 우리는 서로 이 어젠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해 보지 못했습니다.
악습과 몰상식의 비정상성만을 비판해 왔지, 남여 간의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와, 나아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애티튜드가 어떠해야 하는지, 대화하고 수용하며 인식의 차이를 좁혀 왔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숨기기 바빴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지금 예기치도 못하게 무방비 상태로 모두가 함께 당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무수하게 많은 차이의 지점들이 있지만.. 일단 얘기해 볼 수 있는 것들부터 대화를 시작해 봅시다.
#1. 예쁘다는 말
예쁜 걸 예쁘다고 하는 데 왜들 그리 예민해..
남성들이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첫 번째 지점입니다. 예쁩니다. 예뻐서 예쁘다고 한 겁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걸까요? 입장을 바꿔서 얘기해 봅시다. 아마도 이 말은 이런 말이 아닐까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돈버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가장으로서의 남성에게 이 노래가 내용 그대로 들리지 않고, 자신들을 ATM기 취급하는 노래처럼 들린다는 뼈 있는 농담이 회자되곤 합니다. 물론 이 노래는 아빠 힘내라는 노래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내세워 이 노래를 합창시키는 엄마의 눈빛을 아빠들은, ‘돈 많이 벌어 오란 얘기 군’으로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의도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정말 순수하게 힘내라는 말이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가장으로서의 남성들만이 느낄 수 있는 남성만의 맥락, 태생적 맥락이 있는 겁니다.
여자에게 하는 예쁘다는 말. 거기에도 숨겨진 여성만의 맥락, 태생적 맥락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자의 외모 비교, 남자의 능력 비교는 동급이라는 말입니다.
예쁘다는 그 말이 나는 무심코이겠지만.. 그 예쁘다는 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비교와 평가의 맥락이, 어떤 여성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럽고, 심지어 수치스럽게까지 느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랜 외모 콤플렉스로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을 수도 있고, 번번이 면접에서 불이익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슈퍼모델, 미스 코리아급 얼짱에 몸짱이라면 한껏 자부심에 부풀지도 모르고, 너무 들어서 지겨 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재벌 회장, 능력 있는 사업가가 아닌 이상, 남자에게 연봉이 얼마냐고 묻는 게 실례이듯이, 여자에게 외모와 관련된 발언을 하는 게 실례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무심코 누군가에게 부모님에 관해 물었다가, ‘실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라는 답을 듣게 되면, 매우 당혹해 하며 ‘미안.. 내가 괜한 소리를 했네..’라고 사과를 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 매우 의아해했습니다. 내가 상대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는지 살아계셨는지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미안해하고 사과를 해야 할까요?
그것은 모두 아시다시피 사과가 아닙니다. 사과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많이 힘들었겠구나, 아팠겠구나..’ 공감하며 연민하는 언어이자 상대를 위로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내가 미쳐 몰랐지만, 지금이라도 너에게 상처가 되었을 부모님의 부재에 대해, 애도하고 공감한다는 존중의 표현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자에게 예쁘다고 말하는 것, 남자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그 사람 인생의 맥락, 태생적 맥락에 따라, 상대에게 상처가 되고, 어려운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 일이며, 심지어 모욕적인 상황이 재현되는 어떤 것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쁜 사람을 예쁘다고 하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하는 말.. 그것도 TPO를 갖추지 않으면 이 복잡다단한 사회 속에서 자칫 모욕이 되거나 큰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말들을
‘너 연봉 얼마야?’
‘너 학교 어디 나왔니?’
‘너네 집 몇 평이야?’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등의 대화가 가능한 상대에게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들춰보면 상처 없는 사람이 없고 험하지 않은 인생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남과 여의 차이를 인식하려고 노력하면서 또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매너를 지키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 또한 인간으로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2. 피곤한데 쉬었다 가자는 말
피곤한데 잠시 모텔에서 쉬었다 가자.
심심한데 잠시 백화점 구경이나 가자.
같은 말이 아닐까요? 남자는 쉬었다가자 하고, 여자는 구경이나 가자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그 뒤에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모텔까지 왔는데, 섹스도 안 하고 그냥 간다고?
아니 백화점까지 왔는데, 다이아도 안사고 그냥 간다고?
다이아.. 그 이상일 겁니다. 남자라 그것이 잘 가늠이 가지 않지만.. 아마도 백화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가장 비싼 무엇의 부담만큼, 모텔에서의 잠자리가 느껴질 것입니다. 여성들에게 말이죠.
