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적 사고와 콘티적 사고
요즘 10대들은 검색 도구로 유튜브를 사용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텍스트 검색에 익숙한 저로서는 좀 상상이 안 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페이지를 주욱 훑으며 필요한 정보를 캐치해 내고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는 것과, 영상을 통해 등장하는 사람의 몸짓과 뉘앙스, 다양한 이미지 도구들의 설명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어떻게 다르고 얼마나 효율적인지 감이 잘 안 오기도 합니다.
오히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전까지, 그 오랜 세월 정보 저장의 주된 방식은 기억과 체험이었을 겁니다. 말하고, 듣고, 보고, 느끼고.. 그중의 대부분은 몸으로 체화되었을 것이고, 지난 일에 대해서는 기억의 한계 속에서만 작동했겠죠. 구술되고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현재의 체험과 상호작용하며 옛날이 아닌, 현재적 시점에서 다시 맥락과 맞닿게 됩니다. 오히려 기억에만 의존되어 있으니, 누구도 지난 일에 대해 강력한 확신을 가지기도 어려웠겠죠. 그러니 기억에 따른 증언은 서로 불확실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어찌 보면 현실을 충실히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늘 현재의 시점에서 해석되고 합의를 만들어 갔을 테니까요.
문자의 발명? 발견? 은 인류의 세계를 과거와 미래로 무한히 확장시켜 주었습니다. 저장된 기록은 권위를 부여받고, 진위 여부를 의심은 받을지언정, 기록은 기록으로서만 반박되어질 뿐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잘못된 기록이, 그 유일성으로 말미암아 강력한 권위를 얻기도 하고, 이미 얻은 권위는, 그것을 반박할 만한 새로운 기록이 나온다 해도, 권력에 의해 사장되어버리기도 합니다. 문자의 권력은 사람들의 현재적 인식과 ‘지금’이라는 세계의 맥락을 해체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가 어느 책에서 말하기를..’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거나, 거친 썰전의 현장에서의 방패막이로 활용합니다. 심지어 말한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도 말이죠.
사람들과의 소통 없이 문자로 얻어진 지식은 지혜로서의 가치를 획득하기 어렵습니다. 논쟁에서는 이길지언정, 개개인의 삶의 맥락은 거세되어 있으니까요. 그런 이기적인 지식이 인간의 문명 발달 속도를 엄청나게 가속하였습니다. 천천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 올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말도 문자로 하고 있군요. 쩝..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맥락을 함께 나누며 소통해야 할 텐데 말이죠.)
그럼에도 문자의 발명을 부정할 것은 아닙니다. 인류의 세계를 한없이 확장해 주었고 의식의 수준도 같이 상승했으니까요. 과거의 사람들과도 소통하게 해주고, 미래의 인류들에게도 말을 걸 수가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불러들여, 인류를 시간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식의 지평은 한없이 넒어졌으나, 너무 넓어서 소통의 접점은 오히려 찾기가 어렵게 된 측면도 있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누구는 달을 가리키며 뭐라 하고, 누구는 해를 가리키며 뭐라합니다. 한 운동장에서 축구선수와 야구선수가 왜 공을 손으로 잡냐고, 왜 공을 발로 차냐고 옥신각신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박제가 생명을 얻다
영상 언어의 시대를 맞으며, 우리는 적어도 2차원적 소통에서 조금 나아가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글자 속에 박제되지 않고, 몸을 얻어,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게다가 영상 언어는 일단 상대를 염두에 두고 표현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심지어 편지를 쓰면서도 혼자 중얼대게 되는 글자보다 상호작용의 폭이 확장된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텍스트적 사고와 콘티적 사고의 차이는 등장인물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글자책을 읽고 자란 세대와 만화책을 읽고 자란 세대의 인식의 구조 또한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인공만 나오는 만화는 없으니까요. 애니메이션, 드라마와 영화 모두 상대가 등장하고, 아무리 작가가 편향되어 있어도, 등장인물의 입장에 서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것은 관객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 표정과 뉘앙스, 몸짓에서 우리는 평면적인 박제된 생각을 만나는 게 아니라, 어쨌든 자기 호흡을 하고 자기의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니까요.
만화책을 좀 더 많이 볼 걸 그랬습니다. 텍스트만 보다 보니 사람들이 다 글자로 보이나 봅니다. 이렇게 눈빛, 낯빛 그리고 목소리의 톤과 색깔, 습관도 모두 다른데 말입니다.
