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앞에 서서
[멀린’s 100] Aug 13. 2022 l M.멀린
거절 앞에 서면 마음이 무너지고 하늘도 무너지고. 갈 곳도 없고 설 곳도 없어집니다. 무너진 마음으로는 어떻게 있어도 주체가 되지 않고 그저 사라져 버리고 싶을 뿐입니다. 거절 앞에 서면.
용기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거절을 당하게 된 건 용기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무너집니다. 어떻게 낸 용기인데요. 용기라는 것, 얼마나 마음먹기가 어렵습니까. 그 놈은 꽁꽁 숨어서 찾기도 어렵고, 찾아낸다 한들 내어놓기는 더 어렵습니다. 그걸 했는데 말이죠. 그걸 해냈는데 말이죠. 크게 한숨 쉬고 그것을 내어놓았는데 말이에요. 그것 위에 내 마음을 모두 꺼내 보였는데 말이에요.
거부당한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내밀었던 손은 부끄러워져 빨갛게 달아오른 채 갈 곳을 모르고, 눈빛은 초점을 잃고 흔들리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구슬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무너져 버린 마음이 채우던 가슴은 텅 비어 버려 굉음을 내고, 힘주어 간신히 버티고 있던 다리는 풀어진 채로 주저앉게 되는 겁니다. 용기를 내었더니 마음을 열었더니, 거절 앞에 서서 험한 꼴을 마주하게 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그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면, 한번도 하지 못했다면 두렵고 무서워 다시 용기를 낼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마음을 열어볼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건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하니까요. 그래서 생겨난 건 거부하는 마음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거절하는 마음입니다.
생겨난 그 마음이 다른 거절과 거부를 낳습니다. 용기 없이 내 마음을 보호하려다 보니, 상처 위에 상처를 덧대고 싶지 않다 보니, 타인의 용기를, 타인의 마음을 받아줄 수가 없어 같은 방식으로 거부하고 거절합니다. 그건 너의 몫이라며. 그렇게 모두 각자의 몫을 감당하다 보니, 용기는 간데없고 닫힌 마음들만 거리를 배회합니다. 용기를 내었던 건 외롭기 때문이었는데, 연결되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모두가 닫아걸고 뒤로 물러나 상처만 복기하고 있습니다.
거절 앞에 서서. 누군가 처음 용기를 내야 합니다. 누군가 처음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거절당할 용기를 내야 하고, 내 마음을 거부당한 채 타인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강제로도 안 되고 의무로도 안 됩니다. 오로지 거절을 무릅쓰고 거부를 감당하며 내 마음을 열어놓아야 타인도 용기를 내어볼 수 있게 됩니다. 나의 용기에 자신의 용기를 비춰보고, 나의 열린 마음에 기대 자신의 마음도 열어볼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걸 누가 할까요? 누가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거절 앞에 서서 무너지는 마음을 보며 감동하게 됩니다. 그런 이는 없으니까. 그런 용기는 요즘 찾아보기 어려우니까. 그가 무너진 마음을 다시 고쳐 세우기를 응원하고 기원하게 됩니다. 그 마음에는 한 치도 부정한 것이 없습니다. 거절 앞에 선 마음과 그 마음을 바라보는 마음은.
사랑 앞에서, 많은 이들이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죽고 사는 것보다 간절한 그것 앞에서, 거절을 두려워하고 거부를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절과 거부 너머에 있습니다. 두려움 너머에 있습니다. 그것은 꼭 그것 너머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라만 봅니다. 아무도 넘어서지 못하고 아득한 마음으로 바라만 봅니다. 그리고 아주 어쩌다 용기를 낸 누군가, 그 너머로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면 잔뜩 긴장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고개를 들고 바라봅니다. 받아들여지는지, 마주 잡아 지는지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봅니다.
받아들여진 용기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함께 기쁨을 느낍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거절 앞에 선 용기에게는..
그래도 누군가 시작해야 합니다. 계속 거절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사랑이 계속됩니다. 거절 앞에서는 걸 두려워 하십시오. 괜찮습니다. 그래도 거절 앞에 서십시오. 당당하지 못해도 괜찮으니까 계속 거절 앞에 서십시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으니까. 그대의 사랑이 두려움을 넘어설 때까지, 그대의 사랑이 거절을 넘어설 때까지 거절 앞에서 서십시오. 그래야 사랑이 계속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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