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억울합니다

2018.03.11 

우리는 모두 억울합니다. 수고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해서 억울하고, 내가 한 짓도 아닌데 누명을 쓴 것 같아 억울합니다. 부잣집에 태어나지 못해 억울하고, 나만 안되는 것 같아 억울합니다.

억울하자고 들면 이유는 한도 끝도 없는데.. 억울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더..

나는 이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7년전쯤.. 일본 원작 드라마를 보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지난 시간 내내 내 가슴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어요. 나는 다 본 줄 알고 있었는데 리메이크 되어 방영되는 한국판 마더를 보니, 나는 이 드라마를 다 본 게 아니었습니다. 앞의 몇 편만을 보고 말았던 거였어요.

왜 끝까지 보지 못했을까요?
그리고 왜 끝까지 보았다고 믿고 있었을까요..

(스포일러 有)

 

엄마가 아이를 유괴했어요. 물론 엄마는 친엄마가 아니에요. 그렇다고 아빠랑 재혼한 새엄마도 아닙니다. 아이가 정말 믿고 따르고, 보호받고 싶은 엄마는.. 실은 학교에 임시로 부임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엄마는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도 버림받았으니까요. 그래서 학대받는 아이를 그냥 둘 수가 없어서 유괴를 합니다. 아이는 선생님을 엄마로 받아들이고 따라나서요.

억울한 사람은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에 억울합니다. 내 선택의 결과가 아니니까요.

엄마도 아이도 모두 선택을 합니다. 엄마는 학대받는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삼기로 하고 유괴라는 선택을 해요. 아이는 자신을 낳아 준 엄마를 떠나 이 새로운 엄마를 자신의 엄마로 받아들이기로 선택합니다.

선택한 사람들은 각오를 해야 해요. 자신의 선택이니까요.

아이를 유괴한 엄마는 실은 자신도 버려졌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엄마가 자신을 입양하여 키워주셨어요. 그런데 그 엄마의 엄마는 남편도 없이 혼자 키워야 했어요.

엄마의 엄마는 아이의 엄마를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키워요. 자신의 선택이니까요. 그리고 자신의 딸의 선택이니까, 딸이 데려온 아이가 유괴한 아이라는 것을 알고도, 지지해 주고 그 선택이 결과를 맺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줍니다.

엄마의 선택은 그 딸의 선택을 포함한 선택이에요. 가족은.. 진정한 가족은 그런 거예요. 가족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같이 감당해 주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것. 비난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건 가족이 아니에요. 사랑하니까 가족이에요. 책임에 동참하니까 가족입니다.

엄마에게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어요. 한 명은 기자에요. 기자 여동생은 언니의 유괴 사실을 알게 되지만, 기자로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아요. 언니를 동생으로서 최선을 다해 돕지만, 언니의 사건이라고 해서 취재를 소홀히 하지 않아요. 기자로서, 동생으로서 뚜벅뚜벅 사건에 직면해 나갑니다.

이상합니다.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전부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을 집니다. 보통 서로 책임을 미루고 회피하며 막장으로 흘러가다, 백마 탄 실장님이 나타나서 일 거에 갈등을 해소하는 여느 막장 드라마와는 딴 판이에요. 그래서 불편하고 그래서 감동스럽기도 해요.

백마 탄 실장님.. 아니 의사선생님일 뻔했던, 엄마의 엄마의 주치의 선생님이 있어요. 얼마 전에 어머니를 여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엄마와 아이가 도망가는 와중에 최선을 다해 도와줍니다. 물론 드라마니까, 위기 때 나타나서 여러 번 위기를 모면 시켜 주지만, 그렇다고 경찰을 피해 도망 다니거나, 증언을 회피하지 않아요. 의사로서 져야 할 책임과 엄마와 아이를 돕는 일에 흔들림 없는 균형감각을 보여 줍니다.

경찰.. 경찰마저 그래요. 그냥 실종 사건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이 사건의 진짜 내막을 파기 위해 역시 최선을 다합니다.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후, 후배 경찰이 아이를 위해 그냥 떠나게 두면 안 되냐고 간청해도.. 이 경찰 공과 사를 정확히 분별하여 결국 엄마를 잡고 말아요. 끝까지 아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엄마의 엄마의 매니저도.. 하다못해 밀항을 위해 여권을 위조해 주는 일당들까지.. 돈을 받았으니 책임을 다하고 자신의 역할과 권한 내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 게 당연한데.. 낯설고 또 어쩌면 판타지스럽기까지 해요. 왜 그럴까요?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온갖 위험이 닥쳐왔을 때 요리조리 책임을 회피하며 빠져나가는 모습들만을 봐왔어요. 그런게 익숙해졌고 그게 삶이라고 받아들여 버렸어요. 그러나 살아 본 인생은 그렇게 빠져나가지지 않더라는.. 결국 모두 나의 책임으로 돌아오더라는.. 심지어 내가 하지 않은 선택의 선택의 선택에 대한 책임까지 덮어씌워지더라는.. 그래서 수습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더라는..

엄마의 친엄마는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죽이고 감옥에 가요. 자신의 아이에게 감옥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보육원에 아이를 어디 가지 못하게 묶어두고..

