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을 잠들었다가

Dec 23. 2023 l Ephesus

황제는 동굴 입구를 막아버렸어. 이들이 우상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이야. 우상이야 섬기고 싶은 사람만 섬기게 하면 될 텐데. 황제의 권위는 그런 게 아니잖아. 닥치고 지시대로 해야지. 그러니까 이건 어쩌면 신앙에 관한 게 아니라 권위에 관한 이야기일 거야.

예수가 십자가에서 실패하고, 그의 성공적 부활은 오로지 신도들에게만 복음이던 시절에, 박해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 황제들은 신의 아들과 맞짱을 뜨고 싶어 했지. 권위에 관한 문제니까. 황제는 살아있는 신이니까.

“(모든 신에게) 제사를 올리든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든지, 둘 중에서 선택하라.”

_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데 지금은 기둥 하나가 남았다.

황제의 명은 그것이었어. 죽음에 이르는 고통과 우상숭배. 고통이야, 죽여버리겠다가 아니라 고통을 주겠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고통을 주겠다고. 악에 받치면 고통에 집착하게 돼. 처벌이라면 죽여버리면 되는데 복수는 고통을 주어야 하지. 고통 없는 처벌은 해소가 안 되니까. 오히려 신도들의 불복종으로 인한 고통은 황제가 당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복장이 터지겠어. 내가 황젠데, 명을 거부해?

황제의 명은 데키우스(DECIVS)야. 로마 황제들 중 최초로 기독교도 박해를 시작했지. 로마의 30대 황제 데키우스는 제국이 날로 쇠약해지고 내란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을 심상치 않게 여겼어. 그리고 여느 독재자들처럼 국민들을 단합할 구심점으로 종교를 활용하기로 했지. 제국의 민족종교 말이야. 그리하여 제국에 신전 건축, 복원 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졌어. 그에게는 ‘신전복원자’라는 별명이 붙었지. 그리고 AD 250년에는 칙령을 내렸어. 모든 주민들은 제국의 모든 신에게 희생제를 드리고 증명서를 발급받으라는,

“제국의 모든 주민들은 특정일까지 ‘제국의 안전을 위해’ 지역 사회의 제사장들에게 제물을 바쳐야 한다. 주민들은 제물을 바친 후 그들이 명령에 따랐다는 사실을 기록한 증명서를 발급받을 것이다. 이 증명서는 모든 신에 대한 주민의 충성심과 희생제물과 음료, 그리고 희생제를 감독하는 관리의 이름을 증언할 것이다.”

모든 신이니까, 식민지 주민들이 자신들의 신을 섬기는 것에 관대했던 제국의 관행에 따라, 기독교도들이 자신의 신을 섬기는 것을 금했던 것은 아닌 거야. 다른 신도 함께 섬기라는 것이지. 물론 제국의 신은 당연. 그러나 이 유일신교 신도들은 그것을 어떻게 여겼겠어? 모든 신을 섬기는 건 재탄생한 악의 방식이지. 돈 되는 건 다 섬기던 니므롯, 세미라미스, 이세벨의 방식 말이야. 그걸 극혐해. 이 종교가. 그래야 차별되니까. 차별의 종교답게 신도들은 이를 거부했어. 황제가 열받을 만하지. 그러나 칙령이 공표된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313년, 헬레나의 아들이 선포한 밀라노 칙령으로, 250년 데키우스 황제의 칙령은 뒤집혀 버렸지. 온 제국은 여호와만 섬기라는.

어쨌거나 미래를 모르는 신심이 가득한 7명의 친구들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모두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어놓고 동굴에 모였어. (모든 신들에게 재산의 일부를, 아니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재산의 모두를) 그리고 기도를 드렸지. 죽음의 고통으로 엄습해 오는 두려움 가득한 마음을 신께 내어놓자, 신은 그들에게 잠을 내리었어. 7명의 친구들이 모두 성령의 임재 속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

빡치는 황제에게는 악랄하고 신기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이번엔 굶겨 죽여 볼까? 황제는 7명의 친구들이 동굴에서 잠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동굴 입구를 돌로 막아 봉인해 버리도록 명령했어. 안에서 굶어 죽으라고 산 채로 매장을 해버린 거야. 로마의 장례 방식은 석굴 매장이었거든. 그리고 황제는 승리했지.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었으니까. 승리한 줄 알고 자신의 수명을 마쳤지. 칙령을 선포한 이듬해에 말이야.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어.

_ 7인의 잠든 성인의 동굴 유적(Cave of the Seven Sleepers), 에페수스(에베소)

시간은 흐르고. 헬레나는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지. 아들에게 전쟁에서 이기면 여호와를 섬기라고 당부하고 아들은 전쟁에서 승리했어. 그리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켰지. 그리고도 시간이 흐르고 흘렀어. 7명의 친구들이 동굴에서 잠든 지 200년. 그들은 깨어난 거야. 한 목동이 뒷산에 마구간을 만들려다 우연히 동굴을 열게 된 거야. 그리고 그 소리에 잠들어 있던 7명의 친구들이 깨어나게 된 거야. 200년 뒤의 미래에.

