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반하장의 매커니즘
2018.03.30
적반하장 賊反荷杖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리고 비슷한 말로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었더니, 봇짐 내놓으라 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전적 해석은 이렇습니다.
賊 도둑 적
反 돌이킬, 돌아올 반
荷 꾸짖을 하
杖 지팡이 장
: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 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
그리고 유분수(有分數 : 마땅히 지켜야 할 분수가 있음).. 분수는 도둑이 지켜야 할 덕목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미 틀린 말입니다. 적반하장 하게 되는 상황은, 이미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상황입니다. 들킨 도둑이어도 빠져나갈 구멍이 필요합니다. 이판사판이 되면 죄진 놈이 성을 내게 됩니다.
내고 싶어서 내는 게 아닙니다. 적반하장..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닙니다. 살아야겠으니 하는 겁니다. 죽겠다면.. 어차피 이판사판이라면.. 한 번 성이나 내 봐야겠다 싶은 겁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상황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완벽하다 싶은 상황.. 상대가 빠져나갈 구멍 없이 완전히 외통수에 걸렸다 싶은 상황.. 이때에 우리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 상황이 최대한 잘 정리되도록 환경을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리저리 대치국면일 때는, 단번에 판을 엎을 수도 있고, 일 거에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을 때, 이미 승리한 거나 진배없는 상황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상대가 이판사판으로 나오면, 전세가 역전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닭 잡아먹은 놈이 오리발 내밀지 않게 하려면.. 일단, ‘너 많이 배고팠구나..’ 해야 합니다.
상대가 핑계 댈 만한 여지는 열어 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쥐새끼도 코너에 물리면 뒤돌아 무는 법인데.. 코너에 몰린 누군가는 돌아서 이판사판! 외에는 답이 없을 테니 말이죠.
그래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거늘, 아직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 마음을 놓아버리면, 역습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나는 승리에 도취되어 있을지라도, 상대는 ‘모 아니면 도’ 목숨을 걸고 있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노련한 협상가는 상대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줍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아예 재기를 못하게 삼대를 멸해버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래서들 멸족을 삼대에까지 시키는 겁니다. 다시는 복수할 수 없도록 씨를 말려 버리는 겁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상대에게 타협의 여지를 열어 주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입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겁니다.
코너에 몰린 상대에게 도리어 손을 내밀고, 적이 아닌 은인의 자리에 바꿔 앉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대치하던 상대를, 적이 아니 내 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정서와 감정이 허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당신은 승리한 게 아닙니다. 삼대를 멸할 게 아니면, 적을 죽이지도 못하면서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는 역습을 당하고 맙니다.
코너에 몰린 사람은.. 살고픈 사람입니다. 제 발로 항복하지 않고 대항하는 사람은.. 살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더 몰아붙여봐야, 역습의 의지만 불태우게 하는 것입니다.
그걸 김을 빼놔야 합니다. 타협할 구멍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돌파구를 도리어 확보해 주어야 합니다. 도망갈 구멍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아예 내 빼버리면 전열을 정비해서 다시 복수전을 펼칠 테니, 선택의 여지를 주어야 합니다.
내 편이 되던지.. 이 자리에서 죽던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매커니즘입니다. 우리는 모두 ‘만나면 좋은 친구..’인 것 같지만, 냉혹한 약육강식 사회의 매커니즘은 철저하게 적반하장입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들, 마음 약한 사람들의 목만 댕겅댕겅 날아갑니다. 강한 사람들만 더 강해집니다. 센 사람들만 더 세집니다. 알고나 당하자는 말입니다.
여기까지 괜찮습니다. 이미 잘 알고, 어쩔 수 없어 그냥 살아가고 있으니.. 자꾸 들춰내봐야 자존심만 상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도와주었더니 봇짐까지 내놓으라는 검은 머리 짐승입니다.
검은 머리 짐승의 배신
자고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어른들은 압니다. 살다 보면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게 됩니다. 뭐 꼭 내가 착해서가 아닙니다.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게 되는 상황이란, 결국 나도 뭔가 이득이 되거나, 도움이 되는 상황입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고, 의도가 없는 선행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착한 일해서 천국 갈라고.. 양심에 찔려서라도 하게 됩니다. 엄밀히 따지면 결국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상대는.. 도움을 구하거나, 구하지 않았거나.. 상대는 결정권이 없습니다. 거두는 행위의 결정권은 어디까지나 내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댓가를 바라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거두는 행위가 댓가를 전제하고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은혜라는 말이 성립이 되겠지요.
