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법정화폐와 관대한 왕의 기원
Dec 08. 2023 l Sardis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이 되게 해달라고, 왕은 신에게 빌었다. 신은 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는 황금의 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만지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했다. 먹을 것은 물론 딸까지도. 슬픔에 빠져 굶어 죽게 된 왕은 당황해서 다시 신에게 빌었다. 자신의 능력을 도로 가져가 달라고. 신은 그럼 강물에 가서 탐욕을 씻으라 말했다. 왕이 강물에 손을 씻자, 그의 손에서 금이 쏟아져 나와 강바닥에 가라앉았다. 그 강이 이 도시에 있다.
미다스 왕이 손 씻은 강. 덕분에 이 강에는 황금이 가득해졌다. 나라에는 황금이 넘쳐났다. 이 도시의 왕은 이렇게 쌓인 황금으로 뭘 할까 생각하다. 금화를 만들기로 했다. (금은 이미 많으니까 만지는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리하여 세계 최초의 법정화폐가 탄생한 것이다. 그 왕이 리디아 왕국의 마지막 왕 크로이소스이다. 살아 있으나 죽은 교회, 사데 교회가 있던 이 도시 사르디스는 리디아 왕국의 수도이다.

크로이소스는 어리석은 미다스 왕보다 현명했다. 만지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하지 않고, 그 금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한 것이다. 그리고 금을 화폐로 사용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면 금을 무한히 가져야 할 필요가 없다. 교환수단이야 그전에도 많았지만, 국가가 지급보증을 해주는 법정화폐는 이 황금 왕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다. 그는 화폐가 갖는 마력을 깨달았다. 그리고 화폐를 통해 시장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그리하여 크로이소스는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크로이소스처럼 부유하다.(Rich as Croesus)’라는 말을 탄생시켰으며 ‘크로이소스’라는 이름은 ‘부자’와 동의어가 되었다.

_ Croseid(크로세이드), 세계 최초의 주화. 54%의 금과 44%의 은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참고로 주사위와 공기놀이도 리디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어리석은 미다스 왕은 현물에 집착했지만, 현명한 크로이소스는 유통에 집중했다. 신용화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를 어떻게 창출케 하는지 세상에서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이다. 그는 화폐 발행에서 생겨나는 주조차익으로 더욱더 부유해지고 막강해졌다. 그리하여 주변 국가들을 하나하나 정복해가는데..
새로운 왕에 의해 순식간에 할리스 강 서쪽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정복되었다. 실리키아인과 리키아인을 제외하고 크로이소스는 리디아인, 프리기아인, 미시아인, 마리안디니아인, 말리베인, 파플라고니아인, 티니아인, 비티니아인, 트라키아인, 카리아인, 이오니아인, 도리아인, 아이올리인, 팜필리아인을 모두 제압하고 나머지 모든 백성들도 그의 신민으로 삼았다.
_ 역사, 헤로도토스

_ 사르디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에베소(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도 그가 세웠다고.
부러울 것 없는 왕은 어느 날 10년째 세상을 여행 중인 현자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그는 현자에게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을 텐데, 당신이 만난 사람 중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였느냐고 물었다. 속으로 자신이라고 인정해 주길 바라며. 그러나 현자는 아테네의 텔루스라는 사람이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었다고 답했다. 왕은 그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리고 왜 그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는 번영하고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고 죽었습니다. 텔루스에게는 아름답고 착한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기 위해 살았고, 이 아이들은 모두 훌륭히 성장했습니다. 게다가 그의 최후는 매우 영광스러웠습니다. 아테나와 엘레우시스 근처의 이웃들 사이의 전투에서, 그는 그의 친구들을 보호하던 중 죽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최고의 예우로 그가 쓰러진 자리에서 그의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왕은 인정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는 진작에 죽은 사람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리고 또다시 물었다. 그럼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냐고.
“아르고스의 클레오비스와 비톤이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둘은 헤라 사제의 건장한 두 아들인데 튼튼한 몸으로 여러 경기에서 상을 탔습니다. 어느 날 그들의 어머니가 사원에 가야 하는데 마차를 끌던 황소가 들판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황소 대신 그들이 직접 마차를 힘으로 끌고 그녀를 데려갔습니다. 그 사원의 사람들은 이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사제는 여신에게 그들에게 축복을 내려달라고 부탁했고, 여신은 클레오비스와 비톤에게 최고의 축복을 내려주었습니다. 최고의 축복은 바로 두 젊은이가 성전에서 잠이 든 후에 깨어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꿈을 꾸면서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여신이 그들을 데려간 것입니다. 모두가 이 잠자는 듯한 죽음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조각상으로 만들어졌고 아직까지 칭송받고 있습니다.”
왕은 마침내 화가 나서 외쳤다. “그들도 죽은 자들입니다! 나의 행운과 행복은 어떻습니까? 확실히 나의 행운과 행복은 이 평범한 인간들을 훨씬 능가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현자는 단순하게 대답했다.
“죽기 전까지 아무도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크로이소스 폐하, 당신은 나에게 행복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나는 70년은 장수라고 생각합니다. 그 26,250일 중, 어떤 날도 같은 날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완전한 우연의 연속입니다. 행운과 불행은 항상 뒤섞여 있습니다. 고요하던 날씨가 회오리바람으로 순식간에 변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삶의 여정에는 무한한 우여곡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신들은 질투심이 많고 인간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행복을 언뜻 보고는 파멸에 빠집니다. 당신은 운이 좋고, 놀라울 정도로 부유하고, 많은 사람들의 군주입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좋은 일이 일어나면 반드시 나쁜 일도 일어나기 때문에, 당신이 행복하게 인생을 마감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_ 아테네의 현자 솔론
크로이소스는 불편한 마음으로 이 일을 잊었다. 그리고 그는 탐욕에 불타 당시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던 페르시아를 치기로 한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미래를 알고 싶던 크로이소스는 델포이 신전에 찾아가 신탁을 청하는데. 그에게 ‘페르시아를 공격한다면 위대한 제국이 멸망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진다. 그러나 크로이소스는 위대한 제국이 바로 자신의 나라임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제국을 친다. 인생의 흥망성쇠에 따라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한 크로이소스는 전쟁에서 패하고 페르시아 왕에 의해 화형에 당할 위기에 봉착했다. 그 순간, 크로이소스는 현자의 말이 생각났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그는 불타오르는 장작더미 위에서 울부짖으며 크게 신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자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며 장작불을 꺼버렸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크로이소스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현자의 이름을 계속 불렀는데, 페르시아 왕은 그게 누구냐고 물었다. 크로이소스는 현자의 교훈을 페르시아 왕에게 모두 아뢰었다. 그러자 페르시아 왕은 화형을 취소하고 그를 다시 복위시킨 뒤 자신의 조언자로 삼았다. 왕의 조언자가 된 크로이소스는 자신의 화폐제도에 대한 노하우를 모두 왕에게 전수하고, 페르시아 왕은 그의 조언에 따라 페르시아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법정화폐를 발행하였다. 그러자 상공업이 크게 발전하게 되면서 국력이 더욱 부강해졌다. 무적의 페르시아는 마침내 신바빌로니아까지 정복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최초의 거대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리고 페르시아 왕은 역사상 최초의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군주로 등극하게 되었는데. 그가 키루스 2세, 고레스 대왕이다.