잠들었다 200년 뒤에 깨어나면 어떤 기분일까? 지금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른 때라면 200년 뒤의 세상은 별천지겠지? 그러나 그들은 200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는지 쉽게 깨달을 수 없었어. 더군다나 자신들이 죽음 앞에서 서게 했던 그 칙령이 180도로 뒤집혀 이제 제국의 국교가 되었다니. 세상에 이건 어떤 소식일까? 스팀만배가, 비트 일억이, 이보다 기쁜 소식일까? 하지만 그들은 다시 잠들기를 청원했어. 200년을 잠들어 있었는데, 이제 세상에 박해는 사라졌는데, 그들은 다시 잠들기를 원했어.

“부활을 굳게 믿는다면 영원히 살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부활할 그날까지 누워있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들은 부활할 그날까지 계속 잠들어 있겠다고 신심 가득한 200년 뒤의 황제에게 청했어. 어차피 자고 일어났더니 200년이 흘렀는데, 부활의 그날이 언제이든 그건 한잠 자고 나면 되는 거야. 기억나니? 황제가 현자에게 물었잖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여사제가 여신에게 축복을 빌었던 그 형제들 말이야. 그들은 성전에서 잠이 든 후 깨어나지 못했어. 꿈꾸면서 세상에서 사라졌지. 사람들이 모두 완벽하다고 생각한, 잠자는 듯한 죽음은 최고의 축복이었어. 7명의 친구들이 죽음의 공포, 아니 죽음에 이르는 고통 앞에서 신께 받은 축복도 그것이었어. 잠드는 것 말이야.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것.

_ 7명의 친구들은 성인으로 추대되었어. 그리고 프랑스 마르세유의 성 빅토르(Victor) 성당에 안장되어 아직도 깨어나지 않고 있단다. (이 이야기는 신약을 인정하지 않는 코란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미 부활한 그들이 다음 부활을 기다리며 다시 잠들겠다고 한 것은 마치 우리가 우리의 삶을 꿈으로 여기는 것과 다르지 않아. 우리의 삶을 꿈으로 여기면 그곳이 천국이지. 그리고 깨어남은 믿음을 시험하는 박해의 현장인 거야. 사람들은 깨어남이 축복인 것처럼 말하지만, 깨어난 자는 선택해야 해. 계속 잠들 것인지, 깨어서 박해를 감당해야 할 것인지. 박해는 이것이지. 하나의 신을 섬길 것인가? 모든 신에게 희생제를 드릴 것인가? 하나의 신을 섬기는 이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고통과 잠이 주어지지만, 모든 신을 섬기는 이들에게는 모든 고통을 돈, 생존과 바꿀 수 있는 증명서가 주어지지. 제국의 신분증 말이야.

하나의 생은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깨어남일 뿐이야. 우리는 어제의 꿈에서 내일의 꿈으로 이어지는 깨어남을 매일 경험하지. 그리고 박해를 받아. 현실감이 주는 고통 말이야. 그러나 어제의 꿈이 행복했다면 내일의 꿈을 위해 박해를 견디고 잠들고 싶을 거야. 그러나 어제의 꿈이 불행한 이들은 어떻게든 깨어있으려 들지. 희생제를 드릴 수 있다면 적어도 불행한 꿈을 피할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잠이 올까 두려워 불면증으로 밤을 지새우지. 꿈이 그를 잡아먹을까 두려워. 불행한 꿈은 불행한 삶이 불러오는 거야. 좋은 꿈은 좋은 생각으로부터 오는 것처럼. 쫓기는 사람은 쫓기는 꿈을 꾸고. 기쁜 하루를 산 이는 기쁜 꿈을 꾸지. 깨고 싶을까? 기쁜 꿈, 깊은 꿈을 꾸는 이들이 말이야.

_ 유적 보호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수많은 유적들이 발로 차도 될 만큼 공개되어 있는데, 이 동굴은 철책으로 접근이 차단되었어. 아마도 이 동굴은 포탈이 아닐까?

이건 신앙이 아니라 권위에 관한 이야기야. 내 삶의 권위를 영원한 꿈에 둘 것인가, 박해를 피하기 위해 내어 바친 모든 신에게 내어 줄 것인가. 황제는 말했어. ‘제국의 안전을 위해’ 제물을 바쳐야 한다고. 안전을 위해 말이야. 그러나 친구들은 말했지. 부활을 믿는다면 영원히 살게 될 거라고. 부활, 생의 연속, 다시 태어남을 믿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되는 거라고. 그러니 너는 ‘안전’에게 권위를 내어 바치렴. 박해로부터 안전할 거야. 그리고 나는 부활을 믿는 거야. 영원히 살고 있으니까. 죽는들 다시 태어날 테니까.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으니까.

깨어남의 시간은 짧단다. 게다가 우리는 태어나기 전, 죽은 뒤에, 영원한 꿈을 꿔. 잠시 잠깐 깨어난 이 시간은 꿈을 전환할 좋은 기회지. 혹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면 말이야. 박해가 무서워? 악몽이 무서워? 그런데 그게 하나란다. 그리고 최고의 축복은 주의 성전에서 잠드는 거야.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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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적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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