그렇다고 상대가 나를 평생 은인으로 모셔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상대의 요청에 응한 거라면, 일단 조건이 붙는 겁니다. 내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았더라도, 어쨌든 상대나 나나 조건에 응한 것이니.. 바랄 게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봇짐을 내놓으라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니가 날 살렸으니 책임을 지라 이 말입니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상대는 죽었을 겁니다. 당신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죽었을 겁니다. 죽는 걸 살려 놓았으니, 책임은 당신에게 있는 겁니다. 그러니 봇짐을 내놓으라 하는 겁니다. 물론 말이 안 됩니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매커니즘은 그렇습니다. 속담이 있을 만큼 비일비재 한 일입니다. 아니라고 부정한다고 없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닙니다. 거두었다면 봇짐까지 내어주어야 합니다. 그만큼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는 일은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걸 함부로 하지 말라고, 인생의 매커니즘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겁니다.
선한 일은, 우주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기적은, 우주가.. 신이.. 내리는 일이지, 인간이 베푸는 게 아닙니다. 인간은 그저 적반하장 하지 않으면 됩니다. 무슨 자격으로 남의 인생에 은혜를 베푼 답니까? 계산하고 있는 당신은 이미 틀렸습니다. 아니 보상은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다고 하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보상이 오는 일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물에 빠지는 사람을 구하는 일은 거대한 인생의 카르마에 뛰어드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물에 빠진 사람을 모두 그냥 두어야 합니까? 그냥 죽어가게 모른 척해야 합니까?
하실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이것은 마법사의 말입니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거든..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당신 인생의 일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운명이지, 남의 생사가 아닙니다. 그의 생사가 곧 나의 운명인 것입니다. 그것에 마음을 거둘 수 없다면.. 그것은 당신의 운명인 것입니다. 그냥 외면할 수 없어 마음에 자꾸 걸렸다면.. 그것은 이미 당신 인생의 일인 것입니다.
그렇게 남의 일이라고 외면한 사람들이 모두 걸려들었습니다. 지난 정권, 지지난 정권.. 계속 남의 일이라고 외면 한 사람들이,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도리어 살아남는 사람들은 적반하장 하는 사람들입니다. 목숨을 걸고 반전을 노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남의 일이라고 멍청하게 외면하던 사람들은, 모조리 제 덫에 걸려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이미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냥 명령에 준해 내 직무에 충실하면 그만인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물에 빠진 사람은.. 검은 머리 짐승이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나를 거두는 일입니다. 짐승을 거두는 일이 아니라 나를 거두는 일입니다. 그러니 봇짐을 내놓아야 합니다. 달라는 데로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인생의 카르마 하나를 해결하는 겁니다.
그러나 미처 그러지 못하고, 만만하게 여기다 오히려 봇짐 빼앗기고 코너에 몰리거든.. 적.반.하.장. 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빠져나와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뒤돌아 봐야 하는 겁니다. 이게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여 들었는지 말입니다.
적반하장의 매커니즘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우주의 매커니즘이지, 인간의 매커니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미리 알고 받아들이면 쉽습니다. 선택에 신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르고 있다 당하면, 황당하고 억울합니다. 적반하장으로 봇짐 빼앗아 빠져나간 놈은 떵떵거리며 잘 사는 데, 거둔 나는 도리어 억울한 세월을 살아내야 하는 상황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인정해야 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하고 나면 비로소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할지,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그래야 억울한 인생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적반하장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배은망덕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안이한 마음으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지 말라는 말입니다. 상대가 적반하장으로 나오지 않도록, 상황을 끝까지 장악하라는 말입니다. 빠져나갈 구멍 없이 코너로 몰지 말라는 말입니다.
거두어야겠거든.. 운명이라 여기고 최선을 다하란 말입니다. 그러다 코너에 몰리거든 적반하장으로라도 빠져나오라는 말입니다.
거부해도 할 수 없습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미안합니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법사의 말입니다.
아마도 당신에게 필요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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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