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것은 강한 것이다 (1)
2018.02.15

얼마전 모임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성리학의 이기론적 관점과의 연관성과 경향을 논하던 말미에, 저는 조금 도발적인 명제를 던졌습니다. 서양철학의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 그리고 성리학의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 간의 대립은 ‘강한 것은 강한 것이다.’ 그리고 ‘강한 것은 옳은 것이다.’의 명제로 축약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암호화폐 논란 등에서 반대론의 의견을 제시하던 분들은, 바로 ‘강한 것은 강한 것이다’가 아니라 ‘강한 것은 옳다’이겠지라고 수정을 하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기성세대의 젊은세대에 대한 몰이해의 시작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강한 것은 옳다.’ 쩝 그게 아닙니다. ‘강한 것은 옳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 반대편에 선 이들이 ‘강한 것은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명제는 선/악, 참/거짓, 정의/불의.. 이분법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당위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명제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강한 것은 옳아야 한다.’의 반대명제는 ‘약한 것은 옳지 않아도 된다.’입니까? ‘약한 것은 선하다’입니까? 아니면 ‘약한 것은 나빠도 된다’입니까? 아닙니다. 모두 아닙니다. 이 ‘강한 것은 옳아야 한다’의 반대명제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약한 것은 착해야 한다.’입니다. 그래서 늘 약자는 울고 짜고, 피해를 입어야 하고, 일방적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심지어 화를 냅니다. 이 과정에 당사자의 자존심이나 인격은 무시되기 일쑤죠. 착하니까.. 약한 것은 착해야 하니까.. 그렇게 평화통일의 당위 아래, 4년을 준비한 아이스하키팀 선수들과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던 이들은 혼이 났습니다. ‘착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이 거대한 당위 앞에 그 정도 희생이 뭐 그리 대단하냐며 말입니다. ‘강한 것은 옳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들이 ‘옳은 일이니 약자들은 착하게 가만히 있어.’라고 윽박을 지르는 것입니다.
” 당위, 정의.. 누구를 위한 당위이고, 정의일까? 누구의 당위이고 정의일까? “
‘강한 것은 강한 것이다.’의 반대 명제는 ‘약한 것은 약한 것이다.’입니다. 강한 것은 강한 거고, 약한 것은 약한 겁니다. 그뿐입니다. 다만 나는 이것이 좋고 저것이 싫을 뿐입니다. 강한 것이 좋을 수 있고, 약한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저마다 제각각입니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멀쩡한 직장 때려치우고 좋아하는 일 찾아간다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각자 좋은 대로 선택하면 그만입니다. 이 공간에 당위는 각자의 선호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려고 누구의 선호도 침해하지 않으며, 또 나의 선호도 방해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 당위가 무너질 때에만 이들은 전체로서 대항합니다. 그 외에는 어떠한 당위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청년 문제로 온통 시끄러운데, 정작 당사자들은 어디 모습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저마다 목소리를 내는 주체들은 오히려 당사자들과 당사자 세대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언제나 전선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절대성과 다양성
‘강한 것은 강한 것이다’와 ‘강한 것은 옳아야 한다’ 이 명제들을 축약하면 결국 절대성과 다양성의 대립입니다. ‘강한 것은 강한 것이다.’라는 명제는 다양성을 말하고 있고, ‘강한 것은 옳아야 한다’라는 명제는 절대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절대성과 다양성은 대립되지만 분리되는 것도 아닙니다.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 또한 소통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능은 할까요?
다양성은 절대성에 관심이 없습니다. 못마땅해 하며 자꾸 훈계하려 드는 건 절대성입니다. 그들은 무채색으로 자신들에게 다양성이 섞여들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온통 흑백으로 변하게 말입니다. 그러나 그걸 알기에 다양성은 끈질기게 도망갑니다. 흡수되면 자기 색이 사라질테니.. 그래서 무지개에는 흑과 백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공간은 팔레트이니 모든 색이 담겨야 합니다. 그러려면 절대성이 당위를 내려놓고 다양성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와야 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경계가 되어주고 기준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조금만 기세를 확대했다간 흑백은커녕 모두 회색이 되고 말 테니 말이죠.
가상의 세계가 그토록 두렵다면, 매우 조심스럽게 무지개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야 합니다. 채찍 말고 당근으로 말입니다. 안 그러면 이들은 모두 가상의 세계로 쏟아져 들어갈 테고, 현실세계는 붕괴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싸우기도, 설명하기도 귀찮아합니다. 그냥 다른 판으로 옮겨 타거나, 새로 판을 짜면 그뿐입니다. 그런데 그 판에 절대성의 자리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갑자기 그들이 그렇게 두려워졌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모르는 판이 벌어지는 것. 팔레트를 통채로 옮겨버려, 흑백의 자리가 사라진 새로운 세상..
왜 한국 포털의 버튼은 [찬성/반대]로 되어 있고, 페이스북의 버튼은 [좋아요]뿐인지(‘싫어요’는 없다. 차단이 있을 뿐) 절대성에 갇힌 이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대화를 합니다. 누군가는 그 절대성과 상대성의 경계에서 말을 계속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겐트와 홍위병의 출현은 시간문제일 테니 말입니다. 그거야말로 지옥입니다.
쩝.. 가만히 있을까 보다.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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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