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시바는 욕이 아니지만

by M.멀린

[멀린’s 100] Aug 08. 2022 l M.멀린

 

듣는 할아버지는 기분이 나쁩니다.

“스파시바”
“아니, 이 자식이 어디서”
“할아버지, 얘가 지금 감사하다고 말하는 거예요.”
“스파시바..”
“아니 얘가 지금 욕을 하는데 뭐가 감사하다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얘가 지금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스파시바’가 러시아 말로 ‘감사합니다’ 라고 설명하기 전에, 듣는 할아버지는 기분이 나쁘고 볼 일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게 러시아 말로 감사하다는 뜻이라고 설명을 들어도, ‘시바’라는 말 자체가 듣기 싫기도 합니다.

“지네 동네 말로 감사하다는 뜻이라고? 알겠네. 근데 어쨌든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는 거면 듣는 사람 기분 좋게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주면 좋을 거 아냐. 그 말 한마디 우리말로 못 배우나? 감사하다며.”

‘시바’보다 듣는 할아버지께 ‘감사합니다’ 하는 게 좋은 표현이고 당연한 표현입니다. 감사를 표현하려는 거니까요. 물론 러시아 할아버지를 만나면 마음껏 ‘스파시바’ 해도 됩니다.

감정이 그렇습니다. 감정은 나의 것이지만 그것을 전달할 때는 상대방의 언어로 전달이 되어야 소통이 가능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데도 사람은 자꾸 자기 말만 합니다. 자기 언어로만 얘기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오해를 산다, 사람들이 곡해해서 해석한다 말합니다. 상대방의 언어를 배울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랑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언어가 있습니다. 같은 한국말을 쓴다고 ‘사랑해’ 한 마디로 다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게 아닙니다. 뉘앙스와 태도, 상황과 분위기, TPO에 적합해야 하고, 상대가 이해하는 언어여야 합니다. 누군가는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누군가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 누군가는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 또 누군가는 서로의 꿈에 참여하는 것. 사랑의 언어가 얼마나 다양한지는 그대가 해온 수많은 사랑싸움의 갯수에 무한대를 곱해야 할 겁니다.

사람은 게으르고 미숙합니다. 사랑에 있어서는 모두가 그렇고 모두에게 그렇습니다. 나의 언어만을 강요하고 나의 언어를 알아듣는 모국인을 찾아 여태 모태솔로, 감정솔로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만, 사랑을 얻는 건 의외로 쉽습니다. 상대의 언어를 배우면 됩니다. 모두가 모국인을 찾아 다니는 바벨탑 세상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면 바로 사랑에 빠져 버릴 테니까요. (그건 국제 연애에 있어서도 첫 번째 덕목입니다. 원빈을 데려다 놔도 꿀 먹은 벙어리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비들은 언어를 배웁니다. 제비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랑의 언어를 수집하고 습득합니다. 자의식이 강하지 않은 제비들은 자유자재로 언어를 바꿔 말하고 여기저기 모국어에 목마른 솔로들, 몸만 더블인 가슴솔로들을 흔들어 놓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백, 수천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물론 그런 재능은 타고나는 거라, 수많은 사랑의 언어를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자신의 언어는 까맣게 잊은 채 앵무새처럼 그들의 언어를 반복해 줍니다. 그런데 제비의 언어는 누가 배울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비는커녕 한 번의 제대로 된 사랑도 경험하지 못하는 건, 자신의 언어도 다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비가 되려면 자신의 언어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걸 강조하다 보면 다른 언어가 들어앉을 자리가 없어집니다. 그들은 그래서 자기 학대를 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사랑어를 자기 사랑어 인양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남의 언어를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 익히고, 따라 배우고, 흉내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준은 당신의 외국어 실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장력이 좋거나 모국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일수록 외국어를 학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더군요. 세련되고 어려운 모국어 표현을 아직 서툰 외국어로 하려다 보니 장벽 같은 걸 느끼게 된다고. 단순하게 말하면, 배우는 것도 단순하고 말하는 것도 단순한데, 어려운 생각과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일단 단어선택에서부터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물론 그런 이들이 외국어를 충분히 습득한다면 더 높은 수준의 언어를 구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자기 사랑에 익숙한 사람은 타인의 언어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자기만의 사랑 방식을 고수하다 보니 타인과는 자꾸 충돌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자기 사랑의 언어도 모르는 것보단 낫긴 합니다. 그런 이들은 흉내만 내다 마음이 공허해지고, 자기 방식만을 고수하는 이들은 평생 고르고 찾다가 사랑할 시간을 다 허비해 버리고 맙니다.

무언가를 배우고 쓰고 하는 데 시간을 너무 허비하면 정작 사랑할 시간이 없어집니다. 외국인과 대화를 하고 싶다면 벡날 어학원을 다니는 것보다 당장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게 더 빠른 것처럼, 일단 사랑하고 볼 일입니다. 그건 서툴러도 이미 ‘하고’ 있고, 이미 ‘만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만나면서도 자꾸 내 말만 하면 외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상대의 언어와 표현을 묻고 그것을 익혀야 점점 상대의 말을 하게 될 테니까요.

단순하고 뻔한 얘기지만, 영어 공부처럼 잘 안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상대의 언어, 상대의 사랑의 언어를 배우려면 성급하게 고백하기보다 일단 물어야 합니다.

” ‘감사합니다’가 너의 말로 뭐야?”
” ‘사랑합니다’가 너의 말로 뭐야?”

묻지도 않고 하는 고백은 폭력입니다. 나의 언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내뱉는 말은 욕처럼 들립니다.

‘스파시바’

할아버지를 노엽게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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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s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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