아, 물론 둘 다 흥분해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온 거라면 무슨 문제겠습니까? 복권이라도 당첨돼서 원하는 건 뭐든지 사라고 떵떵거리며 입장한 백화점이라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문제는, 여자는 남자가 피곤하다는 말을 거절하기가 어렵고, 남자는 여자가 잠깐 구경이나 하자는 말을 차마 거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절하자니 쪽팔리고 또 거절하면 상대가 무안할 테니 말이죠. 그래서 일단 따라 들어가는 겁니다. 일단 거절 못하고 진도를 나가는 겁니다.
그러나 그냥 쉬었다 가자며 들어온 모텔에서, 잠은 안 자고 옷을 벗기려 들면.. 그냥 구경이나 하자며 들어온 백화점에서, 구경은 안 하고 지갑을 벗기려 들면.. 당혹스럽기는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게다가 그 선택의 결과가 자칫 패가망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면 말이죠.
#3. 임신의 공포? 입대의 공포?
여성들이 갖는 임신에 대한 공포.. 그것을 남자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꼬박 5년 동안 전투적인 육아를 경험한 저로서는, 이거이거 육아만으로도 남자가 군대 다시 가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부담이더란 말입니다.
그니까 말이죠. 그러다 임신이라도 되면.. 그래서 임신 테스트기에 빨간 줄이 두 줄 탁 가는 순간, 남자의 휴대폰에 입영통지서가 동시에 날라 온다면 말이죠. 그래서 임신 10개월 동안 신병교육대를 가야하고, 그 뒤로 3년에서 5년 동안 장기복무를 육아기간만큼 해야 한다면 말이죠.
그럼 니들이라고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겠습니까? 술을 핑계로 막 덤벼들겠습니까? 취한 술도 번쩍 깨버리지 않을까요?
그러니 차마 의도가 빤히 보이는 데도, 쉬었다 가자는 말을 거부할 수 없어 따라 들어온 여성이, 군 입대의 각오를 해가며 너와 잠자리를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그러려고 따라 들어온 게 아니냐고 따져 묻는 우리 남성들의 애티튜드가 참으로 한심하다는 말입니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저도 뭐..)
뭐 평생 책임져준다면 군대 다시 갈 수도 있을 겁니다. 10억 주면 감빵에라도 가겠다는 청소년이 50%가 넘는다는 데, 까짓거 평생 왕자로 살게 해 주겠다는데 군대 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말 뻥인 거 너도 잘 알잖습니까?
그 뻥을 매뉴얼처럼 참 잘도 써먹었습니다. 우리 남자들 말이죠. 순진한 건지 사랑한 건지.. 그 뻥의 결과가 쌓이고 쌓여서, 이제 모텔에 가자고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눈빛을 게슴츠레하게 떴다는 의심만으로도.. 수치심을 느낀다는 여성들의 항변에 뭐라고 대응을 하겠습니까? 대학만 가면 인생 끝난다는 어른들의 말, 착하게 살면 복받는다는 있는 놈들의 말.. 그런 개소리 듣기만 해도.. 음흉한 눈빛 보기만 해도.. 역겨운 건 여자나 남자나 다 똑같다 이 말입니다.
10캐럿짜리 다이아 사줄 거 아니라면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정말 나랑 자 주는 거야? 나랑 자도 괜찮아?’ 옷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순간마다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삽입의 그 순간까지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쪽팔려서 못하겠다면.. 그렇게까진 못하겠다면..
우리는 남성 대 여성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예의와 애티튜드를 먼저 갖춰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쪽팔리게 일일이 허락받아 가며 관계를 이어나가지 않아도 될 신뢰의 관계를 먼저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어설픈 뻐꾸기를 날려 여성을 강제입대시키는 폭력범 취급받지 않아도 되고, 잠자리를 빌미로 남성을 ATM기 취급한다는 악덕업주 취급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사랑이 아닌 거래와 계약만 남아.. 애틋함이 아닌 불공정이 화두가 되고.. 이별이 아닌 고소.. 실연이 아닌 폭로가 난무하는 우리 시대의 관계의 방식을 청산해야 합니다.
점점 사람 관계할 곳이 못되어, 기계 인간들과의 소통에만 매달리게 되는 미래를 맞기 전에.. 우리는 남자사람, 여자사람과의 대화의 방식을, 매너와 애티튜드를 처음부터 다시 배워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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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