_ 화형대에 오른 크로이소스

_ 키루스 2세, 고레스 대왕. 그는 인생의 비밀을 깨달아서인지, 관대하고 현명한 왕으로 유명하다. 노예제를 폐지했으며, 전쟁 약탈을 금지하고 빚 때문에 종이 되는 것을 금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억압하지 말고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급여를 지불하라고 하였다.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문이자 법조문인 ‘키루스 원통’을 만들어 반포했는데 이를 인권운동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고. 또한 상이군인들을 대상으로 장례를 치러주거나 의족을 제공하는 등 세계 최초의 보험제도를 만들기도 했단다. 종교의 자유를 중하게 여겨 신바빌로니아의 포로였던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이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도왔다. 그의 관대한 통치는 대를 이어 후대의 왕들 또한 ‘관용과 자비’를 으뜸가는 통치 이념으로 삼게 했는데, 영화 <300>에서 ‘나는 관대하다’고 외쳐댄 크세르크세스가 바로 그의 외손자이다.

탐욕에 불타던 미다스 왕은 강물에 손을 씻었다. 그 결과로 부를 얻은 크로이소스는 불타 죽을 뻔했으나 현자의 조언을 기억해 내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법정화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법정화폐의 본질에 관하여 현자는 단순한 답을 알려주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전고점을 돌파하는 순간, 끝이라고 생각한다. 고생 끝이라고 생각한다. 화폐의 기본속성에 대해, 부의 본질에 대해 여전히 어리석은 왕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화폐와 부의 본질은 인생의 본질과 같아서 흥망성쇠의 사이클을 정직하게 따른다. 그것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적과, 결과가 빤히 보이는 쇠락이 언제나 동주(同住) 하고 있다. 그리고 유혹한다. 그것에는 만지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할 것 같은 만능성(萬能性)과 그것만 가지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잔뜩 쳐발라져 있다. 그러나 얻고 나면 그때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행복 끝, 내리막 시작’이라 생각해야 할 것을 ‘고생 끝, 행복 시작’으로 오인하여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크로이소스도 ‘행복 끝, 고생 시작’을 반대로 읽었다. 물론 신탁도 반대로. 자신이 세계 최고의 행복남이라고 자랑할 때는 언제고, 어쩌다 자신의 제국에 만족 못 하고 타인의 제국에 대항할 생각에 휩싸였을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현자의 말이 그를 다시 결핍에 휩싸이게 만든 것일까? 행복 끝, 고생 시작 그러나 자족은 영원하다. 집착의 끝은 어리석은 두 왕의 결과에서와 같이 본전보다 못하다. 없느니만 못하다. 그러면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
황금 왕국 사르디스에도 교회가 있었다. 그 사데 교회에 관해서 성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 불렸던 교회’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_ 요한계시록 3장 1~3절

_ 아르테미스 신전 끝에 작게 붙어 있는 사데 교회 유적. 보통 국교화 이후 신전을 성전으로 바꿔 쓰는 경우가 많은데 살았으나 죽은 교회는 신전 곁에 살짝 붙어 있다.
그날이 도둑같이 이를 테니 누가 행복한 사람이었는지는 그날에야 결판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오늘이 아니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고 그 끝은 도둑같이 오리니, 탐욕에 젖어 손 씻을 타이밍을 놓친 왕은 머리를 감싸느라 자신을 만져 황금 돌덩이가 되어버리리라. 그리고 끝!
이보게, 자네가 누구든 그리고 자네가 어디서 왔든, 나는 자네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네. 나는 페르시아인의 제국을 건국한 키루스라네. 나의 뼈를 감싸고 있는 이 한 줌의 흙을 비웃지 말게나.
_ 키루스 대왕의 묘비명

_ 아무도 찾지 않는 텅빈 크로이소스의 거대한 신전에서 들개가 살았으나 죽은 듯이 낮잠을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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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적 순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