영상언어 시대의 소통
영상언어는 직관적입니다.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는 현실의 장면, 장면들에서 분리되지 않습니다. 텍스트는 그것들을 전부 해체시켜 분자 단위로 저장하고, 저마다의 맥락에서 새롭게 배치합니다. 그래서 의견이 분분하고 갈등이 일어납니다. 덕분에 빠져나갈 구석도 많아집니다. 그래서 ‘주어가 빠졌다’는 억지 주장이 힘을 얻기도 합니다. 복잡하게 말할 것 없이, 진술서 만권보다 1분짜리 CCTV 녹화 파일 하나가 가지는 위력으로 게임 끝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지금 이 정도 분량의 글이 십대들에게 읽힐 확률은 제로에 수렴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무식한 것은 아닙니다. 유튜브를 검색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저 같은 기성세대한테는 오히려 번거롭고 귀찮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분히 이기적인 방식입니다. 그냥 페이지를 속독하며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찾아내는 기성세대의 정보 취득 방식에는 ‘너’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세대들의 정보 취득 방식은, 동영상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서 시작됩니다. 인사말부터 이러저러한 기-승-전-결을 따라가며, 머릿속에 정보와 소통이 분리되지 않은 블록체인을 만들고, 몸짓, 뉘앙스 등등 비언어적인 소통을 모두 통합한 전인적인 지식체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채팅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그들은 ‘나’와 ‘너’의 인식의 차이, 소통의 간극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며 해결해 본 경험을, 축적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나서서 뭐라뭐라 떠들지 않는 것입니다.
게다가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심지어 매우 현재적이고 과제해결적입니다. 그들의 전투는 비록 가상일지언정 과거의 전쟁이 아니고, 지금 ‘나’와 길드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팀원의 가상적 ‘生과 死’가 달린 현재적 상황입니다. 이 가상세계에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연대하고 지원하며 희생합니다. 그것은 허울 좋은 문자가 아니고 실속 없는 약속이 아닙니다. 매번 승패가 갈리고, 에너지 자원을 소모하거나 획득하는 리얼한 ‘실제’입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지식의 바벨탑을 한없이 쌓아올리고 장벽을 쌓아, 인식의 방식이 다른 새로운 세대는 아예 접근할 수도 없는, 자신들만의 성에서 호통이나 치고 있는 꼰대들은, 야구장에서 투수한테 핸들링 반칙을 선언하고, 축구장에서 골대를 넘겨버린 슛팅에 홈런이라며 만점을 주는 바보 멍청이 취급을 받는 것입니다. 책에 그렇게 적혀있다면서 말이죠. (자기 기억에 그렇게 적혀 있겠죠.)
텍스트적 사고만 해 온 사람은 함부로 말합니다. 자기 말만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구라도, 콘티를 한 컷이라도 그려봤다면, 주인공만 말해서는 작품이 성립될 수 없다는 걸 금방 알게 됩니다. 어른들이라는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다 그렇습니다. 혼자 떠드는 글을 쓰고, 앵커 혼자 떠드는 뉴스를 시청하며, 기자 혼자 떠드는 신문에 둘러싸여 있으니 소통의 ‘소’도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막장드라마라도 봐야 합니다. 그렇게 혼자 떠들다가 어떻게 김치 싸대기가 날라 오는지 간접경험이라도 해봐야 합니다.
콘티적 사고.. 어렵습니다. 여러 사람이 등장하고, 축약해서 갈무리할 수가 없습니다. skip 버튼을 계속 눌러대도 맥락을 놓치고 있으면 뭔 말인지 모릅니다. 결국 러닝타임을 웬만큼 소화해 내지 못하면 맥락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스토리 없는 야동이 아닌 이상 원하는 장면, 원하는 내용만 추려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전후좌우, 기승전결의 입체적 사고는 사람으로 하여금 함부로 떠들어 대지 못하게 합니다. 뭐든 사정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무식해서가 아니라 신중해서 말이 없는 겁니다. 이 젊은세대 말이죠. 막 윽박 질러대니까 무서워서가 아니라, 기가 차서 말을 섞지 않는 것입니다. 텍스트로 사고하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저도 혼자, 게다가 글로 떠들고 있네요. 원피스부터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