엄마는 엄마의 친엄마에게 왜 자신을 그렇게 버려두었냐고.. 어차피 잡혀가더라도 그 순간까지 함께 있게 해주지 않았냐고 말해요. 그리고 자신은 경찰에 붙들리는 순간까지 아이 곁을 떠나지 않아요.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책임을 다해요. 직접 선택했으니까.. 자신이 직.접. 선.택. 했으니까.. 남이 해주는 걸 대신 따라가지 않았으니까.. 남의 인생을 대신 살고 있지 않으니까..

대신 살고 있는 인물도 있습니다. 아이의 친엄마.. 아이의 친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아요. 남자친구에게 계속 의존하고, 그를 위해 살려고, 그를 위해 살기 위해 희생을 마다 하지 않아요. 아이가 죽더라도 말이에요.

또 있습니다. 엄마의 여동생.. 검사 남편, 그리고 유명 배우 엄마를 둔 의존된 여인 말이에요. 그녀는 자신이 기대고 있는 기반을 잃을까 안절부절 못 하면서 엄마와 남편의 말에 열심히 순종해요. 그러다 불안에 못 이겨 어설픈 선택을 해서 모두를 곤경에 빠뜨리고 말아요.

남의 인생을 대신 사는 사람. 남에 인생에 기대어 있는 사람은 불안합니다. 기대고 있다가, 기대고 있는 그 무엇이 무너지면, 자신도 무너질 테니까요.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들은 두렵지만.. 책임을 회피하지 않아요. 자신이 선택했으니까..

엄마는 유괴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변호를 하지 않겠다고 거부해요. 아이는 엄마를 선택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친엄마를 거부해요. 친엄마에게 엄마의 아이는 세상에 없다고 말하죠. 엄마의 엄마는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신의 명성에 해가 되든 말든 상관없이 인터뷰를 하고, 끝까지 딸의 선택에 함께 합니다. 엄마의 친엄마는 아이와 자신을 위해 남편을 죽인 책임을 지고는, 아이의 집 근처에서 수십 년 동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아이를 지켜봅니다. 엄마의 기자 여동생은 진상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으나, 엄마의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기자를 다시는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예견된 선택을 주저하지 않아요.

모두가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도망가거나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직면해 가요. 이건 내 선택이 아니었다고 억울해 하지도 원통해 하지도 않아요. 그들은 모두 스스로 선택했으니까요.

우리는 억울합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들 투성이니까요. 온통 남의 선택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억울합니다. 우리는 도망갈 수가 없습니다. 도망도 선택이거늘.. 누가 도망가라 하기 전에는.. 누구를 따라 도망가기 전에는.. 우리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을 지켜내는 일입니다. 점심 메뉴 하나 선택할 수 없는 우리이지만.. 내 삶의 주인으로.. 내 인생의 책임자로.. 내 인생의 선택 하나하나를 직접 선택해 간다면..

우리는 도망쳐도 되고, 아이를 유괴해도 좋습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면..

그러면 우리는 자꾸 부딪히고 깨어지면서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는 겁니다. 내 책임의 한계, 내 선택의 범위를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억울할 일이 없습니다. 멍청하게 따라가다 뒤통수를 맞을 일이 없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아이는 거의 울지 않아요. 자신이 선택했으니까요. 선생님을 자신의 엄마로 받아들이기로 선택했으니까요. 선택한 사람은 억울해 울 일이 없어요. 그리고 엄마니까.. 가족이니까.. 엄마의 선택의 결과를 늘 최선을 다해 감당해요. ‘엄마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하지 않아요. 가족이니까. 그리고 가족으로서 엄마의 선택에 동참하기로 했으니까..

그러나 아이는 운다고 버려졌었어요. 아이의 친엄마는 아이가 울어서 아빠가 떠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는 울 수 없었어요. 자신이 울면 엄마가 자신을 떠날 테니.. 그 아이가.. 엄마가, 자신이 선택한 엄마가 경찰에 붙들려 갈 때.. 엄마가 보육원 담장에 묶인 채로 엄마의 친엄마와 이별했던 것처럼 되지 않기로 선택하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선택하고.. 그 순간까지 아이를 놓지 않았을 때에야 비로소.. 아이는 웁니다. 눈물을 터뜨립니다. 그때에야 아이는 진심으로 엄마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엄마가.. 남편도 없이 아이를 잘 키워낸 엄마의 엄마가 말을 합니다.

자기 배로 애를 낳아야만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여자가 엄마가 된다는 건 다른 작은 존재한테 자기를 다 내어 줄 때에요.

사랑하니까 가족이에요. 그리고 사랑하는 일은 상대의 선택의 결과를 함께 감당하는 것이에요. 그를 원망하는 게 아니고 말이죠. 의존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줄줄 따라가다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맞닥뜨리고 원망하는 게 아니라.. 선택에 동참하여 함께 결과를 책임지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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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족이 아니라면 버려도 좋아요. 유괴도 하는데.. 사랑하니까 가족인 거예요. 사랑이 아니면 가족이 아니에요. 당신의 선택도 아니었잖아요..

어떻게 그러냐구요? 어떻게 가족을 버리냐구요? 그러면 사랑하면 됩니다. 어처구니없는 그의 선택에 동참하면 됩니다. 버리지 못할 거면.. 그의 선택에 동참하면 됩니다.

억울하면 버리면 됩니다. 그리고 억울한 사람은 버립니다.
사랑하려면 선택하면 됩니다. 선택한 사람은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억울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억울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선택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아이들은 모두
죄 값이 아닌
선택의 결과를 감당했을 뿐..

드라마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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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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